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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김영승 시인

부흐고비 2021. 4. 30. 15:22

 

반성 16 /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화창 / 김영승
폭우 쏟아진 뒤/ 이 화창,// 그게 죽음이리라// 나의 죽음이리라.// 고추잠자리는// 疊疊(첩첩) 열두 폭 치마 찢어질 듯 짓푸른/ 얼음 같은 깊은 하늘과 1:1로 同等(동등)하고/ 자체로 沈默(침묵)이다// ―赤卒(적졸·고추잠자리의 별칭)아, 너 산타클로스냐?/ 나한테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구나// 神(신)의 음성이다.//

아름다운 폐인 / 김영승
나는 폐인입니다/ 세상이 아직 좋아서/ 나 같은 놈을 살게 내버려 둡니다/ 착하디 착한 나는/ 오히려 너무나 뛰어나기에 못 미치는 나를/ 그 놀랍도록 아름다운 나를/ 그리하여 온통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나를/ 살아가게 합니다/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자신있게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슬픈 사람일 뿐이지만/ 그렇지만 나는 갖다 버려도/ 주워 갈 사람 없는 폐인입니다/

늙고 사오납게 내리는 비 / 김영승
주룩주룩/ 수직으로/ 어느 게 수직인지도/ 모르게// 보도블록 위/ 大 지렁이// 물뱀처럼/ 大 포르노 스타처럼// 동방박사처럼// 간다//

겨울 눈물 / 김영승
내 오늘은 울리/ 그냥 울리/ 울면서 그냥/ 울리/ 얼어붙었는데// 왜 울었냐 하면/ 모르네……// 그저 TV에/ 어떤 불쌍한 아이들// 아빠 없고/ 엄마 아픈// 아파도 신장 이식해야 할 만큼 아픈/ 치료비도 없는/ 신장 떼어주려 해도/ 미성년자라서 안 되는// 그 어린 세 자매 보고/ 운다// 나는 잘/ 운다// 하나님 아버지/ 울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웃게도 하소서.//

잘못 쓴 시 / 김영승
내일은 한로/ 아름다운 날/ 또 보름 있으면 상강/ 검은 돌에 낟가리에/ 찬 이슬 내리겠네/ 하연 서리 포근하겠네// 단풍 들고 눈 내리고/ 온누리 수레바퀴마저 꽝꽝/ 얼어붙으면// 불 지피리 부지깽이 들고, 생솔가지 마른 장작/ 보릿짚 볏짚 마른 삭정이 탁탁/ 아궁이 앞에 앉아 고즈넉이/ 아랫목 화롯가에 앉아 그림자처럼// 썰매 타러 나간 아들/ 기다리겠네// 보글보글 된장국 뚝배기 올려놓고 귀신처럼/ 손끝 매운 고운 아내// 바느질하겠네 뜨개질하겠네 쌩쌩 부는/ 겨울 바람// 고구마 깎고 국수 삶고// 얼음 깨고 얼개기를 뜨면 (얼개미 : '어레미-바닥의 구멍이 굵은 체'의 사투리)/ 새까맣게 튀는 새뱅이 (새뱅이: '생이'의 사투리. 토하 土蝦)// 초가지붕 처마 밑엔/ 고운 솜털 한 줌 참새,// 밤은 깊겠네.//

인생 / 김영승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 술만 잔뜩 퍼마시고…/ 오래간만에…// "죽여버릴 거야…"/ 십년 공부가 와르르르르르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주저앉아 슬피 흐느껴 운다.// 이제 초등하교 1학년 짜리 어린 아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있다면 내 아내/ 진짜 있다면 나한테 있는 걸// 약이 올라 새빨갛게 독이 올라/ 폭발 직전, 자살 직전까지/ 분노가 '滿tank' 되어/ 참고 또 참고 또 참았다가// 질질질질질질질질 육신이/ 내장이 녹아 항문으로/ 요도로 흘러내리다가// 누가 갖다준 386고물 컴퓨터/ 잘못 만졌다고, '또 그러면/ 죽여버릴 거야!' 아들에게 꽥!/ 소리를 지르다니 아아아아아아// 갈 데까지 갔구나 위험하구나 나/ 그래도 그런 극언 그 누구한테도/ 안 하고 살았는데 아들한테/ 그런 폭언을 하다니 아내/ 들으라고 한 소리지만 아내는...// ‘내가 낳았으니 내가 끝내버릴 거야 또/ 그러면…’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니 하루종일/ 쉬지 않고 노래 부르는 아들이/ 움찔, 일순 경계의 몸짓// 아빠 이상하다 재빨리/ 자전거 탄다고 나가버리고/ 아내는…// 아내야 그 말이 옳다/ 그래도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밟을 것은 가려 밟아야 한다/ 이 가을/ 바람 거세고 몹시 추운 날// 내가 겨우 그 따위 곳에나 나가/ 돈을 벌어온다는 사실이/ 영 실망이고 불쾌한지…// 쌓이고 또 쌓이고 쌓여/ 와르르르르르르르르르…// 그 말이 옳다 소위 ‘가난’/ 하지 않았다면 우리 사이에 무슨/ 싸울 일이 있겠느냐 치욕에 치욕에/ 또 치욕/ 나도 치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스트레스는/ 나를/ 쭈글 쭈글 오그려뜨렸다/ 난롯불에 오그라진/ 플라스틱 그릇처럼 다시// 원상복구될 수 있을까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는 놈/ 또한 가난해서 불편한 것이/ 부끄러웠던 적도 없었다 나는// ‘변형’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모순’이지만 내 안에/ 이 세상의 그 어떤 방패라도/ 막아낼 수 없는 ‘창’과 이 세상의/ 그 어떤 창도 뚫을 수 없는 ‘방패’가/ 함께 있다 그것이/ 나의 비극이고 또한…// 밭에 갔다온 아내여/ 밭엔 무와 배추/ 잘 자라고 있더냐 옆옆집 110호/ 가난한 船員 현이네 아빠/ 일하다 다친 손가락 두 개/ 절단해야 한다고 어제는/ 연안부두에서 술 마시고 뻗은 걸/ 옆집 109호 주영이 아빠가/ 실어왔다고?// 불가사리나 도마뱀이여/ 그 모든 무형무색무취의/ 유령이여/ 영혼이여// 그게 아니었던들/ 내가 생굴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돌아올 수 있었겠느냐…// 내일이면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아들에게/ 사과하리//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는 아들에게/ 꺼내 보이며// 나는 내 시뻘건 龜頭에/ 光낸.//

극빈 / 김영승
극빈/ 극광 같은 극빈/ 國賓같은 극빈 극미한/ 절세가인의 효빈 같은/ 극빈/ 쾌락의 극치, 극, 극/ 태극, 태극 같은 극빈// 이곳 임대아파트로 이사온 지 내일이면 꼭 1년/ 월175,300원 그 임대료가 벌써/ 두 달째 밀렸네/ 말렸네 나를 말렸네 피를/ 말렸네, 극빈/ 극빈/ 무소유보다도 찬란한 극빈// '쪽'도 많이 팔렸구나/ 그래서/ 쪽빛(顔色)이 쪽빛(藍色)이구나// 이것은 pun 이 아니라/ 정당한 진술이다 '언표'이다/ 극빈...// '명령'이다/ 극빈...// '반역'이다 극빈/ '반역'이다 극빈// 荒原의/ body language,// 극악한 극빈.//

옷 / 김영승
내 최후의 정장은, 아니 최초이자 최후의, 황금빛 찬란한/ 초호화판 정장은, 이 다음에 어머니 돌아가시면 입을/ 삼베 상복, 행전에 굴건을 쓰고, 새끼로 腰#하고/ 짚신에 죽장 든, 내 일생일대의 정장/ 그러다가 나 죽으면 그 상복 그대로 수의 대신 입혀다오/ 스무살 이후로 나는 상복만 입고 살았구나/ 죄수복 같은, 환자복 같은, 아무도 모르는, 그저 평범한/ 내가 입은 옷은 상복 단 한 벌뿐/ 누더기 상복 한 벌만 입고 살았구나/ 얼핏 보면, 넓은 도폿자락 펄럭이며, 고개 숙이고 타박타박/ 哭하며 걷는 내 모습을 볼 수도 있었건만/ 상복을 입고 목욕탕 갔고, 상복을 입고 여관 갔고/ 아아, 나는 상복을 입고 결혼식을 치렀네/ 상복을 입고 술집 갔고, 상복을 입고 전철을 탔으며/ 상복을 입고 수음을 했네, 그렇게 젊음은 갔구나/ 나는 죄인이었으므로, 그렇게 돌아다녔네, 굵은 삼베 상복/ 서걱이며 출근을 했고,/ 사람들은 그러한 나를 전혀 몰랐구나/ 꽃잎이 진다, 爆竹처럼, 함박눈처럼 하얀 꽃잎이/ 펑펑펑펑펑 쏟아진다, 흩날린다, 아득하게 暴雪처럼/ 상복이 진다, 찢어져 흩날린다, 내 몸이, 내가, 흩날린다, 그때까진/ 죽지 말자, 먼저 죽지 말자, 그 天上의 禮服을/ 벗지 말자, 强風이/ 내 야윈 알몸을, 휘감는다/ 鋼鐵 채찍처럼.//

저항 / 김영승
풀도 고운 풀이면/ 먹었던 사람들// 고비나물도 구기자 筍도/ 먹었던 사람들// 食糧으로/ 먹었던 사람들// 舊 소련 核발전소 건설에/ 강제 동원됐던/ 강제 노동했던 朝鮮人들// 느릅나무 껍질을 먹었던/ 바보 溫達// 花壇 나팔꽃 밑둥이/ 예초기에 잘리고// 죽은 兵士의 워커를 삶아/ 먹었던 사람들// 荀子도 태워/ 먹었던 사람들/ 잤던 사람들// 하늘 밑이고/ 코스모스 大平原인/ 大地의/ 내 그림자 위이다// 쓰레기통 뒤져/ 복어알 끓여 먹고 죽는/ 친구 사이 몇 명/ 사람들/ 참 추운 날의/ 곱은 손// 사람들//

