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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강우식 시인

부흐고비 2021. 4. 20. 08:18

 

와불선사 / 강우식

공절밥을 얻어먹는 땜으로
아이들에게
경의 글귀를 짚어준 적이 있다.

우연히 마주친 불당 밖
산도화는 그 가진 도색만으로도
능히 한 목숨 미치고야말
봄날이라.

에잇 못 참겠다.
떠억 드러누워서
경을 하늘에다 받쳐 들고

봄철 한때를 보내노라니

이 짓도 중된 마음에서 가늠하면
여간 무례하고 경칠 일 아니라
“경을 누워서 짚는 일 어딨소”
주지승 일갈에

“여자 사처야 내려다보며 뚫지만
경의 글귀는 하늘처럼 우러러야
뚫리는 법이네."

 

하나님 / 강우식

아내를 사랑할 때는 당신을 찾지 않습니다./ 아내를 잃으니 하늘에 닿는 슬픔에 당신을 부릅니다.//

흙 / 강우식

일생 땅 한 뙈기 가진 것 없어도/ 내 죽어 누군가의 흙이 되다니 고맙다.//

별 / 강우식

아무리 진흙탕 막살이로 살아왔어도 밤하늘에는/ 언제나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내 유년의 별사탕이 있다.//

가을비3 / 강우식

빈한하게 살아 한 생이었다고 푸념치마라/ 누군들 저 비울음에 젖어 목줄 떨며 안 지나가겠는가.//

불행하게 살다간 / 강우식

미칠 듯 타는 황맥(黃麥) 위, 떼 귀신의 비명 까마귀/ 귀를 자르고 탈지면 같은 구름으로 봉해 버렸다.//
*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하며

 

삼월이 / 강우식

가시내를 사랑했나봐 지금도 못 잊는 걸 보니/ 어릴 때 3월이 오면 기를 쓰고 놀렸던 이름 삼월이.//

장가 / 강우식

뭐 그리 갖출 게 많으냐 미루다 끝장난다/ 사내가 불알 두 쪽 차고 어느 난바다엔들 못 서겠느냐.//

사랑하는 사람아 / 강우식

사랑하는 사람아, 눈이 풋풋한 해질녘이면/ 마른 솔가지 한 단쯤 져다놓고/ 그대 방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싶었다/ 저 소리없는 눈발들이 그칠 때까지……//

 

봄 / 강우식

초가집 한채가 사내의 벌떡한 물건으로 서있다/ 그녀의 질속에서는 밤새도록 눈 녹는 소리/ 앞개울도 힘좋은 사내와 계집이 어우르는 소리/ 이땅의 봄은 참말로 뭐하드키 옵니다요잉//

배추 / 강우식

잎새는 겹살로 뭉친 계집의 궁둥이다/ 밑둥에 남근처럼 처박힌 뿌리/ 어디선가 이런 접촉 본듯하여/ 속배기를 들추던 손이 부끄러워진다//

안개꽃 / 강우식 

내 어깨를 와삭 물던 세 살배기의 흰 앞니,/ 꼭 고만큼씩한 꽃잎들이 모여 핀 꽃이/ 안개를 이루며 죽은 딸을 회상케 한다./ 정관수술의 매듭을 풀고 애를 갖고 싶다.//

 

해당화 / 강우식 

빨치산에 겁탈당한 열아홉 내 누이다./ 알몸 되어 소름 돋친 살갗을 떨다/ 모랫벌에 혀를 박은 내 누이다./ 원통하게 핏빛으로 까 헤쳐진 밑구멍이다.//

 

코스모스 / 강우식 

바람에 꺾이어진 줄기가 騎馬位를 취하고 있다./ 눈물 때문인지 궁둥이를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 양키놈 흘레붙이나 되어 살아가던 육이오 내 누님/ 다시 펴지지 않는 허리의 율동을 본다.//

 

수선화 / 강우식

한해 겨울을 내 누운 이부자리의/ 발밑에서 수선화 분이 같이 살며/ 아내하고 그 짓하는것도 더러는 구경했다/ 저것도 꽃필 때면 내 짓거리 같은것도 생각해 낼까// 바나나 / 강우식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는 이 살덩어리를/ 당신이 제일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는 이 살덩어리를/ 당신이 제일 미끄럼질하기 좋은 곳으로 인도 하세요.//

귤 / 강우식

등을 씻다가 무심결인 듯 아내는/ 내 불알을 만진다. 손아귀에 쥔 거/ 귤만하여 무슨 향기라도 나는 건가/ 인제는 이러한 일도 무심하구나//

강우식 시집 '파도조'에서...

