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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홍윤숙 시인

부흐고비 2021. 5. 31. 11:03
“시는 일찍이 내 생을 관통해 간 한 발의 탄환이었고/ 나는 그로 하여 일생을 앓으며/
만신창이로 여기 서 있다/ 진실로 내 생을 관통한 한 발의 탄환/ 그 고통과 기쁨의 황홀한 상처.”

-서시 '위난한 시대의 시인의 변(辯)' 중에서-

당신의 얼굴 / 홍윤숙
어머니/ 흰 종이에/ 수묵 풀어/ 당신의 얼굴/ 그려 보아도/ 꽃 같은 미소/ 간데 없고/ 하얗게 바랜 모습/ 줄줄이 주름진 세월/ 하늘 같은 희생들/ 그릴 바 없어/ 내 손 부끄러이/ 더듬거립니다/ 어ㆍ머ㆍ니//

미지의 땅 / 홍윤숙
그 집에선 늘/ 육모초 달이는 냄새가 났다/ 삽작문 밖 가시 울타리는/ 내 키를 넘고/ 바다는 어디만큼 열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뒷산 밤나무숲은 사철을 울창하여 침울했고/ 바람이 미로에 빠진 듯 헤매다녔다// 그 시절 내 가슴은 남모르는 미열에 떠 있었고/ 아듯히 먼 령 너머 초록의 녹지가/ 꿈속까지 따라와 나를 불렀지만/ 그리로 가는 길을 알지는 못하였다/ 가슴 한켠이 늘 유리에 벤 것처럼 쓰라렸다// 미지의 땅은 그처럼 넘치고 푸르른 것인가/ 나의 뒤에 오는 그 누가 또 오늘은 그날의 나처럼/ 저 영 너머 초록의 녹지를 꿈꾸고 있을까/ 갈 수 없는 나라를 꿈꾸며 앓고 있을까// 이쯤 서서 보니/ 만물이 공허 속에 하얗게 드러나/ 세계가 무한한 허무임을 알겠는것을.//

봄이 오니 / 홍윤숙
이 나이에도/ 봄이 오니 내 마음 마른 살갗에/ 푸른 잎 돋아날 것 같고/ 어디선가 그리운 소식 올 것도 같은/ 조용히 들뜨며 물살치는/ 생명의 불씨 피어오르는/ 황홀한 떨림알 수 없는 그리움// 하늘 끝 아득하게 울리는/ 어린 날 고향 달운리 안마을의/ 시냇물 소리/ 손 끝 적시고 마음 적시고/ 돌돌돌 끝도 없이 굽이친다/ 잔돌 사이로 내 가슴 사이로/ 바람도 한 솔기 따라온다/ 뽀얀 아지랑이 사이 사이로/ 사 · 이 사 · 이로/ 아! 나 아직 살아 숨쉬네//

다시 삼월에 1 / 홍윤숙
내가 어렸을 때/ 삼월은 봉원사 뒤뜰 깨어진 鐘身에/ 한오백년 묵은 상처나 슬슬 문지르며/ 헐벗고 굶주리고 피맺힌 강산에/ 목소리 죽이고 숨죽이고/ 버선발로 살얼음판 기어서/ 울아버지 한밤중 싸리 바자울 아슬아슬 넘어오듯/ 그렇게 앞뒤 입 막고 귀 막고 숨 터지게 왔어요/ 할아버지 여덟새 무명 동저고릿바람으로/ 만주 북간도 피멍 들어 넘나들던/ 객관의 주막 서러운 봉놋잠 깨울까봐/ 깨어서 다시 불붙는 통한의 불기둥 될까봐/ 제국주의 창검 아래 썩둑썩둑 잘리는 생초목 될까봐/ 할머니 긴 밤 심지불 돋우며/ 아주까리 기름등잔 바작바작 태우던/ 근심으로 왔어요, 눈물 한숨 단근질로 왔어요/ 그때 삼월은//

다시 삼월에 3 / 홍윤숙
이 아침 凍土의 살을 찢고/ 격전의 눈보라길 넘어/ 한 시대 갇혔던 어둠의 바리케이트 위에/ 한 자배기 숯불로 타오르는 해야/ 폭죽 같은 해야/ 기다림에 지쳐 갈빗대 욱신거리는/ 반동강 가슴 위에/ 백골로 누운 할아버지 할머니 支石墓 위에/ 순금 太환으로 걸리는 해야/ 눈물 글썽이는 삼월의 해야//

7월 / 홍윤숙
보리 이삭 누렇게 탄 밭둑을/ 콩밭에 김매고 돌아오는 저녁/ 청포묵 쑤는 함실 아궁이에선/ 청솔가지 튀는 소리 청청했다/ 후득후득 수수알 흩뿌리듯/ 지나가는 저녁비, 서둘러/ 호박잎 따서 머리에 쓰고/ 뜀박질로 달려가던 텃밭의 빗방울은/ 베적삼 등골까지 서늘했다/ 뒷산 마가목나무 숲은 제철 만나/ 푸르게 무성한데/ 울타리 상사초 지친 잎들은/ 누렇게 병들어 시들었고/ 상추밭은 하마 쇠어서 장다리가 섰다/ 아래 윗방 낮은 보꾹에/ 파아란 모기장이/ 고깃배 그물처럼 내 걸릴 무렵/ 여름은 성큼 등성을 넘었다//

가을 / 홍윤숙
초라히 코스모스 한다발 안고/ 어두운 밤을 돌아가는/ 내야 가난한 소녀 올시다.// 삼단 같은 머리도 머리에 들일/ 다홍댕기 한감도 지닌바 없는/ 다만 숙이. 숙이란 이름만을 지닌/ 이렇게 작은 몸이 낙엽을 고 돌아갑니다.// 보십시오./ 달도 별도 없는 이 밤 하늘을/ 스스로이 지나가는 바람과 바람속에/ 살아나는 그리운 사람들의 숨소리// 얼마나 먼 길이기에/ 한여름 다사한 햇도 못 쬐이고/ 이 바람 드센 가을 밤길을/ 옷자락 여미며 가야 합니까.// 전선이 끊어지고 갈밭이 성한 곳/ 갈밭 고랑을 새빨간 피가 도랑져서/ 흐르던 날에도 숙인 어머니 치마폭에 다시 못 뵈옴을 맹서했습니다.// 가야 할 길/ 가야 할 길// 가난한 소녀가 살아야 하겠기에/ 이 밤도 이어둠도 역겨움 없이/ 항시 꽃 한다발 가슴에 안고/ 그리움 속에 부르는 서리 찬 10월이 있습니다.//

가을 집짓기 / 홍윤숙
전나무 그늘이 한겹씩 엷어지고/ 국화꽃 한 두 송이 바람을 물 들이면/ 흩어졌던 영혼의 양떼 모아/ 떠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가서 한 생애 버려뒀던 빈 집을 고쳐야지/ 수십 년 누적된 병인을 찾아/ 무너진 담을 쌓고 창을 바르고/ 상한 가지 다독여 등불 앞에 앉히면/ 만월처럼 따뜻한 밤이 오고/ 내 생애 망가진 부분들이 수묵으로 떠오른다/ 단비처럼 그 위에 내리는 쓸쓸한 평화/ 한 때는 부서지는 열기로 날을 지새고/ 이제는 수리하는 노고로 밤을 밝히는/ 가을은 꿈도 없이 깊은 잠의/ 평안으로 온다/ 따뜻하게 손을 잡는 이별로 온다//

이 가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 홍윤숙
이 가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내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다// 바람 소리 귀 세워/ 두어 번 우편함을 들여다보고/ 텅 빈 병원의 복도를 돌아가듯/ 잠잠히 내 안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누군가/ 나날이 지구를 떡잎으로 말리고/ 곳곳에 크고 작은 방화를 지르고/ 하얗게 삭는 해의 뼈들을/ 공지마다 가득히 실어다 버리건만/ 나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다/ 나뭇잎 한 장도 머무르게 할 수 없다// 내가/ 이 가을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내 의자에 앉아/ 정오의 태양을 작별하고/ 조용히 下午를 기다리는 일이다/ 정중히 겨울의 예방을 맞이하는 일이다//

가을날 은행나무 숲에서 / 홍윤숙
가을날 은행나무 숲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자를 벗고 경건히 허리 굽혀/ 경배하는 일이다/ 어느 고귀한 성자의 장례식인가/ 천지를 울리는 황금색 장엄한/ 진·혼·곡/ 진·혼·곡// 가을날 은행나무 숲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모자를 벗고 경건히 두 손 모아/ 경배하는 일이다//

