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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도지현 시인

부흐고비 2021. 12. 10. 08:37

도지현(都智鉉) 시인
경북 성주 출생으로 본명은 도성희.

《대한문학세계》에서 <여자 나이 쉰에는>으로 등단하였다.

대한문인협회 특선 시인선·향토문학상·한국문학발전상·순우리말 글짓기 공모전 동상, 텃밭문학상, 대한영상문인협회 영상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물푸레나무를 닮은 여자』가 있다.

 




1월의 기도 / 도지현
새해 새 마음이/ 고운 꽃신 신고 자박자박 걸어와서/ 모든 이들의 마음에/ 포근하게 안기게 하소서// 사랑하는 마음이/ 하얀 눈 쌓이듯 소복소복하게 쌓여/ 모든 이들의 가슴에/ 붉은 꽃 활짝 피어나게 하소서// 새로운 세기를 향한/ 옹골차고 창조적인 비전을 꿈꾸고/ 모든 이들의 영혼 속에/ 신세계를 향한 불꽃을 피우게 하소서// 이웃이란 벽을 허물고/ 너와 내가 우리가 되고 또 하나 되는/ 서로가 아우르는/ 배달 겨레의 혼 오롯이 담게 하소서//

2월이란 달은 / 도지현
난초 꽃처럼 청초하고/ 청아한 향기가 감도는 달/ 일년 중 가장 짧은 달이기에/ 애련한 마음이지만/ 가장 강인한 달이기도 하다// 밤하늘 저 끝에 걸린/ 단아한 초승달 같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내 어머니 같은 달이기에/ 가장 사랑하고 싶은 달이다// 가장 짧은 달이기에/ 더욱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기울인 정성만큼/ 풍요를 약속해 주는 달/ 일년 중 가장 중요한 달이다//

6월의 숲에서 / 도지현
6월엔 울창한 산/ 그 숲에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도 내 눈에는/ 그 곳에 가면 눈물을 봅니다.// 철철 흐르는 눈물/ 슬픔으로 가득한 가슴이 존재해/ 그것을 보는 나는/ 찢어지는 가슴 무너지는 아픔입니다// 포화가 멈춘 자리/ 흩어져 있던 시신의 잔해가 있고/ 보고 싶은 아버지가/ 선혈을 흘리고 서계십니다// 흘린 눈물의 자리엔/ 초록의 물결 우뚝 솟은 樹林들/ 이제는 우거진 숲/ 나무 하나하나가 피고 눈물입니다//

9월에 드리는 기도 / 도지현
9월엔 기도 하나니/ 갈바람 황량하게 불어도/ 마음이 가난한 이에게는/ 봄에 부는 훈풍이게 하소서// 가을 들녘의 풍요로움/ 풍요 속에도 빈곤은 있나니/ 누구의 마음속에서도/ 시름과 한숨이 없게 하소서// 시리게 푸른 하늘 아래/ 시나브로 붉어가는 산야/ 그 붉음이 많은 이의 가슴에/ 사랑 꽃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여름 내내 괭이질 한 농부의/ 가슴 골로 여울지는 땀/ 힘들여 일한 그들에게/ 풍요를 가득 안겨주게 하소서// 삭막에 물드는 계절이지만/ 바람 속에 낭만이 묻어오니/ 촉촉하게 젖어드는 가슴 되어/ 모든 이들이 시인이게 하소서//

9월의 당신은 / 도지현
어느새 창가에/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나붓하게 내려앉았어요// 언제부터인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가슴에 알알이 수를 놓아요// 소슬한 바람이/ 시린 가슴에 파고들면/ 뻥 뚫린 마음 때론 허전해져요// 그렇게 푸르던 잎새/ 점점 갈 빛으로 가고 있어/ 나를 보는 것 같아 애잔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여물어 가는 계절/ 9월의 당신은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10월 서곡序曲 / 도지현
스산한 바람이 불어/ 가슴까지 시려 오는 날이다/ 까칠해진 살갗에/ 송골송골 맺힌 소름들// 세월의 수레바퀴 속에/ 계절을 돌아 날아온 기러기들/ 무사히 사열식 끝내고/ 안착한 들녘은 허허롭다// 비워지는 것이 있으면/ 다시 채워지는 것도 있기에/ 가슴 가득 고여오는/ 은은한 국화 향기가 정겹다// 이제 곧 서리 내리겠지/ 텃밭의 채소들 걷어 들여야겠다/ 이것저것 가름해 두어/ 겨우살이 밑반찬으로 유름 하리//

11월에 쓰는 시 / 도지현
스산한 바람이 말을 한다/ 떠날 때가 되었다고/ 그리고/ 또 올 때가 되었다고// 밀려가야 하는 것은 가야하고/ 또 와야 하는 것은/ 와야 하는 것/ 다 시가 있고 때가 있다고// 순환하는 것은 생명이 있어/ 밀려갔다가/ 또 밀려온다고/ 그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것// 가슴 아픈 별리는 있을지라도/ 만남의 희열도 있으니/ 우리/ 더 이상의 눈물은 보이지 말자고//