물맛으로 여자가 우니까 만상이 다 그 소리에 홀렸다/ 텅빈 세상에 자궁처럼 얼룩진 달이 떳다/ 어느 현자 하나가 나타나 가지도 없이 열린/ 감하나 먹겠다고 장대를 흔들고 있었다//

몸뚱이는 수백개의 팬지꽃으로 멍들고/ 입가에 흐르는 피 바닷물에 씻으며 흐느끼며/ 꼽사등 계집하나가 파도에 객이여/ 파랗게 걸린 꼽사등 해안을 하고 있었다.//

눈이 오는 것과 / 강우식

눈이 오는 것과 내리는 것은 같지만/ 우리 둘이는 이렇게 사랑을 했다.// 내가 그대에게 가는 것은 눈이 내리는 것으로/ 그대가 내게 오는 것은 눈이 오는 것으로…//

설야서정(雪夜抒情) / 강우식

저승과 이승을 건네이는/ 얕은 기침 소리 하나 없이/ 눈이 내린다.// 오랜 기다림 속에 견디어 오던/ 사랑도/ 恨으로 남고// 우리가 젊어서 눈물로 흘려버린 유서 한 장 만큼한/ 죽음같이 가벼운 부피로/ 하이얀 눈이 내린다//. 아!/ 눈 내리는 밤이면/ 시렁만큼 높은 곳에 마련되었을/ 관 속으로 나들이 갈/ 무명옷 한 벌과// 저승의 어느 길목에 가더라도/ 하얗게 살/ 내 가시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노인일기2 -丈母喪 / 강우식

장모 이 아무개 여사는 85세까지 혼자 살다가 돌아가셨다. 외아들도 시집간 두 딸도 나름대로 모시지 못한 까닭이 있겠지만 나는 장모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본다. 불효스럽게도 딸들은 어머니를 뵈올 때마다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한 발 먼저 간 남편 곁으로 가시라고 틈만 있으면 강요했고 마침내 장모는 단식 아닌 단식을 시작하여 체중 25kg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살아 있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저녁 일일드라마 ‘보고 또 보고’의 끝도 못 보고 말았다. 혼자 사는 외로움의 그 지독한 깊이를 누가 헤일 수 있으랴. 나는 입관시 미이라 같은 그 몸뚱어리가 고독으로 찌들고 안이 막혔음을 똑똑히 보았다.// 장례 후 장모의 방에는/ 누가 먹으라는 것인지 정성스레 담근/ 노오란 모과주가/ 장롱 속에 한 병 있었다.//

 

청개구리 / 강우식

막걸리 몇 잔에/ 툭 불거진 배를 내놓고/ 청솔 그늘에 누우니/ 自足이/ 청개구리 배통만 하다/. 바람도 물과 같거니/ 물도 바람 같거니/ 청개구리야/ 청개구리야/ 네가 울어도 그만/ 안 울어도 그만.//

풍경 / 강우식

하늘이 너무 많이 보이는/ 대흥사 추녀 끝/ 바다가 너무 많이 보이는/ 낙산사 추녀 끝/ 하늘도 바다도 고색 창연한/ 물결이랑에서/ 어린 고기 한 마리/ 천연히 놀고 있다./ 새순 돋듯한 낡은 기와의/ 파릇한 이끼라도 입질하는 듯……//