이방인異邦人 / 김영승
버스비 900원/ 버스 타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百拜謝罪)하며 내는 돈// 화장실 100원/ 오줌 눠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아들 고등학교 신입생 등록금 사십오만 구천오백팔십 원/ 학교 다녀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상갓집 부조금 3만원/ 살아 있어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공중전화 100원/ 말 전해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돼지고기 한 근(斤) 8,000원/ 처먹어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서러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수 있는 것이다/ 한(恨)이 있기 때문에// 함소입지(含笑入地)할 수/ 있는 것이다//

아방가르드 / 김영승
아무도 없는 곳/ 그게 유토피아고/ 아방가르드다// 오늘은 청명(淸明)이고 내일은 한식(寒食)// 공주횟집 진열장엔 산낙지 15,000원이라고/ 써 있다// 나는 나의 심야(深夜)산책을 재개(再開)하고// 걷고 또 걸어서/ 연수성당 뒷길// 여성회관 옆 조일사 건물을 훤히/ 쓰윽 한 번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그 2층 짜리 낡은 건물 옥상엔/ 역시 아무도 없다// 불량(不良) 청소년들도// 오지 않는/ 적막강산(寂寞江山)// ― 그렇다고 산낙지가 어떻게 한 접시에 15,000원이냐?// 낙지 한 마리 없는 옥상(屋上)은/ 칠흑의 심해(深海)// 멀리 아파트가 인공어초(人工魚礁) 같고// 여자(女子)들은 다 아전인수(我田引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아는 놈 / 김영승
아는 놈야?/ 모르는 놈인데?// 턱끝으로 가리키며 그들은 그렇게 주고받고 있었다/ 부평역 플랫폼엔 비가 내리는데// 겨울인데/ 화장실에서 나오며// 그들은/ 나는 그들한테도/ 모르는 놈이다//

21평의 유목민 / 김영승
내가 사는 아파트는 21평// 아내는 안방에/ 아들은 작은방에// 그리고 나는 거실에 잔다// 길에서 주워온/ 직사각형 파란 플라스틱 화분에/ 번식한 蘭을 세 개 심어놓으니// 나는 그 푸른 싹 들여다보는 것이 꼭/ 유목민 같다// 풀을 찾아 물을 찾아 떠도는/ 유목민// "酩農業을 하십니까?"// 옛날 가슴(乳房)이 큰 한 여인한테/ 그렇게 물은 것이 생각나// 羊이건 염소와 야크 등등/ 順한 짐승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牧者인가?//

고독 / 김영승
그것이 자초(自招)한 고독이건/ 불우(不遇)의 고독이건/ 일생(一生) 고독했다는 것은 참/ 장(壯)한 일이다// 더욱 고독해야 하는데/ 이 비오는 날// 주전자 물이 끓는다.// 무궁화, 살구나무, 대추나무 비에 젖고/ 모과나무는 폭포다// 오전인데도 어두운 하늘/ 천둥과 번개는// 눈물이며// 초범자(初犯者) 사진 찍기다// 폭우는// 늘 하늘 아래/ 땅 위// 고매한 정신°처럼/ 추상같이 떨어진다//

봄, 희망 / 김영승
일곱달 째 신문대가 밀려/ 신문도 끊겼다/ 저녁이면 친구인 양 받아보던 신문도/ 이제 오질 않는다/ 며칠 있으면 수도두 전기도 끊길 것이다/ 며칠 있으면/ 이 생명도 이 몸에서 흘리던 핏줄기도/ 끊길 것이다// 은행의 독촉장과 법원의 최고장/ 최후통첩장/ 수많은 통고장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아내가 보낸 절교장도/ 그 위에 놓여있다// 진달래가 피었노라고/ 아내에게 쓰던 편지 위에/ 핏방울이 떨어진다/ 가장 빛나는 것을/ 나는 한 장 집어 들었다//

죽을 때까지/ 김영승
나는 이미/ 도립(倒立)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발길로 뚝뚝 치면/ 옆으로도 그러고/ 있다// 아직/ 추워서 그런/ 것이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 기다리겠다 공부하겠다/ 하지말고/ 그것도 좋지만/ 죽을 때까지 일단 죽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밖에 생각은 다/ 잡념인데// 생각은 잘 때나 하는 것/ 무슨 심사숙고며/ 天思 만려인가// 생각은 잘 때나/ 죽을 때/ 잠깐 하면 된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나// 다들 뭔가를/ 궁리(窮理)하는 거겠지/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死刑직전도/ 다 그런 표정과 자세며/ 性交中에도 그렇다.//

밤의 향기 / 김영승
​이 향기/ 이 비 쏟아지기 전날 밤의/ 이 향기/ 이 향기는/ 나는 죽어 귀신이 된다면/ 잠깐 이런 향기리라/ 롤러스케이트장 공원/ 자판기 불빛에다 대고 이 글을 쓴다/ 오늘밤엔/ 아무도 없어/ 좋다/ 어둠 속엔 토끼풀/ 그 위엔 아카시아로군/ 멀리/ 붉은 네온 십자가/ 대명 뼈다귀 감자탕 네온 간판/ “이름이 뭐냐?”/ 포로처럼 나는 물었다/ “김영승”/ 나는 대답했다.//

서울신탁은행귀신 / 김영승
귀신이 있다 별의별 귀신이/ 다 있지만 나는 이제 서울신탁은행귀신/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개설한/ 온라인 계좌 만 원도 오고 삼만 원도 오고/ 오만 원도 오는 원고료를 갖고 도장 갖고/ 찾아가는 곳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서울신탁은행 지점을 보면 우리 은행야/ 나는 중얼거리네 우리/ 은행야 아내에게도 말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난한 것은/ 당연한 일 우리 은행야.//

술 얘기 / 김영승
제 버릇 개 주랴만/ 술이 좋아 좋구도 남지 좋아서 마신다/ 술은 그냥 술이로되/ 술 속에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술은 그냥 술이 아니다/ 술은 액체로 된 꿈/ 떠올리고 싶을 때 떠올려지는/ 잃어버린 것들/ 사라져버린 것들 그런 것들/ 흐르고 흘러서 모여진/ 강의 하류와도 같은 것// 흰 돛을 단 작은 배가/ 술잔 속에 어우러지면// 여자들이 어머 너 예뻐졌다 하는 말처럼/ 지나가는 말로 흘려버리듯/ 자네 취했구먼/ 그럴 수 있어서 좋다//

비밀 / 김영승
한 사람이 먹고 있다/ 또 다른 한 사람이 보고 있다./ 먹고 있는 사람이 보고 싶거나/ 보고 있는 사람이 먹고 싶거나/ 그건 아무래도 좋다./ 그저 먹고 있고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거기엔 숨막히는/ 비밀이 있는 것 같다//. 나를 보고 웃고 있는/ 당신의 얼굴엔//

보지 / 김영승
처음 읽었을 땐 무덤덤했는데, 오늘 오수에 들려고 침대에 누웠다 집어든 순간 글자가 눈알에 척척 처박히면서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綴)하는 집중감 속에서 삼두마차를 이끌고 달려오는 그 폭력적인 소요가 일면서/ 웃겨 죽는 줄 알았다.//

북어 / 김영승
옛날/ 아주 먼 옛날/ 유동 살 때/ 7 , 8년 전/ 결혼 초기// 출산하고 난 후였을까?// 남들은 그게 뭐 그렇게/ 오랜 옛날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옛날/ 아주 먼 옛날/ 아득한// 술 취해서 자고 있을 때/ 부엌에서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뭐 씹는 게 먹고 싶어서요...“// 다락에 두었던/ 먼지 쌓인/ 어머니가 갖다주신/ 북어를 방망이로 두들겨/ 뜯어먹고 있었다// 이제 아내는/ 나와 함께 늙어/ 몸도 아프고 _ // “그럼 오징어라도 사다 먹지...”/ 말이 없었다 // “돈이 없어요...”// 그 유동집/ 열 평 남짓한 무허가 2층 건물의/ 아래층을 빌려 살 때// 방보다 낮은 부엌/ 그 연탄보일러 옆/ 쌓인 연탄이// 아주 환했다// 흑인들 같이/ 아내를 윤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쁜 놈의 사랑 / 김영승
나는 참 나쁜 놈입니다/ 당신은 얼마나 나쁜 사람입니까// 나는 사는 것을 싫어하는 나쁜 놈입니다.// 나는 참 나쁜 놈입니다/ 당신은 얼마나 나쁜 사람입니까// 당신은 사는 것을 싫어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사람.// 밥을 먹고 연탄재를 갖다 버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겠읍니다.//

이것도 나의 일 / 김영승
개미는 시멘트 둑/ 빠르게 이동/ 한 뼘 높이 벽// 개미도 놀러간 적 있을까// 시멘트 枕木 같은/ 화단 臺/ 얘들이 타고 오르지 않으면 누가 타고 오르리오?/ 소금쟁이가?/ 록 클라이머가?// 그러다가는?/ 그러다가는 죽느 ㄴ거지// 오르게 해주세요!/ 오르게 해주세요!// 발밑이 地獄이라/ 다들 그러리// 발밑이/ 極樂이라/ 할지라도//