12월에 꿈꾸는 사랑 / 도지현
하얗게 피어나는 기다림이 있다/ 천사의 미소 머금고/ 꿈 나래 펼치듯/ 아름다운 사랑이 오길 꿈꾼다// 조그만 가슴에 품은 꽃씨 하나/ 하얀 그리움으로 피어나/ 애오라지 나만이 소유할 수 있는/ 숙성 된 와인 맛 같은 사랑이고 싶은//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과 대지에서/ 황홀하리 만치 아름다운/ 하얀색 주단을 깔아 놓은/ 순백의 영혼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싶다// 그대와 나 그리고 우리라는 굴레 속에/ 영원이라는 단어 아로새기고/ 가슴, 가슴마다 에는/ 순백의 순수한 사랑을 꽃 피우고 싶다//

12월의 기도 / 도지현
하얗게 내린 눈 위로/ 누군가 지나간 발자국/ 그 위로 또 눈이 쌓이더라도/ 다시 찍는 자국은/ 사랑의 흔적이게 하소서// 차가운 바람/ 코를 베에 물고 가더라도/ 가슴은 봄 뜨락의/ 따사로운 햇볕이게 하소서// 빈한한 가슴에/ 허기까지 겹쳤다 하더라도/ 신이시여/ 그들의 곳간은 풍요롭게 하소서// 파리한 영혼 삭막하더라도/ 여름 숲 속의 윤기 나는 푸름/ 가을 들녘의 넉넉함이/ 가슴을 가득 채워/ 차가운 겨울밤 따스하게 지핀 온기/ 신이시여/ 모든 이들에게 밝음을 주는/ 별보다 찬란한 등불을 주소서//

물푸레나무를 닮은 여자 / 도지현
물에 우려내면/ 파란 물이 우러날 것 같이/ 언제나 창백한 얼굴을 하고// 아무리 꺾어도/ 잘리지 않고 휘어지기만 해/ 아무나 건드리기 쉽지 않은 여자// 무슨 슬픔이 그리 많은지/ 눈망울엔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만지기만 해도 그냥 쏟아 낼 듯해// 햇살이 비춰주면/ 창백하던 얼굴이 뽀얗게 피어나/ 방긋이 미소 지으면 세상 근심이 사라져// 가슴에 폭 품어 주면/ 포근하게 안겨들 것같이 가녀린 몸/ 그래서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는 여자//

삶이란 모두가 그런 거더라 / 도지현
그럼에도 하늘은 저리 푸르고/ 옷섶을 파고드는 바람은/ 새털만큼 부드럽고 가벼우니/ 절망의 끝에서도/ 희망을 언제나 존재하더라// 천 길 낭떠러지에 서 있다 해도/ 우리 그것을 절망이라 하지 말자/ 상처란 언젠가 치유되는 것/ 거친 세상일지언정/ 너와 나 도움닫기 할 곳은 있으리니//

봄 꽃 피는 아름다운 날에 / 도지현
환하게 웃는/ 그 사람에게서/ 시원하게 끓여낸/ 냉이 국 냄새가 난다// 코끝에 스미는/ 냉이 국 냄새가/ 아련한 그리움으로 머문/ 고향 마을로 데려가는데// 지금쯤 고향엔/ 울긋불긋 들녘에/ 환한 미소 머금은/ 여인의 향기 진동하겠지// 품어도 좋을/ 아름다운 꽃 피는 날/ 모든 시름 덜어내고/ 나풀나풀 춤추는 나비가 될까//

봄 속에서 꿈꾸는 행복 / 도지현
연둣빛 꿈들이 발돋움하고/ 남촌에서 보내는/ 따스한 바람으로/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 편다// 포근하게 안겨오는 꿈 소망들/ 희망으로 부푼 가슴/ 향그러운 봄 향기와/ 따사로운 햇살로 기지개 켠다// 사랑스럽지 않은 것 없고/ 따스한 시선들이 마음에 묻어나/ 삶의 의욕이 용솟음치니/ 모든 것이 생동하는 계절이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들과/ 보드라운 아가 손/ 싹들이 솟아나는/ 봄은 행복을 꿈꾸는 이들의 계절//

봄 여울목에서는 / 도지현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여울은 파란 하늘을 품고/ 하늘은 여울을 안고/ 서로가 간질이는 소리인가//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우듬지 새로 돋는 가지에 달려/ 방그레 웃는 모습이/ 언젠가 본 아이와 닮았다// 온 세상 다 품은 넉넉한 햇살/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파란 희망을 나눠 주기 바빠/ 해진 신발이 너덜거리는데//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길/ 바람은 잘도 찾아다니며/ 늦잠 자는 아이들 깨워/ 먼 산 메아리 찾으러 가자 하네//

봄 햇살 머무른 자리 / 도지현
사부작사부작/ 무언가가 긁는 소리/ 어디선가 들리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동토 아래/ 생명이 잉태되고/ 탄생을 알리는 서곡이/ 이제 막 악보를 뚫고 나온다// 모든 생명의 서사시/ 자연은 시인이 되어/ 인고의 세월을 보낸 시를 쓴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어느 색이 더 뛰어나지 않고/ 모두가 아우르며 화합하는데//

가을 수채화 / 도지현
반려할 수 없는 세월 속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은/ 온 산야를 불태우고/ 시나브로 가슴까지 물들인다// 갈바람으로 흐르는 구름은/ 물빛 그리움으로/ 야멸차게 머문 하늘에/ 한 땀 한 땀 사랑을 수놓았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를/ 광대한 캔버스에/ 오색 물감이 뚝뚝 떨어지는/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다// 누군가의 사랑이 되고 그리움인/ 가을의 서정에 젖어들면/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시인, 또는 화가가 아니 될 수 없어라//