어머니의 물감상자 / 강우식

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감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감장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온갖 색깔이 다 모여 있는 물감상자를 앞에 놓고 진달래꽃빛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진달래꽃물을, 연초록 잎새들처럼 가슴에 싱그러운 그리움을 담고 싶은 이들에게는 초록꽃물을, 시집갈 나이의 처녀들에게는 쪽두리 모양의 노란 국화꽃물을 꿈을 나눠 주듯이 물감봉지를 싸서 주었습니다. 눈빛처럼 흰 맑고 고운 마음씨도 곁들여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해종일 물감장사를 하다 보면 콧물마저도 무지개빛이 되는 많은 날들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동저고리 입히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기 위해 물감장사를 하였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이 지상에 아니 계십니다. 물감상자 속의 물감들이 놓아 주는 가장 아름다운 꽃길을 따라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나에게는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운 색깔들만 가슴에 물들이라고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

전어구이 / 강우식

연기란 무조건 나쁜 것인가요./ 독특한 향미의 훈제품도 있잖아요./ 오늘은 맛보다는 굽는 그 냄새가 좋아/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를 석쇠에 올리고 굽다보니/ 고기보다는 그 냄새에 취해/ 서해바다 밀물이 차오르듯 배부르고 말았다./ 다른 연기는 마시면 안 되는데/ 전어 굽는 연기는 괜찮은 건가요./ 혹시 이것도 타면서 생기는 냄새고 연기니/ 배이고 절어 암에 걸리지는 않는지요./ 답은 지나친 걱정도 탈인/ 과유불급이라. 이미 나와 있는 건가요.//

종이학 / 강우식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 사이 전나무들은 부처님의 허리처럼 곧추 서 있고 월정사 석탑과 상원사 동종 사이 하늘을 찌르다 비스듬히 휘어진 탑 끝과 천년 묵은 놋쇠자궁의 동종 사이 방한암 선사의 결가부좌 비슷한 한길과 경 읽다 다 닳은 팔꿈치의 굽이 길 사이 한 순간 개명(開明)하듯 눈 내려 환하다.// 사이사이 산들은 모조지로 접은 종이학이다./ 그대가 곁에 있어 옛날에는 마음을 모아 밤새도록 정갈히 접고 만들었던 종이학./ 지금은 종이학 접어 빌어 줄 그리운 사람도, 사람도 아주, 아주 소식줄 끊겨 만드는 법도 까마득히 잊은 무명(無明)같이/ 칠흑의 흰 바탕뿐인 마음눈이 내린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 사이 유리병 안에 천 마리 학이 갇혔구나./ 그저 하얗게 저무는 경전의 말씀./ 하실 말씀 더 없으신 눈이 기막히게 내린다./ 내린 눈보다 내가 더 조용히 깊고 하얗게 젖는다.//

꾀꼬리장단 / 강우식

칠순 가까운 아내가/ 김치 냉장고에서/ 철지난 김장통을 꺼내느라/ 부산하다. 사먹으면 될 것을/ 사서 고생한다./ 늘 사서 고생하는 일이/ 여자의 몫이란다./ 봄을 유난히 더 타 안쓰럽다/. '무엇 하느냐'고 물어본다./ '보면 몰라요./ 힘없어 누워 있으면/ 누워 있다고 혀를 차고/ 일하면 일한다고/ 눈짓 주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추지요.'/ 대뜸 나온 말/ '꾀꼬리 장단에 춤추지'/ 순간 푸른 하늘이/ 돛폭처럼 펄렁 부풀어 올랐다./ '꾀꼬리 장단'이라/ 이 아름다운 말을/ 몇 십 년 만에 무심코/ 입에 올려본 순간/ 득도한 스님처럼/ 봄 하늘이 아득해졌다./ 4번 타자의 홈런 한 방을 맞은 듯/ 눈두덩이 푸르른 하늘/ 금년 한 해도 마누라가 담근/ 김치를 먹을 수 있을지/ 산다는 게 평생 철없는/ 장난이라고/ 인생을 쓰디쓰게 곱씹어보는/ 양지바른 숲 속 어디선가/ 매사에 음악처럼 살라고/ 꾀꼬리장단 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의 입 / 강우식

