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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이연주 시인

부흐고비 2021. 12. 16. 08:25

이연주(1953년~1992년) 시인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1985년 시 동인 '풀밭' 활동 시작하여 1989년 「죽음을 소재로 한 두 가지의 개성1」외 1편으로 《월간문학》 신인상 수상하였다. 등단은 그의 나이 마흔이 다 된 1991년 《작가세계》 가을호에 「가족사진」 외 아홉 편의 시 작품을 발표하면서 정식 등단했다. 바로 그 해 10월 10일 첫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세계사)을 출간했다. 작고 후에 『속죄양, 유다』(세계사, 1993), 『이연주 시선집』이 출판되었다.

 

 

이연주 시인

이연주 시인 이연주(1953~1992) / 김상미 2년 남짓, 시처럼 살다 가다 익명의 사랑 -위험한 시절의 진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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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

 

 

 

 

겨울 석양 / 이연주
서역, 그 뒤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까?// 다시 시작해 보자./ 더러운/ 추억의 힘이여.//

길 / 이연주
가보라 하더구만, 끊어진 길 어귀에서/ 그래,/ 내 갔지./ 어허, 어둡고/ 천지 사방 막혀/ 갈퀴진 기르 벌건 살 뻐드러진 험한/ 내 갔던 길.// 그래, 내/ 떠 갔지.// 어디 골대를 겨냥해서 잘 차 넣은/ 공처럼/ 적중...../ 적중의// 길이 있었던가? 절벽길/ 또 가야 한다면/ 삶의, 어디/ 사람이 별처럼 모여 반짝이는/ 마을 앞에 세게 될지, 글쎄/ 아니라 해도.....//

집행자는 편지를 읽을 시간이 없다 / 이연주
친애하는 선생,/ 이 도시엔 경계망이 대단하오./ 하루 세 번 교대되는 경비 초소의 무장 군인들/ 시간은 촘촘한 그물망처럼 규격이 단단하오./ 소통은 벌써 끊겼소이다, 거리마다 화농한 살덩어리/ 불그스름한 피고름이 질펀하오./ 주민들은 몰지각 발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소./ 몇 그램의 몰핀과/ 몇 박스의 신경 안정제를 부탁하는 바이오./ 싸움이 무슨 쓸모가 있겠소./ 산자들에 의해 죽은자의 시신은 매일 밤 소각된다오./ 공문서의 철이 두터워가는 건 수모일 뿐이지요./ 살균제의 씩씩함이란/ 여기선 끝장난 일 아니겠소./ 바람이 심하게 부는구려./ 병균을 실어 나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매체는 없지요./ 전염 속도를 지연시킬 방책을 또 찾아봐야겠지만/ 문제는/ 선생,/ 이 편지 역시 서랍 속에 던져지기 십상이라는 걸.......//

사람의 고향 / 이연주
폐 속엔 포도알 같은 허파꽈리들이 수없이 많답니다./ 자극을 받거나 날씨가 나쁠 땐 기침이 나기도 하죠.//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단순한지/ 둥근 뼈의 집을 헤엄쳐다니는 안개의 숨소리,/ 핏줄들은 힘차게 팔딱거린다./ 소금에 절은 바람도 거기선/ 비틀린 사랑을 배우며 살아온 어느 골방의 불규칙한 안식도/ 거기 도착하면 흐릿해진 알전구를 바꿔 끼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 인생은 여러 번 바뀌어도/ 사람의 고향이 몸 속에 있었다니......//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기침이 나죠?/ 종이꽃잎들이 폐 속을 가득 채우고 있나봐.//

지리한 대화 / 이연주
그 탱자나무 울타리, 어머니 생각나세요?/ 이젠 네 아들이 거기서 놀게다. 네가 뜻을 바꾸거라./ 희뜩하니 문지방까지 내려온 하늘... 나는 중얼거리며/ 돈과 안락한 생활이 모든 인간을 만족시킬 수는 없어요./ 어머니가 절 포기하세요./ 나는 너를 낳고 온몸에 두드러기로 고생했다./ 알아요. 그러셨어요./ 바느질감을 내려 놓으시며 어머니, 긴 한숨이 차고 슬프다./ 나는 시계를 본다./ 왜 이렇게 어수선한지 모르겠군요. 날 좀 내버려둬요./ 가족을 버리겠다는 거냐?/ 가족이 나를 필요로 하진 않아요. 벌써 오래된 일이잖아요./ 그건 네가 환상을 꿈꾸어 왔기 때문이야./ 이제라도 뜻을 바꾸면 행복해질 게다./ 행복? 그래요. 행복.../ 하늘은 매양 왜 저 모양인지, 나는 집을 나선다./ 한 곳으로 몰리던 바람이 저만치 날 밀어다 놓고 골목길 접어 사라진다./ 멍든 곳을 훤히 드러낸 나무들 몸통은/ 어떤 힘으로 겨울을 버티는 걸까./ 어머니, 이 손톱 끝을 보세요. 아직도 가시에 찔린 자죽이 시퍼런 걸요.//

