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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이건청 시인

부흐고비 2021. 8. 18. 06:23

산양 / 이건청
아버지의 등 뒤에 벼랑이 보인다/ 아니 아버지는 안보이고 벼랑만 보인다/ 요즘엔 선연히 보인다.// 옛날 나는 아버지가 산인 줄 알았다/ 차령산맥이나 낭림산맥인 줄 알았다/ 장대한 능선은 모두가 아버지인 줄 알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푸른 이끼를 스쳐간 그 산의 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닿는 것이라고/ 수평선에 해가 뜨고 하늘도 열리는 것이라고// 그때 나는 뒷짐지고 아버지 뒤를 따라 갔었다/ 아버지가 아들인 내가 밟아야 할 비탈들을 앞장서 가시면서/ 당신 몸으로 끌어안아 들이고 있는 걸 몰랐다/ 아들의 비탈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까마득한 벼랑으로 쫓기고 계신 걸 나는 몰랐었다// 나 이제 늙은 짐승 되어 힘겨운 벼랑에 서서 뒤돌아보니/ 뒷짐지고 내 뒤를 따르는 낯익은 얼굴 하나 보인다/ 겨우겨우 벼랑 하나 발딛고 선 내 뒤를 따르는/ 초식동물 한 마리가 보인다.//

아내라는 여자 / 이건청
자신의 오장육부를/ 깊이 썩혀/ 비옥한 거름을 만들어 내는 여자,/ 그 거름으로 남자의 발등을 덮어/ 매일 아침 남편의 자리에/ 다시 세워 주는 여자,// 자기 몸속에 남편을 심어/ 또 다른 물과 하늘과 땅을/ 출산해 내는 여자,/ 환한 광배 속의 여자,/ 아내.//

소금 / 이건청
폭양 아래서 마르고 말라, 딱딱한 소금이 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쓰고 짠 것이 되어 마대 자루에 담기고 싶던 때가 있었다. 한 손 고등어 뱃속에 염장질려 저물녘 노을 비낀 산굽이를 따라가고 싶던 때도 있었다. 형형한 두 개 눈동자로 남아 상한 날들 위에 뿌려지고 싶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딱딱한 결정을 버리고 싶다. 해안가 함초 숲을 지나, 유인도 무인도를 모두 버리고, 수평선이 되어 걸리고 싶다. 이 마대 자루를 버리고, 다시 물이 되어 출렁이고 싶다.//

곰소항에서 / 이건청
곰소 염전 곁 객사에 누워/ 하루를 잔다.// 짠 바닷물은/ 마르고, 다시 마르며/ 결장지까지 와서/ 소금으로 가라앉는데,// 이 마을 드럼통들 속에서는/ 새우와 바닷게들도/ 소금을 끌어안은 채/ 쓰린 꿈속에서/ 제 살을 삭혀/ 젓갈로 곰삭고 있을 것인데,// 변산 바다 밀물의 때,/ 바다는 밀고 밀며/ 다시 곰소항으로 돌아오면서/ 흰 포말로 낯선 새들을 부르고,/ 산비탈 호랑가시나무 숲을 부르며,/ 젓갈 가게에 쌓인/ 드럼통들을 찾아와/ 드럼통 속 새우와 참게들에게/ 풍랑의 바다 소식을 전하면서/ 곰삭은 황혼도 조금씩,/ 밀어 넣어 주고 있구나,/ 아주 잊지는 않았다고/ 젓갈로 익더라도 서로 잊지는 말자고/ 밤새 속삭여주고 있구나// 곰소 염전 곁 객사의 사람도/ 내소사 전나무 숲 위에 뜬/ 초롱초롱한 별도 몇 개/ 꿈속에 따 넣으며/ 쓰린 잠을 자는데,/ 소금을 끌어안고 잠자며/ 낯선 방에서 뒤척이는데/ 젓갈로 삭아가고 있는데……//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 / 이건청
한때, 나는 소금창고에 쌓인 흰 소금 속에 푹 묻히고 싶은 때가 있었다. 소금 속에 묻혀 피도 살도 다 내어주고 몇 마디 가벼운 말로 떠오르고 싶은 때가 있었다./ 마지막엔 '또르르 또르르' 목을 울리는, 한 마리 노고지리 되어 푸른 보리밭 쪽으로 날아가고 싶은 때가 있었다//

일각수(一角獸)가 있는 풍경 / 이건청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겨우겨우/ 서서 무너진 다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삐걱이다 무너진 날들을./ 툭, 툭, 끊어져 교각(橋脚)만 남은 날들을./ 거기 뒹구는/ 못과 망치, 펜치와 톱, 그리고 녹슨 자(倜)하나./ 툭, 툭, 끊어져 교각(橋脚)만 남은/ 거기, 사내는 서 있었다./ 끊어진 다리들이 희미한 교각을 드러낸 채/ 잊혀진 거기 사내가 서 있었다./ 녹슨 자 하나/ 희미한 거기 한 사내가 서 있었다.//

폐사지에 사는 부처님 / 이건청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혜목산 아래 고달사지가 있다. 신라 경덕왕 때 세웠던 절은 무너지고 깨져 그 잔해가 풀밭에 흩어져 있다. 국보 4호인 고달사지 부도는 뽕나무 숲을 지나 야트막한 능선위에 서 있다. 매년 오디가 익을 때 나는 아내와 함께 거기 가 오디를 따먹곤 했는데, 요즘은 뽕나무 잎이 지고 오디가 흔적도 없는 겨울에도 봄에도 거길 가서 앉았다 오곤 한다. 오디가 없어도 거길 갔다 오면 눈도 귀도 한결 맑아지곤 한다.// 내가 나이 들어 평생직장을 내려놓고 편히 살게 된 어느 가을날, 그냥 하이얀 맘으로 다시 거길 가니 깨지고 무너진 폐사지 풀숲 한 켠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놀라워라, 무성한 잡초더미에서 부처가 나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 부처는 까아맣게 여문 풀씨마다에서 선연하였다. 목탁도 독경도 없는 폐사지, 거기 환한 햇빛 속에서 맑게 웃고 계셨다.//

폐사지에 서서 / 이건청
비오는 날, 고달사지 폐허엘 가니 도꼬마리, 여뀌, 망초, 닭의장풀, 강아지풀들이 비에 젖고 있었다. 도꼬마리에서 여뀌까지, 여뀌에서 망초까지, 그리고 닭의장풀이며 강아지풀들까지 시간도 거리도 지워진 채 질펀한 푸르름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비오는 폐사지에 서서 / 이건청
불상은 없고 불상이 놓였던 대석만 잡초 속에 놓여 있다. 비오는 날, 폐사지엘 가니 날개가 젖은 풀무치 몇 마리 강아지풀 풀섶에 비를 그을고 있었다. 젖은 풀빛 장삼을 걸치신 부처 몇이 비를 그을고 있었다.//

눈 내리는 폐사지에서 / 이건청
눈 내려 자작나무도 상수리나무도 보이지 않는 날, 앞 산 희미한 능선이 앞을 가로 막아 선 날, 눈은 내려 마른 풀을 덮누나, 마른 풀 쪽으로 걸어 가 지친 육신을 기대서니, 추운 풀과 나 사이, 양지가 들고 온기도 퍼진다. 눈이 내려 앞 산 능선도 지우고 있는 날, 마른 풀에 다가서서 다시 보니 죽은 풀들이 윤기 나는 씨앗을 품어 안고 있다. 아, 흐르는 영원 저 쪽에서 죽은 풀에 안겨 있는 만공, 혹은 성철의 사리 몇 과.//