꽃들은/ 소리 모양으로 피어 있다.// 무슨 소리가 나오는지/ 그 여자의 입 모양을/ 자세히 보라.// 진북청색 가을하늘을 쳐다보며/ 하늘끝이 울리도록/ 소리치던 한낮의/ 여자.// 밤이 되어서/ 사랑을 하면서도/ 끝없이 가끝없이 하늘이 떨리도록/ 낮에처럼 소리치고 싶어요 하던/ 등 푸른 생선 같은/ 여자,// 꽃들은/ 모두 소리 모양으로 피어 있다.// 무슨 소리 향기가 나오는지/ 그 여자의 입자국을/ 자세히 보라.//

봄밤 / 강우식

목련꽃은 피었는데// 세상은 하찮은 일에도/ 너무나 흔들리고// 목련꽃,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핀 것도 잠시잠깐// 천지가/ 무너지듯 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뜬소문 쪽으로만/ 자꾸자꾸 흘러// 하루밤새 연초록 잎들이/ 뭉게구름처럼 온 산 덮은 듯 하고// 밤이다. 계집 때문에 목련꽃처럼/ 하얗게 몰락하고픈 달밤이다.// 산새의 지저귐 같은/ 소리로// 하늘 끝까지 같이 가고픈/ 그녀 집 앞에서 넋 놓고// 불량학생처럼 휘파람 불었던/ 옛날이 그리운 목련꽃 밤이다.//

봄 기도 / 강우식

하찮은 풀잎이라도 새싹들은/ 지뢰 밟듯 조심스럽다/ 담장 포도나무들은/ 차 스푼보다 작은 송이 속에/ 좁쌀알만한 꿈들을 달고/ 바람 속에, 햇볕 속에 녹아 있고/ 사과나무는 하얗게 꽃 피어/ 벌들의 날개 짓에도 얼굴 붉혀라.// 꿈 속에 꿈꾸던 내 사람아/ 이제는 혼수의, 인사불성의 긴 잠에서/ 죽이는 꽃들의 빛깔로, 향기로, 하늘거림으로/ 아픈 데서부터 깨어나/ 한 치 밖에 있는 봄 구경을 제발 좀 하여라./ 단 하루만이라도 봄빛으로 눈 떠 보아라./ 하늘빛이 시리도록 맑고 흰 눈동자를....../ 펑, 펑, 펑 꽃 터지듯 떠 보아라.//

번개 / 강우식

광기가 아니고는/ 하늘을 순간이나마/ 금이 가게 할 수 없다.// 조선 왕조 내실에서/ 세상 몰래 비단 금침을/ 서로 끌어당기는/ 소리.// 하늘마저도/ 질투의 금이빨을 이그러뜨리며/ 금침을 나꿔챈다.// 치고 또 쳐라, 쳐라./ 햄릿의 비탄처럼/ 바위의 이마가 빠개지도록/ 허이연 꿈의 물이 흐르도록……// 간통의 밑바닥에/ 누가 독침을 감추었다./ 물을 핥는 혓바닥이 마비되도록/ 마비되어서 모든 구멍이/ 자유롭게 다니도록// 벼락이여, 날벼락이여!/ 스무살 혈기로/ 대지를 때리고 뒤흔들어라.// 진실로 광기가 아니고는/ 지상에 무엇이/ 새로워질 수 있겠는가.// 한강의 물은/ 어머니 젖처럼/ 불어나고 있다.// 멀리 아마존 기슭의/ 아나콘다가 번개로 와서/ 하늘에서 태백산맥처럼 꿈틀댄다.// 아, 아, 아, 클라이막스의 전류/ 끊임 없는 광기,/ 광기뿐.//

선거 유세장에서 / 강우식

사람은 어디 가고/ 잘 먹고 잘 입고 잘사는 것만이/ 민주주의가 되어 있다.// 유령에 홀렸는가./ 일백만이 살지 않는 도시에/ 일백만 이상의 인파가 모인다.// 상상은 상식이 아니다/ 현실은 상상을 초월하여/ 기적을 낳는다.// 피켓에, 풍선에 그려진/ 유령들의 모습이 뚜렷하다/ 부적처럼 들고 흔들며/ 신명이 나서/ 굿풀이도 한다.// 정오에 나는 내 돈으로/ 소주 한 잔 사먹었다./ 마치 하느님 같은 선심 속에서/ 나는 억울했다.// 인생은 유령들의 잔치인가// 떠드는 자의 말의 성찬이/ 듣는 자보다 더 무책임하다/ 떠들고 나면/ 대학 강단에서의 내 시론처럼/ 괴로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지지자와 함께/ 자폭하려 한다.// 가까울수록 거리를 두고/ 사랑해야 한다.//