취객의 꿈 / 김영승
댁은 뉘시요?/ 그저 일개 초개와 같은 과객이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치기가 또 아쉬워 예서제서 숨을 찾는 뿌려진 꽃잎 같은 취객이올시다. 내 앞에서 흐르는 이제는 슬픈 한 여인을 바라보며 바닷가에 앉아 모래처럼 부서진 내 영혼을 세며 기나긴 세월 쉽게쉽게 보내지요. 하얀 조가비 그걸 집어 내 몸 어디부터 가릴까요? 하얀 조가비 그 예쁜 잔에 맑은 술을 따라 출렁이는 바닷물 같은 이 식은 대지를 마셔 버리고 그리고 스스로 설 땅을 없애 버렸습니다.// 그래서 댁은 무얼 하십니까?/ 남들처럼 외롭고 마셔 버리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아득한 생각에 잠겨 있지요. 내 손이 닿아보지 않은 그리고 노형의 손도 닿아보지 않은 저 하늘을 처녀막처럼 찢고 그리고 피를 흘리겠습니다. 하늘의 푸른 빛 그건 바로 내 핏줄 속을 흐르는 내 피의 빛이고 싶습니다.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신사처럼 내 머리에 쓰고 다녔던 저 하늘을 벗고 그리고 정중히 죽어야지요. 죽음은 이 무례한 놈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인사입니다.//

흐린 날 미사일 / 김영승
나는 이제/ 느릿느릿 걷고 힘이 세다// 비 온 뒤/ 부드러운 폐곡선 보도블럭에 떨어진 등꽃이/ 나를 올려다보게 한다 나는/ 등나무 페르골라 아래/ 벤치에 앉아 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등꽃이 상하로/ 발을 쳤고/ 그 휘장에 가리워/ 나는/ 비로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미사일 날아갔던 봉재산엔/ 보리밭은 없어졌고/ 애기똥풀 군락지를 지나/ 롤로스케이트장 공원/ 계단 및 노인들 아지트는/ 멀리서 보면 경회루 같은데/ 내가 그 앞에 있다// 명자꽃과 등꽃과/ 가로등 쌍 수은등은/ 그 향기를/ 바닥에 깐다// 등꽃은/ 바닥에서부터 지붕까지/ 수직으로 이어져/ 꼿꼿한 것이다// 허공의 등나무 덩굴이/ 반달을 휘감는다// 급한 일?/ 그런 게 어딨냐//

권태 7 / 김영승
다른 지방에선 어쨌는지 모르지만, 어릴 적 내 살던 곳 인천에선, 구슬치기나 딱지치기 또는 <홀짝>이나 <으찌두비쌈>하다가 홀랑 다 잃으면 <뽕까>했다고 했는데, 나는<뽕까>했다. 젊음도 삶도 사랑도 女子도 詩도 따먹기를 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뽕까>한 셈이다. 그래서 나는 현재 <젊음>과 <삶>과 <사랑>과 <女子>와 <詩>의 빚더미에 앉아 있다. 앞으로 더 <뽕까>할 건 내 목숨밖에 없으니까, <개평>으로 꼭 필요한 것만 하나씩 얻어 다시 시작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에 대한 박애주의자인 내가 특별히 한 여자를 편애하여 아니 더불어 善終하기를 作心하여 삼일 만에 전국에 禁婚令을 내리고, 皇帝의 第四妃 女莫母보다도 더 아득한, 非常한 醜婦, 醜婦 중의 醜婦, 醜婦의 대표를 妃 또는 妣로 揀擇하여 <聖婚>[Hierogamie]을 하니, 그것으로, <夢遊桃源圖>를 그리던, 꽃밭에서 놀던, harem의 <소지> 노릇 하던, 내 인생, 땡 — 하고, 飄然히 종치다.//
꼿꼿이 세우고, `게`의 眼柄처럼 부글부글 `게`처럼 거품을 물며 구멍에 들락날락 手淫을 하던.//
슬슬슬슬슬슬…… 매맞아 버릇한 숫, 똥개처럼, 나는 아내, 그 和尙의 눈치를 살핀다. 아내는 무섭다. 아내는 擧案, 諸未, 十이다.//

권태 18 / 김영승
남이 조터지는데 잠들어 있지 말자. 내가 조터지고 있는데 아내는 잠들어 있다. 좆, 터질 맛도 안 난다.//

권태 78 / 김영승
나는 지금 골이 비었다. 골이 비었는데도 골이 아프다.// 생전 하지 않던 이런 말장난까지 하고 있으니 나는 도대체 얼마나 골이 비었는가.// 어쩌다가 이렇게 골이 비게 되었을까. 공두병 걸린 누에처럼 도대체가 껍데기다. 통 비었다. 골이 통통 비었다. 통통 튀긴다. 마음을 비우라고 하니까 겨우 마음을 비우겠다며 골을 비워 놓은 놈도 있지만 나는 내가 왜 이렇게 골이 비어져 갔는지 그 원인을 모르겠으니 나의 골빈 상태는 얼마나 심각한 것이냐.//
나는 이제, 이런 골빈 새끼, 저런 골빈 년, 그렇게 욕할 수도 없게 되었고, 내가 골이 빈 놈이니까, 누가 골이 비었는지 안 비었는지 모른다. 이렇게까지 남의 골을 비워 놓아야 속이 후련한지 신문도 학교도 교회도 대통령도 자꾸 남의 골을 더 비게 만들고 골을 비게 만들다 만들다 못해 멀쩡한 남의 마누라 골까지 비게 만들고 남의 어머니까지 골빈 할머니로 만들어 놓고 이 골빈 세상을 만났으니 너희 희망이 무엇이냐 노래하는 골빈 우국지사 새끼들 뭐라고 그러면 내가 골이 볐냐 새꺄 하고 팩 골을 내게 만들고 아이 똥누기 싫어 하는 골빈 년에게 자기 빨리 눠라 응 아이 똥꼬 예쁘지 하며 쓰다듬으며 핥으며 혓바닥으로 싹싹 밑 씻어 주는 골빈 새끼들이 인구의 절반이 넘으니 신문은 이래야 한다는 둥 학교는 저래야 한다는 둥 교회는 대통령은 그래야 한다는 둥 지나가는 골빈 놈 붙들고 물어봐라 내 말이 옳으냐 그르냐 그렇게 말할 수도 없고, 십정동 도살장에 나가 갓 잡은 송아지 그 뜨거운 골이나 한바가지 얻어다가 초간장에 찍어먹으며 내 두개골을 깨고 비지나 한 바가지 채울까 누런 코나 가래나 고름이나 정액을 한 바가지 채울까. 말까. 골이 너무 비니까 도대체 골이 빈 것이 티가 안 나는 이점도 있으니.// 아이, 골이 비니까 개운하다.//

권태 501 / 김영승
실제로, 엉덩이를 까고, 내 야윈 두 다리를 타고 앉아 헥헥,// 나로 인하여 기분 좋으소서.//

권태 882 / 김영승
43.05kg./ 목욕탕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황홀하다./ 눈부셔라,// 무슨 저어 갈 데가 없어서, 험한 바다 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로 저어 간단 말이냐. 희망의 나라로./ 인간은 카멜레온보다도 더 가변적인, 시시각각 급조된 한계 상황의 영원한 또라이들.// 어제는 1992년 10월 28일 수요일. 시한부 종말혼자들이 믿는 소위 휴거 예정일.// 양념동말자지(씹)구이나 동말자지(씹)소금구이를 해서 내면 잘 팔릴 텐데.// 어릴 적 인천의 인현동, 작은 숙부 개(介+心)笠선생이 우리 삼형제를 데리고 자주 갔던 화평동의 「염불집」, 그 그냥 석쇠에 고기를 구워 소금 찍어 먹는 곳, 그 「염불집」은 아직도 신포동에 옮겨져 있는데……// 살은 다 어디로 갔나. 고기는 누가 다 먹었나./ Enoch Arden이여,// 아아, 이런 피조물들……/ 늙으신 어머니와 형, 그리고 아내와 어린 아들을 보니 눈물만 흐른다.//

희망 976 / 김영승
남들이 다듬고 버린/ 발에 밟혀 질척질척 으깨어지기도 한/ 김장 배추 무/ 억세고 질긴 잎을/ 어머니는 허락받고 주워와/ 쭉쭉 손으로 길게 찢어 먹게/ 익으니까 노르스름 빛깔도 고운/ 별미의 김치를/ 얌전히 담궈 놓으셨다// 나는/ 정신일도 만사불성인 놈-// 이 추운 밤/ 감기 들어 머리가 띵하고/ 막걸리도 한 잔 마셨으니/ 뭔가 될 듯도 하다.//

희망 980 /김영승
007영화의 손 코네리, 그 병신 같은 새끼도 늙었다. 늙은 새끼는 다 병신/ 같다. 왜냐하면 늙었으니까./ `칼튼 힐'이라는 스카치 위스키 전속 모델이 되었다. 신문광고에서 보았다./ 그 글래머 본드 걸들도 다 병신 같은 년들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은 1996년 12월 24일 화요일, 크리스마스 이브./ 새벽에 할 일이 없어 가스렌지 후드 그 박스를 분해해서 닦았다. 역시 옥반/ 가효는 만성고다./ 어제는 아내에게 극언을 했다.// “이혼이냐 자살이냐……"/ 또는/ “자살이냐 이혼이냐……"// 아내는 나보다 세 살 병신 같은 년인데, 내년에 마흔세 살이 된다./ 나는 `불혹'이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오늘은 산타클로스, 그 병신 같은 새끼들이 설칠 것이다.//

희망 989 / 김영승
과일을 잘 먹는 당신/ 과일을 잘 먹어서 고맙습니다.// 낮잠을 잘 자는 당신/ 낮잠도 잘 자서 고맙습니다.// 옷을 공산당여맹위원장같이 입고 다니는 당신/ 옷을 공산당여맹위원장같이 입고 다녀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픈 당신// 당신이 아파서 고맙습니다.//

희망 991 / 김영승
요즈음 성형수술도 아무나 하는데/ 얼굴에 긴 칼자국을/ 그대로 갖고 다니는 사나이는/ 가난한 사나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칼자국을.// 이 가을/ 그 사나이의 긴 칼자국만큼의 가난을.// 얼어붙은.// 萬頃蒼波/ 數千億묘 사래 긴 밭을// 나는/ 언제 갈려 하나니,// 눈물이 난다.//