낙엽의 노래 / 홍윤숙
헤어지자 우리들 서로 말없이 헤어지자/ 달빛도 기울어진 산마루에/ 낙엽이 우수수 흩어지는데/ 산을 넘어 사라지는 너의 긴 그림자/ 슬픈 그림자를 내 잊지 않으마// 언젠가 그 밤도 오늘 밤과 꼭같은/ 달밤이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흩어지고/ 하늘의 별들이 길을 잃은 밤// 너는 별을 가리켜 영원을 말하고/ 나는 검은 머리 베어 목숨처럼 바친/ 그리움이 있었다 혁명이 있었다// 몇 해가 지났다/ 자벌레처럼 싫증난 너의 찌푸린 이맛살은/ 또 하나의 하늘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는 것이었고// 나는 나대로 송피처럼 무딘 껍질밑에/ 무수한 혈흔을 남겨야 할 아픔에/ 견디었다// 오늘 밤 이제 온전히 달이 기울고/ 아침이 밝기 전에 가야 한다는 너../ 우리들이 부르던 노래 사랑하던 노래를/ 다시 한 번 부르자// 희뿌여히 아침이 다가오는 소리/ 닭이 울면 이 밤도 사라지려니// 어서 저 기울어진 달빛 그늘로/ 너와 나 낙엽을 밟으며/ 헤어지자 우리들 서로 말없이 헤어지자//

눈 내리는 길로 오라 / 홍윤숙
눈 내리는 길로 오라/ 눈을 맞으며 오라/ 눈 속에 눈처럼 하얗게 얼어서 오라/ 얼어서 오는 너를 먼 길에 맞으면/ 어쩔까 나는 향기로이 타오르는 눈 속의 청솔가지/ 스무살 적 미열로 물드는 귀를// 한자쯤 눈 쌓이고/ 아름드리 해뜨는 진솔길로 오라/ 눈 위에 눈 같이 쌓인 해를 밟고 오라/ 해 속에 박힌 까만 꽃씨처럼/ 오는 너를 맞으면/ 어쩔까 나는 아질아질 붉어오는 눈밭의 진달래/ 석달 열흘 숨겨온 말도 울컥 터지고// 오다가다 어디선가 만날 것 같은/ 설레는 눈길 위에 자라온 꿈/ 삼십년 그 거리에/ 바람은 청청히 젊기만 하고/ 눈발은 따뜻이 쌓이기만 하고...//

12월 1일 / 홍윤숙
한 시대 지나간 계절은/ 모두 안개와 바람/ 한 발의 총성처럼 사라져간/ 생애의 다리 건너/ 지금은 일년 중 가장 어두운 저녁/ 추억과 북풍으로 빗장 찌르고/ 안으로 못을 박는 결별의 시간/ 이따금 하늘엔/ 성자의 유언 같은 눈발 날리고/ 늦은 날 눈발 속을/ 걸어와 후득후득 문 두드리는/ 두드리며사시나무 가지 끝에 바람 윙윙 우는/ 서럽도록 아름다운/ 영혼 돌아오는 소리//

첫겨울 / 홍윤숙
낡은 외투 주머니/ 서랍 책갈피/ 떨어진 비망록 속에는/ 우리 어머니 긴긴 겨울밤/ 잠 아니 오는 시름/ 손끝에 달래시던/ 공산 명월 송학 매조/그림의 떡 같은 화투짝들/ 꼭 화투짝 같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숨어서 조금씩 나를 풀무질한다/ 풀무질에 일어나는 불길이게 한다/ 구월 국진 시월 단풍/ 꿈같이 지고/ 서울역 광장 시계탑 위에/ 함박눈 내리는 밤/ 경의선 급행열차/ 「히까리」지붕에도 함박눈 내리는 밤/ 정주 고덕면 달운리 안마을엔/ 별이 뜨고/ 열여섯 뽀돗이 안으로 눈뜨던/ 외투 속 첫겨울은 참 따뜻했었다//

겨울 포플러 / 홍윤숙
나는 몰라/ 한 겨울 얼어붙은 눈밭에 서서/ 내가 왜 한 그루 포플러로 변신하는지// 내 나이 스무 살 적 여린 가지에/ 분노처럼 돋아나던 푸른 잎사귀/ 바람에 귀앓던 수만 개 잎사귀로 피어나는지// 흥건히 아랫도리 눈밭에 빠뜨린 채/ 침몰하는 도시의 겨울 일각(一角)// 가슴 목 등어리 난타하고/ 난타하고 등 돌리고 철수하는 바람/ 바람의 완강한 목덜미 보며/ 내가 왜 끝내 한 그루 포플러로/ 떨고 섰는지// 모든 집들의 창은 닫히고/ 닫힌 창 안으로 숨들 죽이고/ 눈물도 마른 잠에 혼불 끄는데// 나는 왜 끝내 겨울 눈밭에/ 허벅지를 빠뜨리고 돌아가지 못하는/ 한 그루 포플러로 떨고 섰는지//

겨울, 사랑의 일기 1 / 홍윤숙
새벽 다섯시/ 굽은 등허리에 밤새/ 돋아내린 여린 실뿌리들/ 엉키어 깊은 잠에 묻혀 있는데/ 나는 뿌리를 자르는 결단의 낫을 들고/ 일어나야 한다// 한밤을 배회하며/ 복수의 칼을 갈던 한 무리의 바람이/ 싸늘한 비수를 들이대는/ 캄캄한 적지에서/ 숨은 복병을 끌어내듯/ 가스를 켠다// 한 그릇의 쌀을 씻어/ 냄비에 얹고/ 한 토막 생선의 뼈를 발라/ 하루의 도시락의 영양을 가늠하는/ 침묵의 반복/ 그 나날의/ 사랑의/ 아픈 의무여// 어린 아들의/ 예지처럼 빛나는/겨울 하늘에/ 혈관마다 저린/손을 담그면// 사랑은/ 눈 속에 더욱 푸른/ 한대식물/ 어디선가 샘솟는/ 눈물이 된다//

고독 / 홍윤숙
차고 투명한 것이/ 눈발처럼 가볍고 잡히지 않는 것이/ 내 안에 들어와 살며시 가슴 하나/ 안개로 피어나고/ 겹겹이 어둠으로 나를 에워싼다/ 춥고 쓸쓸한 지하의 밀실로 끌어들이고/ 황량한 광야에 홀로 서 있게 한다/ 포수에 잡힌 사슴처럼 유순히/ 가는 모서리 늘어뜨리고/ 보이지 않는 올가미에 몸을 맡긴다/ 서서히 깊은 나락으로 가라앉는다/ 바닥 모를 수렁/ 가끔 예수라는 사나이의/ 캄캄한 뒷모습을 엿보기도 하지만/ 눈물나게 안타까운 것은/ 그 무색 투명한 거대한 그물이/ 왜 까닭 없이 나를 포획하고/ 끝내 놓지 않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움 1 / 홍윤숙
온 천지 복사꽃 분분히 흩날리고/ 나의 안에선 종일 이슬비 내렸다/ 거리는 언제나 하얗게 표백되어/ 깃발처럼 나부끼고/ 여자들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걸어다녔다/ 모두 푸른 안경을 쓰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날마다/ 한 사발의 휘발유를 마시게 하여/ 나는 손끝만 스쳐도 발화하는 불꽃이 되고/ 목숨의 심지 늘 불붙고 있었다/ 울컥울컥 쏟아지는/ 진보랏빛 각혈 주체할 수 없어/ 거리거리 바겐세일로 대매출하며 인생의 그저 아득하고 아득하여/ 멀어만 보였다/ 복사꽃 쉴새없이 지고 있었다// 탯줄로 감고 나온 이름도 모르던 병//

그리움 2 / 홍윤숙
네가 어떻게 내게로 왔는지/ 나는 모른다/ 너를 처음 안 그날부터 잠을 잃은 나날/ 내 앞 석 자쯤 떨어진 곳에서/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아른아른 손짓하는 아지랑이/ 산을 넘으면 만날 수 있을까/ 물을 건너면 잡을 수 있을까/ 하늘의 흰구름 무지개 은하수 따라가면/ 네가 있을까/ 가시에 찢기고 비바람 맞으며/ 날마다 꿈마다 너를 찾아 헤맸지만/ 너는 어디에서 없고 나는 길을 잃었다/ 끝내 너는 누구인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모습도 없이 그림자뿐인/ 너를 그리며 기다리며 뼈가 삭았다/ 죽음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던 것을// 태어난 자의 벌//

꽃씨 / 홍윤숙
새날 새아침/ 삼백예순다섯 개의 꽃씨 한 주머니/ 깨끗한 두 손에 받았습니다/ 이제도 감히 꿈이란 말 할 수 있을까만/ 꽃씨 한 알 한 알 환히 눈뜨고 깨어나는/ 황홀한 시대의 아침을 위해/ 나는 이 겨울 흙이 되고 거름이 되기를 다짐합니다// 우리 손에 쥐어주신 참 단단한 호두알들/ 그것을 깨트리는 일,/ 바로 우리의 몫으로 남겨 주셨으니//

불씨 / 홍윤숙
거울 속 낯선 노파 하나/ 누굴까 저 모습 잎 진 겨울 들의 스산한 벌판이다/ 참담하게 망가진,/ 벗은 나무 북풍에 살을 저며낸/ 갈피갈피 풍상의 흔적도 자욱한…/ 저 사람 누굴까 나는 아니다// 머리 흔들며 돌아서는 등허리에/ 마른 손 따뜻한 체온이 나를 잡는다/ 어쩌면 거기 하얀 질화로의 불씨 같은/ 가슴 하나 몰래 숨어 있었다/ 숨어서 얼어붙은 겨울 벌판에/ 보는 이도 없는 꽃 한 송이 피우겠다고/ 두 손 모아 꽃씨 한 줌 지키는/ 불이 있었다// 그렇구나 그 불이 있어, 가슴에 불이 있어/ 너 아직 살아서 꿈꾸고 사랑하고 가갸거겨 노래도 하는구나/ 얼어붙은 땅 밑에 숨어서 흐르는/ 한 줄기 맑으 샘물, 샘물 같은 불이 있어/ 참담하게 부서진 얼굴에도 해바라기 꽃이 피는구나/ 생명의 불씨/ 바람 불면 불수록 곱게 살아나는 불씨//

