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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김용택 시인

부흐고비 2021. 12. 25. 21:16

 

그랬다지요 / 김용택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사람들은 왜 모를까 / 김용택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벗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밤 너무나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 최성수 노래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소프라노 김희정 가곡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참 좋은 당신 / 김용택

어느 봄 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사랑 / 김용택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속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이뻐 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배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은 어느 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인 참 좋았습니다./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그리운 우리 / 김용택

저문 데로 둘이 저물어 갔다가/ 저문 데서 저물어 둘이 돌아와/ 저문 강물에/ 발목을 담그면/ 아픔없이 함께 지워지며/ 꽃잎 두송이로 떠가는/ 그리운 우리 둘//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 김용택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나 홀로 걷는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지기 전에 그대가 와서 반짝이는 이슬을 텁니다 나는 캄캄하게 젖고/ 내 옷깃이 자꾸 젖어 그대를 돌아봅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마르기 전에도/ 숲에는 새들이 날고 바람이 일어 그대를 향해 감추어두었던 길 하나를/ 그대에게 들킵니다 그대에게 닿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내 마음 가장자리에서/ 이슬이 반짝 떨어집니다/ 산다는 것이나/ 사랑한다는 일이나 그러한 것들이 때로는 낯설다며 돌아다보면 이슬처럼/ 반짝떨어지는 내/ 슬픈 물음이 그대 환한 손등에 젖습니다 사랑합니다 숲은/ 끝이 없고 인생도 사랑도 그러합니다/ 그 숲/ 그 숲에 당신이 문득 나를 깨우는 이슬로/ 왔습니다//

 

봄봄봄 그리고 봄 / 김용택

꽃바람 들었답니다/ 꽃잎처럼 가벼워져서 걸어요// 뒤꿈치를 살짝 들고/ 꽃잎이 밝힐까 새싹이 밝힐까 사뿐사뿐 걸어요// 봄이 나를 데리고/ 바람처럼 돌아다녀요// 나는 새가 되어 날아요/ 꽃잎이 되고, 바람 되어/ 나는 날아요/ 당신께 날아가요// 나는 꽃바람 들었답니다/ 당신이 바람 넣었어요//

 

봄 옷 입은 산 그림자 / 김용택

그저께 엊그저께 걷던 길/ 어제도 걷고 오늘도 걸었습니다// 그저께 엊그저께 그 길에서/ 어제 듣던 물소리/ 오늘은 어데로 가고/ 새로 찾아든 물소리 하나 듣습니다// 문득 새로워 걷던 발길 멈추고/ 가만히 서서 귀기울여봅니다// 아, 그 물소리 새 물소리/ 봄옷 입은 산그늘 강 건너는 소리입니다//

사랑노래 2 / 김용택

돌아눕고 돌아눕고 돌아누워/ 왼 밤을 딩굴어 만든 사람아/ 아침 햇살에/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 사람아//

사랑노래 3 / 김용택

사랑의 눈과 눈이 만나 붐비네요/ 붐비는 것은/ 바람없이 노는/ 금싸라기 같은 햇빛이구요// 아물아물 눈이 시네요/ 오오, 봄이군요/ 우린 둘 다/ 진달래빛 환한/ 앞산 뒷산이구요//

사랑 노래 5 / 김용택

마음의 끝을 보고 걸어서/ 마음의 끝에 가면/ 한쪽 어깨가 기울어/ 저뭄에 머리 기대고 핀/ 외로운 뜰꽃 하나 보게 되리/ 팍팍하게 걸어온 저문 얼굴로/ 헐은 어깨 기울이면/ 야윈 어깨 기대오던 저문 그대/ 마음의 끝에 서서/ 저뭄의 끝에 기대섰던 우리/ 마음의 끝을 적시며/ 그대는 해지는 강물로/ 꽃잎같이 지고/ 한쪽이 쓸쓸한 슬픔으로/ 나는 한세상을/ 어둑어둑 걷게 되리//

들국 / 김용택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뭐헌다요 산 아래/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산 너머, 저 산 너머로/ 산그늘도 다 도망가불고/ 산 아래 집 뒤안/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당신 안 오는데 무슨 헛짓이다요/ 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 초생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헌다요/ 마른 지푸라기 같은 내 마음에/ 허연 서리만 끼어 가고/ 저 달 금방 져불면/ 세상 길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 턴디/ 병신같이, 바보 천치같이/ 이 가을 다 가도록/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뭐헌다요, 뭔 소용이다요.//