반성·序(서) / 김영승
언제나 그랬지만/ 갈수록 개인의 영역이 축소되고 말살되는/ 시대에 있어서 결코/ 한 개인의 노래만은 아닌 극복해야 할/ 자조적 실존의 비극적 아름다움―// 상대적 가치로 환산되어/ 어쩔 수 없이 고도화된 미개한/ 정태적 표현방식으로 몰수된/ 그 모든 개별적 사례에 대해서// 자아(또는 의식)과 세계(또는 대상)과의 격절현상 속에서/ 자아(또는 의식)과 세계(또는 대상)의 중간에 놓인/ 자아(또는 의식)의 주체로서의 또 하나의 자아(또는 의식)/ 그 또 하나의 자아(또는 의식)에 내재화된/ 원래의 자아(또는 의식)과 세계(또는 대상)에 대해서// 분쇄된 자아(또는 의식)으로 도금된 분쇄된 세계(또는 대상)의/ 소유주 떠난 단자들/ 자아(또는 의식)의 편린이 묻은 세계(또는 대상)의 편린/ 그 비가시적 부유물질// 자아(또는 의식)이 세계(또는 대상)에 투사되어 생성된/ 단자들의 상호 절대 고립된 시공// 자체로서 완전독립된 개별적 시공이 편만한 전체로서의 시공 속에서/ 착종된 그 개별적 시공들에 대한 인위적 이합집산과 분류를 획책하는/ 개체성을 상실한 다수의 전체로서의 의식과/ 오도된 상호주관성에 대해서// 그리하여/ 인간의 지극한 개체적 자유와 존엄성을 위한/ 인간과 인간의 완벽한 관계해소를 위해서// 제도적 필요성에 의해 박탈된/ 유화된 인간의 원리성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특수성으로 귀일하여 그 자체로의 정합을 저해하는/ 외부적 압박에 대해서// 특수한 한 개인의 의식이 포착한 특수한 한 대상//
가령/ 악적 필요성에 의해 양산되는 취약한 인간들이/ 자기방어적으로 분비하는 독성물질에 의해/ 자가중독에 빠진 거대한 연체동물에 대해서// 희로애락이라고 착각된/ 시공의 함수로 변화하는 위치에너지/ 그 외부적 자극에 의해 주조되는/ 비종교적 두상의 안면근의 수축이완에 대해서/ ―찰흙처럼 오므려 붙인/ 얼마되지도 않는 얼굴 근육에 힘을 주어 만든/ 오묘한 표정의 대동소이한 편차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상실한 자의/ 완전수렴의 꿈/ 자기동일성 회복을 갈망하는 자들의/ 갱생자립을 위해서// 공인된 폭력을 자행하는 자들의/ 한 대 쥐어박음에 대한 긴급조치로/ 실제의 고통보다 더 과장하여 낑낑거리며/ 불쌍하게 보이려 지적 활동을 하는/ 내 시계 속의 나의 이웃에 대해서// 축소지향의 불문율에/ 냉철한 깨어 있음 속의 인사불성을 연출하는/ 이성적 존재에 대해서// 애초에 없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화해와 평정의 변증법적 합일점을 시사하는/ 이미 모든 정체가 탄로난/ 정체불명의 불확실한 상징에 대해서// 자기자신에 대한 자기자신의 대리점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만원버스와 만원전철로 귀가하며/ 자신의 체취와 자신이 먹은 음식을 탄로시키는/ 무관한 형제들에 대해서//
가령/ 피차 성교하는 사이면서/ 마주앉은 상대에게 공중전화를 거는/ 연인들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굴종한/ 침묵의 다수의/ 삶의 세계에 대해서// 자기자신과 타인을 자기자신을 위한/ 정신적 육체적 팔일무를 추는 존재로 상정하는/ 오락적 인간에 대해서// 가장 오래된 기억 <에덴>의 잠재의식 속에 희석된/ 죄의식의 발굴제도 같은/ 난공불락의 논리적 도덕적/ 유형무형의 환락가와 교회를 입하한/ 푸줏간 같은 도시의 진열장에 걸린/ 시편 150편 같은/ 빨간 고깃덩어리의 단순한 주기적 진동에 대해서// 어디든/ 빨래처럼 널려 나부끼는/ 열악한 육체와 영혼의 평면도// 고등한 우주 무기를 갖춘 자들의 파상공격에 속수무책인/ 입체적 사고능력이 저열한 자들의 쩔쩔맴// 애초부터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 치졸한 어리석음의 균점// 설명 불가능한 제반현상// 지겨움// 내가 모르는 일들에 대해서/ <어깨를 겨룬다>는 동물적 어휘의 잔재가 남아 있는/ 원숭이 우리 앞에 선/ 원숭이// 힘의 소재에 따라 민첩한/ 열병분열을 하는/ 영육// 인간과 인간끼리 영혼과 육체의/ 펼친 화음/ 우리 모두가 수행하는/ 마스게임과 카드섹션//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 그 모든/ 사유될 수 있고 언표될 수 있는 것으로 대상화된다는 것이/ 가장 불유쾌하고 기분 잡치는 욕설이 되어 버린/ 이 해괴망측하게 황홀한 밤// 스물거리는 관능에 수없이 까무라치다가/ 결국 맹숭맹숭해진/ 끈적끈적한 육체와 영혼의 오르기(Orgie)// 그 모든 선천적 후천적 가엾음에 대한/ 본능적 심미적 도덕적 이성적 종교적 물리적/ 동정//
기실/ 마귀들의 가장행렬이거나/ 천국 백성들의 소돔성 수학여행 같은/ 설레임들과 들뜸의 삶의 세계/ 선악과 미추와 성속을 초월하여/ 일부러 노력하여 병신이 되어 가는/ <나>와 복수화된 <나>들의/ <섞음> <잠기기> <서로 닿기>/ <그 밖에> <갑자기> <어처구니없이>/ <비체계성> <흐트러짐> <제자리 찾아주기> 등// <훔쳐보기>만을 하는 변태성욕자처럼/ 자기자신과 세계에 대한 불연속적 보고서의 작성자로 전락한/ 사실무근한// 인간과 인간사와/ 그리고 <나>라고 하는 개체의 일들을/ 왜곡되게 기록한 것//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서정시.//

 

 

 

[시인공화국 풍경들-고종석의 詩集산책] (5) 김영승의 '반성' 압수된 개인성을 찾아서

지난주에 살핀 김수영 시들의 특징 하나는 비시적(非詩的) 일상어의 과감한 수용이었다. 도무지 시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도시적) 일상어들을 한국어 시어 사전에 버젓하게 등재시킨 첫 시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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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어적 표현의 '반성'하는 시인 – 김영승 | 인천문화통신 3.0

2018년 3월 31일 오후 5시, 인천 아트플랫폼 옆에 있는 작은 ‘근대문학관’에서 제1회 [인천, 시인과 만나다]가 열렸다. 주인공은 김영승 시인. 밑에 달린 소제목은 ‘자조적 실존의 비극적 아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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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1 / 김영승

두엄더미가 된 빤스를 갈아입으려고/ 나는 바지를 벗었다./ 그리고 새 빤스를 입었다./ 나는 곧 바지를 다시 입고/ 그렇게 또 한 달을 돌아다녔다./ 나는 두 개의 빤스를 입고/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반성 16 /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반성 21 / 김영승

친구들이 나한테 모두 한마디씩 했다. 너는 이제 폐인이라고/ 규영이가 말했다. 너는 바보가 되었다고/ 준행이가 말했다. 네 얘기를 누가 믿을 수/ 있느냐고 현이가 말했다. 넌 다시/ 할 수 있다고 승기가 말했다./ 모두들 한 일년 술을 끊으면 혹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술 먹자,/ 눈 온다, 삼용이가 말했다.// 

 

반성 39 / 김영승

오랜만에 아내를 만나 함께 자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왔다./ 아내는 갈비탕을 먹자고 했고/ 그래서 우리는 갈비탕을 한 그릇씩 먹었다./ 버스 안에서 아내는/ 아아 배불러/ 그렇게 중얼거렸다./ 너는 두 그릇을 먹어서 그렇지/ 그러자 아내는 나를 막 때리면서 웃었다./ 킥킥 웃었다.//

 

반성 69 / 김영승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마라/ 그런 노래가 있었다./ 구월동이여 나는 너를 위해 운다/ 나는 노래부른다./ 차별침식당한 사막의 잔구처럼/ 전봇대가 박힌 곳만/ 원기둥처럼 흙이 남아 있다./ 옮겨심을 가로수처럼 뿌리를 싸맨 전봇대/ 꼭 황음한 사내의 부랄 같다./ 불도저와 포크레인이 쉬고 있는 밤/ 브래지어와 포크도 쉬고 있는 이 겨울 밤/ 배고픈 사나이와 술취한 사나이가/ 효수당한 이 밤/ 이건 밤이 아니라 그저/ 어둠이다.//

 

반성 70 / 김영승

방범대원과 전경대원들이 노점 상인들을 철거시키느라 진땀이다./ 완장 찬 순경이 호루락을 불고 모판을 걷어차도 돈주머니 찬 아주머니들 결코/ 혼비백산하지 않은 채 땅바닥에 구르는 과일 흩어진 봄나물을/ 쓸어모으며 별로 분개하지도 않은 채 대강대강 피해 숨는다./ 거리에는 그들이 파는 음식이나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착하고 귀엽게 생긴 여대생들이 핫도그를 사먹고도 있었다. 예쁜 아기엄마가/ 아기를 업고 간장 종지를 고르고 있었으며 아이들 옷가지를 사고 있는 주부도 있었다./ 방범대원과 전경대원과 순경이 돌아가자 거리에 또 다시 삶의 축제가 열렸다./ 평화롭고 떠들썩한 팽팽한 긴장과 투쟁의 평범하고 고달픈 이 모습 저 모습의 우리 모두가/ 다시 모였다. 막잡채에 오뎅국물 그리고 소주 한 병을 시켜 놓고 파출소를 바라보았다.//