잡초를 뽑으며 / 홍윤숙
잡초를 뽑으며/ 잡념을 뽑으며/ 긴 여름날 땀 흘렸다// 진실의 칼을 갈아/ 허위의 여름을 베어버리고/ 잡초의 흉계凶計를 베어버리고/ 한 발씩 긴 비애의 숙근宿根을/ 뿌리째 뽑아내고/ 빈자리에/ 평화의 마른 흙을 갈아 덮었더니/ 겨울이 어느새 먼저 들어와/ 땀으로 젖은 땅을 점거占據하고/ 불모의 암석巖石을 깔아 버렸다// 긴 여름날 땀 흘려 뽑아낸/ 잡초의 뿌리/ 이름 모를 비애며 사랑 기타/ 자고 새면 길로 자라 해를 가리던/ 질기고 악센 잡초의 뿌리/ 늘 한 줌씩 피 묻은 살점이 묻어 있더니/ 그게 바로 내 뜰의 꽃이었음을/ 살과 피의 집이었음을/ 겨울이 와서야 내가 알았다/ 빈 뜰을 쓸어가는 바람을 보고야/ 그걸 알았다//

버릇 / 홍윤숙
마지막 한 줄을 마치기 위해/ 쓰다 지우고 쓰다 지우고/ 끝내 붓을 던져 버린다// 망쳐 버리거나 체념해 버리거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다 떠나는 걸까/ 그래서 밤마다 하늘에 무성한 별들이/ 세상에서 못다 한 이야기 쓰고 쓰느라/ 밤이면 여기저기 모여서 웅성거리는 걸까// 나도 어느 날 저 별들에 섞여/ 못다 마친 이야기 연속으로 쓰느라 뒤척이겠지// 밤하늘을 자주 보는 버릇이 생겼다//

무제(無題) / 홍윤숙
젊은 날 아름다운 것은/ 꽃이라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잎이라 생각했다/ 잎이 잎끼리 모여 뜻을 세워/ 천둥 번개 장대비에도/ 반짝이며 매달려 살아내는 모습 아름다웠다/ 지금 와 생각하니/ 꽃도 잎도 아닌/ 잎이 진 자리의 텅 빈 하늘/ 자욱히 키를 넘던 초록의 기억을/ 바람으로 지우며/ 꿈꾸지 않은 무명 같은 밤/ 그 벗은 혼의 아름다움을 이제 알겠다//

아침산책 / 홍윤숙
작은 숲에는 작은 오솔길이/ 풀밭에는 푸른 이슬 푸른 바람이/ 태양이 밤새 풀밭에 숨어서/ 아침이면 물구지 달개비 망초 꽃 피워 내는/ 축일 같은 들길에서/ 나는 지난밤 가득 찬/ 가슴의 쓰레기들 활활 쏟아내고/ 소나무 숲에서 깨어나는 솔바람으로/ 온 가슴 구석구석 씻어낸다/ 등에 날개 한 쌍 달린 듯 가벼워지는 몸/ 문득 이 길은 내가 전생에 뛰어놀던/ 에덴의 동산 어디쯤이 아닐까/ 천지창조 때의 아침 들처럼/ 날마다 새로 새 꽃들 수줍게 태어나/ 맨발로 이슬을 톡톡 차는/ 나뭇잎 한 장으로 알몸을 가린/ 숲 속의 아침은/ 물구지 달개비 망초 꽃들 속에/ 아득한 에덴의 아침이 열려 온다/ 나는 텅 빈 가슴의 튜브에/ 희망의 푸른 잉크 한 병 천천히 채우고/ 다시 빈 노트에 하루를 낙서하러/ 돌아간다// 덧없이 흘러가는 지상의 날들을//

산음리 추억 / 홍윤숙
양평 단월면 산음리/ 깊고 푸른 산길에/ 산딸기 조롱조롱 추억으로 익고/ 싸리 꽃 여기저기 모여서 소곤거리더라/ 낯선 세상의 사람들을 모른다 모른다/ 눈 깜박이며 소곤거리더라/ 구름으로 왔다가 태풍처럼 휩쓸고 갈/ 도시의 풍진을 촉촉한 눈매로 씻어주며/ 가지마라 가지마라 속삭이더라// 문득 잣나무 숲에서 숲으로 넘나드는/ 산음리 여신女神의 물에 씻은 맨발을 훔쳐보았다/ 가슴 저려오는 그 푸른 속살을/ 나는 떨리는 손으로 초록빛 추억 몇 장 따서/ 마음의 책갈피에 몰래 넣고/ 돌아보며 돌아보며 산을 내렸다/ 이승의 빛이 그리도 아름다운/ 산음리 산속 여름 아침 열시쯤의/ 초록빛 수해樹海, 출렁거리는 길을//

제주도 산굼부리 억새밭 1 / 홍윤숙
제주도 산굼부리 억새밭에/ 공연히 멋모르고 들어섰다가/ 그만 수천 수만 개 다발로 날아오는/ 화살에 찔려/ 혼비백산 찔린 가슴 버려둔 채/ 겨우겨우 허깨비 빈 몸만 빠져나왔다// 지금도 내 혼은 그 망망한 제주도 산굼부리 억새 바다의/ 천 년 한으로 풀어헤친 백발의 머리칼에 칭칭 감겨/ 서귀포 앞바다를 맴돌고 있다//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지만…//

제주도 산굼부리 억새밭 2 / 홍윤숙
제주도 산굼부리 억새밭에는/ 한 천년 묵은 이무기 한 마리/ 바다로도 하늘로도 오르지 못하고/ 쌓이고 쌓인 한 머리 풀어 산발하고/ 온 언덕 자욱히 뒹굴고 있나 보다/ 목쉰 울음소리 터질까 보아/ 안으로 틀어 안고 꿈틀거리다/ 하얗게 삭고 삭은 백발이 되어/ 달밤이면 달을 보고 우렁우렁 요동치다가/ 끝내 둥근 달 한 덩이 와락 물고/ 발기발기 찢어 제주도 산굼부리 언덕에 널어놓고 있나 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은백색 선 같은 억새밭에 숨어 있나 보다//

선운사 설경 / 홍윤숙
끝으로 주인은/ 그날 밤 선운사 뒤뜰에서/ 새하얀 뿔의 사슴 한 마리를 분명 보았다고/ 말을 마치고는/ 다 식은 차를 천천히 마셨다// 나는 문득/ 사슴의 가느다란 발자국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창을 열었다/ 창 밖엔 어느새/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고/ 눈밭엔 꼭 사슴의 긴 녹각 같은/ 겨울나무들이 향기로운 뿔을 달고/ 촘촘히 雪花를 피워내고 있었다// 아니 한밤중 때아닌 사슴의 무리가/ 선운사 뒤뜰에/ 새하얀 관을 쓰고 도열하고 있었다/ 그 속엔 동해바다 산호들이/ 함께 섞여 어울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세상 일이 아니었다/ 그날 밤 나도 그만 몰래/ 천상의 仙境을 훔쳐보고 말았다.//

꽃들의 생애 1 / 홍윤숙
바람이 종일/ 산 하나를 헐어내고 있다/ 쉬엄쉬엄/ 숲을 찍어내고 있다// 여기저기 단명한 꽃들이/ 아름다운 소문을 피워놓고/ 돌아오지 않는 아침 이야기를/ 꽃피우고 있다// 아직은 이별을 모르는/ 행복한 눈매들이 웃고 있다// 이제 곧 종이 울리고/ 커다란 손이/ 그들의 눈을 감길 것이다//

꽃들의 생애 2 / 홍윤숙
아무도 그 손의 임자를/ 본 적이 없다// 아침에 분홍빛 장미를/ 축복 속에 피워놓고/ 저녁에 지체없이 걷어가는 손// 꽃들은 이유없이 태어나/ 유예없이 간다// 눈물도 사치한 暮日이 오고/ 順命의 아픈 지혜/ 가시로 꽂히는 저녁// 더러 맑은 혼들이 무리를 빠져나와/ 차디찬 이슬로 맺히기도 하지만/ 이내 작은 바람을 놓아/ 허실의 꿈을 일깨운다// 참 이상한 손/ 손의 임자다//

꽃들의 생애 3 / 홍윤숙
노을이 저녁 뜰에/ 새빨간 유서를 뿌리고 돌아간다// 꽃들이 아름다운 최후를 진술하고/ 두꺼운 책장을 하나씩 닫는다// 뜰은 남은 이야기를 지우며/ 다란 손으로 묵화를 친다// 혼자 사는 사람의/ 정결한 눈매로 묵화를 친다// 슬프지도 않은 비극이/ 날마다 반복되고// 살아남은 꽃들이/ 무서움도 없이 어둠 속에 웃는다// 누가 저 어둠 뒤에 숨어/ 꽃들의 희망을 흙으로 덮고// 다시 하얗게 바랜 새벽의 시체를/ 널고 있는가// 참담한 것은/ 아무도 그 손의 집행을/ 의구하지 않는 일이다// 아침이면 말갛게/ 꽃들의 죽음을 잊어버리는 일이다//