혜초를 따라가는 사내 / 이건청
1908년, 프랑스 동양학자 펠리오가 중국 서북쪽 감숙성의 돈황 막고굴 작은 방 하나에서 두루마리로 된 낡은 서책을 만났다. 서책은 막고굴의 17동 안쪽, 모래로 막힌 벽을 허물고 들어간 작은 방, 장경동을 가득채운 책들 가운데서 수습되었다. 앞장과 뒷부분이 무너진 227 행, 600자 정도로 적힌 서책이었다. 「惠超往五天竺國傳」, 신라인 혜초가 밟고 간 스리랑카와 다섯 개의 천축국들과 지금은 이란이라고 불리는 대식국과 파미르고원과 천산산맥들이 거기 있었다. 1200 여 년 전의 일몰과 이슬과, 남지나해의 수평선과, 새까만 파미르 고원과, 천산산맥들이 눕거나 쓰러져 있었다.// 진짜 부처를 찾아 목선에 몸을 싣고 망망대해로 떠난 그가 만났을 칠흑의 수평선이 나는 두렵다. 다섯 개의 천축국, 안 통하는 말로, 산과 물과 보리수나무 숲을 헤쳐 간 혜초, 정수일 역주 『왕오천축국전』*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그가 발 딛고 간 궤적을 따라가면서 나는 눈앞이 캄캄하다. 쉼 없이 발이 헛놓인다.// 40년 밥벌이 강단을 버리고, 진짜 시 속으로 가려니 대해로구나, 망망대해. 깜깜한 수평선과 지평선과 사막과 산비탈들이 육중하게 막아 서 있다. 시를 찾아 다시 길 떠나는 늙은 사내 하나, 미망의 여로를 열며 구두끈을 고쳐 맨다. 혜초여, 혜초여, 칠흑의 미로를 헤쳐 간 사람아.//
* 원본 『왕오천축국전』은 현재 불란서 파리국민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최근, 상세한 역주를 단 정수일의『혜초의 왕오천축국전』(학고재)이 나와 있다.

버찌가 익길 기다리며 / 이건청
산벚나무 꽃이 펴/ 산비탈 한쪽이 밝아오면/ 찻잔을 들고 꽃그늘 아래로/ 가고 싶었다/ 벚꽃이 연기처럼 피어나는/ 벚나무 아래 앉아/ 우리가 함께 견딘 혹한에 대해서,/ 결빙과 눈보라에 대해서/ 불 꺼진 아궁이에 대해서,/ 나무에게 얘기를 권하고 싶었다// 아직 새댁이셨던/ 어머니의 젖가슴을 꿈에 본/ 일흔 살 아들의/ 오십 몇 년이나 육십 년 전/ 산벚나무 꽃 진 자리엔/ 푸른 버찌 알들이 지천으로 달렸었다/ 맛과 향으로 여물어/ 검붉은 열매로 자라야 할 것들이었다.// 올해도, 산벚나무에 벚꽃이 펴/ 산비탈이 밝아오면/ 아내와 함께 찻잔을 들고/ 벚나무한테로 가고 싶다/ 혹한을 견디고 꽃을 피어올린/ 늙은 나무 등걸을/ 쓰다듬어주고 싶다.//

망초꽃 하나 / 이건청
정신병원 담장 안의 망초들이/ 마른 꽃을 달고/ 어둠에 잠긴다./ 선 채로 죽어버린 일년생 초목/ 망초잎에 불은 곤충의 알들이/ 어둠에 덮여 있다./ 발을 묶인 사람들이 잠든/ 정신병원 뒤뜰엔/ 깃을 웅크린 새들이 깨어/ 소리 없이 자리를 옮겨 앉는다./ 윗가지로 윗가지로 옮겨가면서/ 날이 밝길 기다린다./ 망초가 망초끼리/ 숲을 이룬 담장 안에 와서 울던/ 풀무치들이 해체된/ 작은 흔적이 어둠에 섞인다./ 모든 문들이 밖으로 잠긴/ 정신병원에/ 아름답게 잠든 사람들/ 아, 풀무치 한 마리 죽이지 않은/ 그들이 누워 어둠에 잠긴/ 겨울, 영하의 뜨락/ 마른 꽃을 단 망초.//

모란을 보며 / 이건청
4월이 오고/ 모란이 피면/ 네게로 갈게/ 귓바퀴에 내리는/ 밝은 양지 속에서/ 예리한 칼날이/ 네 손가락과/ 내 손가락을/ 베어가던/ 그 아픈 환희 속으로/ 걸어갈게, 다시/ 걸어서 갈게/ 내 오른 손과/ 네 왼손에서/ 핏물 뚝, 뚝/ 떨어져 내리던/ 4월이 오고/ 그 선홍의 꽃잎/ 뚝, 뚝 떨어져 내리면,...//

연어 / 이건청
네가 오기까지/ (오기는 올까마는)/ 하늘말라리도/ 알락실잠자리도 불러/ 함께 기다릴게/ 능수버들 아래서/ 기다릴게/ 기진맥진 지친 몸으로/ 네가 올 때까지/ 지등도 밝혀둘게//

연꽃밭에서 / 이건청
진흙밭에 빠진 날, 힘들고 지친 날/ 눈도 흐리고, 귀도 막혀서/ 그만 자리에 눕고 싶은 날/ 연꽃 보러 가자, 연꽃 밭의 연꽃들이/ 진흙 속에서 밀어 올린 꽃 보러 가자/ 흐린 세상에 퍼지는 연꽃 향기 만나러 가자/ 연꽃 밭으로 가자, 연꽃 보러 가자/ 어두운 세상 밝혀올리는 연꽃 되러 가자/ 연 잎 위를 구르는 이슬 만나러 가자/ 세상 진심만 쌓고 쌓아 이슬 되러 가자/ 이슬 되러 가자/ 눈도 흐리고, 귀도 막혀서/ 자리에 눕고만 싶은 날.//

겨울 산에서 / 이건청
나는 겨울 산이 엄동의 바람 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서서/ 겨울밤을 견디고 있는 줄만 알았다/ 겨울 산 큰 그늘 속에 빠져 기진해 있는 줄만 알았다/ 겨울 산 작은 암자에 며칠을 머물면서 나는/ 겨울 산이 살아 울리는 장엄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대개 자정을 넘은 시간에 시작되곤 했는데/ 산 아래, 한신계곡이나 칠선계곡 쪽을 지나 대원사 스쳐 남해 바다로 간다는/ 지리산 어느 골짜기 물들이 첫 소절을 울리면/ 차츰 위쪽이 그 소리를 받으면서 그 소리 속으로 섞여 들곤 하였는데/ 올라오면서, 마천면 농협, 하나로 마트 지나 대나무 숲을 깨우고/ 산비탈, 마천 사람들의 오래된 봉분의 묘소도 흔들어 깨우면서/ 골짜기로 골짜기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오를수록 그 소리는 점점 더 곡진한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었는데/ 산 중턱을 넘어서면서, 홍송들이 백 년, 이 백년씩 그들의 가지로/ 서로의 어깨를 걸친 채 장대한 비탈을 이루고 있는 곳까지 와서는/ 웅장한 코러스가 되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내가 사순절의 어느 날, 대성당에서 들었던/ 그레고리 찬트의 높은 소절과 낮은 소절이 번갈아 마주치는 어느 부분과 같았다/ 이따금, 이 산에 사는 산짐승들이 대합창의 어느 부분에 끼어들기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때마다, 그레고리 찬트 속에서 짐승들의 푸른 안광이 빛나곤 하였다/ 겨울 산이 울려내는 대합창이 온 산을 울리다가 서서히 함양 쪽으로 잦아들 때쯤/ 건너 쪽, 지리산 반야봉, 제석봉의 윤곽도 밝아오는 것이었는데/ 날이 밝고 산의 윤곽들이 선연해지면 자작나무도 굴참나무도 그냥/ 추운 산의 일부로 돌아가 원래의 자리에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는 것이었다/ 그냥 겨울 산이 되어 침묵 속으로 잠겨드는 것이었다//