 

반성 71 / 김영승

건너 테이블엔 두 사나이가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목에 힘을 준 채 나직이 말하고 있었고 한 사나이는 숙연히 듣고 있었다. 그들은 여자 하나를 놓고 폭력을 주고받은 선후배간이었다. 야 임마, 영국 수상까지 지낸 윈스턴 처칠이 왜 그 수많은 유태인을 죽였나? 선배는 그렇게 말했고 후배는,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했다. 뚝배기 속의 순대와 돼지 허파를 젓가락으로 뒤척이며 그 여자를 생각했다. 영국과 독일과 윈스턴 처칠과 히틀러가 순대와 돼지 허파처럼 섞였어도 먹을 만하면 그냥 먹어 버리는 그 여자의 식성을 생각했다. 두리뭉실 배고프면 먹어 버리는 우리네를 생각했다. 맛있게 잘먹고 또 소주를 마시고 있는 배고픈 나를 생각했다.//

 

반성 72 / 김영승

나는 대변을 보는 게 아니라/ 밀어내기 하는 것 같다./ 만루 때의 훠볼처럼/ 밀어내는 것 같다./ 죽기는 싫어서 억지로 밥을 먹고/ 먹으면 먹자마자/ 조금 있으면 곧 대변이 나온다./ 안 먹으면 안 나온다./ 입학도 졸업도 결혼도 출산도/ 히히 밀어내는 것 같다./ 먹고 배설해 버리는 것 같다./ 사랑도 이별도/ 죽음도.//

 

반성 79 / 김영승

아내가 내 빤스를 입고 갔다. 나는 아내 빤스를/ 입어 본 적이 없다./ 아내는 내 빤스를 입고 가 버린 것이다./ 나는 빤스가 없다./ 일주일 후에 아내는 내 빤스를 빨아서 갖고 왔다./ 나는 빤스를 입었다.//

 

반성 80 / 김영승

지붕에서 쥐들이 100m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말/ 발굽 소리를 내며 뛰어다니고 있다/ 일제히 방향을 바꾸어 왔다갔다 에어로빅 댄스/ 를 하는 것인지 살빼기를 하는 것인지 밤새워 지/ 랄이다. 어머니가 쥐약을 사오셨다. 쥐약놓게?/ 그러자 어머니는 손가락을 입에다 대고 쉬--- 했다// 쥐가 들으면 안 먹어. 조그만 소리로 어머니는 그/ 렇게 말했고, 빨리 놔요, 나도 조그만 소리로 말/ 했다. 킥킥킥. 쥐들이 웃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커다란 쥐 두마리가 죽어 있었다/ 죽은 쥐를 보며 어머니와 나는 말이 없었고 쥐/ 들도 예전처럼 쥐의 본분을 지켰다. 쌤통이다//

 

반성 83 / 김영승

예비군 편성 및 훈련 기피자 자수기간이라고 쓴/ 자막이 화면에 나온다/ 나는 훈련을 기피한 적이 없는데도/ 괜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어제나 그저께의 일들을 생각해본다/ 나 같은 놈을 예비해 두어서 무얼 하겠다고/ 어김없이 예비군 통지서는 또 날아 오는가/ 후줄그레한 개구리옷을 입고/ 연탄불이나 갈고 있는 나같은 놈을/ 나는 문득 자수하고 싶다/ 뭔가를 자수하고 싶다//

 

반성 97 / 김영승

어깨동무 개동무 미나리밭에 앉았다./ 어릴 때 우리는 그렇게 노래부르며 어깨동무하고 가다가/ 노래가 끝날 때마다 둘이서 함께 앉았다./ 그리고는 또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며 갔고 노래가/ 끝날 때 또 앉곤 했다./ 한 여나무 번쯤 앉았다 일어나면/ 우리는 집에 올 수 있었다./ 이젠 어깨동무도 개동무도 미나리밭도 없다./ 술에 취하여 하루종일 넘어졌다 일어나도/ 나는 집에 올 수도 없다.//

 

반성 99 / 김영승

집을 나서는 데 옆집 새댁이 또 층계를 쓸고 있다./ 다음엔 꼭 제가 한 번 쓸겠읍니다./ 괜찮아요, 집에 있는 사람이 쓸어야지요./ 그럼 난 집에 없는 사람인가?/ 나는 늘 집에만 쳐박혀 있는 실업잔데/ 나는 문득 집에조차 없는 사람 같다./ 나는 없어져 버렸다.//

 

반성 100 / 김영승

연탄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 장이지?/ 금방이겠다, ./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며/ 얘기했다.//

 

반성 108 / 김영승

나는 또 왜 이럴까/ 나는 또 어릴적에 텔레비전에서 본 만화 영화를/ 생각한다./ , 베라, 베로 그 요괴 인간을 생각한다./ 빨리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외친 그 주제가를 생각한다./ 정의를 위해서 싸움을 한 그 흉칙한 얼굴들을 생각한다./ 하필이면 왜 정의를 위해 싸웠을까/ 하필이면 왜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빨리 요괴인간이 되고 싶다 아무래도/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은/ 저 예절 바른 사람들을 생각한다.//

 

반성 156 / 김영승

그 누군가가 마지못해 사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할 때/ 그는 붕어나 참새같은 것들하고 친하게 살고 있음을 더러 본다./ 마아고트 폰테인을 굳이 마곳 훤턴이라고 발음하는 여자 앞에서/ 그 사소한 발음 때문에도 나는 엄청나게 달리 취급된다./ 그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도 사실 끔찍하게 서로 다르다./ 한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도/ 살벌할 만큼 다른 의미에서 거래된다./ 그들에게 잘 보여야 살 수 있다.//

 

반성 163 / 김영승

코끼리들이 문득 가엾다./ 코끼리 발바닥엔/ 어느 정도 두께의 굳은살이 박혔을까./ 그 거대한 몸뚱이를 지탱하며 먹이를 찾아/ 뛰어다닌 벌판./ 굳은살이라곤 입술과 유방과 성기밖에 없는/ 불행한 남녀들이 다투어 몰려온다./ 귀족적이려고 매력적이려고 그리고/ 지성적이려고 무지무지 애를 쓰고 있다./ 가엾다.//

 

반성 167 / 김영승

고야의 벌거벗은 마야를 마야의 벌거벗은 고아로 얘기하며/ 그 늙수그레한 술꾼은 술에 취해서 홍알홍알/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어머 취하셨나봐, 고야의 벌거벗은 마야예여/ 그걸 듣고 있던 여자는 그렇게 말했고/ 아니래두, 마야의 빨개벗은 고야라니까/ 술꾼은 짐짓 화가난 듯 혀꼬부라진 소리로 또 우기고 있다./ 고야의 벌거벗은 마야와/ 마야의 벌거벗은 고야/ 그건 똑같은 말이다.//

 

반성173 / 김영승

어릴 때 본 검객영화를 생각한다./ 악당들이 미리 칼을 뽑고 삥 둘러싸도/ 주인공은 태연하다./ 할 수 없이 끙 하며 술을 마셔 버리는/ 그 고독한 주인공을 생각한다./ 악당들의 쫄개들이 하도 찝쩍대면/ 할 수 없이 젓가락을 집어던지는/ 그리하여 악당들의 눈에 가서 팍팍팍 박히게 하는/ 그 탁월한 솜씨의 주인공을 생각한다./ 악당들의 두목이 나타나면/ 할 수 없이 술을 마시다가/ 할 수 없이 칼을 뽑는/ 정말 할 수 없는 그 주인공을 생각한다.//

 

반성 187 / 김영승

茶道酒道니 무릎 꿇고 정신 가다듬고/ PT체조 한 뒤에 한 모금씩 꼴깍꼴깍 마신다./ 차 한잔 술 한잔을 놓고/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나한테 그 무슨 오도방정을 또 떨까/ 잡념된다.// 지겹다.//

 

반성 188 / 김영승

여름방학이라고 이모님하고 어린 조카 계집애들이/ 집에 왔다. 삼촌 술 안 마시기로 약속해요/ 아이들이 또 성화다./ 날더러 왜 술 마시지 말라는 걸까./ 아이들도 이상하다//

 

반성 190 / 김영승

쓸쓸하다./ 사생활이 걸레 같고 그 인간성이 개판인/ 어떤 유능한 탈렌트가 고결한 인품과/ 깊은 사랑의 성자의 역할을 할 때처럼/ 역겹다./ 그리고 보통 살아가는 어리숙하고 착하고/ 가끔 밴댕이 소갈딱지 같기도 한 이런저런 모습의/ 평범한 서민 역할을 할 때처럼./ 그보다 훨씬 똑똑하고 세련된 그가/ 그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도색적인 그가/ 수줍어한다거나 이웃에 대해서 작은/ 정을 베풀고 어쩌구저저구하는 역할을 할 때처럼./ 각자 아버지고 어머니고 선생이고 아내고,/ 어쨌든 이 무수한 탈렌트들과/ 나는 살아야 한다.//

 

반성 463 / 김영승

너보다는 내가 더 외롭다/ 왜냐구?/ 너보다는 내가 더 아름다우니까// 너보다는 내가 더 괴롭다/ 왜냐구?/ 너보다는 내가 더 심오하니까// 너보다는 내가 더 슬프다/ 왜냐구?/ 너보다는 내가 더 순결하니까//

 

반성 505 / 김영승

벌써 오래 전에/ 나는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술 마시다/ 그렇게 발광하다/ 죽어간 것 같다.//

 

반성 517 / 김영승

예수에겐 당연한 일이고/ 다른 사람들에겐/ 엄청난 일/ 간음한 여인/ 킥킥// 애써 웃음 참고/ 엄숙한 표정으로/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그리고 예수는 하꼬방에 달려가서/ 흐느꼈을 게다// 돌절구도 밑 빠질 때가 있느니라……/ (예수가 땅바닥에 끄적거린 낙서)//