가을 어느 날 오후 / 도지현
갈 빛 그리움이 하늘에 걸렸다/ 서걱거리며/ 시린 가슴에/ 서늘하게 다가서는 계절의 순환// 결코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시나브로 다가서는/ 갈색 눈동자를 가진/ 외로움에 젖어 든 가을 닮은 그대// 흐르는 물조차도 계절을 담아/ 낙조를 품어 안고/ 나무에게 얻은 갈색 배 띄워/ 정처 없는 길을 흐르고 흘러간다// 쓸쓸함이 감도는 가을의 하늘빛/ 바라보는 눈도 시리고/ 가슴까지 싸해지는/ 소슬한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의 오후//

가을비 내리는 날의 그리움 / 도지현
그리운 이여!/ 우린 뜨거운 가슴으로 비속을 걸었지/ 식지 않은 열정으로 가슴은 고동치고/ 뜨거운 눈길이 사랑의 언어가 되었지// 눈물겹도록 사랑하던 이여!/ 하염없이 흐르는 빗속을/ 뜨거운 체온으로 서로 녹여가며/ 하나의 우산으로 서로 받쳐 주었지// 이렇게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그 날의 뜨거운 열정/ 그 날의 뜨거운 포옹/ 그 날의 뜨거운 입맞춤 지금도 생각나// 보고 싶은 이여!/ 이제는 볼 수 없다 하여도/ 내 가슴속엔 그대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니/ 그대는 영원한 사랑 나의 사랑, 나의 분신이어라//

가을엔 모두가 그리움이더라 / 도지현
가을빛에 물든 잎새/ 온 산야를 불태우면/ 가슴속에서도 타오르는 불길/ 아직 잊지 못한 그리움이다// 하얀 머리 풀은 억새/ 바람 속에 흐느끼는 소리/ 오지 않는 임 기다리다 지친/ 그리움의 한 서린 노래이던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가슴을 싸늘하게 적시면/ 임 그리워 눈물 지는/ 내 가슴에 내리는 차가운 비// 눈을 돌리는 곳마다/ 애잔한 그리움에 머무는/ 이 가을엔 가슴 시리게 하는/ 모두가 그리움 아닌 것이 없더라//

가을은 가을은 / 도지현
가을은 바람부터 색깔이 다르다/ 붉은 바람이 불어/ 온 천지를 붉게 물들이고/ 마음마저 붉게 물들이는 계절이다// 가을엔 코를 스치는 내음에서/ 커피의 향기가 스며들어/ 그이의 체취와 닮아서일까/ 아련한 그리움이 밀려오는 계절// 가을의 미소를 보면 황홀의 극치/ 혈류를 타고 도는 전율에/ 어쩌지 못하는 오르가슴/ 눈으로 가슴으로 전신에 퍼진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축복/ 황금빛 바다의 잔물결/ 가을은, 가을은 아름다움과/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주는 계절이다//

가을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 / 도지현
기찻길 옆 곱게 핀 코스모스가/ 산들바람 불어오니/ 홍조 띈 얼굴로/ 하늘거리며 어여쁘게 춤을 춥니다// 부끄러워 다소곳이 숙인 고개/ 고추잠자리 날아오자/ 부끄러움도 잠시/ 허리를 꼬면서 교태를 부립니다.// 그 모습에 반한 고추잠자리/ 코스모스 주위를 맴돌며/ 긴 꼬리 힘주며/ 멋진 모습 한껏 과시하고 있습니다.// 한낱 미물도 저러하거늘/ 아름다운 계절/ 이 가을은/ 사랑하기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

가을의 노래 Ⅰ / 도지현
가을의 푸른 하늘에/ 붉은 낙엽의 팔랑거림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됩니다// 갈바람 스치는 서걱거림/ 가슴속에서 들리면/ 살며시 귀 기울이는 밀어입니다// 뜨락의 귀뚜라미 소리가/ 오늘따라 정겹게 들려/ 포근하게 가슴을 적셔주는데// 활활 타오르는 산자락/ 낙조와 조우하면/ 마음까지 붉음으로 물듭니다// 가을은 모든 것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는 계절/ 낭만의 강이 여울져 흐르는데//

가을의 속삭임 / 도지현
귓속을 파고드는 그리움의 언어들/ 스산한 바람결에/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데// 떨어지는 잎새 위로 흐르는 눈물/ 너도 가고 나도 가고/ 온 세상이 무심하게 가고 있어/ 돌아앉은 세월이 눈물겹다// 하지만 어쩌겠느냐/ 꽃이 피면 지고, 세월 가면/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인 것을// 소슬한 바람결에 들리는 소리/ 너무 서러워하지 말라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가을이 그렇게 전하라 한다는데//

가을이 가기 전에 / 도지현
갈 빛 그리움에 물든 마음/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고/ 떨어지는 잎새에 눈물짓는데// 언젠가는 만나려니 하지만/ 그것이 언제일지 몰라/ 기다림의 순간은 여 삼추// 이 가을 가기 전에 만나/ 노란 은행잎 깔린 거리를/ 두 손잡고 걸어보고 싶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아는/ 무언의 대화에 심취하고/ 두 가슴에 통하는 길을 내자// 모든 것이 알알이 결실 맺는/ 이 가을에 우리 사랑도/ 튼실한 열매를 맺으면 좋겠네//