움직이는 산 / 이건청
객사에 누워 뒤척이는 새벽,/ 벌레들이 운다./ 벌레들이 푸른 울음판을 두드려/ 울려내는 청명한 소리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반야봉* 하나를 뒤덮고/ 마침내 그 봉우리 하나를 통째로 떼 메고/ 조금씩 떠가는 게 보인다./ 새벽이 깊을수록 더 깊어진 울음의 강이/ 산을 싣고 흐르는 게 보인다./ 아래쪽 산자락을 잘팍잘팍 적시면서/ 벌레소리에 떠나가는 산./ 골짜기의 절간까지, 싸리나무 일주문까지/ 벌레들이 울음소리로 떼 메고/ 남해 바다로 가고 있는 게 보인다.//
* 지리산 봉우리 중의 하나

간이역에서 / 이건청
산까치 한 마리 날아왔던가 날아갔던가 너 밤차 타고 바다에 가던 중앙선 그 길 어딘가에 푸른 신호등을 켠 구둔역도 있었을 것인데,/ 고고학 전공의 국립대학 졸업생, 너 주고 없는 빈 세상, 40년도 훨씬 넘는 안개 속에 채송화도 봉선화도 피우며 겨우겨우 살았을 옛날의 네 여자가, 백발이 다된 네 여자가 오늘, 하얀 댕기 해오라기 한 마리로 스쳐 날면서 다시 바다로 가는 간이역, 그냥 스쳐가는 구둔역,...//

전멸의 풍경 / 이건청
세상 사람들이 버린/ 플라스틱 조각들이/ 물을 따라 흐르고 흘러/ 바다에 가서/ 소금물에 쉼 없이 출렁이다 보면/ 으스러지고 부서져/ 플라스틱 알갱이들이 된다는데// 세상 플라스틱이란 플라스틱들이 모두/ 밀리고 밀리며/ 물을 따라 흘러가서/ 플라스틱 조각들끼리/ 연대하고 결집하면서/ 풀 한 포기도 자랄 수 없는/ 섬이 된다는데/ 세상 플라스틱 알갱이들이 쌓이고 쌓여/ 죽음의 섬이 된다는데/ 한반도의 14배나 되는 죽음의 섬이/ 여기저기 뜬다는데/ 풀 한 포기/ 뿌리내리지 못하는/ 플라스틱 알갱이들이 모이고 모인 섬들이/ 햇살을 되비춰 출렁이며/ 번쩍이며/ 다가오고 있다는데/ 죽음의 섬들이 밀려오고 있다는데…//

폐광촌을 지나며 / 이건청
고한읍 어딘가에 고래가 산다는 걸 나는 몰랐다. 까아맣게 몰랐다. '사북사태' 때도 그냥 어용노조만 거기 있는 줄 알았다. 혹등고래가 산 속에 숨어 탄맥을 쌓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냥 막장인줄만 알았다. 푸슬푸슬 내리는 눈발이 아이들도 개도 지우고 유리창도 깨진 사택들만 남아 있는 줄 알았다. 고래가 사는 줄은 몰랐다. 역전 주점, 시뻘겋게 타오르는 조개탄 난로의 그것을 불인줄만 알았다. 카지노 아랫마을 찌그러진 주점에서 소주잔을 들어올리는 사람들의 한숨인 줄만 알았다. 검은 탄더미인 줄만 알았다. 그냥 석탄인 줄만 알았다//

깊은 우물 / 이건청
그 우물은 깊었다./ 찬물이 고여 있었다./ 우물 안쪽으로 쌓아올린 돌 틈에선/ 검푸른 이끼가 자라고,/ 이끼에 서린 물방울이 툭 떨어져/ 투명한 소리로 울리곤 하였다./ 한나절 우물에 귀를 대고 있으면/ 떨어진 물방울 소리들이/ 소리끼리 어우러져/ 한 편의 시로 울리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우물은 우물가에/ 닭의장풀이며 여뀌, 질경이풀들도 기르면서/ 자잘하고 여린 꽃들로/ 박새나 노랑턱멧새들을 불러/ 지저귀게 하였다./ 그 우물은 깊었다./ 하늘을 향해/ 까마득한 바닥까지 열어놓고 있었다.//

그레고르 잠자*에게 / 이건청
요양병원 906호의 그와/ 영상 통화를 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그였는데/ 눈썹이 검은, 앞 머리칼이 왼쪽 이마를 스쳐 내린/ 그가 맞는데/ 목소리까지 그대로 그인데/ 그가 아니었다./ 그는 나를 몰랐다./ 이. 건. 청 들려주니/ 한 글자 한 글자 겨우 되짚어 뇌어본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그는 그가 아니었다./ 경제학 박사, 메이저 TV 고정 패널,/ 그 사람이 아니었다.// 서울행 KTX를 타는 나를/ 플랫폼까지 따라와 손잡아주던/ 손이 따뜻하던 사람,/ 사람은 그 사람인데/ 전화기 건너편 영상 속/ 그의 말이 매듭 밖으로/ 풀려서 자꾸만/ 찌그러지고 부서지고/ 뒹굴고 있다.// KTX 플랫폼에 서서/ 손을 흔들던 지난겨울의 사람,/ 여름 장맛비 속 영상 전화 화면엔/ 치매 전문 요양병원에서 누질러진/ 그가 망연한 얼굴로 떠 있다./ 6개월 사이,/ 무엇이 사람을 벼랑 밑으로 밀어뜨렸나// 낯선 사람이 된 그가 건네는 낯선 말들이/ 깨지고 찌그러진 채 쌓이는/ 세상의 어느 날, 어느 날// 치매 전문 요양병원에서/ 당신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영상 통화 화면이 스르르 열리고/ 그대가 모르는 그대가 뜬다…//
* F. 카프카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는 어느 날 잠자리에서 깨어나 커다란 벌레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우람한 남근 / 이건청
사람아/ 나는 지금 6천년전쯤부터/ 이 골짜기에 살고 있는 당신을 만난다./ 살아있는 당신을 만난다./ 당신이 서 있는 암벽과/ 내가 지금 서 있는 시간이 함께/ 늦가을 비에 젖는다./ 당신과 내가 비에 젖는다./ 당신이 서 있는 쪽에서/ 북소리가 울린다./ 두 손을 모두어 신을 부르는가,/ 힘센 당신이 우람한 남근으로/ 58마리의 고래를 부르고 있구나./ 호랑이와 멧돼지와 사슴을 부르는구나/ 6천년쯤의 시간을 건너오는/ 천둥같은 당신의 육성이 들린다./ 청정한 육신이 치켜올린/ 거대한 남근 앞에서/ 나는 새 사람되어 벌떡 일어선다./ 당신이 서 있는 암벽과/ 내가 지금 서 있는 시간이 함께/ 늦가을 비에 젖는다.//

먼 집 / 이건청
굴피집에 가고 싶네./ 굴피 껍질 덮고/ 낮은 집에 살고 싶네./ 저녁 굴뚝 되고 싶네/ 저문 연기 되어 퍼지고 싶네/ 허릴 굽혀 방문 열고/ 담벼락 한켠/ 아주까리 등잔불 가물거리는/ 아랫목에 눕고 싶네/ 육전소설 읽고 싶네/ 뒷산 두견이/ 삼경을 흠씬 적시다 가고난 후/ 문풍지 혼자 우는/ 굴피집에 눕고 싶네/ 나 굴피집에 가고 싶네.//