집단무의식에 관한 한 보고서 / 이연주
광포한 바람이 아귀아귀 불어대는 것이었다 빗날, 폭우로 쏟아지는 것이었다. 무딘 물방울의 세포들은 전염병을 몰고오는 바람에 쏠려 공중분해되는 격전지에서 갈쿠리 같은 병균들 와글와글 떨어지는 것이었다. 곱태낀 옛 샘터 바닥의 돌멩이들, 치욕스런 산자는 거대 자본가에게, 내 척추에 물이 마르고 있어요./ 그리하여 한 밤을 자고 나면 한 사람이 망자의 인명 기록부에 이름 석자를 남겨 놓고 그리하여 한 가족이 파라치온을 마시고 한 마을이 서로의 목을 졸라 살상 행위의 범법자가 되어가는 것이었다. 자살자에 대한 간략한 보도에 살아 있는 개별자들은 수전증을 앓는 늙은이처럼 벌벌 손이 떨려 드디어 가면공장이 문을 열고 땅을 기는 하류짐승들의 촉수가 잘려져나간 가면들이 봉고차에 실려 수퍼마켓으로 바쁘게 배달되는 것이었다./ 날마다 사이렌이 불어대는 것이었다. 자살 집회의 봉쇄를 위한 수만명의 전경이 광장에 배치되고 사복 경찰들은 골목골목에서 무전기를 들고 대문간 안을 기웃거리는 것이었다. 저격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포르노를 보는 동안 술취한 아들이 화장실 변기통에 똥물을 토해대는 동안 가면 속에서 은밀하게 술렁거리는 그들은 건초더미 마르고 까슬까슬한 저녁나절의 꿈을 꾸는 것이었다 집단 파리떼의 주검//

가족사진 / 이연주
바람난 에미가 도망치고 애비가 땅을 치고 울고// 에비가 섰다판에서 날을 새고/ 그 애비의 아이가/ 애비를 찾아 섰다판 방문을 두드리고// 본드 마신 누이가 찢어진 속옷을 뒤집어 입고/ 지하상가 쓰레기장 옆에서/ 면도날로 팔목을 긋고// 세 살 난 막내가 절룩, 절룩 자라가고/ 애미 애비와 누이의 일들을 거침없이 이해하고// 오늘,/ 밤마다 도시가 하나씩 함몰되고, 나는/ 등불에서/ 등심지를 싹둑, 싹둑 잘라내고//

추억없는 4·19 / 이연주
4월은 이제 패망한 굴욕의 달./ 물기 마른 흰 뼈들이 잔 나무 가지에서/ 비굴한 서사시적 운명을 노래하고 있다.// 몇 번의 탁한 기침이 운반되고/ 들쉬며 내쉬는 가쁜 숨소리에서 솟아오르는/ 검고 눅눅한 연기들,/ 도회지 한복판 전광판을 시컴케 뒤덮는다.// 전위적 힘의 청부업자들이 둔탁해진 공기 중에 떠서/ 초라한 늙은네의 오물거리는 입술마저/ 낚시 바늘로 그 성대를 꿰는구나.// 4월은 이제/ 음탕한 매음굴의 현란한 등불,/ 넥타이를 느슨히 풀고 버번 코크를 마시는/ 탱탱한 뱃가죽 아래 식어버린 비릿한/ 피의 냄새의 기억, 그땐 참 대단했지요/ 문득, 뜻없이 중얼거릴 뿐이다.// 불순한 공물질의 바람 속으로/ 미친 듯 펄럭이며 떠가는 날들/ 무엇이 추억을 거져갔단 말인가.//

눈뜬 장님 / 이연주
백내장 눈뜬 장님/ 바람 몰리는 소리에도 덜커덩/ 부들부들 온몸을 떤다./ 낡은 외투 감추어진 마른 몸뚱어리/ 멀건 회색빛 뜬 눈으로/ 지팡이를 찾아 더듬더듬 방구석으로 가서/ 덜덜덜덜 몸을 떤다/ 그의 작은 창, 북풍에 흔들거리길 몇 해/ 날밤 숱하게 이불 뒤집어쓰고/ 태양은 오늘도/ 어디서 젖은 땅 말리고 돌아갔는지/ 누가 재판의 형을 언도받고/ 누가 이름없이 또 죽어가고/ 어디서 누가 신나를 몸에 붓고 깃발을 드는지/ 허연 창 경련하듯 껌벅거릴 뿐/ 알고 싶지 않다/ 굳은 빵덩어리 머리맡으로 자꾸, 자꾸 꿈에서도/ 어당기는 백내장 추한 눈뜬 장님/ 이제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헐겁고 낡은 외투에 몸뚱어리 숨겨놓고/ 세상일 보고 싶지 않아/ 그 어느날,/ 스스로 자신의 눈 검은 자위를 지워버린//

비극적 삼각관계 / 이연주
암닭 같은 어머니 모로 누워 계신다./ 짧은 벼슬을 내려놓고/ 쭈글쭈글해진 배를 땅바닥에 철퍼덕/ 모가지를 조여대는 출산에 쓰이는 천조각// 막 낳은 단조로운 흰 달걀 하나가/ 아직 뜨끈뜨끈한 김을 내며/ 「아버지, 저를 죽여주세요」/ 긴장형 조발성 치매증을 앓고 있다.// 긴 장화를 신고 난자를 멸시하셨지/ 휘청거리는 해골을 덜렁덜렁/ 상스럽게 쓰던/ 아버지, 아버님, 오, 무자비한......// 어머니 짧은 벼슬을 푸르르 떨며/ 어쩌다가 씨앗이 우리를 경멸하게 되었는가./ 흘러가던 구름 몇점이/ 똥을 찍- 갈기고 간다.//

매음녀 1 / 이연주
팔을 저어 허공을 후벼판다./ 온몸으로 벽을 쳐댄다./ 퉁,퉁-/ 반응하는 모질은 소리/ 사방 벽 철근 뒤에 숨어/ 날짐승이 낄낄거리며 웃는다./ 그녀의 허벅지 밑으로 벌건 눈물이 고인다./ 한번의 잠자리 끝에/ 이렇게 살 바엔, 너는 왜 사느냐고 물었던/ 사내도 있었다./ 이렇게 살 바엔-/ 왜 살아야 하는지 그녀도 모른다./ 쥐새끼들이 천장을 갉아댄다./ 바퀴벌레와 옴벌레들이 옷가지들 속에서/ 자유롭게 죽어가거나 알을 깐다./ 흐트러진 이부자리를 들추고 그녀는 매일 아침/ 자신의 시신을 내다버린다. 무서울 것이 없어져버린 세상./ 철근 뒤어 숨어 사는 날짐승이/ 그 시신을 먹는다./ 정신병자가 되어 감금되는 일이 구원이라면/ 시궁창을 저벅거리는 다 떨어진 누더기의 삶은......./ 아으, 모질은 바람,//