가난한 꽃 / 김용택

가난이 뭔지 알겠습니다/ 가난 안에서만 꽃은 만발하고/ 가난 안에서만 꽃은 향기롭습니다/ 가난이 뭔지 알겠습니다/ 가난이 뭔지 아는 것은/ 사랑이 뭔지 아는 것이고/ 사랑은 다 버리고/ 세상을 다 얻는 것이겠지요/ 이제/ 그대 가난한 가슴 위에 피어나는 들꽃들이/ 그대 가난한 가슴 속의 눈물인 줄도/ 알겠어요//

나를 잊지 말아요 / 김용택

지금은 괴로워도 날 잊지 말아요./ 서리 내린 가을날/ 물 넘친 징검다리를 건너던/ 내 빨간 맨발을/ 잊지 말아요.// 지금은 괴로워도 날 잊지 말아요./ 달 뜬 밤, 산들바람 부는/ 느티나무 아래 앉아/ 강물을 보던 그 밤을/ 잊지 말이요.// 내 귀를 잡던 따스한 손길,/ 그대 온기 식지 않았답니다.// 나를 잊지 말아요.//

단 한번의 사랑 / 김용택

이 세상에/ 나만 아는 숲이 있습니다/ 꽃이 피고/ 눈 내리고 바람이 불어/ 차곡차곡 솔잎 쌓인/ 고요한 그 숲길에서/ 오래 이룬/ 단 하나/ 단 한번의 사랑/ 당신은 내게/ 그런/ 사랑입니다//

이 꽃잎들 / 김용택

천지간에 꽃입니다./ 눈 가고 마음 가고/ 발길 닿는 곳마다 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지금 꽃이 피고 못 견디겠어요/ 눈을 감습니다./ 아, 눈 감은 데까지 따라오며/ 꽃은 핍니다./ 피할 수 없는 이 화사한 아픔,/ 잡히지 않는 이 아련한 그리움,/ 참을 수 없이 떨리는/ 이 까닭 없는 분노/ 아아, 생살에 떨어지는/ 이 뜨거운 꽃잎들//

그이가 당신이예요 / 김용택

나의 치부를 가장 많이 알고도 나의 사람으로 남아 있는 이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사람이 당신입니다/ 나의 가장 부끄럽고도 죄스러운 모습을 통째로 알고 계시는/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하는 분일 터이지요/ 그분이 당신입니다/ 나의 아흔아홉 잘못을 전부 알고도 한점 나의 가능성을/ 그 잘못 위에 놓으시는 이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이일 테지요/ 그이가 당신입니다/ 나는 그런 당신의 사랑이고 싶어요/ 당신의 한점 가능성이 모든 걸 능가하리라는 것을/ 나는 세상 끝까지 믿을래요/ 나는,/ 나는 당신의 하늘에 첫눈 같은 사랑입니다.//

내게 당신은 첫눈같은 이 / 김용택

처음 당신을 발견해 가던 떨림/ 당신을 알아 가던 환희/ 당신이라면 무엇이고 이해되던 무조건,/ 당신의 빛과 그림자 모두 내 것이 되어 가슴에 연민으로 오던 아픔,/ 이렇게 당신께 길들여지고 그 길들여짐을 나는 누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사코 거부할랍니다./ 당신이 내 일상이 되는 것을./ 늘 새로운 부끄럼으로/ 늘 새로운 떨림으로/ 처음의 감동을 새롭히고 말 겁니다./ 사랑이,/ 사랑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요./ 이 세상 하고 많은 사람 중에 내 사랑을 이끌어 낼 사람 어디 있을라구요./ 기막힌 별을 따는 것이 어디 두 번이나 있을법한 일일라구요./ 한 번으로 지쳐 혼신이 사그라질 것이 사랑이 아니던지요./ 맨처음의 떨림을 항상 새로움으로 가꾸는 것이 사랑이겠지요./ 그것은 의지적인 정성이 필요한 것이지요./ 사랑은 쉽게 닳아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당신께 대한 정성을 늘 새롭히는 것이 나의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나는 내 생애에 인간이 되는 첫관문을 뚫어주신 당신이 영원으로 가는 길까지 함께 가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당신에게 속한 모든 것이 당신처럼 귀합니다./ 당신의 사랑도, 당신의 아픔도, 당신의 소망도, 당신의 고뇌도 모두 나의 것입니다.// 당신 하나로 밤이 깊어지고 해가 떴습니다./ 피로와 일 속에서도 당신은 나를 놓아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기도, 명상까지도 당신은 점령군이 되어버리셨습니다./ 내게,/ 아, 내게/ 첫눈 같은 당신.//