저무는 날이 다가와 / 이건청
말이 한 마리 쓰러지고 있다./ 뒷무릎이 꺾이고 서서히/ 앞다리를 치켜들고 있었다./ 긴 목을 흔들고 있었다./ 재갈이 물려 있었다./ 갈기가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다급하게 울고 있었다./ 하반신이 무너지고 있었다./ 서서히 뒷무릎이 꺾이고/ 잠시 후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핏빛 노을이 걸리고, 적막한/ 들판이 하나 엎드려 있었다./ 저물녘이었다. 말이 한 마리/ 쓰러지고 있었다. 뒷무릎이 꺾이고/ 서서히/ 앞다리를 치켜들고 있었다.//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풍경 / 이건청
미농지같이/ 가비얇은 가을 햇살이/ 바스러져 내리는,/ 저쪽// 풍금 소리 낮게 퍼지는/ 예배당 십자가 뒤,/ 전서구傳書鳩도/ 한 마리/ 오고 있는,//

2, 3일 / 이건청
하지 가까운 어느 날,/ 호스피스 병동에서,/ 노 시인 한 분 운명했다고/ 부고가 떴다./ 죽은 시인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져/ 빈소가 마련된다고/ 스마트폰 문자 부고가 떴다.// 인사동 한식 골목에서/ 손을 잡기도 했떤,/ 가죽 모자를 쓴,/ 지팡이를 짚은,/ 손이 따뜻했던/ 시인의 육신이/ 안치실 추운 box에 눕혀지고/ 급조된 시인의 액자 앞으로/ 2, 3일 만수향도 퍼지겠네.// 가죽모자를 썼던/ 지팡이를 짚었던/ 손이 따뜻했던/ 시인 하나 지상에 사라진/ 인사동 한식 골목/ 어제나 그제처럼/ 라면 봉지 바람에 구르겠네/ 보안등도 켜지겠네//

목동 아파트단지를 지나며 / 이건청
그 마을에/ 노새를 기르는 집이 있었다/ 그 마을 고샅길을 따라 한참을 가면/ 외딴집/ 봄이면 흰 연기처럼 살구꽃 피던/ 동네 머슴/ 복동이네 집/ 헛간에/ 귀가 크고/ 큰 자지를 단/ 짐승이 살았었다.// 동네 조무래기들이/ 그 노새가 언제 하품하는지를/ 보러가곤 하던/ 연둣빛 날들이 있었다.//
* 노새 : 말과 당나귀의 교배종. 생식 능력이 없음.

시인을 위한 전별사 / 이건청
돌 속에/ 자넬 담아 눕히고 나니/ 내 맘, 아주 섭섭하지는 않어이// 직박구리 스쳐날고/ 까치도/ 오리나무에 깃을 들이네// 남풍에 양지꽃도 실려 오리니/ 이승의 편한 자리일세/ 그만 독락당 내려오게// 다음 세상, 양지녘에서/ 곧 다시 만나세//

시인들의 성산포 / 이건청
성산포에 와서 떠오르는 해를 본다./ 우리나라 끝, 제주 성산 일출봉에 와서/ 새벽 바다를 본다./ 해는 바다 끝, 수평선을 밀어 올리며 솟아오르는데/ 새벽 일출봉이 눈 시린 시편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1950년대 말, 불 꺼진 명동 갈채다방을 들어서는 김종원 시인의 해,/ 일출봉으로 오르는 기울어진 계단에 망연히 앉아 있는 이생진 시인의 해/ 신의 열쇠 쩔렁이는 김종해 시인의 해,/ 전주시 인후동 골목으로 접어들고 있는 오세영 시인의 해,/ 순은이 빛나는 눈 시린 아침을 펼쳐들고 있는 오탁번 시인의 해,/ 빙하기 광막한 지평을 걸어오고 있는 이가림 시인의 해,/ 나자로 마을 빈자의 등에 붉을 밝히는 조창환 시인의 해,/ 밝고 크고 눈 시린 시인들의 해가 떼로 모여 솟아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밝혀 노래하는 시인들아/ 당신들이 아침 해 되어 불러낸 이 아침은/ 밤새도록 별을 우러러 노래한 귀뚜라미들을 잠들게 하고,/ 먼지와 깡통과 휴지 속의/ 환경미화원 김 씨를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 시민들의 식탁에 놓인 스텐레스 수저와 젓가락과/ 콩나물무침과 한 마리 꽁치구이를 밝힌다./ 시인들아, 당신들이 밝힌 이 아침,/ 휴지가 된 복권 한 장이 구겨진다./ 자동판매기 종이컵으로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내린다./ 전교조 선생들이 볼펜으로 조퇴원을 쓰고,/ 전경들이 버스에 앉아 졸고/ 개똥지빠귀는 자작나무 가지로 옮겨 앉는다.// 성산포에 와서 뜨는 해를 본다./ 우리나라 끝, 제주 성산 일출봉에 와서/ 새벽 바다를 본다./ 해는 바다 끝, 수평선을 밀어 올리며 솟아오르는데/ 햇살은 새벽 일출봉에서 시인들이 뿜어내고 있다.//
* 2006.10.28. 새벽, 한 떼의 시인들이 성산 일출봉에서 시를 읽은 적이 있었다.

새야 / 이건청
새야/ 작은 새야/ 손가락/ 한 매디만한 새야/ 풀씨 몇 개 따 먹은 힘으로/ 피이. 피이/ 우는 새야/ 새야/ 오늘은 내 어깨에/ 기대서서 울지만/ 내일엔/ 누구 가슴 찾아가서/ 울래//

날개 / 이건청
봄 아지랑이 속에/ 섞여 오던 것아,/ 청보리 연두 속에 숨어 살던 것아,// 너 때문에/ 피멍도 들었었거니,/ 무르팍도 깨졌었거니,// 이젠/ 너무 멀어져/ 흔적조차 지워진 것아./ 까마득히 멀어진 것아.//

부리 / 이건청
새들은/ 부리 하나로/ 피를 만들어/ 연둣빛 생명을/ 흔들어 깨우고/ 날개를 휘저어/ 얼음 세상을/ 건너갈/ 근육도 만드는구나,//

개미지옥에 사는 사람 / 이건청
개미지옥엔 개미귀신이 산다. 그냥 질펀한 모래밭, 거기 지옥이 있다. 모래빛깔의 작은 벌레, 개미귀신이 모래를 움푹 파고 개미지옥을 만든다. 개미귀신은 제가 만든 지옥의 제일 깊은 곳에 몸을 숨긴다. 가장 민감한 촉수, 더듬이만 내놓고 기다린다. 새벽이슬이 스치고, 풀잠자리가 여뀌 풀 무성한 개울가 그늘 속에 날개를 접을 때까지, 저녁노을을 헤쳐 간 까막까치들이 제 둥지에 닿을 때까지, 별이 지고 새벽달이 이울 때까지 굶는다. 개미지옥으로 먹이가 다가서고, 벼랑으로 먹이가 굴러 떨어질 때까지, 개미귀신은 개미지옥에 숨어 기다린다. 마른 시간의 한 귀퉁이에 숨어 기다린다. 개미귀신은 개미지옥에 산다. 개미지옥이 그의 집이다. 개미귀신은 거기서 자고 거기서 꿈을 꾼다. 개미귀신은 꿈은 늘 벼랑이다.//

쇠똥구리의 생각 / 이건청
쇠똥구리가 쇠똥을 굴리고 가다가 잠시 멈춘다. 지금 내가 거꾸서 서서 굴리고 가는 저것은 풀밭이다. 이슬에 젖은 새벽 풀밭위로 흐린 새 몇 마리 떠갔던가. 그 풀밭을 지나 종일을 가면 저물녘 노을에 물든 이포나루*에 닿을까. 거기 묶인 배 풀어 밤새도록 흐르면 이 짐 벗은 채, 해 뜨는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남한강 지류에 있는 옛 나루터