매음녀 3 / 이연주
소금에 절었고 간장에 절었다/ 숏타임 오천원,/ 오늘밤에도 가랑이를 열댓 번 벌렸다/ 입에 발린 ××, ×××/ 죽어 널브러진 영자년 푸르딩딩한 옆구리에도 발길질이다/ 그렇다. 구제 불능이다/ 죽여도 목숨값 없는 화냥년이다/ 멀쩡 몸뚱어리로 뭐 할 게 없어서/ 그짓이냐고?/ 어이쿠, 이 아저씨 정말 죽여주시네//

매음녀 4 / 이연주
함박눈 내린다./ 소요산 기슭 하얀 벽돌집으로/ 그녀는 관공서 지프에 실려서 간다.// 달아오른 한대의 석유난로를 지나/ 진찰대 옆에서 익숙하게 아랫도리를 벗는다/ 양다리가 벌려지고/ 고름 섞인 누런 체액이 면봉에 둘둘 감겨/ 유리관 속에 담아진다./ 꽝꽝 얼어붙은 창 바깥에서/ 흠뻑 눈을 뒤집어쓴 나무 잔 가지들이 키들키들/ 그녀를 웃는다.// 반쯤 부서진 문짝을 박살내고 아버지가 집을 나가던 날/ 그날도 함박눈 내렸다./ 검진실, 이층 계단을 오르며/ 그녀의 마르고 주린 손가락들은 호주머니 속에서/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찾아 꼬물거린다./ 한때는 검은 머리칼 찰지던 그녀,/ 몇 번의 마른기침 뒤 뱉어내는/ 된가래에 추억들이 엉겨 붙는다./ 지독한 삶의 냄새로부터/ 쉬고 싶다.//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함박눈 내린다.//

매음녀 5 / 이연주
거미집 밀창 아래 쓰레기 하치장/ 쓰레기 하치장 바로 옆에 키 작은 풀 언덕/ 언덕에 철조망, 철조망 그 위로/ 불 밝은 도큐 호텔// 거미집에 그녀/ 밤이면 무덤을 나와/ 희미한 가등 옆에/ 문드러진 어깨뼈 드러내 서서// 표백된 도시불빛 내려다본다/ 부릅뜬 황달기의/ 그녀, 눈// 거미집 밑창 아래 쓰레기 하치장/ 그 하치장 담벼락 가등 옆에/ 누군가의 심장, 누군가의/ 버려져 썩어가는 양동, 쉬었다 가세요, 네?//

매음녀 6 / 이연주
어머니, 날 낳으시고 젖이 없어 울으셨다./ 어머니 숨 거두시며/ 마음 착한 남자, 등짝 맞대 살으라 이르셨다./ 나는 부둣가에서/ 선술집 문짝에 내걸린 초라한 등불 곁에서/ 매발톱 손톱을 키워 도회지로 흘러왔다./ 눈 붙이면 꿈 속에서 어머니/ 이 버러지 같은 년아,/ 아침까지 흑흑 느껴 우신다./ 내 심장 차가운 핏톨, 썩은 물 흐르는 소리./ 나는 살 속 깊은 데서 손톱을 꺼내/ 무덤을 더 깊이 판다./ 하나의 몫을 치르기 위해 삶이 있다면/ 맨몸으로 던지는 돌 앞에 서서 사는/ 이 몫의 삶은......./ 희미한 전등불 꺼질 듯 끄물거린다.//

매음녀 7 / 이연주
이른 새벽이었네. 죽은 애기를 끌어안고 에미는 종종걸음으로 어둑한 비탈길 내려왔네. 청소차가 방금 지나간 듯 마른 바람 한 점 휭하니 거리를 쓸고 있었네. 건널목을 건넌 에미는 외투자락 잡아당겨 가슴팍 핏덩이를 감추며...... 지하도 계단 앞에서 주변을 훔쳐 둘러보더니 허둥 허둥 또 걸었네. 지친 에미 곁을 느릿느릿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고 행인들 자꾸만 눈에 밟혔네. 벌써 날이 밝았어, 벌써 날이 밝았어, 한숨 섞어 중얼거리던 에미는 신문지에 둘둘 말아 싼 애비 모르는 죽은 것을 쓰레기통에 쿡, 쳐박았네. 아아, 나이론 살에 불어 타는 냄새//

고물상에서의 한때 / 이연주
비 맞은 개 한 마리 고물상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서둘러 셔터문을 내린 상점들, 한 차례 벼락이 때리고/ 간혹, 어떤 집에서는 정원수가 뽑혀 나자빠지기도/ 험한 날 저녁 무렵/ 그 검은 물체, 무엇을 발로 긁어보기도/ 주둥이를 대고 깔짝거려 보기도 한다/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채 우뚝 서 있는 냉장고/ 몇 묶음의 박스 쪼가리들/ 지붕을 굴러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빈 깡통 하나를 이리저리 굴린다/ 지상의 문이 열린 곳이라고는 여기밖에 없으니.../ 그는 냉장고 뒷켠을 돌아 눅눅한 허접대기 위에 쪼그리고 앉는다/ 살아 있는 쪽보다는 죽은 것에 보다 가까운 곳,/ 주인집을 떠나온 이래 그 수모와 발길질을 기억하며, 그러나/ 정육점의 흥정가치가 될 수는 없는 일이야/ 그는 비스듬히 자리에 눕는다/ 관조의 눈빛이란 때로 모든 것을 거부할 때에도 가능하지/ 그런 눈을 껌뻑거리면서...//