폭포 / 강우식

폭포는 높은 단계의 수평에서/ 그 아래 낮은 단계의/ 수평으로 흐르기 위해 떨어지며/ 죽음의 찰나에도 온통 포말을 날려/ 환희의 기쁨으로 넘친다./ 물처럼 몸을 바꾸며/ 어디든 적응 잘하는 게 없다지만/ 물처럼 한 번 길이 정해지면 길대로 가는/ 결단력을 보이는 것도 흔치 않으리./ 폭포는 경천동지하도록 끝장내고자 하는,/ 끝장내고자 하는 산화의 몸짓./ 그리하여 얻게 되는 희디흰 포말의 경구/ 죽고자 하면 살게 되고/ 살고자 하면 죽게 될 것이다./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보다/ 더 결단 있는 소리로 힘차게 살아서/ 높으면 높은대로 낮으면 낮은대로/ 깊고 얕음을 가리지 않고/ 굽이치고 휘돌아 유유히 흐르는/ 상선약수 율律의 맥을 보느니./ 물은 스스로가 사즉생 생즉사하며/ 비류직하 삼천척의 몸짓으로/ 어떻게 살다 가야할지를 아는 것 같다.//

염불 / 강우식

생사 길은/ 예 있으매/ 늘 곁에 소줏잔을 놓고 앉아 있어서/ 순수하고/ 한쪽 다리를 절어서/ 병든 시대에 더욱 아름다웠던/ 시인이 눈을 감았다./ 진달래 꽃살 타는 아내를/ 어느 시인 중놈이 몰래 짓이기고 가도/ 살이 고파서 그렇거니 /슬며시 눈감아주던/ 우리의 처용/ 생전에 그에게 진 빚 때문에/ 차마 아니올 수 없었던/ 몇몇 시인들만이 지키고 있는/ 어두운 빈소에/ 반쯤 시정잡배가 다 된 시인 중도 섞여 있다가/ 목탁을 들어서/ 염불을 한다./ 살아서 나에게 감아준 눈/ 눈 하나로도 부처되리니/ 아주 감은 눈 뜨지 말고/ 나무아미타불.//

어떤 선물 / 강우식

제자 한 명이 우편함에/ 훌륭한 모습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 라는/ 제목의 사진집을 넣고 갔다/ 꽃은 피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꽃향기가 난다/ 강물은 아직 얼음인 채 그대로인데/ 봄노래를 코끝에 달고 있었다/ 아름다워라/ 이름도 성도 모르는 제자의 모습/ 물처럼 사는 법을 가르쳐 준......//

서시 콘도르의 큰 날개가 / 강우식

콘도르의 큰 날개가 칠흑을 밀어내고/ 안데스의 하늘이 열렸다./ 태양의 햇살을 부채날개에 가득 실은/ 콘도르는 자신의 형상을 닮은/ 마추픽추의 하늘 위를 순찰하듯 유유히 돈다./ 지금 마추픽추는 텅텅 비어 있다./ 산은 늘 비어 있고 빈 마음이다./ 그 옛날 융융했던 마추픽추는/ 태양신의 명을 받은/ 콘도르가 날카로운 발 갈퀴로/ 몽땅 채어 어디론가 사라지고/ 페루드란스 독사 같은/ 우루밤바 강의 급류가 흰 이를 드러내고/ 밤낮으로 물어뜯는 그 위에/ 마추픽추는 텅 빈 적막 속에 의연하다./ 역사는 늘 페루드란스처럼/ 음흉한 독을 품고 뒤에서 공격했지만/ 마추픽추는 폐허가 되어/ 오히려 신비한 공중도시로 살아났다./ 마추픽추는 통제된 땅이었다./ 산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땅이고 산이었다./ 선택된 사람만이 들어가 살다/ 신의 부름을 받아 태양신에 헌신하는/ 산 속의 땅이었다./ 그래서 더 비밀의 문을 열어보고 싶듯이/ 소문은 무성하고 자자했다./ 산의 미로와 같은 신비를 때로는/ 사람들이 만들어 왔듯이/ 돌로써 황금을 만든 도시였다./ 보는 사람에 따라 돌이 황금이 되고/ 황금이 돌이 되는 도시였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씀을 따른 사람들에게는/ 돌이 황금으로 보였다,/ 안데스를 비추는 황금빛 햇살이/ 돌에 스미어 황금이 되는 신비를/ 콘도르킨가의 백성들은 자연에서 알았다./ 잉카들의 삶은 자연연금술이었다./ 산이 있어, 거기 산 하나가 있어/ 돌로써 황금도시, 황금보다 더 아름다운/ 공중도시 마추픽추를 만들었다//