 

반성 545 / 김영승

죽지 않고 살았으면/ 다행/ 재수 없이 죽으면/ 불행/ 재수없이 죽어가면서도/ 나는 결코/ 불행이라고 생각지 않으리라/ 천우 신조하여 살아남으면/ 나는 그걸 뭐라고 표현할까/ 그냥 <>이라고 말해두자.//

 

반성 546 / 김영승

나는 너의 노리개가 되고 싶다/ 노리개가 되어 너에게 의지하고 싶다/ 너의 走狗가 되어 밥을 얻어먹고 술을 얻어먹고 싶다/ 연옹지치라도 감수하며 구슬 같은 땀방울을 흘리고 싶다/ 돈 많은 유한부인인 너의 개가 되어 섹스 노리개가 되어/ 하룻밤의 지친 육신을 너의 지붕 밑에 뉘고 싶다/ 나는 너의 뱃속에 들어가 너의 기생충이 되고 싶다//

 

반성 547 / 김영승

소리가 멀어져 간다/ 멀어져 가는 소리를 들어본 자는/ 이미 죄인이 아니다// 이미.//

 

반성 563 / 김영승

형이상학적 사고 체계가 완벽한 나는 가끔/ 여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우리나라 말 <보지>를 발음했을 때의/ 그 전무후무한 공명을 숙고해 본다.// 생각해 보았는가/ 아무도 몰래 묵묵히 <보지>를 발음해 보며/ 고개를 끄떡거리고 있는 불타나 예수의 모습을/ 그대의 아버지나 대통령이나 그대의 스승을// 생각해 보았는가/ 마하트마 간디를.// "지 에미 속을 얼마나 쎅혔을까/ 대가릴 저 지랄도 해야만 글이 나온다던?/ 저 드러운 저 똥 콧수염 저 으......"// 신문에 난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라는 수필집 광고에 나온/ 李外秀 사진을 보며 어머니는 또 그러신다/ 그러더니 또 별안간 "야 저 새끼 장가갔냐?" 하신다// 히히.// <보지> / <태멘> 이건/ <아훔> 이건.//

 

반성 564 / 김영승

알몸으로/ 커다란 선인장을 끌어 안고/ 변태성욕자처럼/ 성교하듯 숨막히는 애무를 하면/ 얼굴에 눈에 입술에 혀에/ 성기에 가슴에 무릎에 엉덩이에/ ······// 더는 꽃이 피지 않는 내 몸에/ 이 서러운 육신에 펑펑/ 수줍은 꽃 수천 수만 송이//

 

반성 569 / 김영승

술 마시면/ 家屋으로 들어가고 싶다// 所有/ 家屋으로 들어가고 싶다// 正立方體가 아닌 球形/ 家屋으로/ 영원한 家屋으로// 보증금도 月稅도 없는/ 계약서도 영수증도 없는/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수도요금도 청소요금도 없는/ 무엇보다 전기요금 없는/ 완전 투명하고 완전 불투명한/ 완전 경계 없고 완전 독립된/ 담도 없고 문도 없는// 마을같고 도시같고 국가같은/ 쥐구멍같은 집/ 子宮같은 집 같은 집/ 집게()의 집같은 집// 술 마시면/ 主人이 되고 싶다.//

 

반성 570 / 김영승

어머니는/ 나 하고 단둘이뿐인데도/ 들을 사람 아무도 없는 데도/ 남의 얘기를 할 땐/ 음성을 낮추어 쉰 목소리로 만들어 얘기한다// --뒷질 며느리 바람나서 도망갔대/ --목사님네 쌀이 떨어졌대/ --구멍가게집 땅개가 큰 개한테 물려 죽었대// 당신은 아나운서요?/ 제물포고등학교 졸업하고 외대 스페인어과 나온/ KBS1 TV의 이윤성 뉴스 캐스터요?// 사랑한다는 말도/ 못돼먹었다는 말도/ 또박또박 발음 하는 당신은.//

 

반성 602 / 김영승

나는 이제 <>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절제>라고 부르겠다.// 어제는/ <절제>를 무절제하게 마시고/ 뽀옹/ 입으로 방귀 뀌는 소리를 냈다// 액체의 속성은 흐름이다/ 그리하여/ 액체는 다 무절제하다// 물도 눈물도 땀도 정액도/ 그리고 술도 피도.// 수도꼭지처럼 자지(cock)를 달고/ 계량기를 달고// 한 달에 한 번씩 검침하여/ 돈 받아 가라// 눈물도 땀도/ 정액도.//

 

반성 606 / 김영승

마늘을 까다보니/ 마늘은 어느새 알몸 같다/ 너무나 고운/ 천상의 여인의 알몸 같다// 투박한 것에 싸여/ 숨겨진 것은/ 다 곱다// 나는 이제 옷을 벗지 않으리라/ 나는 나를/ 까리라//

 

반성 608 / 김영승

어릴 적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주()/ 나를 놓아주신다//

 

반성 641 / 김영승

당신은 고독을/ 식후에 피우는 담배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피곤해 뵌다고요?/ 그래서 좀 쉬어야겠다고요?// 저에게 있어서/ 충분한 휴식은/ 충분한 고독을 의미합니다// 충분치 못한 고독 때문에/ 욕구불만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한 갈대들을 혹/ 당신도 보셨는지요?// 저 불공평한/ 불평과 불만 속에서.//

 

반성 648 / 김영승

술을 마시며 고운 저음의/ 튜바 부는 소리 내다/ 수자폰 소리 내다/ 풀벌레 울음 소리같은/ 서러운 웃음을 먼지처럼/ 천상의 금먼지 은먼지처럼/ 찬란한 웃음을 날리다가/ 진흙같이 취해서 피콜로 소리를 내면/ 내 앞에 앉은 여인은 벌써/ 나를 경멸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술 마시면서/ 부드러운 목관악기/ 잉글리시 호른으로/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하란 말인가/ 술이 들어가는 내 입의 입술을 오므려/ 베에토벤의 <환희>/ 연주하란 말인가/ <환희>있어요?/ 없는데요/ <환희>있어요?/ 없는데요/ 100원짜리 <횐희>담배를 사러가니까/ 가는 곳마다 없다.//

 

반성 668 / 김영승

나 같은 지리멸렬한/ 술 태백이를 만난다고 제 딸을 두들겨 팼던/ 지난 날 그 보디·빌더, ·화이터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 딸한테 금·판사 중매가/ 수두룩해, 이 미친 개 색꺄 !// 누가 뭐랬나?// ······그리하여/ 제 갈 길로 가지 않았는가?// 히히/ 내가 그들이 존숭하는/ ·금사라면/ 그리하여 내가 그의 딸을 버렸다면/ 그들은 나를/ 혼인빙자 간음죄로 구속했겠지.// ?// 인간은 참/ 나만도 못하다// '이런, 나만도 못한 인간들 같으니라구//

 

반성 673 / 김영승

우리 식구를 우연히 밖에서 만나면/ 서럽다// 어머니를 보면, 형을 보면/ 밍키를 보면/ 서럽다// 밖에서 보면/ 버스 간에서, 버스정류장에서// 병원에서, 경찰서에서/ 연기 피어오르는/ 동네 쓰레기통 옆에서//

 

반성 689 / 김영승

아빠인 내가, 아니 '아빠'인지 '아비'인지 '아버지'인지 '嚴父'인지 'papa', 'father', 'daddy'인지 잘 모르겠는, 여하튼 그를 이 세상에 생겨나게 한 공범, 남성측 피고로서의 내가 특별한 장난감을 사주지 않아서 그런지, 이제 19개월 된 내 아들 인겸이는, 부국사료주식회사 다니는 대머리가 지난 추석 선물로 갖다준 참치 세트의 참치 통조림을 갖고 노는데, 요즘은 그걸 아내의 화장대 위에 네 개씩 쌓아놓고는 박수를 치며 발을 구르며 그렇게 까르르까르르 좋아라 웃어서 나는 그것을 보고 譽之曰,//

"多歪堂 吝醒軒 혜이室 主人詩人人堂 金榮承之子吝謙天使菩薩四層사조 로하이 참치깡통寶塔"//

이라 命名하고 나도 역시 박수를 치며 발을 구르며 그렇게 까르르까르르 좋아라 웃어본다. 그리고 나서/ '아 고년들 참 되게 이쁘다'하며 신문을 들여다보는데 으잉? 동아일보 1991118일 금요일자엔 '서울경찰청 여자 기동대는 7일 밤 이태원 등지의 <게이바> 3곳을 덮쳐 여장 남자 접대부 28명을 적발해 모두 즉심에 넘겼다 <石東律 기자>'라는 설명과 함께, 늘씬한 다리에 하이힐 영락없는 여자 같은 호모새끼들이 죽 서 있는 사진이 나온다. 또 보니까 역시 동아일보 199111월 일요일자 사설엔 <12살짜리 접대부를 둔 사회>라는 제목의 사설이 나온다.//

나는 딸이 없지만, 내 딸을 어떤 인신매매단이 납치해 갔다면, 나는 백사를 물리고, 나의 門徒 100만과 함께, 일제히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기관단총과 수류탄, 石弓, 毒針, 무반동등으로 무장을 해서, 기관단총과 실탄은 첼로 박스에 넣고 수류탄은 산타클로스 그 선물 보따리 자루에 넣고, 전국 방방곡곡의 영계 술집을 찾아 다니는 게 아니라, 청와대, 경찰청, 대법원, 검찰청, 대기업, 병원, 신문사, 백담사, 송광사, 조계사, 국회의사당, 명동성당, 여의도순복음 교회, 독립기념관 등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아웅산을 만들어버릴 것이니, 찔리는 놈들, 그런 줄 알고 있어라.//

 