쓸데없는 추억거리 중 / 이연주
한 사내가, 내 집 현관문 암호판 앞에 서 있다./ 그 사내가, 나만이 알고 있는 암호의 숫자를 누른다./ 낯모르는 사내가, 나의 옷을 벗긴다, 자신이/ 그 옷속으로 들어간다./ 한 사내가 나의 방 유리창 앞에 서 있다./ 바람이 후두둑 머리를 친다, 유리창이 나선형의 금 간다./ 그는 덧문을 닫는다, 춥다고 느낀다./ 위선만이, 그렇지, 따뜻하지, 체온을 사내에게 넘겨주며/ 내 피가 식는다./ 부서진 유리 조각들은 한참 뒤에/ 수도관을 묻은 풀밭에 가서 풀잎들의 발목에 생채기를 낸다./ 띠. 따. 까. 띠. 또......./ 나는 침묵을 들키지 않으려고/ 모든 소리들을 사내 앞에 들춘다.// 그가 입고 있는 나의 옷이 울고 있다.//

방화범 / 이연주
내부가 헐어버린 사원으로 가자/ 십일월의 밤이 살을 찢는구나/ 뼈대만이 남은 십자가 앙상하다, 꼴불견이니/ 내려 문짝에나 기대 받쳐두렴// 얼음처럼 식은 마태오, 루가의 복음을 펼쳤느냐?/ 자, 밑줄을 붉게 그어보자/ 너, 조갈에 들어 푸실거리는 눈꺼풀을 들어올려야지?/ 모든 겨울은 끝이며 시작이다// 이제, 용기 있는 이별 앞에/ 석유는 준비되었느냐?/ 성냥이 찬이슬에 젖어버리진 않았겠지?/ 노숙하는 이의 쓰라린 밤잠을 불러오너라/ 우리 함께,/ 다 같이 나도 말이지// 살아 남아 슬프지 않은 나라,/ 옳거니, 기쁜 일이다, 가자.//

좌판에 누워 / 이연주
나, 간 절은 자반 고등어다/ 홍제동 시장터에서 도매값 팔백원이다/ 비늘은 죄다 떨어져 나갔다/ 살은 질기다// 칠백원, 어때요?/ 아줌마 너무하시네, 칠백오십원!// 창시 빠져나간 뱃가죽 좌판에 늘어붙어/ 식탁으로 가는/ 길, 기다리는// 해가 또 진다//

누구의 탓도 아닌, 房 / 이연주
다시 자정이 가까이 오고 그는 망각의 혀뿌리를 핥는다/ 갑자기 강렬한 후래쉬,/ 누가 빛을 들이대는지/ 그는 비칠비칠 구석으로 옮겨앉는다/ 그 길은 너무 엉망이었다니까/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가 있었어야지/ 그는 번쩍, 타버린 필름 속 한 추억을 본다/ 비단 양말과 따뜻한 외투라니...... 애당초 내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어/ 창이 열리고/ 빛줄기의 손이 실핏줄을 온통 드러낸 채/ 빵 한덩어리와 한 컵의 물을 밀어넣고 돌아간다/ 짓무른 눈을 문지르며 물컵에 고개를 박고/ 삶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가려면/ 살점 아래 맹렬한 번식을 일삼는 분노와 증오가 있어야겠지/ 그는 찢어진 문풍지 틈에 끼어 선잠에 빠진다/ ......몸살이 오려나//

바다로 가는 유언 / 이연주
모든 폐기물들이 나와 함께/ 하수구를 흘러 내려간다/ 수런거리는 날들을, 내가 나를 덮고/ 온갖 찌꺼기들에 뒤섞여 유언 하나를 남긴다/ 땅 위에서는 아득히 들려오는/ 개짖는 소리, 사람들의 아우성/ 벽을 쳐대는 희미한 혼령의 소리도 들려왔다/ 잃는다는 것을 모른다, 나는 이미/ 바다의 틈 사이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죽은 쥐들과 살육당한 동물들의 벼다귀와/ 독한 냄새를 피우는 배설물들과/ 나는 강을 건널 것이며/ 물고기들은 바다로 흘러 들어온/ 지상의 폐기물들의 살을 먹는 것이다/ 바다는 요니의 자궁// 문둥이가 와서 그 물에 손과 발을 씻었더니/ 그 병이 나았다 하더라.//

낙엽이 되기까지 / 이연주
이젯밤에는 머리털이 한뭉치 빠졌다./ 아침엔 잠에서 깨어보니 이가 하나 빠져 있다.// 도둑고양이가 털갈이를 위해서/ 벌써 냉골의 나의 방/ 문짝을 발톱으로 긁고 있다.// 나무십자가를 내린다./ 바삭거리는 종려가지에서 이파리들을 훑어내고/ 나는 잠자리로 다시 돌아간다. 커튼은 잘 닫혀 있는지// 어머니, 내 머리맡에서 유령처럼/ 여름날에 따두었던 탱자알로 즙을 만든다./ 알레르기 돋은 살을 문지르고 있다./ 「내 탓이었어요」// 모두가 습관처럼 어깨를 들먹이고/ 등불에서 빛을 훔쳐낸 자들은 고해소로 간다./ 몇십 알의 알약과 두어 병의 쥐약과/ 목걸대로 이용할 넥타이와, 유산으로 남기는/ 각자의 몫을 들고// 바람은 액자의 틀을 벗긴다./ 무수한 나뭇잎들이 떨어질 것이다./ 엄숙한 햇살 한점 밑에/ 나를 빠져나온 내가 뒹굴고 있다.//