약이 없는 병 / 김용택

그리움이, 사랑이 찬란하다면/ 나는 지금 그 빛나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아파서 못 견디는 그 병은/ 약이 없는 병이어서/ 병중에 제일 몹쓸 병이더이다// 그 병으로 내 길에/ 해가 떴다가 지고/ 달과 별이 떴다가 지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수없이 돌아흐르며/ 내 병은 깊어졌습니다// 아무리 그 병이 깊어져도/ 그대에게 이르지 못할 병이라면/ 이제 나는 차라리 그 병으로/ 내가 죽어져서// 아, 물처럼 바람처럼/ 그대 곁에 흐르고 싶어요//

미처 하지 못한 말 / 김용택

살다가,/ 이 세상을 살아가시다가/ 아무도 인기척 없는/ 황량한 벌판이거든/ 바람 가득한 밤이거든/ 빈 가슴이, 당신의 빈 가슴이 시리시거든/ 당신의 지친 마음에/ 찬바람이 일거든/ 살다가, 살아가시다가......//

나는 당신의 꽃 / 김용택

내 안에/ 이렇게 분이 부시게/ 고운 꽃이 있었다는 것을/ 나도 몰랐습니다./ 몰랐어요// 정말 몰랐습니다/ 처음 이예요/ 당신에게 나는/ 이 세상 처음으로/ 한 송이 꽃입니다//

방창(方暢) / 김용택

산벚꽃 흐드러진/ 저 산에 들어가 꼭꼭 숨어/ 한 살림 차려 미치게 살다가/ 푸르름 다 가고 빈 삭정이 되면/ 하얀 눈 되어/ 그 산 위에 흩날리고 싶었네//

빗장 / 김용택

내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서럽기만 합니다/ 가민히 있을 수 없어/ 논둑길을 마구 달려보지만/ 내달아도 내달아도/ 속떨림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루종일 시도 때도 없이/ 곳곳에서 떠올라/ 비켜 주지 않는 당신 얼굴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겠어요/ 무얼 잡은 손이 마구 떨리고/ 시방 당신 생각으로/ 먼 산이 다가오며 어지럽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당신을 향해 열린/ 마음을 닫아보려고/ 찬바람 속으로 나가지만/ 빗장 걸지 못하고/ 시린 바람만 가득 안고/ 돌아옵니다.//

그리운 꽃편지 1 / 김용택

봄이어요/ 바라보는 곳마다 꽃은 피어나며 갈 데 없이 나를 가둡니다. 숨막혀요. 내/ 몸 깊은 데까지 꽃빛이 파고들어 내 몸은 지금 떨려요. 나 혼자 견디기 힘들/ 어요/ 이러다가는 나도 몰래 나 혼자 쓸쓸히 꽃 피겠어요. 싫어요. 이런 날 나 혼/ 자 꽃 피긴 죽어도 싫어요./ 꽃 피기 전에 올 수 없다면 고개 들어 잠시 먼 산 보셔요. 꽃 피어나지요./ 꽃 보며 바라보는 곳마다 꽃은 피어나며 갈 데 없이 나를 가둡니다. 숨막혀/ 요./ 내 몸 깊은 데까지 꽃빛이 파고들어 내 몸은 지금 떨려요. 나 혼자 견디기/ 힘들어요/ 이러다가는 나도 몰래 나 혼자 쓸쓸히 꽃 피겠어요. 싫어요. 이런 날 나 혼/ 자 꽃 피긴 죽어도 싫어요./ 꽃 피기 전에 올 수 없다면 고개 들어 잠시 먼 산 보셔요. 꽃 피어나지요./ 꽃 보며 스치는 그 많은 생각 중에서 제 생각에 머무셔요. 머무는 그곳, 그/ 순간에 내가 꽃 피겠어요. 꽃들이 나를 가둬, 갈 수 없어 꽃그늘 아래 앉아/ 그리운 편지 씁니다./ 소식 주셔요.//