반성 699 / 김영승

어떤 호협활달한 마애석불과/ 술을 마셨다 그는 릴리프처럼/ 그의 배경에 파묻혀 딱 붙어 있다/ 김형, 혹시 딸딸이 많이 쳐서 그런 것 아니요?/ 초췌하고 창백한 내 얼굴을 보며/ 그는 말했다/ 이 참혹한 시인에게 아랸야와 아미타 미인 군단을,/ 나무관세음보살 으하하하하하-/ 그는 웃었다 그리고/ 너무 과하지 마시오 그리고 그렇게 덧붙였다/ 오난존자처럼 나는 어디다 대고 찍찍 싸고 있는가/ 서서히 나의 어깨와 팔과 등과 머리가/ 벽에 잠긴다 반쯤 잠겨 나는/ 딱딱하게 굳는다 나의 표정도 은은한/ 미소로 굳는다 자기 자신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게 무한한 관용을 어쩌구저쩌구/ 미소짓다 보면 꿈과 환상 속에/ 끊임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곳에 쏟지 못하는/ 나는./ 나는 돌 속에 박힌 그 마애석불과/ 교대된다 감자탕집에 홀로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며 술을 마시다 보니/ 킥킥킥 웃고 있는 나를 보며 깔깔깔 보다 보다 할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린 젊은 주인 여자의 모습이 거울 속에 보인다/ 배를 쥐고 웃고 있는 허리 꺽인 모습이/ 온갖 번뇌의 환신 같은 요부처럼 간들간들/ 거울 속의 나를 녹인다 그러나....../ 결혼 안 하세요?/ 여자가 묻는다./ 킥킥, 결혼?/ 나는 딸딸이에 도가 튼 놈이요.//

 

반성 702 / 김영승

국제 원유가 하락에 편승해/ 소주 1배럴에 20원 하는/ 요순 시대가 도래한다면/ 소주는 죄 지은 자에게 벌주는/ 액체가 될까// 소주 40만 배럴에 처한다, 딱딱딱/ 판사는 선고하리라// 유조선에 소주를 가득 싣고/ 교회의 성찬식엔 두당 소주 한 말로 하는 게 아니냐// 숙제 안 해 간 땡땡이 국민학생들/ 벌주 마시고 집에 가며 한 많은 이 세상 농땡이 못 쳐서 못 살겠네/ 주정하는 게 아니냐// 그런 요순시대에/ 소주를 마시고 兎唇이 되든 大陰唇이 되든/ 一聲胡笳에 애를 끓이는 이순신 장군이 되어/ 거북선을 피우든// 그러나 이런 妖術時代에도/ 술은 아직 벌이 아니냐// 2홉들이 소주 한 병에 400원 하는/ 요즘도// 피고 김영승에게/ 소주 5병을 선고한다, 짝짝짝/ 판사는 따귀를 때리고 있는 게 아니냐// 검사는 7병을 구형하고/ 변호사는 한 잔도 부당하다고 우기고들 있는 게 아니냐// 모범수로 네 병만 마시고 감형되어/ 다섯 병 형기 만료 전에 가석방되는 게 아니냐// 그렇게 나는/ 쓰러지고 있는 게 아니냐/ 소주 같은 눈물 흘리며// 그렇게 죽어 가고 있는 게 아니냐.//

 

반성 703 / 김영승

'告祀行爲에 대한 기독교적 비판'이라는/ 리포트 작성을 문의하러 온 서울神大 3年 金珍珠양에게/ 구약, 신약, 엘리아데, 탈레스/ K. , 다신교, 범신론, 범심론, 범털, 범아가리(虎口浦), 範行(친구), 영어, 독어/ 라틴어, 희랍어 주저리 주저리 갖다붙이며/ 미친년처럼 잘났다까봐/ 방언을 해주고 나니까, ?/ 고사 행위는 나에 의해서 정말로 기독교적으로 비판되어 버렸다.// 삶은 돼지 대가리처럼/ 세례 요한의 머리통처럼/ 제 머리통 잘라 올려 놓고/ 일생 동안// 무엇이 되기를 바래 비는 마음은/ 늘 비굴하고 겸허하고// 제일 신난다./ 오줌을 누다 보니/ Phallicism// 무너진 어깨 위에/ 푹 삶은 자지 한 토막과/ 위험, 사고 다발지역, 폭발물, 취급주의, 가위표 그려진 내 머리통/ 올려놓고 나도/ 신들려 춤을 췄지,/ 소주를 퍼마시고/ 巫堂처럼// !//

 

반성 704 / 김영승

밍키가 아프다/ 네 마리 새끼가 하도 젖을 파먹어서 그런지/ 눈엔 눈물이 흐르고/ 까만 코가 푸석푸석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닭집에 가서 닭 내장을 얻어다/ 끓여도 주어보고/ 생선가게 아줌마한테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끓여 줘 봐도/ 며칠째 잘 안 먹는다/ 부엌 바닥을 기어다니며/ 여기저기 똥을 싸 놓은 강아지들을 보면// 낑낑낑 밍키를 보며 칭얼대는/ 네 마리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나는 꼭 밍키의 남편 같다.//

 

반성 706 / 김영승

당신은 한번도 공포에 질려 까무라친 적도 없고/ 버스에 치어 즉사한 내 동생같이/ 두개골이 깨져 뇌수가 흘러나왔으되/ 의식은 말짱한 상태로// 아아, 그 아득한 절망의 장마/ 폭우가 쏟아진 흙탕물 속을/ 배터진 붕어처럼 둥둥 떠내려갔던 적도/ 당신은 없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나에게 경배하시오.//

 

반성 740 / 김영승

어둠-컴컴한 골목/ 구멍가게 평상 위에 난짝 올라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옛날 돈 2만원 때문에/ 쫒아다니면서 내 따귀를 갈기던/ 그 할머니가/ 어떻게 나를 발견하고 뛰어와/ 내 손을 잡고 운다// 머리가 홀랑 빠졌고 허리가 직각으로 굽었고……// 나도 그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맥주까지 마시니 돈 좀 생겨지나 보지 하면서/ 웃는다// 이따가 다른 친구가 올 거예요 하면서/ 나도 웃었다.//

 

반성 743 / 김영승

키 작은 선풍기 그 건반 같은 하얀 스위치를/ 나는 그냥 발로 눌러 끈다// 그러다 보니 어느날 문득/ 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선풍기한테 미안했고/ 괴로웠다// -너무나 착한 짐승의 앞이빨같은/ 무릎 위에 놓인 가지런한 손 같은/ 형이 사다준/ 예쁜 소녀 같은 선풍기가//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어린이 동화극에 나오는 착한 소녀 인형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아저씨 왜그래요' '더우세요'/ 눈물겹도록 착하게 애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얼 도와줄 게 있다고/ 타임머까지 달고/ 좌우로 고개를 흔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더운 여름/ 반 지하의 내 방/ 그 잠수함을 움직이는 스크류는/ 선풍기// 신축교회 현장 그 공사판에서 그 머리 기름 바른 목사는/ 우리들 코에다 대고/ 까만 구두코로 이것저것 가리키며/ 지시하고 있었다// 선풍기를 발로 끄지 말자/ 공손하게 엎드려 두 손으로 끄자//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을 닮았다/ 핵무기도 십자가도/ 콘돔도// 이 비오는 밤/ 열심히 공갈빵을 굽는 아저씨의/ 그 공갈빵 기계도//

 

반성 744 / 김영승

너는 왜 그렇게 티를 내냐/ 너는 왜 그렇게 기어코 티를 내야 하냐/ 술 취하여 쓰러져 가는 나를/ 너는 왜 연탄집게로 때려야 하냐/ 왜 갈빗대를 부러뜨러야 하냐//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밤/ 너는 왜 그 순결함을 더럽히게 했냐/ 왜 눈 위에 나의 핏방울로/ 술 취한 나의 핏방울로/ 너를 절대로 해치지 않는 나의 핏방울로// 너의 그 고운 이름을 써 넣게 했느냐.//

 

반성 745 / 김영승

죽기 직전에 자기 아들에게만/ 알았느냐? 하고 죽었다는/ 옛날 장인들의 비법처럼/ 나도 그런 거 하나쯤은 갖고 있는가// 반관에 450/ 국수를 삶으며/ 고려청자의 비색 같은/ 내 아픔의 연원/ 그 아득한 고대 문명의 발상지를/ 생각해 보며// 시계를 차고도 늘/ 지각을 하는/ 노예들과// 그리고 그렇게/ 입 다물고 오래 참을 순 없는가// 당신을 사랑해요 혹시/ 텅 빈 구멍을 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결국/ 음흉하고 비열한 고백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이여 그대는/ 재림한다고 하지 말고 해결한다고 하라/ 재혼한다고 하지 말고 해결한다고 하라/ 글쎄/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해결한다고 하라// 이력서엔/ 뒷간에 갖다 붙여 놓으면/ 왼갖 잡다한 잡귀는 다 물러갈 것 같은/ 잡귀 쫓는 부적 같은/ 내 반명함판 사진/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정성껏/ 결국 삐뚜로 붙여 놓고// 자기소개서엔 '나는 천재다'/ 나는 왜 그렇게 쓸 수 없는가// 신문에서 오린 사원 모집 광고 문안에 왜/ 식욕 있는 남녀, 성욕 들끓는 남녀/ 라는 자격 ──// 그 자식들은 왜 나에게/ 자기네들의 소개서를 써서 보내지 않는가// 아니면 '나는 미친 놈이다 으하하하하'/ 아니면 숫제 '나는 나는 갈테야 연못으로 갈테야/ 동그라미 그리러 연못으로 갈테야……'// 더러운 놈들.//

 

반성 782 / 김영승

한국말을 한답시고 열심히 한답시고 삼사년간 배워 유창하답시고 하고 있는/ 서양인들을 보면/ 그들의 지성과 관계없이/ / 병신 머저리 칠뜨기/ 팔푼이 얼간이/ 개콧구멍 같다.// 그들이 한국어로 시조를 지어/ 읊고 다니면 어쩌나?//

 

