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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전영경 시인

부흐고비 2021. 4. 28. 08:47

전영경(全榮慶, 1930.8.22 ~ 2001.5.5.) 시인
1930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과 졸업. 1955년 《조선일보》신춘문예에〈선사시대〉가, 195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正義와 微笑〉가 당선되어 등단. 1956년부터 수도여자사범대학 국문과 교수로 교단에 섰다가 1962년 동아일보 문화부장으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사사편찬부장, 출판부장, 조사부장을 역임했으며 1967년 퇴사했다. 동아일보 재직 중 평전 <고하 송진우전>을 펴냈다. 그후 1981년 동덕여대 국문과 교수로 임용되어 1995년 정년 퇴임하였다. 시집으로는 「선사시대」, 「김산월 여사」, 「나의 취미는 고독이다」, 「어두운 다릿목에서」를 발간하였다. 편저로는 한국 근대 작고 시인 선집 「영원한 서장」이 있다. 2001년 지병으로 작고하였다.

 


 


선사시대 / 전영경

느티나무 위에 금속분처럼 쏟아지는/ 하늘이 있었/ 고// 깨어진 석기와 더불어, 그 어느 옛날/ 옛날이 있었/ 고// 금속분처럼 파아랗게 쏟아지는 햇볕/ 속에서 무던하게도/ 학살을 당한 것은 당신과 같은/ 흡사 당신과도 같은/ 포승 그대로의 주검이 있었/ 고// 느티나무와 더불어, 그 어느 옛날이/ 있었고// 지도자가 있었/ 고// 깨어진 석기, 석기 속에 말없이 흐ㅌ어진/ 이야기와/ 그 어느 조문과/ 그 누구의 남루한 직함과/ 때 묻은 족보가 있었/ 고// 꿈이 있었다.// 몇 포기의 화초를 가꾸다가/ 느티나무와 더불어 그 어느 옛날에/ 서서/ 세상을 버린 것은/ 금속분처럼 파아랗게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황소가 음메…… 하고 울었기 때문이다.//
* 1955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시

정의와 미소 / 전영경

창을 열어라, 그렇다.창을 열어라, 아, 창을 열어라/ 그곳에 우리들의 하늘이 있고/ 自由가 있고/ 祖國이 있다./ 창을 열어라,그렇다.창을 열어라/ 그곳에 우리들의 三月이 있고/ 임이 있고/ 봉우리 봉우리마다 피어오르는 꽃봉우리마다/ 꽃이 잇고/ 기울어진 바다 빛 짙은 싱싱한 하늘을 따라/ 종소리를 따라/ 正義와 微笑가 있다./ 창을 열어라, 그렇다. 창을 열어라, 숙아, 창을 열어라/ 그 곳에 파아란 바다를 생각하는 사나이가 잇고/ 意味가 있고/ 目的이 있고/ ................/ 대추나무와 뽀오얀 집과 敎會堂의 둥그런 지붕을 따라/ 비둘기가 있고,/ 모두 다 모두가 다아, 멍이 든 가슴들 끼리 울린 만세를 따라/ 멍멍개가 짖고/ 창을 열어라, 그렇다. 창을 열어라/ 기울어진 바다 빛 짙은 싱싱한 하늘을 따라/ 구구구 구구구......, 비둘기 나는/ 그것에 우리 우리들의 八月이 있고/ 어진 백성이 있고/ 正義와 微笑가 있다.//
* 1956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시

낙화유수 / 전영경

살다보니 별의별꼴을 다 본다는 어진 친구들끼리/ 세종로 근처 중국집 워디 니디 이층에서/ 칠월은 잔인한 계절/ 인생과 조국이 싫어진 오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있다./ 지난 해 국토 건설단을 다녀온 병역 기피자 박개단 선생은/ 문과대학에서/ 영문학을 담당하던 소장교수/ 서머세트 모옴의 이마를 닮은 이 친구는/ 독한 빼주를 기울이면서 도대체 인천 손님을 찾고/ 아 인생은 노력이면서 옆에 앉아 있는 전직 국문학교수/ 불정거사 이뻗으리에게/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부탁/ 낙화 낙화도 꽃이라고 우긴다/ 창밖엔 소낙비가 내린다/ 한국에서 정신적으로 실업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것은 그것이 아니고 검은 것이 아니고 흰 것이다/ 아즈바이의 나라 아라스카에서 온 김선생은 정치엔 신물이 난다면서 줄곧 정치와 경제를 따지고 지도자가/ 어떻고 한국이 어떻다는/ 세종로 근처 중국집 워디 니디 이층에서/ 이자식은 개새끼/ 점잖지 못하게 사대주의가 어떻다면서/ 자의식의 과잉 이런 힘든 말이 있지마는 굳이 심리학의 어려운 어느 한 대목을/ 인용하머 주석을 붙여가면서까지/ 다사한 인생을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오늘/ 우리들은 독한 빼주를 마신다/ 백과사전에서 본 기억이 있는 후로이드의 사진을 더듬으면서/ 밤에 취한다/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한숨을 쉰다/ 슬픈 것은 이것뿐이 아니다/ 된장 고추장 설렁탕을 먹을 때 마늘과 파김치 깍두기를 삼킬 때마다/ 이 맛만 들이지를 않았던들/ 열두하늘 건너 미국이나 불란서/ 빠리 어디쯤에서/ 너무 담담하다는 그대의 목쉰 이야기를 가슴에 안고/ 포우나 마리야 로오란상의 애인 아쁘리네르의 봄을 찾아다니면서/ 손도 차고 마음도 차다는/ 내 어진 사랑과 함께/ 지금은 그리운 벗이나 조국을 걱정할것이 아닌가//