멸치 / 이건청
내가 멸치였을 때,/ 바다 속 다시마 숲을 스쳐 다니며/ 멸치 떼로 사는 것이 좋았다./ 멸치 옆에 멸치, 그 옆에 또 멸치,/ 세상은 멸치로 이룬 우주였다./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며/ 붉은 산호, 치밀한 뿌리 속을 스미는/ 바다 속 노을을 보는 게 좋았었다.// 내가 멸치였을 땐/ 은빛 비늘이 시리게 빛났었다./ 파르르 꼬리를 치며/ 날쌔게 달리곤 하였다./ 싱싱한 날들의 어느 한 끝에서/ 별이 되리라 믿었다./ 핏빛 동백꽃이 되리라 믿었었다.// 멸치가 그물에 걸려 뭍으로 올려지고,/ 끓는 물에 담겼다가/ 채반에 건저져 건조장에 놓이고/ 어느 날, 멸치는 말라 비틀어진 건어물로 쌓였다./ 그리고, 멸치는 실존의 식탁에서// 머리가 뜯긴 채 고추장에 찍히거나,/ 끓는 냄비 속에서 우려내진 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내가 멸치였을 때,/ 별이 되리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말 / 이건청
반쯤은 재가 됐구나, 말아/ 네가 딛고 온 풍상이/ 검은 이끼 되어 돌 틈을 덮고 있다./ 채찍이 오히려 아프지 않구나, 말아/ 능 하나를 지키고 선 말아.//

말들의 시간 / 이건청
사람들은 말들을 모른다. 그 많던 말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초록을 밟으며 달리던 완강한 말굽과 바람에 날리던 갈기, 힘찬 박동의 숨소리까지, 지축을 울리며 화염을 향해 달려가던 그 많던 말들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아니, 자신들이 그 많던 말들의 주인이었고, 그 말들 속에 섞여 초록들판에서 앞다리를 들어 올리며 큰 소리로 울던 푸른 말들이었음을 까아맣게 잊었다. 사람들이 말에 대해 아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사람들은 말을 잊은 지 오래다.//

말들이 돌아오는 바다 / 이건청
아야진항 방파제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본다./ 괭이갈매기 운다…/ 지워진다.// 수평선 너머에서/ 파도를 몰고 말들이 올까,/ 올까,// 무진장 말들을 캐러 멀리 간/ 시인 조정권, 시인 신현정/ 돌아오겠지/ 수평선 저쪽/ 환한 말들, 지고 끌고 오겠지/ 해 다 진 수평선 향해 앉아/ 소주잔 채우다 보면/ 말이 오겠지,/ 별도 오겠지// 소주잔 그득 채워/ 건네고, 건네며/ 술 취한 말하고 별하고 함께 앉아/ 몇 날 밤 지새워도 좋으리// 말이 되어 돌아올 시인들을/ 기다리는/ 아야진 항/ 방파제.//

종속도(終速度) / 이건청
종속도라는 게 있다고 한다/ 떨어지는 물체의 중량과/ 공기의 저항이 같아/ 떨어지는 물체의 무게가 없어질 때의 속도라는 것,/ 이를테면/ 물박달나무 가지에서 뛰어내린 날다람쥐가/ 애총(塚) 돌무더기 곁에 사뿐히 뛰어내리는 것도,/ 상수리나무에서 떨어진 상수리 열매가/ 떼구르르 굴러가다가 하늘 쪽으로 무연히 멈춰서는 것도/ 68년을 살고 간, 산정묘지*의 시인이/ 육신의 무게 훌훌 벗어놓고/ 가벼운 몸 되어 명부(冥府)로 옮겨 간 것도,//
* 조정권의 시집.

그 배를 타고 싶었다 / 이건청
그 배를 타고 싶어/ 새벽 바다에 가면/ 검고 흐린 배들이 떠 있었다/ 닻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배 뒤에서 다른 배가/ 돛을 올리고 있었다/ 뱃사람들이 뱃사람들끼리/ 배를 타고 있었다/ 검고 흐린 배들이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새벽 바다에 배들이 떠 있었다/ 그 배를 타고 수평선을 넘고 싶었다/ 그 배를 타고 싶어 새벽바다에 가면/ 뱃사람들이 뱃사람들끼리 만/ 출렁이고 있었다/ 그 배를 타고/ 수평선을 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네가 올 때까지 / 이건청
밤 깊고/ 안개 짙은 날엔/ 내가 등대가 되마// 넘어져 피 나면/ 안 되지/ 안개 속에 키 세우고/ 암초 위에 서마// 네가 올 때까지/ 밤새/ 무적을 울리는/ 등대가 되마//

서리 / 이건청
기다리마. 천천히 조심조심/ 서두르지 마,/ 마등령으로 천불동 계곡으로/ 빨강 깃발 펄럭이며 달려와/ 달려오는 너,//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흔들어 깨우며/ 단풍이야, 단풍의 때야/ 달려오는 너, 넘어지면 안되지/ 피가 나면 안되지,/ 벌써 이슬 차고 검은 벌레들은/ 찬 세상에 알을 낳는다./ 기다리마. 천천히 조심 조심/ 진부령 너머 한계령 너머/ 홍천강 따라 오너라./ 양수리 지나 팔당 너머/ 아파트 101동 505호에 잠든/ 가난한 시민의 이마라도 짚어다오.//

젖고 있는 들판에게 / 이건청
들판이 하나 젖고 있다/ 목이 마른 들판 하나가/ 남풍에 몸을 맡긴 채 비를 맞고 있다/ 봄비에 젖고 있다/ 어디선가 노고지리가 운다/ 미루나무는 미루나무끼리/ 오는 봄을 먼저 보려고/ 발뒤축을 들고 서 있다/ 일렬로 서 있다/ 우리들의 마른 들판 하나가/ 쟁기날을 기다리면서 젖고 있다/ 상추싹도, 연초록 아욱싹도/ 오고 있다. 실비 속에/ 마른 들판 하나가 젖고 있다//

무서운 풀 / 이건청
토굴에서 발각된 패잔병의 허벅지에 흰 벌레들이 기어다녔다. 집에 가고 싶어요, 검푸른 얼굴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가 완장을 찬 사람들의 들것에 실려 갔다. 멀찍이 아이들이 따라갔다. 나는 혼자 남아 뭉게구름 속 매미소리를 들었다. 매미소리에 섞여 총소리가 울렸다. 산굽이였다./ 사람들이 죽은 그를 벌레와 함께 묻었다. 땅도 파지 않은 채 그냥 흙으로 덮었다. 학교길 옆이었다.//

갈대숲에서 / 이건청
기러기 몇 마리/ 갈대 숲에 자고 있다/ 하이얀/ 갈꽃들이/ 서리 묻은 새들의 꿈을/ 덮어주고 있다/ 경기도 화성군 조암면,/ 혹은 우정면,/ 사내 하나 엎어지고 있었다/ 모세혈관 하나/ 터지고 잠시,/ 선혈이 번지고 있었다/ 서리 내린 세상의 흙 위로/ 얼음발이 퍼지고 있었다/ 하이얀/ 갈꽃들이/ 서리 묻은 새들의 꿈을/ 덮어주고 있다//

쌀밥 / 이건청
사기그릇에 수북하게 담긴 저것을/ 쌀이라고, 밥이라 하시네요,/ 이천 쌀밥이니, 기름지다고/ 찰지다고 말씀하시네요,/ 아버님, 어머님 평생 흘리신 땀,/ 그 땀, 논바닥에 쌓이고 쌓여/ 벼포기를 밀어 올리셨으니/ 허리 굽히시고 밀어 올리셨으니,/ 아버님 어머님 평생이 불러온 저것이,/ 피를, 살을, 뼈를 여물게 한 저것이,/ 사람을 상머리에 둘러앉게 하는 저것이,/ 그냥 쌀일 수 없지, 그냥 밥일 순 없지,/ 피와 살과 뼈를 여물게 한 저것이,/ 지순한 마음이 마음을 불러/ 상머리에 둘러앉게 만드는 저것이/ 그냥 쌀일 순 없지, 밥일 순 없지/ 사기그릇에 그득히 담긴 저것이/ 그냥 밥일 순 없지//