반성 783 / 김영승

차라리 원시인들이 땀 삘삘 흘리며 굴리고 다니던/ 도나스같이 생긴 그 커다란 돌덩어리를/ 돈으로 사용했으면/ 참 많은 게 탄로날 텐데// 간통도 개수작도/ 그대가 생각하는 사랑도// 노동생산성 상승률과 실질임금 상승률이/ 하등의 관계없이 겉도는/ 그 모든 노예 시장,/ 인신매매조차도 독점한/ 1,2,3 ……n차 시험 합격자에 한하여/ 면접시험 치르는/ 부실한 유령 회사도// !/ 돈이 보이지 않는다.// 부피도 질량도 없는/ 보혜사 성령 같은/ 관념이// 모든 현상을 은폐시키고, !// 박 과장 최 부장/ 김 실업자// 다 굴리고 다닌다//

 

반성 784 / 김영승

-W X Y 그려진 W.C 입구/ 비상구 같은 질구(疾驅)/ 도시는, 아 고녀석 자지도 굵다/ 까진 데만 25cm, 이젠, 개선문도/ 개선(疥癬), 개선(改善), , 개개(箇箇), 포문(砲門)도 이젠/ 이젠 삽입 이전에 끝난단다, 소녀야/ 찢어지지 않아서 좋겠다. 좆 컸다./ 미동들아// ()뜬 유방과 하프 한 사라/*사라: dish. . 접시/ 200원어치는 안 판다고요?// 싱싱한 <대음순, 소음순, 음핵> 모듬회/ 1,000원어치도 안 판다고요?// 그럼 음모(陰毛) 딱 한개/ 그것도 안 팝니까?/ 그럼 코딱지는 팝니까?// 여인이여/ 당신은 당신의 오줌이나 똥을 싸서 즉석에서/ 나에게 팔 수 있습니까?/ 당신에겐 필요 없는 것인데.// 이 밤 나는 글쎄/ 인천행 전철을 타고/ 또 서울로 간다./ 공장도 가격으로.//

 

반성 793 / 김영승

TV의 프로그램도 제공하는 스폰서가 있는데/ 내가 보내드리는 나의 이 모든 이야기는 도대체/ 누가 제공하는 것이냐// 그저 세상에 태어나 고통 받는/ 나의 출연료는/ 누가 주는 것이냐// 그대가 그대를 사랑하듯/ 이 무조건 무기한 드라마를.// '선생님 지난 얘기 들려주세요'/ 턱을 괴고 앉아/ 스무 살짜리 어린 처녀가/ 방글방글 웃고 있다// 그 깊고 은밀한 가슴속/ 핸드백 속엔 내 소주값 2-3천원을/ 소중히 간직한 채.// 그러나 소녀야/ 나는 내 얘기를 나한테만 들려준단다/ 네가 그러하듯 나도 그렇다// 어쩌서 종생토록 우리의 그 모든 이야기는/ 무용담이냐// 사랑도 추억도/ 눈 오는 밤/ 좇나게 맞은 기억도.//

 

반성 821 / 김영승

전기세 수도세 채소값 쌀값 신문대/ 차라리 아아롭게 강강수월래/ 원무를 춘다 이리 오세요 옷고름 풀며/ 하나씩 하나씩 옷을 벗으며/ 단속곳 속속곳 황홀히 벗어 던지며 관능적으로/ 다시 쥔 소줏잔 속에서 오랄섹스 하듯 쪽쪽/ 빨다가 알라딘의 요술 램프 호리병 속에서 나온 거인같이/ 주인인 나를 제 손바닥에다 올려 놓고 갈마들다가/ 개구리처럼 나를 땅바닥에 태질 칠까 말까 내 알몸을/ 입 안에 털어 넣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우물// 거리다가 잘근잘근 깨물다가/ 꽈리처럼 딱딱/ 씹다가 버찌씨 뱉듯/ !//

 

반성 825 / 김영승

언제나 손이 떨렸던 나는/ 뜨거운 물을 옮길 땐/ 신중에 신중을 다 해 무척 조심스럽게 옮겼었다/ 그 물을 내가 끓인 것도 모르면서// 나는 이제/ 주전자 정도는/ 한 손으로도 자유자재로 옮긴다// 니나노집 찌그러진 주전자 같은/ 내 심장의 물도.//

 

반성 826 / 김영승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래위 턱이 맞지 않는다/ 소위 아구통을 맞아서 그렇다/ 아래위짝이 꼭 맞아야 하는게 또 뭐가 있을까/ 맞지 않는 윗니 아랫니로 깻잎을 씹다 보니/ 킥킥/ 맷돌 위짝에 맞아죽은 놈/ 생각/ 나쁜 놈은 참 재미나게도 죽는데/ 나는....../ 살아야겠다는 일념만 있는/ 의지의 한국인처럼/ 천신만고 끝에 밥을 먹고 나서/ 극기 복례하여 오래간만에/ 연탄불 아래윗 구멍을정확히 맞춰 갈았다/ 요즘 사내들 제 아내하고/ 아래 위 잘 맞추고 사나/ 자기가 안 맞으니까 별 참견 다 한다고/ 또 한방 아구통을 맞을 것 같다/ 어제는 술 마시고/ 괜히 맞았다 괜히 아무나 때리고 싶다는 놈한테/ 그럼 한 번 때려 보라니까/ 정말 때렸다/ 누구든지 네 오른편 아구통을 갈기면/ 왼편 아구통도 돌려 대라/ 킥킥/ 나는 웃고 있었는데/ 그는 글쎄 나를 붙들고 엉엉/ 울고 있었다.//

 

반성 827 / 김영승

한쪽 끈이 끊어진 슬리퍼를 끌고/ 변소에 들어가 조심조심 조심한답시고/ 살살 자세를 잡으려 돌아앉으려다가/ 에휴....../ 똥통 속에 한짝을 빠뜨렸다.// 어머니도 신고 형도 신는 슬립펀데/ 나는 막대기를 들고 엎드려/ 꺼내 놓았다./ 우주의 아득한 변방의 오지같은/ 어느 깊고 깊은 썩은 사나이의 심오한 사상과 같은/ 재래식 변소// x자를 엮어 네 귀퉁이를 꿰맨 슬립퍼/ 그 중 한 귀퉁이가 뜯어진 왼쪽 슬립퍼// 그런데 내가 빠뜨린 것은/ 오른쪽 슬립퍼였다.// 비누로 깨끗이 씻어 냄새 맡아보며/ 부뚜막에 세워 말리면서/ 그러면/ 뜯어진 걸 꿰맬까/ 아니면 한 짝마저 뜯어버릴까// 그랬던 것 아니냐/ 떠나간 내 아내야,// 잠시 생각했다.//

 

반성 828 / 김영승

TV 엔 아시안 게임/ 110kg 급 용상 역도 경기에 나와 195kg 들다/ 실패한 콧수염 기른 배불때기/ 이락 선수를 보더니/ 지랄하고 교만 떨더니 떨어뜨리네 하며/ 어머니는 또 깔깔깔 웃으신다/ 교만스럽게 생긴 것하고/ 무게를 못 드는 것하고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지만/ 나도 깔깔깔 웃었다.// 52kg에서 48kg에서 38kg까지 떨어졌던/ 나의 체중// 나는 교만하고/ 그리고 우습다/ 깔깔깔.//

 

반성 880 / 김영승

하얀 눈이 눈부시게 쌓인 새벽/ 요강에 쭈그려 오줌을 누는데 어머니가/ 요강 넘지 않어? 하신다/ 아니요 아직 스무 번도 더 싸도 돼요/ 나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너는 내가/ 몇 번이나 더 싸야 넘치느냐/ 여인아, 이 세상아// 아무렇지도 않게.//

 

반성 895 / 김영승

男兒須讀五車書--/ 킥킥// 양다라에 담아 엿장수한테 내다 준/ 소주병을 생각ㅎ니// 汗牛充棟의 에--/ 말하자면 나는/ 그렇다.// 강냉이와 엿과/ 요즘 엿장수는 왜 빨랫비누까지 주는지/ 빨랫비누 4 장을 받아들고/ 현금 1, 000원을 받았다// 그게 무슨 꼭/ 不勞所得같아/ 기분 좋아 1. 000원 갖고/ 소주 두 병 사다 또 마시고/ 열심히 또 모으기로 했다.// 어머니가 을 높이라고 해서/ 가느다란 100원짜리 소세지/ 두 개도 샀다.// 히히.//

 

반성 902 / 김영승

하느님 아버지/ 저는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날이 갈수록 머리가 띨띨해 져 갑니다/ 고맙습니다//

 

반성 906 / 김영승

손등 위에 손등 위에 손등 위에 손등을 얹어놓고/ 주먹으로 때리면/ 때리면 샥 피한다/ 맨 밑의 나만 맞는다/ 칼로 찍힌다//

 


 

 

김영승 시인은 

1959년 인천에서 태어나 제물포고등학교를 거쳐 1983년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다가 중도에 그만두었다.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반성. 서(序)>외 3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1980년대 현실을 특유의 해학으로 극복한 『반성』, 연시적 분위기를 저변에 깔고서 가혹하게 자아를 성찰하며 세상사의 이면을 뒤집어 보고있는 『취객의 꿈』, 풍자와 야유의 방법으로 세상의 허위와 기만에 대응하는 『차에 실려 가는 차』(1989), 슬픔의 정조를 지닌 독설과 자학으로 권태에 대한 공격과 그 공격 자체에 대한 권태를 그려낸 『권태』 등의 시집에 실린 그의 시는 뒤틀림과 외설, 자조, 야유, 탄식 등을 통해 자아 성찰을 위한 노력 및 현실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영승은 세상에 대한 저항과 정화의 욕망을 배설의 시학으로 그려내는 시인으로 평가된다. 2002년에 제3회 현대시작품상, 2010년에 제5회 불교문예작품상, 2011년에 제29회 인천시 문화상, 2014년에 제1회 형평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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