깊어 가는 가을 속에 / 도지현
적막이 흐르는 고즈넉한 밤에/ 무르익어 가는/ 가을을 알리는가/ 알밤 익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계절이 한 무언의 약속이었던가/ 해 마다 이 맘 때면/ 알밤 터지는 소리가/ 깊어 가는 가을을 예고해 준다.// 알밤 터지는 소리 들리면/ 내 가슴속에도/ 싸하니 찬바람이 불어/ 휑하니 빈 가슴 시리디 시리다.//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가는 단풍/ 낙조에 물든 하늘/ 내 인생도 저러하리라/ 이제 곧 서리꽃도 피어나겠지...//

그대의 가을은 / 도지현
낙엽 흩날리고/ 햇살 찬란한 날/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투명한 유리알 같아 눈이 부신다// 빛의 산란으로/ 파랗게 물든 하늘은/ 가을 특유의 구름을 만들어/ 구름 사이로 보이는 태양은/ 마지막 빛을 쏘아 주기에 힘에 겹다.// 서서히 기울어 가는 태양으로/ 흰 구름은 붉게 변하고/ 가로수의 초록빛도/ 탈색되어 노랗게 변하니/ 가을의 낭만으로 깊이 빠져드는데// 때때로 쓸쓸해지는 마음/ 어딘가 훌쩍 여행을 가고 싶다/ 아름답게 채색된 가을의 숲/ 내 마음이 이러할 진데/ 그대의 가을은 어떠신지요.//

늦가을 소묘素描 / 도지현
붉음은 붉음대로/ 노랑은 노랑대로/ 더는 찬란할 수 없는/ 빛을 발하더니// 이젠 시나브로/ 사위어 가는 모습에서/ 이울어 가는 내가 보여/ 가슴이 저미고 아프다// 왜, 저 하늘은/ 그 푸름을 벗어버리고/ 잿빛으로 변해가며/ 눈물을 그리도 흘리는지// 쪼그라들고/ 이랑 진 그 모습은/ 내어줄 것 다 내어준/ 울 엄마의 눈물 젖은 손등/ 그래서 더 애잔타//

당신께 드리는 가을 편지 / 도지현
오늘따라/ 달빛은 왜 저리 밝고 푸른지/ 빛을 받는 모든 것들에/ 파란 심줄이 투명하고/ 그 속엔 그리움이 스며있네요// 그러지 않아도/ 당신 생각에/ 불면으로 뒤척이는 밤// 뒤란 은행나무/ 스쳐 가는 바람 소리에/ 마음마저 스산해지는데/ 나 대신해 울어주는 귀뚜라미/ 이 밤의 적요를 깨웁니다// 기억의 숲에 머물던/ 당신과 함께 한 순간들이/ 뇌리를 스치면/ 목울대까지 차 오르는/ 슬픔을 삼켜야 함은 일상입니다// 이 밤 당신 그리움에/ 푸른 달빛에 쓴 편지 띄웁니다//

내 인생에 가을 오면 / 도지현
청청하던 시절가고/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가니/ 삶의 나이테가 늘어난다// 봄에 뿌린 씨앗/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 가고/ 가을엔 결실을 걷어들이는데// 그 동안 지은 농사가 어땠는지/ 내 인생의 가을엔/ 얼마만큼의 결실 걷을까// 살면서 회한 남기지 말자/ 언제 어느 때 뒤돌아 봐도/ 궤적만큼은 빛나게 하자// 풍요의 가을이니만큼/ 넉넉하고 여유로운 가슴으로/ 내 인생을 갈무리해야겠다//

낙엽 / 도지현
창 너머에 세월이 진다/ 시나브로 저물어가더니/ 어느 결에 가뭇없이 사라진/ 그 세월 속에 나도 지는데// 세월 끝에 걸린/ 가년스러운 목숨이/ 가랑가랑한 목소리로/ 쉼 없이 뱉어내는 소리가/ 안쓰러워 가슴이 아프다// 살아도 산목숨 아닌/ 죽어도 죽은목숨 아닌/ 그 삶 속에서 버틴다는 건/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선 것// 세월 끝에 선 너나 나나/ 어디 하나 다를 바 없는/ 모태는 달라도 일란성 쌍둥이//

낙엽 편지 / 도지현
일체의 번뇌를 해탈하고/ 니르바나에 이른/ 한없는 가벼움이여// 모든 가진 것 보시하고/ 겸양과 겸손의 미덕으로/ 끝없는 헌신과 희생을/ 몸소 실천한 지혜로움// 새털 같은 가벼움으로/ 한 세상 살다가/ 보살의 마음으로/ 정토를 향하는 아름다움// 이제 그대에게 보내리/ 비로자나불 되라/ 축원하는 내 마음의 서신을//

낙엽이 가는 길은 / 도지현
자연이나 사람이나/ 머물러 있어야 할 때와/ 스스로 떠나야 할 때가 있더라// 한 세상 살아가며/ 제 소임을 충실히 마치고/ 미련 없이 훌훌 털고/ 깃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며/ 남은 자양분/ 머무는 자에게 헌신하는 것// 청청한 올곧음으로/ 자식들에게 다 내어주고/ 허허한 가슴 되어/ 홀연히 떠나는 길은/ 보시와 희생의 길이어라//