연두의 날 / 이건청
세상 그득, 떡갈나무 숲이/ 출렁거려서/ 한나절, 눈 시린 연두 속을 헤쳐가야, 겨우/ 교실에 뒷자리에 들어서곤 하던 때가 있었다./ 공부하는 아이들 뒷자리에 앉아서도/ 연둣빛 산 속으로 날아가고 싶기만 하던/ 청호반새 한 마리 있었다.//

아버지의 인장(印障) / 이건청
책상 설합 정리를 하다가/ 61년 전 이승 떠난 내 아버지/ 인장 하나를 찾아냈다// 흑단(黑檀) 인장,/ 3cm쯤,/ 날인(捺印) 면의/ 한쪽 귀퉁이가/ 닳아져 있다./ 아버지는 무슨 책임을/ 이리 많이도 지시며/ 기울어져 사셨구나,/ 등짐이 된 7남 1녀 때문에/ 허위허위 숨도 가쁘셨을 터,//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덕송리,/ 비와 눈발에 가리운 부모님 합장묘(合葬墓)로/ 산까치야, 가끔 문안도 다녀와 주렴.//

하류 / 이건청
거기 나무가 있었네./ 노을 속엔/ 언제나 기러기가 살았네./ 붉은 노을이 금관악기 소리로 퍼지면/ 거기 나무를 세워 두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네./ 쏟아져 내리는 은하수 하늘 아래/ 창문을 열고 바라보았네./ 발뒤축을 들고 바라보았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희미한 하류로/ 머리를 두고 잠이 들었네./ 나무가 아이의 잠자리를 찾아와/ 가슴을 다독여 주고 돌아가곤 했었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일만 마리 매미 소리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네./ 모든 대답이 거기 있었네./ 그늘은 백사장이고 시냇물이었으며/ 삘기풀이고 뜸부기 알이었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이제는 무너져 흩어져 버렸지만/ 둥치마저 타 버려 재가 돼 버렸지만/ 금관악기 소리로 퍼지던 노을/ 스쳐가는 늦기러기 몇 마리 있으리./ 귀 기울이고 다가서 보네./ 까마득한 하류에 나무가 있었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산불 감시초소의 시인 / 이건청
산불 감시원은 임도를 따라 와서, 길이 끝나는 곳에 오토바이를 세운다./ 보온 도시락 통을 들고, 붉은 색 조끼를 입은 그는 떡갈나무 숲을 지나/ 산비탈을 걸어 산 정상, 산불 감시초소에 온다. 그는 사위를 살핀다./ 등성이 하나하나에 연기가 피어오르는지 살핀다. 그는 불을 살핀다./ 산마루 쪽으로 화염이 옮겨가고, 온 산이 연기를 뿜어 낼 때,/ 산림 감시원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떨린다./ 화염의 방향을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불을 알린다./ 세상을 향해 송신기를 연다. 교신의 보턴을 누른다./ 소방차를 부르고, 화염 위로 헬리콥터를 부른다./ 산불 진압용 헬리콥터에 진화방향을 하달하면서 그의 목소리는/ 열에 뜬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겨울이 다 가도록,/ 일 년이 이 년이 다 가도록 산불 감시원은 산 정상,/ 산불 감시초소에 올라, 산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것이 그의 일이다. 산림 감시원은 혼자 산에 와서/ 무연히 유리창 밖을 내다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산불 감시원이 하루 근무를 끝내고 떡갈나무 비탈길을 걸어 내려간다./ 산불 감시원이 돌아 간 빈 초소엔 잠시 노을이 스치고,/ 얼마 후 겨울밤이 찾아와 산불 감시초소를 품어 안는 게 보인다.//

지름길 / 이건청
청계산 어느 등산로에/ 무덤 하나 있네,/ 사람들이 등산화를 신고/ 배낭을 걸머지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그냥 밟고 지나가는/ 무덤 하나 있네// 이제는 폭도 높이도 잃어/ 그냥 길이 되어버린,/ 오래 보아야 겨우/ 흔적만 보이는 무덤 하나 있는데,/ 지름길 찾는 사람들이/ 길 아래 묻힌 사람을// 편히 밟고 가는 구나/ 오래전 산비탈 아래/ 사람 하나 묻혔던 것인데/ 등산객들이 산을 찾고/ 비탈을 오르는 사람들이 늘면서/ 봉분을 비켜가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냥, 낮아진 봉분을 밟고 가느니,// 길은 백골을 비키지 않고/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고 있는데/ 사람의 피와 살과 뼈가/ 길 아래서 썩고 삭은/ 흐린 무덤 하나,/ 비탈을 오르는 사람들한테/ 자리를 건네주고/ ​지름길 속에 묻혀 있는데,//

은빛 햇살 / 이건청
무르팍쯤 바지 걷어 올리고/ 도랑물에 들어가면/ 겨우내 얼음장 밑/ 돌미나리 숲에 기대 살던,/ 여윈 송사리도 피라미도/ 보겠네,/ 얼음장 밑에서 겨울 다 견뎌 낸/ 작은 목숨들이 은빛 비늘 파르르/ 몸을 옮기겠네,/ 송사리도 피라미도/ 얼음 풀린 도랑에서 몸을 옮기며,/ 은빛 비늘/ 봄 햇살을 되비춰 내는/ 반짝, 반짝 되비춰 내는/ 은빛 햇살을 보겠네.//

억울한 것들의 새벽 / 이건청
묵호항 어시장엘 갔는데/ 바닷물 채워진/ 플라스틱 통,/ 유리 수조 속에,/ 막 잡혀온/ 가자미며/ 숭어, 고등어들이/ 들끓고 있었다./ 어떤 놈은 통 밖까지 튀어나와/ 어시장 시멘트 바닥을/ 기어가기도 하였다./ 꿈틀, 꿈틀/ 수평선 쪽으로/ 몸을 옮겨보고 있었다.// 필사적인 것들이/ 필사적인 것들끼리/ 밀치며, 부딪치고 있었다.//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 이건청
곡마단이 왔을 때/ 말은 뒷마당 말뚝에 고삐가 묶여 있었다./ 곡마단 사람들이 밥 먹으러 갈 때도/ 말은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꼬리를 휘둘러 날것들을 거나/ 조금씩 발을 옮겨놓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묶여 있었다// 날이 저물고, 외등이 환하게 밝혀지고/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질 때까지/ 말은 그냥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곡마단 곡예사가 와서 고삐를 풀면/ 곡예사에 끌려 무대에 올라갔는데/ 말 잔등에 거꾸로 선 곡예사를 태우고/ 좁은 무대를 도는 것이 말의 일이었다.// 좁은 말잔등 위에서 뛰어오르거나/ 무대로 뛰어내렸다가 휘익 몸을 날려/ 말 잔등에 올라타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는데/ 곡예사는 채찍으로 말을 내리쳐/ 박수소리에 화답해 보였다.// 곡예사가 떠나고 다른 곡예사가 와도/ 채찍을 들어 말을 내리쳤다./ 말은 매를 맞으며 곡마단을 따라다녔다.// 곡마단 사람들이 더러 떠나고/ 새 사람이 와도/ 말은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꼬리를 휘둘러 날것들을 거나/ 조금씩 발을 옮겨놓기도 하면서/ 평생을 거기 그렇게 묶여 있을 것이었다.//