목련 / 홍윤숙
꽃인가 하고 보면/ 자욱한 구름이고/ 구름인가 다시 보면/ 흰 나비떼/ 앞산 뒷산 흔드는/ 소리없는 요령 소리 댕댕 울리며/ 사월의 하늘 가득 메운 상여꾼 간다/ 어느 지체 높은 청상과부 소복단장하고/ 한겨울 빈 내당 매섭게 수절하다/ 그 한 못다 풀어 이 봄에 미치는가/ 온 장안 마을 골목/ 하얗게 쏟아지는 낭자한 곡성//

수수밭 연가 / 홍윤숙
누가 수수밭에 숨어서/ 기타를 치나봐/ 모국어처럼 그리운 淸音으로/ 솔솔솔 미미미/ 이리 나와봐 얼굴 좀 보게/ 어쩌면 옛날에 띄워놓고 떠난/ 초록빛 연 하나 수숫대에 걸려/ 죽도록 저 하늘에 흔들리고 있나봐/ 손 잡고 뛰어가던/ 외나무다리 아래 그 개울물/ 발목 빠뜨리고 눈 시리게 웃던/ 아, 개망초, 실망초꽃 그대로 피어 있네/ 헛간 담 밑에 숨어서 기다리던/ 가슴 콩콩 뛰던 첫경험의 설레임/ 자욱한 수수밭에 바람으로 남아/ 지금도 나를 기다리나봐/ 우수수 우수수 달려오나봐/ 손 잡고 둘이서 숨어버릴까봐/ 아무도 없는 수수밭 속으로//

꿈을 찍는 소녀들 / 홍윤숙
소녀야 소녀야/ 한국의 대도시 어느 마을 공단의/ 어두운 작업실/ 침침한 등불 아래 허리 구부리고/ 열아홉 스무 살의 한창 젊음 구부리고/ 손끝에 땀 모아/ 눈물과 희망 모아/ 진종일 그려내는 너의 꽃밭엔/ 무슨 빛깔 무슨 꽃이 숨어 피는가/ 집 떠날 때 새겨넣은/ 고향 뒷산의 쑥부쟁이 나리꽃/ 보리밭 이랑이랑 물결치며 달려오는/ 막냇동생 글썽한 어린 눈매며/ 홀어머니 주름살도 눈에 삼삼 그리는가/ 소녀야 소녀야/ 한국의 대도시 어느 마을 공단의/ 오늘도 가슴의 꿈을 찍는 소녀야//

장식론 1 / 홍윤숙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젊음을 하나씩/ 잃어가는 때문이다// <씻어 무우> 같다든가/ <뛰는 생선> 같다든가/ (진부한 말이지만)/ 그렇게 젊은 날은/ 젊음 하나만도/ 빛나는 장식이 아니겠는가// 때로 거리를 걷다보면/ 쇼윈도우 비치는/ 내 초라한 모습에/ 사뭇 놀란다// 어디에/ 그 빛나는 장식들을/ 잃고 왔는까/ 이 피에로 같은 생활의 의상들은/ 무엇일까// 안개같은 피곤으로/ 문을 연다/ 피하듯 숨어보는/ 거리의 꽃집// 젊음은 거기에도/ 만발하여 있고/ 꽃은 그대로가/ 눈부신 장식이었다// 꽃을 더듬는/ 내 흰손이 물기 없이 마른/ 한장의 낙엽처럼 슬쓸해져// 돌아와/ 몰래/ 진보라 고운/ 자수정 반지 하나 끼워/ 달래어 본다//

급행열차로 1 / 홍윤숙
급행열차로 서둘러 달려온/ 서쪽 베타니아 마을에선/ 때마침 짧은 겨울해가 지고 있었다/ 낯선 술집과 어둠이 줄지어 선 땅엔/ 올리브나무도 작은 나귀도 보이지 않고/ 무수히 지나온 간이역/ 내릴 수 없었던 미지의 땅에/ 점점이 피어 있던 해바라기 달리아/ 그 원색의 빛깔들만 등뒤에 선연했다// 급행열차로 서둘러 달려와도/ 그 마을의 일몰엔 변함이 없었다/ 다만 천천히 걸어온 이보다/ 쓸쓸한 일몰의 시간이 좀 길 뿐이었다//

급행열차로 2 / 홍윤숙
멀리서 바라보는 불빛은/ 이상하게 아름다웠다/ 이따금 몇 개의 별들이/ 남몰래 그곳에서 밀송되어오고/ 가보지 못한 어린날의 보물섬도/ 그 속에 있을 것 같아/ 깜박 사는(生) 일도 잊어버리지만/ 언제나 밀봉된 마지막 밀서는/ 내 것이 아니었다/ 지도에도 없는 길을/ 등 떠밀리며 떠밀리며 흘러가는 밤/ 한 꺼풀 얇은 미농지에 싸인/ 세상의 저편에선 밤새 비 내리고/ 사십 년 떠돈 마음의 방주도/ 잠길 듯 잠길 듯 가라앉는다//

우체국 이야기 / 홍윤숙
이제 우체국에 가서/ 원고를 부치는 노고도 필요 없어졌지만/ 전화나 팩스 같은 문명의 이기로/ 대개는 볼일을 보고 말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 옛날처럼/ 편지나 시를 쓰면/ 그것들을 들고 골목을 지나 큰길을 건너/ 나들이 가듯이 우체국에 간다/ 우체국 아가씨도 옛날처럼 상냥한 소녀는 아니어서/ 낯선 얼굴의 무표정한 눈총이 서먹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숨결이 그리워서/ 필요도 없는 말을 몇 마디 주고받으며/ 풀칠을 하고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는다/ 냇물 속에 떨어지는 잔돌 같은 작은 음향/ 그 소리 들으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감동에 가슴 젖는다/ 날마다 무언가 변하여 가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남아 있다는/ 그 작은 감동이 나를 위로한다/ 오늘도 한 통의 편지를 들고/ 차들이 질주하는 큰길을 건너서/ 옛날의 내 어머니 새 옷 갈아입고 나들이 가듯이/ 우체국에 간다/ 아, 거기 기다리고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의/ 따스한 숨결//

길 끝의 집 –놀이 / 홍윤숙
날이 새면 우리들은 다시 떠났다/ 길은 끝없이 멀고 끝은 보이지 않았다/ 날마다 도보로 걷는 일에 지친 날들을/ 힘겨워 무수히 쓰러지던 길/ 어느덧 그 먼 길 다 끝나가고/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끝이 보인다/ 노을 묻은 회양목 덤불 넘어 햇살 바른 들길/ 남은 두어 굽이 돌아가면/ 바로 내가 당도할 나의 마지막 집 한 채/ 마른 풀밭에 화강암 깎아세운 문패가 보인다/ 그 먼 길 끝에 서 있는 희망/ 어느덧 함께 가던 사람 먼저 가서/ 돌문 세우고 울타리 쳐놓고 기다리는 집/ 길 끝에 내 희망 남아 있으니/ 마른 살 훈훈히 춥지 않으리// 무서리 하얗게 옥양목 휘장치고/ 삭신 마디마다 뼈 삭는 소리 들리는 밤에도//

골목 안 풍경(風景) / 홍윤숙
그 골목엔/ 사철 유리문 덜컹거리는/ 야채가게와/ 신기료 할아버지의/ 노점(露店)이 있었다// 테레지아 성당에선/ 주일(主日)마다 울리는 맑은 미사소리/ 목소리 우악하신 장신(長身)의 신부님이/ 이따금 거목(巨木)처럼 골목 밖을/ 내다보셨다.// 세상은 완벽한 신(神)의 풍차(風車)/ 아침이면 삐걱대는 생활의 문소리/ 골목을 열고/ 한낮이면 셀로판지에 싼/ 한 포기 꽃으로 잠드는 골목// 그 골목에/ 20년 뿌리내린/ 나도 변함없이 생활을 쪼아온/ 빛의 석수(石手)다//

이별 / 홍윤숙
그날 떠날 때/ 내 가슴 반은 무너지고/ 남은 가슴 반에 그대를 묻었으니/ 나는 그대의 집이노라/ 살아서는 멀리 헤어져 서로 떠돌고/ 한구석 문고리 잠겼던 마음/ 죽어서 남김없이 다 풀어놓았으니/ 무시로 빈 가슴 문 열고 들어와 편히 쉬어라/ 그 산골짜기 외진 길 및 굽이 돌아가면/ 그대 먼저 가서 터 닦아 세운 집/ 우리 생애 마지막 집 한 채 거기 있으니/ 내 희망 또한 거기 가 쉬리라/ 무너진 가슴 반은 이미 그 곳에 가 있으니//