스스로 안데스의 하늘 아래 / 강우식

스스로 안데스의 하늘 아래 어딘가에/ 돌처럼 황금이 지천으로 쌓인/ 눈부신 샹그릴라가 있다고 믿는/ 잉카들이 아직도 많듯이/ 소문은 숲의 초록 잎처럼 일렁이고/ 자고 일어나면 꿈같은 말이 구름으로 퍼져/ 발을 달고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었다./ 소문은 날개를 활짝 편 콘도르,/ 황금에 눈이 뒤집힌 침탈자들이/ 울울창창한 숲을 헤치고 기어들었다./ 마추픽추는 그런 도시였다./ 나는 천만년을 잠자는 돌 틈에 돋은 쪽 풀의/ 강인한 생명력도 보지만/ 숲의 비명소리도 듣는다./ 안데스의 새벽 고요를 깨치고/ 쓰러지는 교목과 잡목의 비명도 듣는다./ 역사의 옛 자취도 없이 사라진 도시에 번진/ 잔인한 피 얼룩과/ 슬프고도 처절한 사랑의 무늬도 예감한다./ 태양을 위하여/ 돌로써 태양의 신전이 세워지고/ 태양과 하나 되기 위하여 해시계를 만들고/ 하늘이 무너져도 끄떡없는 움직이지 않는 돌로써/ 움직이는 태양을 잡아두고자 한 잉카였다./ 인띠와따나, 태양을 잡는 천문관측소가 있던/ 신의 도시 맞추픽추였다./ 도시의 한쪽 콘도르킨가의 황금 소문은/ 안데스의 바람을 타고 흘러, 흘러/ 바다 건너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산을 무너뜨리고 밤잠을 설치게 했다./ 갈증은 참을 수 없는 욕망이다./ 물을 찾아 사막을 헤매는 나그네처럼/ 황금 물에 눈이 뒤집히고 먼 자들은/ 소경의 지팡이로 이리저리 땅을 더듬으며/ 천 만길 황야를 휩쓰는 바람이 되어/ 마추픽추를 싹쓸이로 비질했다./ 황금은 어디 갔을까./ 잉카들이 아무리 머리를 흔들고 손을 저어도/ 황금이 돌이고 돌이 황금이라 해도/ 감쪽같이 숨겼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침탈자들의 숙명./ 황금이 아닌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슬픈 무리들이었다./ 돌은 아무 쓸모없는 돌일 뿐이었다./ 끝없는 고문과 피의 살육이 시작되었다./ 황금으로 온몸을 휘감듯이 잉카의/ 피로 매대기 하는 밤과 낮의 연속이었다./ 내던져진 인육들의 피 냄새는/ 안데스의 굶주린 콘도르들을 꾀게 하고/ 마추픽추는 텅 빈 바람의 공간이 되어 갔다./ 숲의 장막이 드리워진/ 바람처럼 텅 빈 듯이 있는/ 밀림 속 신비한 도시로 변해 갔다.//
그리고 세월이라는 망각의 긴 시간이 흘렀다./ 피의 황금이 다 사라진 그 자리에/ 태양의 황금인 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마추픽추의 산처럼 쌓인 돌들은/ 오랜 바람의 시간과 눈보라의 공간 속에서/ 피의 얼룩들을 다 씻고 닦아낸/ 구도자의 뼈처럼 정화되어/ 다시 시작하는 사역의 역사였다./ 모든 삶과 죽음은 태양을 따라/ 밤과 낮으로 순회하고/ 하늘의 돌인 별의 운행을 아는 황제 콘도르킨가는/ 하늘에서도 제일 아름다운 별자리를 본떠/ 마추픽추의 돌집들을 만들었다./ 별들의 울타리를 만들어 갔다.//