푸른 나무 / 김용택

나도 너 같은 봄을 갖고 싶다/ 어둔 땅으로 뿌리를 뻗어내리며/ 어둔 하늘로는 하늘 깊이 별을 부른다 너는/ 나도 너의 새 이파리 같은 시를 쓰고 싶다/ 큰 몸과 수많은 가지와 이파리들이/ 세상의 어느 곳으로도 다 뻗어가/ 너를 이루며 완성되는 찬란하고 눈부신 봄/ 나도 너같이 푸르른 시인이 되어/ 가난한 우리나라 봄길을 나서고 싶다//

흔적 / 김용택

어제 밤에 그대 창문 앞까지 갔었네/ 불 밖에서 그대 불빛 속으로/ 한 없이 뛰어들던 눈송이 송이/ 기다림없이 문득 불이 꺼질 때/ 어디론가 휘몰려 가던 눈들// 그대 눈 그친 아침에 보게 되리/ 불빛 없는 들판을/ 홀로 걸어간 한 사내의 발자국과/ 어둠을 익히며/ 한참을 아득히 서 있던/ 더 깊고/ 더 춥던 흔적을//

콩, 너는 죽었다 / 김용택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섬진강 1 /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뜰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띈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자/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섬진강 15 - 겨울, 사랑의 편지 / 김용택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가슴만이 진정 녹을 수 있음을/ 이 겨울에 믿습니다./ 달빛 산빛을 머금으며/ 서리 낀 풀잎들을 스치며/ 강물에 이르면/ 잔물결 그대로 반짝이며/ 가만가만 어는/ 살땅김의 잔잔한 끌림과 이 아픔/ 땅을 향한 겨울풀들의/ 몸 다 뉘인 이 그리움/ 당신,/ 아, 맑은 피로 어는/ 겨울 달빛 속의 물풀/ 그 풀빛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울어라 봄바람아 / 김용택

강변을 너무 오래 걸어서/ 내 발등에는/ 풀잎이 아닌/ 이슬이 아닌/ 꽃잎이 떨어진다./ 산을 너무 오래 바라보았는가./ 산을 기대고 선 내 슬픈 등을/ 산은 멀리 밀어낸다./ 봄이 와서/ 꽃들이 천지간에 만발하고/ 나는 길을 잃었다/ 너는 어디에서 꽃피느냐/ 인생은 바람 같은 것이어서/ 흩날리는 꽃잎을 뚫고 강 길을 걸어온 것 같구나./ 그래도 나는 꽃핀 데로 갈란다./ 막히고 허물어지고 사라진/ 길을 걸어온/ 슬픈 내 발등을 들여다보며/ 슬픈 발등을 자꾸 쓰다듬으며/ 울던 날들,/ 강변을 너무 오래 걸어서/ 강변을 너무나 오래 걸어서/ 내 발등에는/ 이슬이 아닌/ 서러운 꽃잎들이/ 날아와 박힌다./ 불어라 봄바람아/ 울어라 봄바람아//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 / 김용택 