어두운 다릿목에서 / 전영경

우리는 이 세상에 왔다 가는 이상 손톱자국이라도 남기고 가야겠다./ 친구여 철학이라든가 종교라는 것은 죽음을 생각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친구여/ 우리의 발끝은 지금 무서운 전쟁과도태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좁은 언덕길 예순넷의 계단을 딛고 일찌기 경제적으로 부한 아브라함 링컨의 나라 정치적으로 진통을 겪은 선진국에 태어나지 못함을 입이 찢어지도록 소리친다./ 묵은 달력을 넘기면서 집을 지닌 사람들은 포로수용소와도 같이 가시철망 속에서 전전긍긍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 나라 집 없는 사람들도 국유지나 시유지 공로 한모퉁이나 철로 연변 무허가 주택에서 전전긍긍 불안속에 살아야하는 나라 이 나라에서/ 오 자유여 그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악이 범하여졌느냐는 로랑부인의 명언을 외우면서 우리들은 보리밥에 된장을 비벼먹는다./ 동회나 싸전 앞을 지날때마다 쌀밥에 고기반찬을 먹여주는 나라/ 여름에도 김치깍두기를 담가 냉장고에 넣고먹을 수 있는 정부 월급으로 아이씨에이 주택이나 아파트에 살 수 있도록 따스한 선심을 쓰는 정권/ 막걸리나 약주 화학소주보다도 따끈한 정종 정도는 마실 수 있는 정치와 경제/ 중앙청이나 국회 앞을 지날때마다 최소한 세금을 낸 만큼 사회보장제도가 되어있는 사회/ 새나라 자동차나 텔레비나 세탁기 전화가 일반서민의 애용물이 되어주기를 원하던 일천구백육십사년 십이월의 어두운 다릿목에서 술이 깬 아침이면 밥보다는 도마도주스나 딸기주스 그렇지 않으면 꿀이라도 냉수에 타서 먹고 싶다는 친구들끼리/ 소금을 안주삼아 쇠주를 마신다./ 이렇게 치사하게 못살바에는 교도소에 갇혀 있는거나 여기 있는 거나 정신적으로 같은거 아니냐고 목청을 돋우면서/ 산아제한을 목이 찢어지도록 부르짖으면서 우리들은 돈과 백오십오마일의 전선을 걱정하는 것이다.//

장미 / 전영경

薔薇밭이다./ 붉은 꽃잎 바로 옆에/ 푸른 빛이 우거져/ 가시도 햇살 받고/ 벌거숭이 그대로/ 춤을 추리라./ 눈물에 씻기운/ 발을 뻗고서/ 붉은 해가 지도록/ 춤을 추리라./ 薔薇밭이다./ 핏방울 지면/ 꽃잎이 먹고/ 푸른 잎을 두르고/ 기진하며는/ 가시마다 살이 묻은/ 꽃이 피리라.//

소녀는 배가 불룩했습니다 / 전영경

섭씨 0도/ 해빙 봄 초원 꽃 나비 나비가 있어/ 봄은 더욱 좋았습니다./ 라일락 무성한 그늘 밑에/ 오월은 있었습니다./ 소녀가 붉으스런 얼굴을 가리우며 아니나 다를까/ 계절을 매혹했습니다./ 솟구친 녹음을 헤쳐 소녀는/ 난맥을 이루었습니다./ 라일락 무성한 꽃가루 속에 묻혀 나비는/ 바다를 잊었습니다./ 바다/ 몇번인가 파도가/ 소녀의 유방을 스쳤습니다. 이방인처럼/ 소녀는 붉으스런 보조개에 부끄러움을 가리우는걸랑/ 필시 계절을 잉태했는가 봅니다.// 섭씨 0도/ 그 어느날 나비는 학살을 당했습니다./ 슬펐습니다./ 소녀는 엽서와 더불어 목놓았습니다./ 실컷 울었습니다./ 병든 잎을 지우며 구구구구 비둘기 날으던 날/ 소녀는 배가 불룩했습니다.//

봄 소동(騷動) / 전영경

삼월은 가고 사월은 돌아와 있어도/ 모두다 남들은 소위 대학교수가 되어 꼬까옷에/ 과자 부스레기를 사들고 모두 다/ 자랑 많은 나라에 태어나서/ 산으로 바다로 금의환향을 하는데/ 걸레 쪼각 같은 얼굴이나마 갖추고 돌아가야 하는/ 고향도 집도 방향도 없이/ 오늘도 남대문 막바지에서/ 또다시 바지저고리가 되어보는 것은 / 배가 아픈 까닭이 아니라 또다시/ 봄은 돌아와 꽃은 피어도/ 뒤 받쳐주는 힘 없고/ 딱지 없고 주변머리가 없기 때문에/ 소위 대학교수도 꼬까옷도/ 과자 부스레기 하나 몸에 지니지 못하고/ 쓸개빠진 사나이들 틈에 끼어/ 간간이 마른 손이나마 설레설레 흔들며/ 떠나보내야 하는/ 남대문 막바지에서/ 우리 모두 다 막다른 골목에서/ 우리 모두 다 밑천을 털고 보면 다 똑같은/ 책상물림이올시다/ 삼월은 가고 사월은 돌아와 있어도/ 봄을 싣고 산으로 바다로/ 아스라히 멀어만 가는 기적소리/ 못다 울 설움에 목이 메인 기적소리를/ 뒤로 힘없이/ 맥없이 내딛힌 발끝에 채이는 것은/ 어머니 돈도 명예도/ 지위도 권세도 자유도 아무것도 아닌/ 아무 것도/ 아닌 돌멩이뿐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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