난장이 화가 로뜨렉 전시장에서 / 이건청
코로나바이러스가/ 나라를 뒤덮은 어느 날/ 흰 마스크를 쓰고/ 흰 마스크를 쓴 아내와/ 미술 작품 전시장엘 갔었다./ 전시장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뒷짐을 지고, 다리를 끌며/ 액자 속 그림들을 건너다보고 있었는데,/ 키도 마음도 작아져/ 난장이가 된 난장이 나라 사람들이/ 벽 쪽을 건너다보고 있었는데,// 마음도 뼈도 자꾸 다치고 부서져서/ 난장이가 된 사람들이/ 반쯤 얼굴 가린 마스크를 쓰고/ 난장이 화가 뚤루즈 로뜨렉 전시장엘 갔었는데,// 말 타는 사람들과 춤추는 사람들이/ 액자를 채우고 있었다/ 팔다리 길쭉길쭉한 사람들이었다/ 챙 넓은 모자를 쓴/ 키 큰 무희들이/ 건너편에서/ 긴 다리를 펄쩍 펄쩍/ 들어 올리고 있었다.//

경계인(境界人)의 집 / 이건청
맥주병과 오프너 사이, 깡통과 깡통 따개 사이, 대구와 대구포 사이, 땅콩과 땅콩 껍질 사이, 거기가 내 자리일까. 진달래와 철쭉 사이, 노고지리와 뻐꾹새 사이, 멸치떼와 멸치 船團 사이, 얼룩말과 하이에나 사이, 그 사이를 걸어오는 사내, 신념과 타협, 정의와 불의, 진실과 허위, 그리고 양심과 훼절 사이, 거기 웅크리고 있는 남루 하나./ 그리고, 다시 image와 symbol, metaphor와 irony, alegory와 paradox 사이, 시와 시론 사이, 백묵과 지우개 사이, 컴퓨터와 프린터 사이, 온라인 통장과 급여 명세서, 윤군과 김군 사이, 그 막막한 허공에 세운 작은 집 하나//

민들레 / 이건청
황야였다./ 간이역 목조 의자에 아버지와 딸이 앉아 있었다./ 기차를 세우기 위해/ 아버지가 수동의 시그널을 내렸다./ 작은 등짐을 진 딸이 말했다./ 꼭, 정식 결혼식을 올릴게요./ 그래, 거기도 잡혀온 랍비 한 사람쯤은 있겠지./ 아버지가 말했다./ 멀리 연기를 뿜으며/ 기차가 오고 있었다./ 딸이 가난한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건강하세요. 딸이 말했다./ 기차가 오고 있었다./ 사이베리아, 유형지에 갇힌 사내 찾아가는/ 딸이 있었다.//

노새 / 이건청
어릴 적 미술 책에서, 책받침에서/ 자주 만나던 그림,/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을 보며/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 습관처럼 되 뇌이곤 하기도 했었는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알프스 협곡을 말을 타고 넘은 사람,/ 적의 의표를 찔러 승리의 화신이 된 사람,/ 우람한 짐승을 왼손으로 찍어 누르며/ 오른손을 높이 치켜 올린 사람,/ 영웅은 앞발을 치켜 올린 말 위에서/ 늘 붉은 망토를 휘날리고 있었는데,/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그림/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에서/ 영웅 나폴레옹을 등에 싣고/ 내 유년 속으로 달려오던 말,/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말들이 있었는데,// 그런데, 그런데,/ 보나파르트가 탔던 게, 실은 아주 작은 몸집의 노새였다니,/ 험준한 알프스 협곡에서 노새를 몬 것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아니라/ 전문 노새 몰이꾼이었다니,/ 봉헌된 허상이 쌓이고 겹쳐지면서/ 거짓도 역사가 된다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구나, 노새여/ 영웅을 등에 태우고/ 비틀비틀 알프스를 넘은 노새여/ 정치의 충복이 된 예술이/ 영웅의 허장성세를 위해/ 노새여, 너를 버리고/ 우람한 말 한 마리를 그렸구나/ 암말과 수탕나귀의 교배 잡종/ 노새여,너는 없고,/ 세상엔 빌려온 우람한 말들이/ 너 대신 앞발을 치켜들고 멈춰 서 있구나/ 노새여, 지워진 노새여/ 거짓도 역사가 되는/ 이 풍진 세상의 노새, 노새들이여.//
* 자크 루이 다비드: 1748~1825. 프랑스 출신 화가.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을 그렸다.

남루襤褸 / 이건청
안토니오 가우디가/ 사그라다 파밀리에 성당 앞에서/ 전차에 치였을 때, 전차 운전수는/ 남루한 작업복을 입은 그가/ 대성당 건축책임자라고는 생각 못하고/ 상처 깊은 사람을 전차 길 옆으로 치워놓고/ 가던 길로 가버렸다고 한다.// 지나가던 사람이 택시를 세웠지만/ 운전수가 남루의 사람을 스쳐보곤/ 그냥 지나쳐 갔다고 한다/ 늦게서야 응급실에 닿았지만/ 병원이 또 이 남루의 사람을/ 내쳐버렸다고 한다./ 아주 늦게서야/ 버려지고 버려진 이 남루의 노인이/ 조그만 시립 병원에 닿았는데/ 겨우 병상에 눕혀졌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에, 위대한 꿈의/ 전당을 세워가던 세기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남루에 가려 병상에 눕혀졌다가/ 거기서 숨이 멎었다 한다./ 안토니오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에,/ 세계적 대성당의 설계 시공자/ 남루에 가려진 채 버려져 죽은…//

정직한 시인 / 이건청
그는 직업적인 단식가였다*. 굶는 것이 특기였다. 서커스 장에서도,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외진 구석이 그의 무대였다 광대가 굶기 시작하면 서커스 단원이 그의 앞에 단식일 수를 바꿔 달았다. 단식일 수가 늘고 살이 빠져가면서 태연히 웃어 보이는 것이 그의 연기였다. 열광하는 관객을 꿈꾸며 그는 굶고 또 굶었다. 광대가 굶고 단식일 수가 늘어가면서 광대가 그의 연기에 생명을 걸어도, 그의 굶는 연기를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무관심 속에 버려진 광대는 잊혀진 자리에서도 정직하게 일했다. 그는 굶고 또 굶었다. 삶과 죽음의 하이얀 경계에 서서도 지나쳐가는 사람들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 프란츠 카프카 「굶는 광대」에서

유리병 속의 시 / 이건청
시인 이작 카체넬존은 가스실에서 죽었다/ 1943년 10월부터 1944년 정월까지/ 그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죽음을 시로 적었다/ 운율까지 갖춘 서정시였다/ 사람이 부서져 비누조각이 되는 날/ 머리털이 벗겨져 양말이 되는 날/ 날 흐리고 비 오는 세상/ 몇 마리 멧새가 오고, 또 가기도 했을 것인데/ 시인 이작 카체넬존이 죽은 후/ 아우슈비츠에 남은 사람들이/ 죽은 시인이 쓴 시를/ 여섯 개의 유리병에 넣었고, 밀봉해서/ 마당의 전나무 아래 땅을 파고 묻었다/ 그리고/ 그리고, 시인이 죽고 없는 세상/ 하루 종일 장맛비 내리는/ 창밖을 향해 앉아/ 죽은 시인이 남기고 떠난 시를 펼치니/ 젖은 새 한 마리 날아와/ 낡은 책장 위에 날개를 접는다/ 전나무 밑에 묻힌 유리병 마개를 열고/ 60여 년을 파득여 내게 온 새/ 시인 이작 카체넬존……//

팔레스타인 / 이건청
이스라엘에서 발사된 포탄이/ 담장 너머 가자지구에 터지자/ 아이들 몇 한꺼번에 쓰러진다./ 한 아이, 머리 없는 몸통 되어 뒹군다.// 이스라엘 스테롯 산 정상에/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 구경을 하고 있다. 포탄이 날아갈 때마다/ 환호성이 터진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이스라엘 여자도 있다.//