겨울 거리에서 / 도지현
고독을 품은 하늘이 운다/ 차가운 기류가 가슴으로 스미면/ 또 다른 고독이 고개 짓하며/ 빌딩 숲 사이에 서 있다// 윙윙 우는 전신주가 아프다/ 귀를 때리는 차가운 바람이 불면/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고독한 에뜨랑제가 된다// 바람이 쓸고 간 자리는 황량하고/ 먼지를 뒤집어쓴/ 졸고 있는 가로등에서/ 하루의 고된 삶이 물씬 풍기는데// 이제 모든 것을 벗어버린/ 앙상하게 말라 스스로 지탱하기도/ 버거운 가로수는/ 긴 그림자 드리우며 가로에 눕는다.// 진한 고통과 고독에 휩싸인 거리는/ 살려달라 아우성치지만/ 투명인간이 된 사람들은/ 서로가 불신과 무관심으로 일관하는데//

겨울 판타지아 / 도지현
나는 볼 수 있습니다/ 눈을 감으면/ 아름다운 세상의/ 순백으로 만든 얼음 궁전을// 영혼이 자유롭게 다니며/ 환상을 꿈꾸는/ 하얀 세상의 아름다움/ 천사가 나래를 폅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온 세계를 볼 수 있는/ 투명한 눈을 주신/ 하늘의 신도 만날 수 있죠// 겨울만이 꿈을 꿀 수 있는/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투명한 꿈 열매들이/ 조롱조롱 맺힌 겨울 동산입니다//

겨울을 닮은 사람 / 도지현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로/ 씩 하고 웃는 모습에서/ 어딘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난다// 조금은 모자라게 보이는 사람/ 볼 때마다 마음이 싸하고/ 꼭 안아 주어야 할 것 같아/ 가슴을 아리게 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 몸짓 하나하나에서/ 외로움의 늪을 허우적거리는/ 날개 잃은 새로 보여/ 애잔한 슬픔이 목구멍에서 울컥한다// 허공을 더듬는 공허한 눈동자/ 투명하다 못해 맑은 크리스털/ 깜박거리면 그대로 녹아서/ 주르륵 눈물 되어 흘러내릴 것 같은데//

겨울이 걷는 소리 / 도지현
타박타박 걷는 소리가/ 땅 끝에서 들리는가 했더니/ 언제 내 문전에 와서/ 푸른 입을 내밀고 들어오겠단다// 남루한 입성에 얼은 몸/ 가년스럽고 처량해/ 끝내 문을 열어 주어야 했다// 빙하보다 더 차가운 몸/ 내 뜨거운 가슴으로 녹여/ 한 계절 따뜻 하자 했는데// 기어이 가야 한단다/ 저 차가운 벌판을 지나/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다른 세상으로/ 온 천지에 하얀 서리꽃과 눈발 날리며/ 멀리, 또는 가까이 들리는/ 타박타박 하는 소리//

너 떠난 뒤에 / 도지현
상실의 시간/ 텅 빈 고요와 넓은 구덩이/ 모든 것이 송두리째/ 허공으로 바람과 함께 갔어// 인적 끊긴 가로에/ 고적한 침묵만 흐르고/ 가로등마저 청맹과니/ 장막이 내려져 보이지 않는 빛// 살아 꿈틀거리는 것/ 그래서 나는 아직 살은 걸 알아// 산 자와 죽은 자/ 그 사이의 영혼의 교류가/ 이제 적막이 가로막았다// 너를 보내고 나는/ 저 높은 산이 가슴에 얹혔어//

그리움 1 / 도지현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당신 그리움에/ 겨울 바다를 찾았어요./ 너울진 바다는/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투박한 방파제에 부딪칠 때마다/ 나대신 통곡을 하는데/ 내리는 함박눈은 눈물이 되어/ 네 가슴에 여울져 흐르니/ 당신 아시나요/ 이 눈물의 의미를.../ 잊혀지지 않는 당신 그리움에/ 차가운 바다의 망부석이 되었어요.//

그리움으로 나는 새 / 도지현
내가 가는 길엔/ 늘 그대가 있었다/ 먼 옛날부터 있었기에/ 언제나 있을 줄 알았다// 물 속에 있는 고기/ 늘 숨을 쉬고 있는 공기/ 그래서 물도 공기도/ 귀한 줄 모르고 살았지// 그대가 없는 날부터/ 나란 존재가 보이지 않아/ 숨도 쉴 수 없고/ 눈도 감을 수 없어// 이젠 내가 그대 찾아/ 어디론가 는 가야 해/ 땅에서 찾다 못 찾으면/ 하늘에서라도 찾을 거야//

그대 그리움의 나무 / 도지현
다람쥐가 묻어 둔 것일까/ 아님 새가 지나가다/ 씨를 하나 떨어뜨렸을까/ 가슴에 싹이 나고 나무가 자란다// 무성해진 나무는 자라나며/ 누군가를 닮아가고/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 목울대까지 치미는 속 울음/ 잘 익은 석류의 선홍빛 가슴/ 선혈이 줄줄 흘러 내리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나무/ 나무의 흔들림과 함께하는 마음/ 진종일 흔들리는 그리움// 어쩌나, 가슴이 터지게 자란 나무/ 이젠 벅차고 감당하기도 힘이 드는데//