이별 1 / 홍윤숙
가야 한다고/ 가서 젊음의 황야를 갈아야 한다고/ 미명의 문을 따고 너는 떠났다/ 분홍빛 발톱 채 굳지도 않은/ 등에 한 자루 무거운 열망을 지고/ 지구의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그날 출발은 지체없이 뜀박질로 오고/ 이별은 한 순간에 눈썹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십년 아시아의 대도시 수도 서울엔/ 팔월 삼복에도 눈이 내렸다/ 충견처럼 기다리는 그 지붕 밑 다락방엔/ 열리지 않는 녹슨 빗장 하나/ 스물 다섯 해 잠자던 네 따뜻한 창가에선/ 수국빛 추억 만발하고/ 스치면 구석구석 종소리 울리는/ 기억의 계단에선/ 먼 일기장의 까만 낙서들이/ 춤추는 인형처럼 튀어나오기도 했다/ 지금도 쥐똥나무 그늘 어딘가에 숨어 있을/ 그 작은 발자욱들, 작은 목소리들,/ 때없이 내리는 빗발이 되고/ 때없이 울리는 악기가 된다//

쓸쓸함을 위하여 / 홍윤숙
어떤 시인은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하고/ 어떤 화가는 평면을 보면 모두 일으켜 세워/ 그 속을 걸어 다니고 싶다고 한다/ 나는 쓸데없이 널려 있는 낡은 널빤지를 보면/ 모두 일으켜 세워 이리저리 얽어서 집을 짓고 싶어진다/ 서까래를 얹고 지붕도 씌우고 문도 짜 달고/ 그렇게 집을 지어 무엇에 쓸 것인지 나도 모른다// 다만 이 세상이 온통 비어서 너무 쓸쓸하여/ 어느 한구석에라도 집 한 채 지어놓고/ 외로운 사람들 마음 텅 빈 사람들/ 그 집에 와서 다리 펴고 쉬어가면 좋겠다// 때문에 날마다/ 의미 없이 버려진 언어들을 주워 일으켜/ 이리저리 아귀를 맞추어 집 짓는 일에 골몰한다/ 나 같은 사람 마음 텅 비어 쓸쓸한 사람을 위하여/ 이 세상에 작은 집 한 채 지어놓고 가고 싶어//

행복 / 홍윤숙
한 잔의 차와/ 더불어 인생을 말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친구/ 한 송이 꽃과/ 기다리는 먼 곳의/ 그리운 엽서 한 장// 창 밖에 그 해의 첫눈 내리는 날/ 예고 없이 반가운 사람 찾아와 주는/ 그 작은 행복을 그리건만/ 인생은 언제나/ 그 중 하나밖엔 허락하지 않는다// 꽃이 피고 계절이 바뀌어도/ 소식 오지 않고/ 언제나/ 혼자 마시는 차/ 혼자 바라보는 꽃/ 혼자 젖어서 돌아가는 눈길//

환별(歡別) / 홍윤숙
총대도 탄환도 없이 오르는 장도에/ 주먹과 가슴팍과 그리고 불타는 젊음만이/ 하나의 무기라고 웃음 짓던 너 ∼// 낙엽도 목숨처럼 쌓이고/ 목숨도 낙엽처럼 쌓이는/ 높은 산마루엔/ 청춘이 한 묶음 꽃처럼 뿌려지리.// 너 가거든/ 옳은 것이 그리워 너 가거든/ 부디 사랑과 같은 것은/ 조그마한 이름으로 둘러 두어라.// 백설이 휘날리고 얼음이 깔리련다/ 밤마다 하늘은 포성에 무너지고// 아! 나는/ 얼어붙은 창 밑에 손끝을 녹이며/ 너 돌아오는 날/ 개선의 새벽까지 살아야겠다.//

지명(知命)의 겨울 3 / 홍윤숙
어디서나 지천이던 장미 한 묶음/ 한 시대 아름다운 동반으로 손을 잡다가/ 오늘은 내가 한 사발의 피를 쏟고/ 혼절해버렸다/ 한 묶음의 장미엔 한 묶음의 가시가/ 꽃보다 푸르게 눈뜨고 있었다/ 그렇게 꿈은/ 깨기 위해 꽃 속에 잠복하고/ 꽃은 죽기 위해 날마다 벼랑에 피고/ 피어서 스스로 파괴해가는/ 쓸쓸한 장례식이 매일 거행되었다//

빈 항아리 / 홍윤숙
비어 있는 항아리를 보면/ 무엇이든 그 속에 담아 두고 싶어진다.// 꽃이 아니더라도/ 두루마리 종이든, 막대기든,/ 긴 항아리는 긴 모습의/ 둥근 항아리는 둥근 모습의/ 모없이 부드럽고 향기로운 생각 하나씩/ 담아 두고 싶어진다.// 바람 불고 가랑잎 지는 가을이 오니/ 빈 항아리는 비어있는 속이 더욱 출렁거려/ 담아 둘 꽃 한송이 그리다가/ 스스로 한 묶음의 꽃이 된다./ 누군가 저처럼 비어서 출렁거리는/ 이 세상 어둡고 깊은 가슴을 찾아/ 그 가슴의 심장이 되고 싶어진다./ 빈 항아리는 비어서 충만한 샘이 된다.//

사람 찾기 / 홍윤숙
사람을 찾습니다/ 나이는 스무살 키는 중키/ 아직 태어난 그대로의/ 분홍빛 무릎과 사슴의 눈/ 둥근 가슴 한 아름 진달래 빛 사랑/ 해 한 소쿠리 머리에 이고/ 어느 날 말없이 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삼십년 안개 묘연/ 누구 보신 적 없습니까?/ 이런 철부지/ 어쩌면 지금쯤 빈 소쿠리에/ 백발과 회한이고/ 낯설은 거리 어스름 장터께를/ 헤매다 지쳐 잠들었을지도/ 연락 바랍니다 다음 주소로/ 사서함 추억국 미아보호소/ 현상금은/ 남은 생애 전부 드리겠습니다//

오라, 이 강변으로 / 홍윤숙
오라, 이 강변으로./ 우리는 하나, 만나야 할 한 핏줄,/ 마침내 손잡을 그 날을 기다린다./ 그 날이 오면, 끊어진 허리/ 동강난 세월들 씻은 듯 나으리라./ 너의 주름과 나의 백발도/ 이 땅의 아름다운 꽃이 되리라./ 오늘도 여기 서서 너를 기다린다//

타관의 햇살 / 홍윤숙
석양(夕陽)이/ 먼 곳에서 혼자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아직 객지(客地)에 있고/ 며칠이면 귀향(歸鄕)의 낡은 마차(馬車)가/ 이 마을 어귀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제일 먼저/ 여관(旅館) 뜰에 버려진 여름의 잔해(殘骸)를/ 실어낼 것이다./ 잠잠히 떨고 섰는 안개 속의/ 저것을…….// 그것들은 조금씩 떨며 밤을 기다리고/ 우리는 한 철 열어 놓은/ 장원(莊園)의 문(門)에/ 무거운 빗장을 꽂으려 내려간다./ 후회와 불안(不安)의 긴 그림자를 끌고.// 이윽고 깊은 어둠 속에/ 우리가 지새던/ 덧없는 타관(他關)의 여름 날을 버려두고/ 귀향(歸鄕)의 낡은 마차(馬車)는 떠나리라.// 겨울 해 떨어진/ 어디라 이름할 수 없는 고향의 정거장(停車場)에서/ 우리는 비로소 영원(永遠)을 향해/ 길고 긴 편지를 쓰리라, 대답없는 편지를.// 유리관(棺) 같은 진공(眞空)의 하늘 아래/ 무겁게 가라앉은 생명의 실체(實體)/ 그 차디찬 실존(實存)의 층계(層階)를 내려가리라./ 그리고 최후로 보리라/ 자연(自然)의 과실(果實)은 땅으로 가는 것을.// 석양(夕陽)이/ 먼 곳에서 혼자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아직 객지(客地)에 있고/ 며칠이면 귀향(歸鄕)의 저녁 마차(馬車)가/ 이 마을 어귀에 도착할 것이다.//

방문 / 홍윤숙
먼 후일 ...... 내가/ 유리병의 물처럼 맑아질 때/ 눈부신 소복으로/ 찾아가리다./ 문은/ 조금만/ 열어 놓아 주십시오// 잘 아는 노래의/ 첫 구절처럼/ 가벼운 망설임의/ 문을 밀면// 당신은 그때 어디쯤에서/ 환 - 희 눈 시린/ 은백의 머리를/ 들어 주실까......// 알듯 모를듯/ 아슴한 눈길/ 비가 서리고// 난로엔/ 곱게 세월 묻은/ 주전자 하나/ 숭숭 물이 끓게 하십시오// 손수 차 한잔/ 따라 주시고/ 가만한 웃음/ 흘려 주십시오// 창 밖에 흰 눈이/소리 없이 내리는/ 그런 날 오후에/ 찾아가리다//