유배지의 겨울 / 이연주
방문객은 이미 끊어진지 오래/ 문들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삶을 꿈꾸어 오는 동안 내 입김서린/ 저 책장의 쓸쓸한 낱글자들/ 이제 그것들은 단단해져버린 돌고드름의 몸으로/ 엉겨 마른 내 종양의 세포질을 향해/ 침묵의 종지부 속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때는 버팀목이 되었던 뼈마디들 앞에/ 나는 허름한 문짝처럼 덜컹거린다/ 소금 냄새로 절어버린/ 나를 감싸 덮혀주었던 꿈의 헌 옷가지들/ 나는 푸들푸들 떨고 있다/ 남아 있는 기력을 지배하는 추억들이여/ 물컹거리는 어둠에 살을 기대고/ 여기 몇해만 더 머물를 수 있겠는가/ 유배지의 겨울은/ 일찍와서 오래까지 질기다//

풀어진 길 / 이연주
구급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질주해갔다./ 사이렌 소리가 공기 속으로 파고들었다./ 내 몸에서 어떤 핏톨들이 튀어올랐다./ 나는 음습한 구석으로 가서/ 담벼락을 향해 오줌줄기를 뿌리며/ 무지개, 무지개…… 그렇게 중얼거린다./ 구급차가 남긴 경적을 마신 공기들은/ 더욱 차갑고 쓸쓸하다./ 모든 별들이 하늘 뒤에 숨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참으로 세상의 많은 것을 움직인다./ 나는 다만 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기쁨조차 갖고 있지를 않으나ㅡ/ 벌써 오래 전부터 일이다, 한꺼번에 많은 것들이/ 한 실체에서 다른 실체로 변형을 이루며 살아간다./ 나는 외투를 추켜올린다./ 내 앞을 걸어가던 사내 하나가/ 어두운 골목길 저쪽으로 사라진다./ 어깨에 쌓인 슬픔의 무거운 짐을/ 저 사내도 감추며 살아가는 걸까./ 또 한 대의 구급차가 지나간다. 경적소리는 남는다./ 무지개, 무지개…… 내가 중얼거린다./ 의미 없는 낱말들이 차바퀴를 쫓아가 달라붙는다./ 치유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나도 가고 싶다./ 그러나 먼저, 유배지로 가는 내 방문의 열쇠를/ 누가 받아 간직해 주겠는가./ 모든 별들은 하늘 뒤에서 빛난다./ 나는 밤의 둥근 공기들을 육모, 팔모로 깎는다./ 킥, 킥 웃음소리를 내며 모가 난 공기들이 나를 찌른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발작 / 이연주
난, 정말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요/ 여자가 흑흑 흐느꼈다./ 공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어요/ 이상한 집회에도 가본 적이 없다구요/ 여자가 소리쳤다./ 누가 분신을 하고 죽고/ 누가, 왜,/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리는지 관심도 없었다니까요/ 여자가 제 머리털을 쥐어뜯어 울부짖었다./ 나는, 그저,/ 짐승처럼 앉아 있었을 뿐인데요/ 누가 나를 여기 데려왔죠? 왜 가두는 거예요/ 내 자궁은/ 썩은 쇳조각,/ 분신할 아들도 파업할 딸년도 낳을 수가 없는데요/ 여자가 바닥을 박박 기어대며 몸부림쳤다./ 의사가 말없이 다녀갔다./ 간호사가 와서 근육주사 한 대를 놓고/ 돌아갔다. 철커덕 문이 닫겼다./ 난, 정말 아무짓도 하지 않았는데요/ 정신병동 철문을 붙들고/ 여자가 희멀겋게 중얼거렸다.//

커피를 마시는 쓰디쓴 시간 / 이연주
포트에 불이 물이 끓고 있을 거야 커피나 한 잔 하지/ 가루 커피 두 스푼 설탕 하나 크림은 두개 반/ 그는 물을 따른다/ 기회주의자의 헤 벌린 군내나는 입술이다/ 커피가루, 설탕가루,크림가루/ 나는 두 손으로 잔을 받아 쥔다// 하늘을 볼 수 없게 되고 말았어/ 난 손이 떨려서 견딜 수가 없군 병도 지독한 병이야/ 그들은 서로를 바라본다/ 사무실 밖 발자국 소리 어지럽다/ 밤을 틈타 걸린 대자보를 찢어 밟고 있는 게다// 나는 담배를 집어든다/ 방관자의 암세포는 결국 전신을 딱딱하게 먹어버리고 말지/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지 하늘, 시컴하기는/ 자, 커피나 한잔 하지/ 그런데/ 우리들 손도장은 아직 유효한 걸까?//

얕은 무의식의 꿈 / 이연주
어머니, 숨겨주세요, 무서워요, 저, 구둣발 소리, 개떼를, 몰고, 오나봐요, 어머니, 어디로, 어머니, 살려줘요, 어제도, 한달 전에도, 이웃집 청년이, 이층집 남자가,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았잖아요, 저들이, 으으 어머니, 유리창에, 내, 얼굴이, 눈이, 무서워요, 내 손이, 웬일인지, 조금씩, 움직여요, 아, 나는, 가만 있는데, 손이, 움직여요, 문고리를, 열잖아요, 개떼가, 아, 몰려오는, 구둣발 소리, 그들은, 겁탈할 거예요, 그들은, 짓이길 거예요, 어디, 먼데로, 도망쳐요, 어머니, 어디 계세요, 나도 모르게, 그들과, 내가, 아, 난 싫어요, 뭐라구요, 이제는, 살아 있는 게, 죄라니요, 도망칠수, 없다니요, 그럼, 나는, 아으!//