가슴에 묻은 그리움 하나 / 도지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리움 하나 묻어 두고 있다// 보고 싶어/ 견디다 견디다 견디지 못할 때/ 살며시 꺼내 보는 그리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 같은 것/ 몰래 꼭꼭 숨겨 두었다// 외로울 때/ 그래도 내 안에 네가 있다는 것/ 그래서 위안을 삼지// 긴 여정에서/ 너와 함께 할 수 있기에/ 살아갈 버팀목이 되고 외롭지 않아//

너를 그리워하며 / 도지현
닫았던 마음/ 그 척박한 자리에/ 질긴 생명력의/ 담쟁이 넝쿨이 타고 오른다// 그 여린 손으로/ 얼마나 잘 타고 오르던지/ 뇌리까지 올라와/ 기억 장치를 열어 버렸어// 왜 하필 네가 그 자리에 있어/ 다시 그리워하게 하고/ 모든 사물이 너로 보일까// 너와의 시간들/ 투명한 이슬에 알알이 그려져/ 한 편의 영화가 되어/ 그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

노을이 지면 / 도지현
노을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만이 본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음이 투명한 사람이어야/ 느낄 수 있음이다// 어둠이 와서 삼켜도/ 검은 장막 뒤에는/ 분명 아름다운 노을이/ 존재해 있을 것을/ 믿을 수 있는 자만이 안다// 여명이 아침을 깨우고/ 중천에 떴던 해 다시 기울어/ 붉어진 하늘 아름다운 것을/ 그 사람은 안다 했다/ 가슴이 환하고 투명하기에//

그치지 않는 비 / 도지현
내가 내 마음을 모르는데/ 네 마음까지 알 턱이 없지/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왜 가슴이 이리 아프고/ 언제부터 내리는지/ 비는 그치지 않고 내 맘속에서 내려/ 그래서 질척거리고 차가워/ 그제도, 어제도, 이 순간까지//

기억을 걷는 시간 / 도지현
하얗게 바래진 기억 속에/ 흐려진 렌즈의 초점/ 가물가물해지는/ 빛 바랜 기억을 잡고 있습니다.// 서리꽃은 하얗게 피었고/ 가야 할 길은/ 얼마나 남았을까/ 지나온 시간 회오만 남습니다.// 텅 비어 버린 공간 속에/ 차곡차곡/ 채워 나가는 기억들/ 더 이상 채워지지 않아 애끓는 마음// 엉켜진 실타래 같이 풀리지 않는/ 연무 속을 헤매며/ 시간이란 외줄을/ 바우덕이 처럼 아슬아슬하게 걷습니다.//

꽃무릇 속에서 / 도지현
등줄기에 여울진 땀이/ 서늘한 바람에 말라 간다/ 인적은 있으나/ 스스로 침묵해주는 예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스님의 목탁 소리에 여민 옷깃/ 스스로 정적 속에 빠져/ 속세에서의 번뇌가 사그라진다// 길상사 가는 길은/ 마음속에 고뇌가 한 짐/ 낙타의 혹이 되어 가는데/ 목탁 소리 듣다 보면/ 천 근이 던 발길 한 근도 안돼// 한 발 한 발 옮기는 길에/ 붉게 피어 있는 꽃 무릇/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하는/ 애잔한 네 속에서 나를 본다//

꽃은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 도지현
아, 서럽게 울던 날은 언제이던가/ 꽃이 피었다 진자리/ 내 눈물로 흥건히 적시고/ 눈물이 씨가 되어/ 다시 꽃이 되니 내 눈물, 꽃으로 피어났구나.// 꽃이 피던 날 내 미소도 같이 피었거늘/ 화알짝 웃던/ 너의 모습 간 곳 없고/ 시린 눈빛의/ 나만 동그마니 앉아 안타까이 너를 그린다.// 너를 보내고 서럽게 울던 날, 그 날/ 내 가슴속에/ 파란 꽃을 피웠다/ 그 꽃은/ 너를 닮아 내 가슴을 파랗게 멍들게 했지.// 오늘 또 너를 그리워하며 두 손 모은다./ 순환의 법칙으로/ 다시 환생할/ 너를 기다리며/ 영원히 영원하게 여기 머물러 있을 거야.//

가슴에 꽃등 하나 켜렵니다 / 도지현
하나의 꿈이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 그것도 사치라 해야 할까// 모든 것은 空일뿐/ 서글픈 마음은 늘 貧者다// 슬픔은 슬픔대로/ 눈물은 눈물대로/ 빈한한 가슴 속에 여울지는데/ 미망 속을 헤매는/ 고뇌하는 내 그리움은/ 아직도 어둠이 깊어서일까// 흔들리는 마음이지만/ 내 그리움을 위해/ 환하게 불 하나 켜 두겠어요//

그대 아시나요 / 도지현
이제 감성도/ 서걱거리고 먼지가 풀썩 나는/ 남새밭 한 귀퉁이가 되었나 봐요// 촉촉이 내리는 비가/ 유리창에 와서/ 나름의 수채화를 그려도/ 예전 같은 감정이 나지 않으니까요// 그때 스카브로의 추억을 들으며/ 보랏빛 감정에 휩싸여/ 엮인 시선 풀지 못해/ 얼굴 붉히던 시절 있었던 것을// 오늘 같이 비 오시는 날/ 촉촉이 젖어 드는 가슴속에서/ 살며시 고개 들어야 하는데/ 그대 아시나요/ 그 감정마저 메말라 버린걸//