환장허겄네 환장허겄어/ , 농사는 우리가 쎄빠지게 짓고/ 쌀금은 저그덜이 편히 앉아 올리고 내리면서/ 며루 땜시 농사 망치는 줄 모르고/ 나락도 베기 전에 풍년이라고 입맛 다시며/ 장구 치고 북 치며/ 풍년잔치는 저그덜이 먼저 지랄이니/ 우리는 글먼 뭐여/ 신작로 내어놓응게 문뎅이가 먼저 지나간다고/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혀서 원/ , 저 지랄들 헝게 될 일도 안된다고/ 올 농사도 진즉 떡 쪄먹고 시루 엎었어/ ,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이사 바로 혀서/ 풍년만 들면 뭣헐 거여/ 안되면 안되어 걱정/ 잘되면 잘되어 걱정/ 풍년 괴민이 더 큰 괴민이여/ 뭣 벼불고 뭣 벼불면 뭣만 남는당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을 뙤놈이 따먹는 격이여/ , 그렇잖혀도 환장헐 일은 수두룩허고/ 헐일은 태산 겉고 말여 생각허면 생각헐수록/ 이갈리고 치떨리능게 전라도 논두렁이라고/ 말이 났응게 말이지만 말여/ , 머시기냐 동학 때나 시방이나/ 우리가 달라진 게 뭐여/ 두 눈 시퍼렇게 뜬 눈 앞에서/ 생사람 잡아 논두렁에 눕혀놓고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똥 뀌고 성내며/ 사람 환장혀 죽겄는지 모르고/ 곪은 데는 딴 데다 두고 딴소리 허면서/ 내가 헐 소리 사돈들이 혔잖여/ , 시방 저그덜이 누구 땜시 호강호강 허간디/ 호강에 날라리들이 났당게/ 못된 송아지 엉뎅이에 뿔돋고/ 시원찮은 귀신이 생사람 잡는다는 말이 맞는개비여/ 사람이 살면은 몇백 년을 사는 것도 아니겄고/ 사람덜이 그러능게 아녀/ 뭐니 뭐니 혀도 말여 사람은/ 심성이 고와야 허고/ 밥 아깐지 알아야 혀/ 시방 이밥이 그냥 밥이간디우리덜 피땀이여 피땀/ 밥이 나라라고 나라/ 자고로 말여 제 땅 돌보지 않는 놈들허고/ 제 식구 미워하는 놈들 성헌 것 못 봤응게/ , 툭 터놓고 말혀서/ 쌀금이 왜 이렇게 똥금인지 우린 모르간디/ 우리라고 뭐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창사도 없는 줄 알어/ 저그덜이사 뱃속이 따땃헝게/ 뱃속 편헌 소리들 허고 있는디/ 그 속 모르간디/ 그러고 말이시/ , 없는 집안 제사 돌아오듯 허는/ 그놈의 잔치는 왜 그리도 많혀/ 땡큐땡큐 하이하이 혀봐야/ 저근 저그고 우린 우리여/ 솔직히 말해서 우리들 덕에/ 뭣 나발들 엥간이 불며/ 실속없이 남의 다리 긁지 말고/ 가려운 우리 다리나 착실히 긁어야 혀/ 그저 코쟁이야, 왜놈이야 허면/ 사족들을 못 쓴당게/ 사람들이 말여 쓸개가 있어야 혀 쓸개/ , 생각들 혀보드라고/ 여직 땅 갈라진 채로 이 지랄들이니/ 남 보기도 부끄럽고 챙피혀서 말여/ 긍게 언제까장 이 지랄발광헐 거여 긍게/ 긍게 북한이 외국이여/ 꺼떡하면 4천만 동포, 동포 허는디/ , 그러고 말이시/ 우리가 어디 한두번 농사 망쳐봤어/ 쩍 허면 입맛 다시는 소리고/ 딱 하면 매맞는 소리/ 철부덕 허면 똥 떨어지는 소리여/ , 제미럴 헛배 부를 소리들 작작 허라고/ , 제미럴 우리는 뭐 흙 파먹고 농사 짓간디/ 고름이 피 안되고 살 안됭게/ 짤 것은 짜내야 혀/ 하나를 보면 열을 알겠더라고/ 새 세상에 새 칠로 말허겄는디 말여/ 그 속 들여다보이는/ 선거고 나발이고/ , 말이 났응게 진짜 말허겄는디/ 선거만 허면 질이여/ , 뭐여 그러면 민주냐고/ 민주가 뭣인지 잘 모르지만 말여/ 제미럴, 가다오다 죽고/ 총 맞아 매맞아 죽고/ 엎어져 뒤집혀 죽고/ 곧 죽어도 말여/ 우린 넓디넓은 평야여/ 두고두고 보자닝게 군대식으로 혀도 너무들 허는디/ 우리는 말여 옛적부텀/ 만백성 뱃속 채워 주고/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고,/ 논두렁은 비뚤어졌어도/ 농사는 빤 듯이 짓는/ 전라도 농군들이랑게/ 고부 들판에 농군들이여/ 참 오래 살랑게 벼라별 험헌 꼴들 다 겪고/ 지금은 이렇게 사람 모양도 아닝 것 맹이로/ 늙고 병들었어도/ 다 우리들 덕에 이만큼이라도/ 모다덜 사는지 알아야 혀/ 아뭇소리 안허고 있응게 다 죽은 줄 알지만 말여/ 아직도 이렇게 두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땅을 파는/ 농군이여/ 농군//

 