아버지, 11월 / 이연주
아버지, 양팔을 가슴 위에 올려놓은 채 졸고 계신다/ 창고와 대장간 사이 쓸모 없는 폐품를 구석에서/ 살을 봉하고 못을 치셨구나/ 문 밖에서는 자꾸만 알루미늄 샷시 틀을 긁적거리는/ 집터를 도는 바람소리 조금씩 깊고 어둡다/ 나는 지하실 돌계단을 내려간다/ 보일러 불구멍을 조금 열어놓는다/ 아버지, 이젠 금방 따뜻해질 거예요, 제발 몸 좀 펴고 주무세요./ 벽시계는 어제도 모들도 4시 50분이다/ 나는 덧창을 닫는다/ 드르륵 소리 저편에서 바람의 어느 한권을 무너뜨리며/ 또 날이 저물고 있는 걸까.//

죽음을 소재로 한 두 가지의 개성 1 / 이연주
시립병원 철책 너머 어둠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제 3병동 복도를 걸어 중환자실 앞에서 김간호사는 쿡,쿡 찌르는 어깨의 통증을 다시 느낀다/ 요즈음의 흔해빠진 스트레스성질환 그녀는 종양의 말기 증세를 보이는 암환자가 마시고 있는/ 산소의 양을 체크한다/ 주검의 목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무분별한 공기의 흐름 사면 벽돌은 냉엄하다/ 책임을 버린 환자의 남편과 그 딸들은 때로 눈물을 뿌리거나 병실 밖 나무의자에 주저앉는다/ 아무도 삶과 죽음을 묻지는 않는다/ 김간호사는 검게 어둠을 반사하는 창 앞으로 다가간다/ 얼음 같은 고요를 붙들고 늘어지는 저 신음소리/ 삶을 애걸하는 뜻은 아니리/ 노오란 황달기의 흰자위 눈이 스르르감긴다/ 그녀는 생각한다 저 산소 마스크를 떼어야한다/ 저 인공 소변줄을 고단위 단백질과 수분을 주입하는 저 링겔바늘을 뽑아야한다/ 창밖은 이미 어둠의 이끼로 덮여 있다/ 어떤 때에 히포크라테스의 눈빛 형벌이 되기 .... 도 한다//

송신탑이 흠씬 젖어버렸을까 / 이연주
한 마리의 늙은 고양이와 깡마른 초 한자루를 들고 사람들 비 내리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어디서 구름기둥 무너지는 소리, 사람들 부르튼 이마께가 조금 적는다. 고열에 들뜬 어린 아이들 흰자위 눈을 뒤집으며 무서운 경짓을 하고, 어른은 그 어린것들을 들춰 업고 가고 있다. 물고기들이 둥둥 떠서 흘러오는 하구의 검고 찐득한 강을 건너 사납고 징그런 독사와 성교를 하는 도시의 거대한 철문도 지나쳐 가고 있다. 장대비, 푸르고 시퍼런 등허리를 슬쩍슬쩍 내보이며 공중을 후려친다. 누가 깡마른 초를 받쳐 불을 그어 당긴다 한들... 빗방울이 스며든다. 송신탑이 저렇게 흠씬 젖어 버렸을까. 녹이 슨 기계들은 입을 벌린 채 누워 있구나, 썩어가는 빛은 화려해, 부패하는 냄새는 성감대를 충분히 만족시킨다.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서 스멀스멀 온몸을 근지럽히는 썩는 빛, 썩어가는 냄새, 산술법으로 환산되는 격조 높은 사람들 걸어가고 있다. 이상한 병동의 어둡고 긴 복도 끝에 질질 신발 끌리는 소리, 몰아쉬는 폐활량은 기대치 훨씬 아래를 어기적거린다. 아버지, 불의 칼침을 내리시는구나, 장대비......//

신생아실 노트 / 이연주
방치된 탄생이 관 같은 요람 위에 누워 있다. 푸줏간의 비릿한 냄새, 온갖 경험을 거쳐 늙은이의 침묵에 이르기까지 누가 저것들을 그 먼 곳까지 인도할 수 있으리. 나는 세면대 가득 물을 받아 손을 씻는다. 이곳은 불을 끄면 그대로 암흑이다. 어제 태어난 아이도 자궁감자로 끄집어 냈지 않나, 모두가 그렇다. 아니면 마취제를 전신에 걸고 절개수술로써 태어남의 시분초를 알리는 것이다. 전쟁터에 일개 보병으로 올려지는 시간이지. 나는 어린 것 하나를 들어 올려 벌써 노랗게 곪아가는 그 얼굴의 반점들을 지켜본다. 이것 봐, 총과 칼로써 네 몸을 무장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 문제는 맨몸으로 기도문 한 구절 없이 버티는 용기와 저항의 힘이란다. 기도문이란 다만 죽은 자들을 위한 문장일 뿐이니까...... 나는 알콜솜으로 정성들여 손바닥을 문지른다. 제발 잊지 말아, 저 전깃불이 얼마나 큰 어둠을 감추고 있는지......//

마지막 페이지 / 이연주
더 이상은 넘길 것이 없네/ 지나온 문장 속을 허덕허덕 뛰어왔으니/ 빌딩의 프로어처럼 가슴팍은 왁스로 반들거리네/ 살충제와도 같은 이 몇구절을 덮고 나면/ 여보게, 이제 더는 페이지가 없다는 걸/ 그러니 이젠 첫번째 가출이 남은 셈이지/ 더 나쁜 일만 없다면야/ 화해하지 못할 건 또 뭔가 허지만 배워온 것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게 항상 탈이란 말일세/ 그들은 마지막 장의 문장 음절과 음절들 사이에서/ 느리게 기지개를 켜고 있다/ 되넘기려다/ 덮으려다/ 맨들맨들한 서로의 가슴팍을 들여다보다/ 책상을 치다//