인생 / 홍윤숙
인생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험한 산, 깊은 계곡 우거진 숲을 지나는 법/ 별 하나 사랑하고 기다리고 끝내 이별하는 지혜를/ 다리를 놓아야 마을에 이르고/ 비를 맞아야 무지개를 보는 것도 알았습니다./ 가는 목 휘청거리며 땅으로 낮게 낮게 질경이로 펴져서/ 밟히고 다져지는 법도 배우고/ 무거운 마음의 진흙더미 털어 내고/ 모습 없이 가벼운 바람이 부는/ 무소유의 자유도 일러 주었습니다./ 이제 그가 전해줄 마지막 말은/ 어두운 밤길 등불 없이 산을 넘어/ 어느 날, 예고 없이 세상 끝에 닿는 일/ 그 마지막 가르침을 듣기 위해 나는/ 날마다 하늘로 귀 열어놓고/ 끄슬린 창들을 닦습니다./ 세상에 매운 연기 아직도 자욱해/ 닦으면 끄슬리고 끄슬리면 다시 닦고/ 오직 그 한 가지 일에 온 날을 지샙니다./ 슬프지도 않은 눈물 가끔 옷깃을 적시며//

사랑아 / 홍윤숙
사랑아/ 늙지 않아 죽어도 늙지 않아/ 서러운 사랑아/ 이천년을 살아도/ 검은 머리 청청한/ 머리 풀어 산발하고/ 벌판을 달리는 젊은 사랑아// 이따금/ 내 가슴 깊은 곳에/ 몰래 문 열고 들어와/ 여름바다의 파도로 몰려와/ 무성영화 시대의/ 활동사진 틀어 놓고/ 에덴 동산의/ 보라빛 도라지꽃/ 도라지꽃도 피워 놓고/ 이슬비에 젖은 사월의 새벽길을/ 수만번 넘어지며 무릎 깨는/ 사랑아// 철없이 늙지 않아/ 늙지 않아 서러운 사랑아// 이천년도 더 산/ 방부제에 절인 사랑아// 나는 죽고/ 너는 살아/ 고향의 사과밭/ 사과나무 가지에/ 칭얼대는 한 주름 바람으로나/ 가서 살아라/ 잉잉대며 날으는 꿀벌로나 살아라/ 가끔 가끔/ 돌아보며 생각하는/ 나는 시방 눈도 없이 캄캄한 타관의 밤이다//

사랑의 계절 / 홍윤숙
가을이 오면 우리의 사랑도 깊어집니다/ 한 시절 짙푸르던 잎새들도 사랑으로 물들어/ 본향으로 돌아가고/ 아득히 헤어졌던 사람들도/ 그 이름 다시 떠올려 그리운 회상에 잠깁니다/ 만나면 다 용서하고 사랑하고 싶은/ 단풍처럼 예쁘게 물드는 마음/ 가을은 하느님이 주시는 사랑의 계절입니다//

이 저녁 어디선가 / 홍윤숙
이 저녁 어디선가/ 꽃잎 한 장 지느라고/ 내 마음 이리 설레는가 보다/ 어디선가/ 이름 없는 목숨 하나 떠나느라고/ 가슴 한켠 소리 없이 무너지나 보다// 봄이라고 새 잎들 다투어 피어나는데// 사라지는 것과 태어나는 것들이/ 무심히 해 아래 희롱하는데//

노을 / 홍윤숙
저녁마다 봉선화꽃 물들인/ 西天 하늘로 나는 떠난다/ <편지하지 마라 주소 미정이니>/ 다만 그곳엔/ 서방 정토의 연화대 하나/ 4월 초파일 연등 같은 불 밝히고/ 수만 장 연꽃송이 구름처럼 피는 곳/ 하루의 땀과 시름 흙 위에 부려놓고/ 잠시 뽕잎의 누에처럼/ 꽃 속에 숨어 한 마리 벌레 되는/ 내 이승의 외도/ 지상의 네가/ 은행창구나 지하실 주점에서/ 하루의 손익을 계산하고 있는 동안/ 나는 여기서 이 나라 왕비의 꽃상여 하나/ 곡성도 없이 떠나가는/ 장례식 구경이나 하다 가련다/ 내 유일한 나들이다/ <편지하지 마라 곧 돌아갈 것이니>//

마음 2 / 홍윤숙
마음 하나/ 눈도 코도 없이/ 천방지축 헤매던 마음 하나/ 때도 아닌 설한풍에 꽃봉오리 맺어놓고/ 필까봐 질까봐 발 동동 구르며// 옷깃 꼭꼭 여미고 손등으로 가리며/ 바늘 몇 개 삼킨 듯 따갑고 아리던/ 천둥벌거숭이 맨발의 마음 하나/ 어디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고향 냇가의/ 미루나무 가지 끝에 나부끼고 있을까/ 목화밭 꽃그늘에 잠들어 있을까// 세월에 떠밀려 마음도 빈 집에/ 거미줄 쌓여간다//

마음 3 / 홍윤숙
마음엔 나이도 없는가/ 마음 같은 것 없으면 좋겠다/ 이 나이에도 때 없이 흐렸다 개었다/ 지나가는 실바람에도 살 베인 듯 새파래지다/ 바람개비 팔랑대는/ 착하지도 독하지도 못한 마음//

우리들 時代의 아들아 1 / 홍윤숙
아들아/ 가시철망에 찢어진/ 아침 햇살을 보라// 流血하는 햇살의 비명/ 비명을 분쇄하는/ 바람의 포격을 보라// 긴 밤/ 불면의 겨울숲을 헤쳐나온/ 기아의 새/ 새들이 떼지어 사살되는 건/ 그들이 매도하지 않는 날개 때문이다// 이 아침 살아남아/ 살아남아 노래하는 건/ 오직 너/ 너의 팽팽한 가슴/ 근육마다 튕기는 고발의 탄력// 아들아/ 오늘도 무거운 장총엔/ 충분한 실탄/ 배낭엔/ 꿈도 가득 채웠는가// 포위망을 뚫고/ 가시철망을 끊으며/ 녹슨 빗장을 제끼는 손// 내일을 여는/ 확신의 손에/ 끝없이 밝은 집단의 햇살이 튄다// 어디서나 쏟아지는 함성이 되고/ 어디서나 산화하는 꽃잎이 되는/ 우리들 시대의 아들아// 너 가는 천지/ 굽이쳐 강물로 흐르는 내 사랑은// 아픈 맨발의 백의종군/ 날마다 희디흰 붕대를/ 가슴에 감는다//

부품이 없다 / 홍윤숙
어디선가 무시로/ 바람이 빠지고 있다/ 내 몸 어디엔가 구멍이 났나 보다/ 바람 빠진 고무풍선이 되어 흐느적거린다// 바람을 넣고 싶다 씽씽 바람을 넣어/ 다시 탱탱한 튜브가 되고 싶다/ 누군가 저만치 서서/ 피시시 실소하며 눈 찡긋거린다// 너무 오래된 구식 차형이라/ 바꿔 넣을 부품이 어디에도 없다/ 그냥 그대로 움직이는 날까지 끌고 다녀라/ 그 길밖에 없다고 못을 박는다//

조선의 여자 / 홍윤숙
음사월 긴긴 해/ 복사꽃 자지러지고// 골짜기 느릅나무/ 저 혼자 바람나는// 그런 밤 장지 너머 베틀칸/ 하얀 미닫이엔/ 어머니 그림자가 산처럼 어두웠다// 자다 깨고 자다 깨도/ 그 방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달그락 달그락/ 새벽달 사위도록/ 베틀 소리 높았다// 삼베치마 외진 목숨/ 씨를 치고 날을 꿰어/ 한 올 한 올 짜내는// 한 필 무명 질긴 씨날로/ 시린 가슴 친친 감아도/ 못다 감을 한// 조선의 여자// 음사월 복사꽃은/ 저 혼자 뒤뜰에/ 피고 졌다//

존재 / 홍윤숙
내가 있으니/ 아침이 오고/ 아침이 오니/ 해가 떠오른다/ 해가 뜨니/ 문제들이 발생하고/ 싸우고 쓰러진다/ 쓰러져 잠이 드니/ 밤이 오고/ 별들이 모여 모의를 한다/ 모의하던 별들이 손을 드니/ 또 다른 목숨들이 태어나고/ 목숨이 태어나니/ 다시 아침이 온다//

청춘 또는 사랑 / 홍윤숙
어디서부터 흘러오는 향기였을까/ 짐작도 할 수 없는 운명으로 이끌어 가던/ 장미화원의 열쇠 하나// 문은 열려 있었고 성엔 만발한 꽃밭/ 그 황홀한..../ 어질어질 혼 속까지 불길 번져 오던/ 찬란한 첫 개화의 계절/ 나를 열어준 목숨의 열쇠 하나/ 그때는 날마다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몽롱한 취기에 반쯤 눈감고 헤매 다니던/ 만발한 성의 장미화원에 그러나/ 사나운 가시들 사정없이 살을 찔렀다/ 내 몸의 열쇠엔 언제나 붉은 선혈 묻어 있었고/ 그 피 흐르는 아픔을/ 사랑의 기쁨 청춘의 훈장이라 믿고 있었다/ 날마다 흥건한 피 속에 가슴 앓았다/ 탄흔 같은 불망의 묘비 하나 가슴에 새기며/ 그것들은 모두 알 수 없이 흘러와/ 형체 없이 사라져 간 향기였다//