모든 슬픔을 가슴에 품고도 내색이 없는/ 망각 속의 백치였던 잉카의 돌들이/ 별처럼 산의 어둠을 뚫고 부활했다./ 돌은 황금이면서 때로는 폭력의 공포였다./ 콘도르킨가는 새 한 마리도/ 그의 명령이 아니면 날지 못하도록/ 신의 목소리와 계율로 돌의 제국을 만들었다./ 잉카들은 모두 지상에 얽매인 돌이었다/. 돌이어서 신의 도시를 만들 수 있었다./ 가끔 안데스의 돌들은 꿈을 꾸었다./ 하늘의 별자리에 떠 있듯이/ 신 앞에 매인 몸들인 잉카의 꿈./ 돌들은 한자리 박혀 오래 살기보다는/ 우루밤바 강에 춤추며 떨어지는 꿈을 꿨다./ 꿈꾸는 돌들은 자유를 희망했다./ 하늘의 별들이 우박처럼 떨어지는/ 낙하는 비상의 다른 의미다./ 누가 하늘 높이 꿈을 싸서 돌로 던진 것일까./ 그 안데스 산맥 위로 잉카의 꿈이 날았다./ 돌이 새가 되었다. 자유를 사랑하는 새가 되었다./ 유성 같은 새가 하늘로 솟구쳤다./ 유유히 안데스를 지배하듯 나는 콘도르였다./ 우주전함 같은 콘도르./ 돌의 눈이자 하늘의 눈을 가진,/ 하늘을 날 수 있는 돌은 콘도르뿐이었다./ 콘도르가 없는 잉카를 어찌 노래할 수 있으랴./ 돌이 떨어지거나 솟구치거나 하는 것 같은 새./ 콘도르는 안데스의 하늘이고 돌의 날개다./ 어찌 콘도르가 하늘을 그냥 날겠는가./ 털끝만치 미세한 바람의 흐름도 다 감지하고/ 그 느낌대로 호흡하며 기류를 타는/ 콘도르를 사랑한다는 것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신이 사는 산을 사랑하는 것이고/ 페루를 사랑하는 것이다. 숲과 나무와/ 피리와 노래의 숨결을 사랑하는 것이다./ 신 앞에 자유로웠던 콘도르의 심장 잉카의 꿈./ 비상하는 돌이여 숨을 쉬자./ 돌 속에 사는 잉카의 후손들은/ 늙은 마누라와 오래 해로해 왔듯이/ 누구나 늙은 돌산 봉우리 마추픽추를 가지고 산다./ 돌산이 바로 신비한 신의 도시이고 집이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같은 안데스다.//


 

강우식 시인

1941년 강원도 주문진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국문과 졸업, 문학박사. 1966년 '현대문학'지로 문단에 데뷔했다. 제20회 현대문학상, 제6회 펜클럽문학상, 제34회 월탄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시집 '강우식 시전집', '어머니의 물감상자', '바보산수', 아동도서 '어린이 탈무드', 전래동화 '옹고집전', 기타 저서로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세계의 명시를 찾아서' 등을 냈다. 성균관 대학교 교수 역임.

 

 

강우식 시인의 생애와 문학 / 김내식 시인

강우식 시인의 생애와 문학 약력: 水兄,老平,果山 姜禹植 1941년 강원도 주문진 생 성균관대 국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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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강우식시인의 시에 대하여

강우식, ?살아가는 슬픈, 벽?, (고요아침, 2013) 가을비1 사는 게 무서워서 속 시원히 울 새도 없었는데 누가 이리 한가하게 천지를 적시며 오시나. 고요 눈 내리다 그쳤다고 천지가 다 고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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