담배 한 개피처럼 / 이연주
어쩌다가 술에 맡겨버린 인생이 되어버렸을까/ 이런 날, 아파트 5층 계단을 오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문을 따고 들어서면 얼어붙은 채 널브러진 이불짝들,/ 길게 펴본 적이 없는 몸뚱어리 조금씩/ 얼음 속으로 기어든다/ 폐 속을 검게 물들이는 구름 떼거리들, 뜻없이 담배를 피우고/ 깊이 빨았다가 뿜어낼 때/ 나를 끌고 다닌 것은 익사한 쥐의 퉁퉁 불은 원한이었구나/ 지상 한 구석에서 수없이 가위눌린 부딪김이며/ 남은 시간의 부스러기들....../ 타고 있다, 이대로 살다 저버리면 그뿐,/ 어눌하게 길든 목젖이며 발뒤꿈치가/ 달변의 기회를 엿보는 일은 아마 없으리/ 이런 밤엔 죽은 쥐새끼들 유난히도 찍찍 울어쌓고/ 무엇이 그들을 불러 밤새 여기 머물다 가게 하는지/ 눈을 뜨면 희멀건한 아침,/ 요때기나 장판의 꽃무늬를 조금 태워 놓고/ 다 타버린 허연 백골의 재가 길게 누워 있다/ 후들거리는 팔목 뻗어 꽁초 쓸어 담으며/ 너, 누구의 시신이란 말인가//

연애에 있어서 / 이연주
그는 내 입을 벌렸고/ 내 이빨을 몽땅 뽑아냈고/ 보글보글 막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죽음의/ 복합적인 냄새, 나는/ 나는 백지 위로 투신하고/ 익사체의 음절들, 사이로 간혹/ 에드바르트 뭉크의 키스가 지느러미 없는/ 춤, 기형적으로/ 깜깜해 깜깜하니까....../ 오늘도 자살골의 시를 남기면서/ 칙칙한 벽과 둥기둥~/ 그러면 방바닥 가득 정충 같은,/ 퍼질러 쏟아놓고 어느틈에 벽, 제속으로/ 연애에 있어서/ 벽,/ 벽은 정말/ 좌우지간//

다림질하는 여자 / 이연주
누가 그녀에게 물을 가져다 주었을까/ 나무토막 두 손은 꽉/ 다리미 손잡이를 움켜진 채/ 검게 갈라진, 혀를 감춘 입으론 물을 뿜는다// 누가 그녀에게 시켰을까/ 꺾여도 몇번씩 쓰러졌어도 몇 번씩/ 썩은 개굴창이 되어 있을 것 같은 그녀/ 인생살이 중년에// 고개를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인 시름에 잠긴 다림질/ 소매를 다리면 등판이 구겨진다 물그릇에 이끼가 끼고/ 다림질판은 거무스름한 요기를 띠고 있다// 모두들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부루터스, 너마저도...... 그렇게 말하는 세상에// 누가 데려다 주었을까/ 다려도 다려도 구김살이 펴지지 않는/ 다림질판 앞으로 누가, 우리에게 그녀를 ......//

아름다운 음모 / 이연주
무수한 빗변을 그으며 쏟아지던/ 열병들린 햇살이 살을 찔렀다/ "나는 숭숭 구멍난 바람이죠 어디든/ 앉는 날이 무너지는 날이죠"// 정신없이 넝쿨들을 짓밟아 왔네/ 황소처럼 킁거렸네/ 내 스스로/ 내 가슴을 환장한 듯 먹어치워/ 모태로부터 저주받은 북소리// 이제 사람의 마을/ 쓰레기장 먼지 속을 휘휘 돌고 있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와진 불면의/ 밤의 공기들이여/ 내 혈맥을 잘라 정적의 고삐를 풀겠는가// "팔모로 빛나는 저 별을 봐요/ 동작을 멈추는 날이 무너지는 날이죠"//

이십세기 최고의 행위 / 이연주
먼지를 뒤집어쓴 길들이 달려왔다./ 이상한 유충들이 하늘을 덮었다./ 어떤 사람이 핸드마이크로 말했다./ “질 나쁜 공기에 지지 마시오."// 잊어버리는 방법말고 무엇이 있었겠는가/ 길들이 너무나 사정없이/ 앞으로 갓!// 출산을 앞둔 여인네가/ 먼지 속에 두개골을 처박았다./ 낭만주의풍을 이어받은 시인이 목을 매었다./ 숨통이 끊어졌군, 끊어/ 졌을 게야.// 앞으로 갓!/ 핸드마이크가 울부짖었다./ "지는 것은 범법이오 범법이란 말입니다” 오,/ 안 끝나는 모독.// 잊어버리는 방법말고 무엇이 더 있겠는가./ 먼지를 뒤집어쓴 길들이 달려왔다./ 이상한 유충들이 하늘을 덮었다.//

인큐베이터에서의 휴일 / 이연주
1/ 위장병이 도졌다/ 예감이 좋질 않아/ 「건강해 지고 싶어」벽에 걸린 사진 속의 자살자가 말한다/ 네 친구가 되고 싶다.// 2/ 창과 틀 사이 엇물린 시간/ 오후 2시/ 나는 빨랫줄에 걸린다/ 생선뼈와도 같이/ ....../ 죽는 일에 자신이 생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3/ 오늘 석간신문의 머리기사는/ 종신형을 받은 그를 무엇이 천대했는가/ 독나방이를 죽인다/ 왜 나는 부정하는 것만이 아름다울까/ 단단해져 가는/ 아우슈비츠의 비누쪽들//