탄생 / 홍윤숙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는지/ 묻지 않으리라/ 나라도 부모도 가문도/ 제 얼굴, 머리털 하나도 선택할 수 없는/ 내 의지 밖의 탄생/ 그저 주어진 볕 아래/ 쇠비름 씨 한 톨 날아와/ 박토에 뿌리박고/ 한 시절 그렁저렁 잎이며 꽃 피우고/ 열매맺는 시늉하다 사라지듯이/ 까닭모를 인연의/ 내 어머니 탯줄 끊고 태어나/ 서러워 울던 고고의 첫 울음/ 축복이라고....?/ 그러나 누가 알았으리/ 그 작은 핏덩이에/ 그리도 크고 무거운/ 운명의 멍에 지워져 있음을/ 죽기까지 지고 갈 고락과 영욕/ 태어남이 그대로 원죄인 것을/ 이제 알겠다//

편지 / 홍윤숙
길고 어두운 밤에/ 나는 한 장의 편지를 쓴다// 문은 잠기고/ 별은 침묵하고/ 꽃들은 남으로 떠나버렸지만/ 빈 땅에서/ 바람은 헛되이 포도밭을 지키고/ 시간은 허무의 언덕을 내려갔지만// 나는 끝낼 수 없는/ 한 장의 편지를 이 밤에 쓴다// 누군가/ 칠흑의 어둠 속에/ 광야를 걸어오는/ 구름 같은 발자국이 있어// 하늘 같은 눈매에/ 가을만한 슬픔을 담고/ 진홍의 장미로/ 찬 손을 녹이시는 분이 있어// 길이 없는 길/ 문이 없는 문에서/ 쓰러진 육신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어둠 속에 오시어/ 침묵 속에 계시며/ 비탄을 익혀 기쁨으로 빚으시는/ 분이 있어// 나는 이 밤도/ 길고 뜨거운 편지를 쓴다/ 별을 보기 위해 밤을 기다리고/ 그분을 만나기 위해/ 침묵 속에 떠난다// 내가 돌아갈 나의 마지막 주소/ 약속의 땅/ 빛의 항구/ 침묵의 나그네시며/ 내 마지막 동행이신 분// 나는 그분께/ 오늘도/ 길고 뜨거운 침묵의 편지를 쓴다//

평화 / 홍윤숙
어쩌다 마음에/ 푸른 녹기 하나 펄럭이는 날이 있다/ 그런 날 가슴은 축일처럼 설렌다/ 이마에 손을 얹고 바라보는 하늘엔/ 여기저기 축포처럼 터지는 빛의 분수/ 분수처럼 쏟아지는 양지쪽 담 밑에서 진달래 개나리도 마음놓고 몸을 푼다/ 동목 가지마다 부산히 지친 그늘 털어내고 있다/야윈 두 팔에 받쳐든 대바구니 하나 가득/ 꽃이랑 과일이랑 희망이랑 희·망·이·랑/ 그 술렁이는 속삭임들 천지에 울리는 음악이 되고 까실한 살갗 수천의 모공마다/ 부드러운 입이 되어/ 끝없이 향기 흘러나오는 꽃항아리 되고/ 풍금소리 잔잔한 노사제관/ 기도하는 소녀들의 성모상에도/ 프리지어 꽃다발이 쏟아지고 있다// 어쩌다 마음에/ 푸른 녹기 하나 펄럭이는 날/ 그런 날 가슴은 축일처럼 설렌다/ 엷은 가슴 마른 뼈에도 꽃물 돋는다//

하늘을 본다 / 홍윤숙
요즘은 날마다 하늘을 본다/ 하늘을 보는 일밖엔 할 일이 없다/ 어쩌다 말갛게 갠 하늘을/ 망연히 앉아서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결소리 들리고/ 물결 따라 흘러가는 조각배도 보인다/ 천지창조 때와 다름없는 하늘/ 그 평화로운 하늘 아래 지금 지상에선/ 날마다 심장 몇 개 터져 나가고/ 목에 등에 돌무더기 매단 듯 숨이 차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내려앉아도/ 우리의 희망은 아직 푸르렀다/ 그러나 어느 날 하루아침에/ 나라가 부도나고 파산을 했단다/ 남북이 쌀 동냥 달러 동냥으로 거덜난/ 나라에서 아직도 모피코트가 불티나고/ 밀가루 설탕 라면 생필품을 싹쓸이하고/ 대선 돌풍에 점잖은 사람 이전투구하고/ 백만의 실업자가 거리를 배회할/ 소돔과 고모라가 방불한 나라/ 나는 하릴없이 하늘을 본다/ 하늘을 보는 일밖엔 할 일이 없다/ 아무 일도 없는 듯 고요한 하늘/ 너무도 고요하여 그 모든 일이 악몽이 아닐까/ 악몽이거든 어서 깨어라 보이지 않는 문을/ 두드리며 두드리며/ 무인년 새해를 기다려 본다//

한 편의 詩가 / 홍윤숙
한 편의 시의/ 마지막 행을 마치고 나면/ 그대로 원고지 위에 쓰러져 버린다// 아득히 먼 길을 헤매 다니던/ 언어의 오솔길/ 그 작은 불빛들이/ 순간 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는 글 한 줄 쓸 것 같지 않은/ 백치가 되고/ 기다린 듯 거대한 사막이 내 안에 들어와 눕는다/ 평화라는 이름의 얼굴이 바로/ 어둠과 사막인 것을 눈감고 깨닫는다// 낯선 타관의 밤을 밝히던/ 그 작은 불빛들이/ 결코 잠들 수 없는 채무자였지만/ 나는 불 꺼진 지상의 어둠이 두려워/ 스스로 평화의 살을 찢는 자해에 골몰하고/ 밤새워 별을 캐는/ 허무한 놀이에 넋을 잃었다// 사는 일 날마다 비탈 아니면 수렁이지만/ 이제는 내가 해야 할 일은/ 마지막 마침표를 어떻게 찍을까/ 한 편의 시가 어떻게 내게로/ 다시 올까 기다리는 일이다/ 기다리며 허공에 등불을 달아/ 혼 속의 길 환히 비춰 보는 일이다// 그 길 아득한 안개 속에 있고/ 내가 사는 이유 아직 모르지만/ 한 편의 시가 내게로 오는/ 그 황홀한 시간을 기다리며 산다//

광야를 꿈꾸며 / 홍윤숙
사람이 광야로 갈 수 없을 때/ 광야가 사람에게 오기도 한다/ 네 평 반짜리 나의 방은 때로 나의 광야가 된다/ 그곳에서 나는 세상에 매여 있는 모든 끈 풀어버리고/ 사막에서 불어오는 황량한 영혼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시공을 넘어/ 마음의 성소 한 채 지어보려 하지만/ 어쩔까 전화 벨소리 초인종 소리에도 무너지고 마는/ 약한 모래성/ 도시의 광야는 이렇게 꿈꾸며 지나가는 길일 뿐이다//

한강 1 / 홍윤숙
친구여 보이는가/ 우리 잠속에 지금도 출렁이는 유년의 강/ 광나루 뚝섬 미루나무길/ 봉은사 가는 한낮의 나룻배/ 도라지꽃, 보라빛 도라지꽃 무더기로 쏟아지던/ 마포 앞 강의 저녁 어스름/ 우리들 어린날 기억의 계단에/ 무성영화처럼 돌아가고 있는/ 천연색 사진들 사진 속에 찍힌/ 진보라빛 유년의 발자국들 보이는가/ 그 시절 강은 길고 보드라운 잔물결로/ 내 곤한 잠속에 숨어들어와/ 어린 날개 연꽃처럼 적시며/ 칠석날 연등놀이 인도교 밑을 흘러갔다/ 수만 장 깨어져 반짝이는 유리 조각에/ 수만 개 불을 띄워/ 어디론가 끝없이 흘러갔다/ 우리들 잠속을 흘러갔다//

핵(核)의 노래 / 홍윤숙
나를 보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세계의 강대국은 다투어 나를 만들어 보유하였고/ 약소국은 굶주리고 핍박받으면서도 숨어서 나를 몰래 만든다/ 나는 하느님보다 빠르고 강한 힘이기에/ 피도 심장도 머리도 없는 괴물이기에/ 던지면 오차 없이 명중하여 부수고 박살내고 초토화하는 악의 신/ 정실이 없으니 사람의 기쁨이나 슬픔 따위 알지 못한다/ 다만 나를 보유한 나라는 그 수효만큼 평화를 누리며 단잠을 자고/ 나를 놓고 약소국을 위협하고/ 약소국은 나를 포기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기로에서/ 머리를 짜고 분노한다/ 나는 그들 전략 전술의 최후 최대의 방아쇠가 된다/ 지금 나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노스코리아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여차하면 대포동 미사일에 장착되어 사우스코리아/ 일본은 물론 미국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다/ 남북통일은 시간문제 미군만 철수하면/ 그 다음 날로 대망하던 통일은 이루어지겠지만/ 우는 사람 웃는 사람 갈라지겠지만/ 그보다 코앞의 일본이 자극받아 재무장 선언하고 핵을 만들고/ 그 다음에 올 비극은 나도 모른다/ 나는 다만 나를 보유한 자의 권위와 힘으로 존재할 뿐이다// 나를 보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오늘밤도 TV화면에선 스키장, 썰매장의/ 밤 야경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하늘엔 불꽃놀이 탕탕 터지고 있다/ 다만 반백의 나그네 몇이 서서 탄식한다/ “쿠오바디스” 불타는 로마의 밤하늘이 떠오른다고//