그대 잠든 밤에 / 도지현
적요한 밤 속에/ 빗방울 소리가 정적을 깨네요// 겨우내 거칠어진 대지에/ 촉촉한 생명수가 내려 주어/ 이제 막 고개 드는/ 여린 새싹들 기지개 켜겠지// 창 밖에 둔 화분에도/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 그 향기가 방으로 들어와/ 온 방이 봄으로 가득하겠지/ 그대 잠든 밤에/ 이 모든 역사가 이루어지네요//

그대의 빈자리 / 도지현
깊었던 사랑/ 그 깊이만큼의 그리움/ 귓가에 맴도는 우리의 밀어/ 아직 그대로인데/ 허허로운 가슴에 울리는 공명// 포근했던 가슴의/ 따스한 체온 아직도 느껴져/ 그대로 쓰러져 잠들고 싶은데/ 어디에도 없는 그대// 사랑 빛에 물든/ 아련한 추억 더듬으며/ 초점 잃은 눈동자 허공에 맴돌고/ 함몰된 가슴에 고인 눈물// 텅 빈 공간은 적요롭고/ 감도는 정적 속에/ 외로운 별하나 하늘을 밝히는데//

갈색 도시에서 / 도지현
태양이 쉬러 가는 시간/ 낙조에 물든 거리/ 오고 가는 이들의 가슴엔/ 서늘한 바람이 분다// 바람이 낙조와 동화하고/ 점점이 남긴 얼룩/ 짙게 깔린 보도 위에/ 유유상종, 부화뇌동이다// 노을 빛에 물든 빌딩/ 그 사이사이로 부는/ 바람 또한 노을 빛인데/ 바람소리마저 서걱거린다// 황량한 바람이 부는 보도/ 낙엽이 뒹구는 쓸쓸함/ 부산한 발길조차 외로워 보이는/ 갈색 도시의 에뜨랑제//

거꾸로 보는 세상 / 도지현
어느 것이 眞이고/ 어느 것이 虛인지/ 때로는 虛가 眞으로 보이고/ 眞이 虛로 보이는데// 세상사 모든 것이 그러더라/ 虛가 眞 같고/ 眞이 虛 같은 것// 혼돈과 혼란 속에/ 가끔은 거꾸로 보면서/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마음도 정리해 보는 것// 虛도 眞으로 보고/ 眞도 虛로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마저 열려/ 세상 모두가 아름답지 않을까//

고독이 머무는 창가에서 / 도지현
어두워지는 창에/ 고독이 우수수 떨어져/ 얼룩으로 번지고 있다// 얼룩은 점점 자라나/ 거대한 장막을 만들어/ 그대로 나를 휘감아 버리는데// 속절없이 갇혀버린/ 어두워진 내 마음/ 그 장막과 나는 하나 되어/ 고독 속으로 빨려 든다// 고독이 나인지/ 내가 고독인지 모를/ 차가운 늪 속에 떨어지는데// 가슴 광장에/ 서늘한 바람이 불고/ 추적추적 비까지 내린다//

고독한 계절 / 도지현
어느 시인이 그랬다/ 가을은 고독한 계절이라고// 시리게 푸른 하늘 봐도/ 가슴이 서늘해지고/ 외로움에 물드는 계절//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고독이 우수수 떨어져/ 마음 가눌 수 없이 허전하다// 갈바람 나뭇잎 흔들면/ 애틋한 그리움 하나/ 가슴에 채우고 싶어지는 계절// 낙엽 밟는 소리도 아픈/ 아, 가을은/ 진정 고독한 계절이어라//

괴물들의 행렬 -Me too를 보며 / 도지현
괴물들이 행군한다/ 삐까번쩍한 계급장을 달고/ 여름 개도 아니면서/ 침을 질질 흘리며/ 눈은 왜 저리 게슴츠레한가// 얼마나 큰 날개를 달았나/ 그 큰 날개로 어둠을 만들고/ 조롱에 갇힌 새들/ 마음대로 유린했지만/ 결국엔 이카루스의 날개/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더라// 끝없이 추락하다 벌레가 되어/ 굴러서 굴러서 가는 곳은/ 똥 냄새 나는 시궁창/ 평생 구린내만 맡고 살겠지//

가끔은 나도 / 도지현
언제부터였을까/ 시나브로 젖어드는 외로움/ 하늘 빛깔만큼이나 시리다// 소슬한 바람 속에/ 억새의 노랫소리 구슬프고/ 외로운 나도 같이 구슬픈데// 파도 소리 철썩하면/ 내 가슴이 아프고 파랗게 멍들어/ 온몸이 오그라드는 고통이다//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저 갈매기들은 얼마나 좋을까/ 나도 훨훨 날아 보고 싶은데// 가끔은 나도 고치가 우화 하듯/ 새롭게 태어나 저 하늘 위, 구름 위를/ 훨훨 날아 현실을 탈피해 보고 싶다//