꽃등 들고 임 오시면 / 김용택

긴 어둠을 뚫고/ 새벽닭 울음소리 들리면/ 김나는 새벽 강물로/ 꽃등 들고 가는/ 흰옷 입은 행렬을 보았네/ 때로 흐를 길이 막히고/ 어쩔 때 부서져도/ 흘러온 길이 아득하고/ 흐를 길이 멀고 멀다면/ 흐르는 일이야/ 굽이굽이 우리 얼마나/ 행복한 일이랴/ 범람하여 헛된 땅 메우고/ 우리 땅 되살리며/ 꽃등 들어 임의 얼굴 비춰보며.//

  * 범능 스님 노래 : 꽃등 들어 님 오시면

 

먼산 / 김용택

그대에게/ 나는 지금 먼 산이요.//

꽃 피고 잎 피는/ 그런 산이 아니라//

​산국 피고 단풍 물든 그런 산이 아니라/
그냥 먼 산이요.//

​꽃이 피는지 단풍 지는지/ 당신은 잘 모르는//

그냥 나는 그대를 향한/ 그리운 먼 산이요.//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 김용택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 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 김용택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서 서럽게 서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출렁이는 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 

 

해지는 가을 들길에서 / 김용택

사랑의 온기가 더욱 더 그리워지는/ 가을 해거름 들길에 섰습니다// 먼 들 끝으로 해가/ 눈부시게 가고/ 산 그늘도 묻히면// 길가에 풀꽃처럼 떠오르는/ 그대 얼굴이/ 어둠을 하얗게 가릅니다// 내 안에 그대처럼/ 꽃들은 쉼없이 살아나고/ 내 밖에 그대처럼/ 풀벌레들은/ 세상의 산을 일으키며 웁니다// 한 계절의 모퉁이에/ 그대 다정하게 서 계시어/ 춥지 않아도 되니/ 이 가을은 얼마나 근사한지요// 지금 이대로/ 이 길을 한없이 걷고 싶고// 그리고 마침내 그대 앞에/ 하얀 풀꽃 한 송이로 서고 싶어요// 

 

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이 꽃잎들 / 김용택

천지간에 꽃입니다./ 눈 가고 마음 가고/ 발길 닿는 곳마다 꽃입니다./ 생각지도 않는 곳에서/ 지금 꽃이 피고 못 견디겠어요./ 눈을 감습니다./ , 눈 감은 데까지 따라오며/ 꽃은 핍니다./ 피할 수 없는 이 화사한 아픔,/ 잡히지 않는 이 아련한 그리움/. 참을 수 없이 떨리는/ 이 까닭없는 분노./ 아 아, 생살에 떨어지는/ 이 뜨거운 꽃잎들.//

 

가을밤 / 김용택

달빛이 하얗게 쏟아지는/ 가을 밤에/ 달빛을 밟으며/ 마을 밖으로 걸어나가보았느냐// 세상은 잠이 들고/ 지푸라기들만/ 찬 서리에 반짝이는/ 적막한 들판에/ 아득히 서보았느냐// 달빛 아래 산들은/ 빚진 아버지처럼/ 까맣게 앉아 있고/ 저 멀리 강물이 반짝인다// 까만 산 속/ 집들은 보이지 않고/ 담뱃불처럼/ 불빛만 깜박인다// 하나 둘 꺼져가면/ 이 세상엔 달빛뿐인/ 가을 밤에// 모든 걸 다 잃어버린/ 들판이/ 들판이 가득 흐느껴/ 달빛으로 제 가슴을 적시는/ 우리나라 서러운 가을 들판을/ 너는 보았느냐//

 

/ 김용택

사랑은/ 이 세상을 다 버리고/ 이 세상을 다 얻는/ 새벽 같이 옵니다.// 이 봄/ 당신에게로 가는/ 길 하나 새로/ 태어 났습니다./ 그 길가에는 흰 제비꽃이 피고/ 작은 새들 날아 갑니다.// 새 풀잎마다 / 이슬이 반짝이고/ 작은 길은 촉촉히 젖어/ 나는 맨 발로/ 붉은 흙을 밟으며 어디로가도/ 그대에게 이르는 길/ 이 세상으로 다 이어진/ 아침 그 길을 갑니다.//

 

 

 

 

 

 

 

김용택 시인의 삶, 사랑, 그리고 시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 님을, 그리고 해맑은 웃음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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