휴전선의 아침 / 홍윤숙
한 시절 지상은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휴전선 지뢰밭에 나부끼는 풀잎들/ 전신에 푸른 멍 지천으로 들이고/ 이빨도 나지 않은 여린 감성에/ 사나운 핏줄부터 채워넣던/ 새파란 모음들의 반란, 그/ 황홀한 모반의 발톱을 갈며/ <신선한 의문 부호> 몇 개로 흔들리던/ 벌판의 한 시절을// 우리는 손잡고 지뢰밭을 뛰어다녔다/ 더러는 머리 더러는 사지를 후회 없이/ 초연에 날려버리며 이윽고 사라져가는 시대의/ 희망들을 전송했다 더는 꿈꾸지 않는 신세기/ 어두운 지평에선 침묵의 거대한 함대들이/ 아름다운 아침을 분쇄하며 마주잡은 손과 손을/ 따뜻한 눈길들을 서로의 가슴에서 걷어내었다// 이윽고 사람들은/ 계절은 황량한 겨울이라 진단했다/ 날마다 쓸쓸한 해안에 인양되는 난파선,/ 바다에 나가 죽은 희망의 군대를 끌어올리고/ 비 내리는 도시 그림자 없는 시대를 진군하면서/ 사나운 감성의 태풍 하나로/ 한 자씩 기우는 세상의 용마루/ 내려앉는 서까래 끝을/ 버틸 발톱 하나 없이/ 물렁뼈 몇 개로 절름발이로/ 겨울 등반을 잠행하면서/ 끝내 몸으로 찍을 마침표 하나/ 지상의 참담한 詩 한 편을 생각한다/ 한 시절 평화로 위장했던/ 휴전선의 아침들을 생각한다.//

 

허물벗기 / 홍윤숙
청명한 저녁 어스름빛 속에/ 돌아와 서면/ 갑자기 나의 키는 한 자쯤 자라고/ 한낮에 입었던 단단한 옷들이/ 하나씩 벗겨진다/ 쳐들었던 고개 천천히 떨어지고/ 바라보는 모든 것에 고개 숙여지고/ 창살에 어리는 바람 한 소절도/ 내가 모르는 나보다 큰 뜻 숨어 있음을/ 눈에 들보 하나 끼어보지 못하던/ 自閉의 길고 긴 터널이 보이고/ 전신으로 흔들리던 감성의 위태로운/ 외나무다리도 등뒤에 보이고/ 무시로 가로막던 편견의 가시철망/ 어리석게 흔들던 엉덩이 쇠뿔도/ 민망하게 드러난다/ 부끄럽게 난발한 斷言과 句讀點/ 사소한 상처에도/ 칼날에 베인 듯 소리치던 비명/ 치기 엄살 등등한 살기/ 교만의 뿔들이 가면처럼 떠오른다/ 쓸쓸한 한 생애 허물벗기/ 비로소 나는 나의 추운 영혼의 골짜기를 본다/ 눈부시게 벗은 허무의 시린 등을 본다/ 벼랑에 걸린 가느다란 해 한 가닥/ 가슴에 동침으로 와 꽂히는/ 청명한 저녁 어스름빛 속에/ 돌아와 서서//

마지막 공부 / 홍윤숙
이제 손놓고 헤어져야 한다/ 여기까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름다운 이름들/ 사랑 또는 미움으로 꽃밭도 일궜지만/ 여기서부턴/ 누구도 함께 갈 수 없는 나라/ 위리안치 아득한 적소의 변방이다/ 혼자서 가야 하는,/ 편지하지 마라/ 전화도 사절이다/ 나는 여기서 오래 전부터/ 아무도 모르는 마지막 공부에/ 골몰하고 있다/ 잊혀지고 작아지고 이윽고 부서져/ 사라지는 법/ 이 세상 마지막 공부에/ 땀 흘리고 있다//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도/ 땅이 울리는/ 이 마을에 지금 살아 있는 건/ 삼복 염천에 불같이 울어대는 매미뿐이다/ 짧은 생애 목놓아 울고 있는/ 매미의 애끊는 곡성뿐이다.//

 

가면 / 홍윤숙
이 나이에도 나는 아직/ 마음 들키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문다// 부질없는 호감을 사기 위해/ 미소를 짓는다// 수치와 굴욕을 감추기 위해/ 큰소리로 떠든다// 그러다 돌아와 자신을 향해/ 침을 뱉는다 눈물을 쏟는다// 무거웠던 가면 전흔의 상처 남루한/ 또 하나의 얼굴이 쓸쓸히 누워있다//

지하철에서 / 홍윤숙
나이를 알아보고/ 내어주는 자리가 면구스러워/ 일부러 고개 푹 숙이고/ 잠들어 있는 사람 앞에 선다/ 저만치서 미안한 듯 주춤주춤 일어서는/ 젊은이에게/ 나는 머리를 들 수가 없어/ 줄곧 고개 숙이고 앉아 있다/ 그대의 탓이 아닌 나의 탓으로/ 나이 먹어 늙은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남의 자리 빼앗아 편히 앉다니/ 세상에 이런 빚도 지고 가는구나/ 쓸쓸한 자책에 고개 돌린다// 어두운 차창에 희미하게 어리는/ 검은 눈동자 낯선 얼굴 누구였던가/ 알 수 없는 길 위의 이방인이 된다//

경로 우대증 / 홍윤숙
지하철 매표소에서/ 경로 우대증을 제시하면/ 신통하게 하나같이 뿌르퉁한 매표원들이/ 툭 하고 던져 주는 승차권 한 장/ 4백50원짜리 공짜 승차권 한 장이/ 갈피 없는 생각으로 나를 끌어간다/ 작은 습득물을 얻은 듯 신기함 반/ 알 수 없는 수치감에 부끄러움 반// 이 땅에 태어나 몸 붙인 탓으로/ 칠십 년 살면서 이리저리 부대끼고/ 오만 가지 세금 내고 간간이 도둑맞고/ 이런저런 상처로 만신창이 끝에/ 얻은 전리품, 증명서 한 장이/ 경로인지 경멸인지 알 수 없는 표 한 장이/ 쓰기도 거북하고 안 쓰기도 억울하고/ 새살 돋지 않는 상처의 딱지처럼 까실거린다// 이 땅의 날개 잘린 수많은 노인들/ 그 증명서 한 장으로/ 온 서울 땅 속을 누비고 다니고/ 고궁 박물관도 기웃거리고/ 남은 여생 쓸 곳 없는 시간을 흘려버리면서/ 오욕의 역사나마 추억의 등짐 지고/ 오늘도 분명 이 나라 백성임에 감읍한다/ 들고 나는 지하철 출입구 매표소마다/ 더 작아질 키도 없는 키를 줄이며//

늙은 비애(悲哀) / 홍윤숙
겨울 가로수(街路樹),/ 유랑민(流浪民)처럼 늘어선 해질녘 거리/ 옛날의 눈송이가 흩날리고 있다./ 속으로 하염없이 흩날리고 있다.// 아득한 기억(記憶)의 눈길을 돌아/ 먼 길을 돌아/ 빈 방, 잠긴 빗장을 따면/ 기척없이 기다리는 늙은 어머니,/ 어머니 같은 모습이다. 그 비애(悲哀)는……// 겨울 밤 북국(北國)을 달리던/ 청청한 기적(汽笛) 소리/ 동구(洞口) 밖에 울리던/ 곡마단(曲馬團) 나팔 소리/ 그렇게 젊던 나의 비애(悲哀)야,// 오늘은 내 늙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나를 보누나/ 나도 너만큼 지쳐, 너를 닮은/ 한 쌍의 겨울 나무/ 끝내 함께 갈 우리는 혈연(血緣)이다.//

 



홍윤숙(洪允淑.1925 ∼ 2015) 시인
평북 정주 출생. 호 여사(麗史).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3년 중퇴. 한양여고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시작(詩作) 활동, 초기의 대표작은 [신천지]에 발표된 <낙엽의 노래>이다. 1947년 [문예신보]에 <가을>을 발표하여 등단. 1949년 [태양신문] 문화부 기자, 한성여중 교사. 195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원정(園丁)>이 당선되었다. 이인석(李仁石)ㆍ최일수(崔一秀)ㆍ장호(章湖)ㆍ신동엽(申東曄) 등과 [시극동인회(詩劇同人會)]를 조직, 국립극장에서 시극 <여자의 공원(公園)>을 상연했다. 펜클럽 작가기금으로 <에덴, 그 후의 도시>를 집필하여 <현대한국신작전집>에 수록했다.상명여사대 국어국문학과에 출강(1970∼1979).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1984), 한국시인협회장(1990) 역임. 1990년 예술원 회원. 한국시인협회상(1975), 문화예술상(1985), 보관문화훈장(1993), 공초문학상(1995), 서울시 문화상(1995), 예술원상(1997), 3ㆍ1문화상(2001), 춘강상(2002)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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