무너지는 날들의 케이프타운 / 이건청
낡고 지친 범선 한 척 되어 내가 케이프타운에 가면. 아주까리 윤기 흐르는 까아만 씨앗들 그래도 맺혀 있을까. 아이들은 그냥, 그 길을 걸어 시냇가로 가서, 흐르는 물에 침식되어가는 들판 끝, 벼랑 위에 서서 흘러가는 시냇물을 바라보고 있을까. 이마에 두 손을 붙이고 황혼에 젖은 하류를 바라보고 있을까. 깜장 고무신 다 닳아버리고, 흩어져 버리고 이제는 낡고 지쳐버린 내가 범선 한 척 되어 케이프타운에 가면,//

레밍의 날들 / 이건청
떠돌이 쥐 레밍 떼가/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걸 본 적이 있다/ TV 화면이었는데/ 들판을 떼 지어 달려온 것들이/ 벼랑 아래 바다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풍덩 풍덩 뛰어내리는 것들 뒤에/ 뛰어내려야 할 것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툰드라에 굴을 파고/ 나뭇잎이나 새싹, 줄기, 뿌리를/ 잘라 먹고 살던 것들이/ 자꾸자꾸 새끼를 길러내서/ 들판을 그득 채울 때가 되면/ 다른 들판을 찾아 떠난다는데/ 귀가 작고 다리가 짧아서/ 들판도 하늘도 바라보지 못한 채/ 앞장 선 것들만 일심으로 따라 가다가/ 벼랑을 만나 풍덩 풍덩 떨어져 죽는데/ 멈출 곳에서 멈추지 못한 것들이/ 돌아서야 할 곳에 돌아서지 못한 것들이/ 앞선 것들의 뒤만 좇아가다가/ 풍덩풍덩 벼랑으로/ 밀려 떨어져 내린다는데……//

피에타 / 이건청
마리아가 아닌/ 내 어머니 이 밤/ 아들의 병상에 오셔서/ 주름진 손으로/ 밤새 늙은 아들을 품어 안고/ 계시다가/ 새벽 녘/ 당신의 백골 쪽으로/ 가시는구나,// 뒤 돌아보며,/ 뒤.돌.아.보.며./ 마가목 숲을 넘어/ 흩날리며/ 가시는구나.// 마리아가 아닌/ 작은 여자,// 밝은 후광 속의/ 내 어머니.//

모란을 보며 / 이건청
모란꽃이 피었다./ 세르게이 에세닌,/ 그대 집 뜨락에 와서/ 울다 간 새들은/ 으스러진 핏빛/ 꽃잎 몇 개씩을/ 물어다 놓고 간 모양인데// 세르게이 에세닌,/ 가서는 오지 않는 것들의/ 아픈 상처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서/ 꽃을 피워 올리고,/ 나이 어린 당신이/ 모란꽃 흐드러진 봄날 모두를/ 맨 몸으로 떠받치고 있다.// 힘겨운 서른 살 당신이 오늘,/ 기진한 채/ 모란 큰 꽃잎처럼/ 저물고 있다.// 스카프에 목이 졸린/ 마흔 일곱 살 당신의 아내/ 이사도라 덩컨처럼 기진해서/ 툭툭 떨어져 내리고 있다.//

애꾸눈 재크 / 이건청
‘애꾸눈 재크’/ 마론 브란도, 칼 말든 주연./ 은행강도 두 사람 사이의 배신과 복수,/ 동료를 배신하고 돈 망태를 챙겨 혼자 도망친 도적 칼 말든이/ 정의의 수호자 보안관이 되어 있고,/ 동료의 배신으로/ 오래 감옥에 갇혔던 마론 브란도는/ 탈옥한 뒤 복수에 나서는데…// 영화 원제 One-Eyed Jacks,/ 애꾸눈 재크,/ 시쳇말로 시각장애우 재크,/ 왼쪽 눈이 닫혔거나/ 오른쪽 눈이 닫힌 사람들끼리만 모여 사는/ 애꾸눈의 나라/ 재크와 재크와 재크들의 광화문 광장에/ 폭설이라도 뿌려주었으면,/ 눈이여 내려서/ 때 묻은 세상 덮고 지고, 덮고 지고/ 왼쪽도 오른쪽도 없는/ 흰 눈 세상 가고지고/ 되고 지고…//

화석물고기 / 이건청
박물학자 루이스 아가사가/ 남아프리카 다마스카르에서/ 물고기 화석 하나를 찾았다./ 1836년./ 고생대 데본기에서/ 중생대 백악기 사이의/ 퇴적층,/ 견고한 돌 속에/ 화석으로 갇힌,// 발견자는 이 화석 물고기를/ 실러캔스(coelacanths)라 불렀다./ ‘속이 빈 등뼈’라는 뜻./ 6,500만 년 전 백악기 화석에 몸을 남기고/ 칠흑의 시간을 따라간,/ 잊혀진,/ 잊혀진 것이 된…// 박물학자 루이스 아가사는/ 이 화석물고기의 후손들이/ 6천 5백만 년을 살아서/ 물 속에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는 걸,/ 알 수 없었다.// 박물학자 루이스 아가사는/ 바라보고, 바라보았다./ 이상한, 낯 선 물고기 화석이었다./ 남아프리카 다마스카르.//

티티새들은 체 게바라를 모른다 / 이건청
칠레의 혁명군 대장 체 게바라가 죽은 후에도 티티새들은 그 숲에서 티티새들끼리 모여 살았다. 정부군 매복조의 AK소총이 일제히 불을 뿜는 총소리에 놀라 잠시 날아올랐을 뿐, 7발의 총탄에 벌집이 된 체 게바라가 지상을 아주 떠난 후에도 티티새들은 티티새들끼리 지저귀면서 맹그로브나무 숲에 날개를 접었다. 빨치산 대장 체 게바라가 죽고 없는 밀림에서 티티새들은 알을 낳고 새끼를 길렀다. 티티새들은 체 게바라를 모른다. 어째서, 의사였던 그가 청진기를 버리고 총을 잡았는지, 반쯤 찢어진 포스터에 검은 윤곽으로만 남은 그가 아직도 뜨거운 불인지, 티티새들은 모른다. 알 턱이 없다.//

우중(雨中) / 이건청
연해주 파르티쟌스크를 여행 중, 무명용사들의 묘지를 둘러보게 되었다. 우산들을 쓰고 야트막한 진창길을 걸어갔다. 추운 조선인 병사들은 신념을 위해 싸웠다. 소총 몇 자루, 수류탄 몇 개, 가난한 파르티쟌들이었다. 소총을 든 조선인 파르티쟌들은 자꾸 죽었다. 죽은 이들을 위해 파는 땅은 늘 얼어 있었다. 그들은 얕게 묻혔고, 얕게 묻힌 시신을 잡초들이 감싸 안았다. 70년, 80년, 90년이 지나면서 무명이 된 시신들이 풀덤불이 되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 머물다 스쳐가는 한국인 관광객들 속에 섞여 가면서 나는 우산을 쓸 수 없었다. 추운 죽음에 드리는 작은 경의가 되길 바라며 나는 비에 깊이 젖었다.//

 



이건청(李健淸) 시인
1942년 경기도 이천에서 출생하였다. 한양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목월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녹원문학상, 고산문학대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시집으로 《이건청 시집》,《목마른 자는 잠들고》,《망초꽃 하나》,《하이에나》,《코뿔소를 찾아서》《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푸른 말들에 관한 기억》,《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반구대암각화 앞에서》《굴참나무 숲에서》,《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등이 있다. 이건청은 김소월 정지용 박목월로 이어지는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이으면서 서정의 폭과 깊이를 심화 확장시켜온 시인이다.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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