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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참아주세요 / 류경희

부흐고비 2021. 3. 30. 08:40

스물네 절기 중 가장 재미있는 이름을 꼽으라면 경칩을 우선으로 들 만하다. 경칩警蟄은 놀랄 경驚과 숨을 칩蟄이 합쳐진 단어니, 글자만으로도 몰래 숨어 있다가 깜짝 놀라는 우스꽝스런 광경이 연상된다.

겨우내 얼었던 얼음장이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우수雨水 무렵부터 서서히 녹기 시작해 이날 드디어 갈라져 버리는데, 얼음 깨지는 소리에 개구리가 깜짝 놀라 뛰쳐나온다 해서 경칩이라는 이름을 붙였단다.

그러나 놀란 동물이 개구리만이겠는가. 숨을 칩蟄은 잡을 집執과 벌레 충蟲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진 글자이니 잠에 취해 몽롱한 채 있던 온갖 곤충들이 이때쯤 일제히 뛰쳐나오게 된다는 의미인 듯싶다.

그런데도 경칩하면 개구리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까닭이 별일이다. 사실 경칩 무렵은 개구리에겐 가장 고통스런 때다. 경칩 개구리는 약 중의 약이 된다 하여 어김없이 포획의 대상이 되어 왔다.

몸에 좋다 하면 이성이 마비되는 우리네 남성들은 개구리는 말할 것도 없고 알까지도 쓸다시피 입안에 넣고 봤다. 개구리도 개구리지만 그 알이 정력제로는 최고란 근거 없는 속설을 믿고 개구리알을 찾다가 독이 있는 두꺼비알을 잘못 먹고 응급실로 실려 오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단다. 몬도가네가 따로 없는 망신스런 식성이다.

이렇게 기괴한 보양식 광풍을 비꼰 일명 <뱀이다>송을 히트시킨 트로트 가수까지 등장해서 웃음 아닌 웃음을 주기도 했는데 그 가사가 실로 요상, 뜨끔하다.

“앗 뱀이다, 뱀이다/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뱀이다, 뱀이다/ 요놈의 뱀을 사로잡아/ 울 아빠 보약을 해드리면/ 아이고 우리 딸 착하구나/ 하고 좋아하실 거야.

앗 개구리다, 개구리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개구리다, 개구리다/ 요놈의 개구리를 사로잡아/ 울 아빠 몸보신을 해드리면/ 아이고 우리 딸 착하구나/ 하고 좋아하실 거야”

아들도 아니고 어린 딸아이가 살아있는 뱀과 개구리를 보며 먼저 드는 생각이 징그럽거나 신기하다가 아닌, 사로잡아 아빠 약해드리고 싶다는 것이고, 그런 딸을 흐뭇해하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 정서라면 이만저만 난처한 상황이 아니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옛날에는 개구리가 소모성 질환인 폐병의 치료약이었다. 한 점 개구리다리고기가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눈물겨운 시절엔 어린아이나 임산부에게도 쇠고기나 닭고기의 대체식품으로 개구리를 먹였던 모양이다.

개구리는 천식의 특효약으로도 여겨 말린 개구리를 가루 내어 꿀을 탄 물과 함께 먹거나 생것을 오랫동안 끓여 먹었다. 빨간 개구리 내장을 제거하고 1마리에 물엿 5홉을 가하여 약한 불에 삶아 졸인 것을 열흘간 하루 삼 회 복용한다는 처방이 발견되기도 한다.

경칩을 전후하여 산개구리를 잡아다가 개구리 죽을 끓이고 튀김으로 만들어 술안주로 즐긴 것이 우리의 전통풍습처럼 알려지기도 했지만 예전의 개구리 섭취는 고기 대신할 수 없이 먹었던 배고픈 풍습이었지 자양강장을 위한 특별한 의식은 아니었을 듯하다.

개구리 요리를 별미로 먹는 민족도 있긴 하다. 특히 개구리를 좋아하는 민족이 프랑스인들인데 평범한 슈퍼에서 닭다리나 냉동새우처럼 황소개구리의 뒷다리를 손질 포장하여 버젓이 팔고 있는 정도다.

그르누유(grenouille)라는 껍질을 벗긴 개구리 뒷다리를 주로 튀김으로 조리하며 그 외에도 스튜나 조림, 양념구이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다. 껍질을 벗긴 개구리 뒷다리야 먹을 수도 있다지만 프랑스인들의 삶은 개구리 요리는 세상에서 제일 엽기적이라는 중국인들의 살아 있는 원숭이골 요리에 버금가는 혐오 요리다.

식탁 위에 조리기구를 가져다 놓고 즉석에서 끓이는 이 요리의 시작은 먼저 개구리를 산 채로 냄비에 넣고 미지근한 물을 붓는 것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알맞은 온도의 물속에서 개구리는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 차츰 뜨거워지는 물의 온도에 적응해 제 몸이 삶아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서서히 요리되며 죽는다.

살아 있는 개구리가 죽어가는 모습을 식탁에 모여 앉아 즐겁게 감상하며 조리된 개구리를 먹을 생각에 군침을 흘리는 장면을 인간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머리카락이 주뼛 솟는 나이트메어다.

그러나 남의 흉볼 처지가 아니다. 약되는 개구리를 찾아 계곡 얼음을 깨는 우리가 남 말에 열을 내다니, 개구리가 하품을 하지 싶다. 잘못했다,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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