그녀는 참 예쁘다 / 도지현
환하게 웃는 모습이 천사다/ 별반 예쁘지도 않는/ 그렇다고 밉지도 않는/ 투명하게 보이는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다// 소박한 텃밭에서/ 입에 들어가는 채소란 채소는/ 비료 하나 주지 않고/ 알콩달콩 길러서/ 신선처럼 잘 먹고 잘 산다// 머루랑 달래랑 먹고/ 청산에 살며/ 고라니와 청설 모가 친구하고/ 가끔 야생 공작까지 합세하여/ 허스키를 사랑해서/ 자기가 허스키해진 여자// 투명한 수정 같이 맑게 사는/ 마음이 아름다운 그녀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천사다//

가난한 시인의 남편 / 도지현
향긋한 커피 한 잔에/ 마음이 부자가 되는 시간/ 세상 누구보다 마음이 부자인/ 그 사람이 타준 커피// 비록 가진 돈은 없으나/ 무슨 배짱에 그리 여유로운지/ 언제나 미소 지은 얼굴/ 나까지 웃게 만드는 유머// 커피 내려 갖다 바치고/ 힘들세라 시장 봐다 주는 일/ 세탁기도 돌려주고/ 밥까지 지어주는 울 남편// 제 아내가 양귀비인줄 아는/ 청맹과니인 사람/ 그래서 비목 어 사랑하는/ 시인과 남편의 굿 나이트 뽀뽀//

아픔을 수반한 사랑이지만 / 도지현
의식하지 않은 동안/ 시나브로 숯으로 변한 가슴/ 켜켜이 앉은 상흔, 더께가 되었다// 두터운 지층을 이룬 더께/ 심장의 중심부까지 이르고/ 혈류는 잠깐씩 기능을 잃어간다// 파도로 밀려온 고통/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온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 없다// 일상을 가슴앓이로/ 지탱해야만 하는 야윈 가슴/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것은//

안개 낀 길 위에 서면 / 도지현
흐릿한 시야가 길을 막는다/ 가야 할 길은 저 멀리 있는데/ 잠시 주춤/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눈앞에 그려지는 세상/ 제대로 앞을 볼 수 없는/ 불확실성에/ 혼돈과 혼란이 완전 카오스다// 이 넓은 세상에 망연한 마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망설여지는// 불투명한 현실에/ 가혹하게 내몰려야 하는/ 안개 자욱한 길에서/ 허무를 줍고 진실을 찾는데//

어느 눈 오는 날의 소묘素描 / 도지현
언제부터였을까/ 장독 뚜껑이 하얀 산이 된 것은/ 그 위를 까치 화백이/ 멋진 수묵화를 그려 놓았다// 그 수묵화와 함께 들리는 화음/ 어머님의 다듬이 소리/ 리듬을 타고/ 하얀 나비들이 하늘하늘 춤추는데// 나비가 되었다 꽃이 되었다/ 때로는 천사가 되어 미소 짓는/ 이런 날은 온 세상이 조용하고/ 난로를 피운 듯 따뜻하기 그지없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무가 벙글벙글 웃고 있는 건/ 삭풍에 헐벗어 오들오들 떨고 있더니/ 포근하고 하얀 솜옷을 입은 탓일까//

촛불 하나 켜는 마음으로 / 도지현
어둠의 긴 터널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삶// 음습한 공기/ 호흡도 가쁘고 힘들었지// 삶의 후미진 뒤안길/ 무거운 어깨, 등에 진 짐// 내려놓을 수 없고/ 내려놓아서도 안 되는 것들// 이랑지고 투박한 손/ 더 이상 지칠 것도 없는 삶// 암담하였기에/ 희망마저 포기해야 하였지// 그러하지만 우리들 여명은/ 어둠을 걷어가 새로운 태양/ 찬란하게 밝았으니// 우리들 가슴마다에/ 작은 촛불 하나 켰음 좋겠어요// 소망 깊은 마음으로/ 절망의 장막 걷어가 버리게// 희망의 촛불 켜서 새해엔/ 환하게 밝은 세상 만들기를...//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도지현
삶이란 굴레를 가슴속에 안고/ 응어리지 마음/ 용해되지 않은 고통/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내가 풀 숙제다.// 섬광처럼 번쩍이는 혜안을 가지고/ 엉켜 있는 실타래/ 한 가닥씩 풀어야 하는/ 그것도 나 자신이 해야 하는 것// 눈을 뜨고 사물을 보면 가물가물/ 모든 것들이 어지럽고/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 같은 것/ 그래도/ 두 발 버텨 서서 꼿꼿이 서리라.// 산다는 것이 때론 고통일지라도/ 쓰디쓴 사약 같은 고통/ 달콤한 꿀처럼/ 녹일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황혼이라는 이름 앞에 / 도지현
긴 세월 나는 무엇하며 살았나/ 허허한 마음/ 검불 같이 말랐고/ 말라버린 영혼의 외침 소리 들린다.// 낙조에 물든 하늘은 쇠진하고/ 나 또한 기력을 잃어/ 옹이가 진 가슴은/ 거북의 등처럼 말라가고 있는데// 그러할지라도/ 예전엔 무성한 잎새도 있었고/ 알알이 고운 열매/ 내 품에 품어도 보았었지.// 이제는 긴 겨울잠에 들어가고/ 어둠이 지나가면/ 밝은 빛이 오리니/ 황혼이 오더라도 서러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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