긴다리거미의 주검 / 이연주
간단한 일이었다/ 허공을 향해 헛발길질 몇 번/ 볼품없이 긴, 그것을 다리라고 할 수 있었을까, 발이라고.../ 쭉, 뻗어 누웠다/ 그랬다/ 스프레이 에프킬라 한 방으로/ 죽였다// 숨이 다 끊어지는 동안 아주 짧은 몇 초/ 흉한 것을 곁눈질로 보듯/ 시큼한 토사물 곁을 못 본 척 비켜가듯/ 죽음을 맞는 그놈에 대한/ 내가 차린 예우였다// 에미의 생식낭에서 부화하고나와/ 허망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단순한 종교적 삶/ 절망을 유물로 남기지 않는다, 하찮은 거미 한 마리의 주검엔/ 그래서인지/ 그놈에게선 부패의 냄새가 없다// 나는 두루마리화장지를 조금 풀었다/ 머리카락 한 올을 집어내듯/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그게 끝이다/ 삶과 죽음 사이가 실은/ 이토록 쉽고 간단한 것을...//

백치여인의 노래 / 이연주
이렇듯 늙어버린 내가/ 미친 남자의 옛 여인이었더란 말인가// 차라리 내 간을 빼어먹어요./ 그렇게 야금야금/ 살점 뜯어먹고 새살 나기 기다리고/ 아이, 그렇게 말고/ 단숨에 즉, 심장 할쿼버려요/ 쿨럭쿨럭 솟구치는 피를 다/ 빨리 마셔 치워줘요// 잊었던 뜨내기 심정 들면/ 이러쿵저러쿵 잡생각들면/ 그럼, 아이,// 또 쥐약 먹은 듯 길길이 뛰면 어떡해요/ 두 눈 미쳐 흡뜨고 대사관 담장 넘어/ 성조기 찢어 목매면, 오우. / 대국에 무슨 챙피예요// 빨리 빨리 먹어 치워줘요/ 빈 깡통 두드리는, 자판이 떨어져 나간 시간의 밑구멍에 쓰시든지/ 뱀탕집 가마솥에 쓰시든지, 아이, 몰라요. 정말.//

출산 에피소드 1 / 이연주
“머리가 둘은 아니죠? 팔이 셋은 아니죠? 눈, 코, 입,/ 제대로 다 있는 거죠?”// 아기 울음소리가 공기를 찢었습니다./ 의사가 시간을 알립니다/ 속이 허해진 산모, ㄱ시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애가 이상하면 죽이세요”//

길, 그 십년 후 비오는 날 다음날 / 이연주
컹, 컹, 컹/ 들바람 짖는다/ 경상도, 충청도, 강원 전라도를 돌아/ 여기 또 들바닥,/ 강줄기 흔들며 올라와/ 들병이 들개 소리로 울어쌓는다// 소주병 빈 병/ 기울여 혀끝 적시고/ 마른 어깨 들썩, 들썩// 떠돌이 들병이 들바닥 베고 누워/ 턱수염 덥수룩한 도회지 한 / 그을음 낀 모퉁이 세월 한기 닦고 있다// 치마 벗어 덮어주는/ 들병이 컹, 컹, 컹/ 들바람 짖는다.//

[시집] 해설 – 위악의 詩學 / 임태우



익명의 사랑 -위험한 시절의 진료실 1 / 이연주
정말 꽃이 되고 싶어, 또는 구름/ 아홉 배는 내가 더 당신을 사랑할 걸-그런 꽃./ 새털 옷을 입고/ 당신 고향 가는 길 앞질러 따라가는/ 그런 구름./ 석간신문이 배달됐지만 의미가 없네./ 죽은 고양이도 쥐떼들의 혼령도/ 이제 더는 문간 근처를 얼쩡거릴 수가 없어./ 꽃의 사랑, 혹은 구름./ 정부 쪽에선 비밀에 부치겠지?/ 군중심리란 게/ 사랑에 오염된다면 전략은 힘들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공기는 느끼지./ 바람은 느끼고말고./ 내가 당신, 하며/ 꽃가루를 공중에 뿌려주면 공기들은 명랑해질 거네./ 새털 옷은 하늘을 얼마나 기쁘게 할까./ 사랑인데.//

매맞는 자들의 고도 / 이연주
변기통 쇠줄에 목을 맨다/ 양변기를 출출 빠져나가는 물/ 피인가?// 작정했던 닫힌 문이 열리고/ 다시금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사랑의 분노,/ 파괴 공법을 연구하고 말리라/ 파괴란 새로운 수단을 냄새 맡는/ 진주라는 질병이니// 지금 어디서 자신의 몸을 뜯어내고 있는/ 고달픈 자들,/ 협상할 수 없는 그리움은/ 끔찍이도 열렬히 가꿔진다/ 피인가?//

안개 통과 / 이연주
생이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이제 때가 되었다/ 아직도 허리께서 뜨듯한/ 불을 지핀 흔적의 욕망,/ 사랑이라는 안개의 냄새로/ 한 시야 저밖이 움트고 있다고 느꼈으리라/ 나는 간다/ 폐가에서는 다시 탄생을 알리는 거미군단들의/ 바쁜 행보,/ 분노라는 어미의 고독한 터널의 음부에서/ 다시 태어나는 나는/ 지금은 갈 곳이 두려운 짐승이다/ 박약한 등뼈를 짐보따리에 우그려 넣다 생각하면/ 한 시야 저 밖은 아무래도/ 비로소 늙어 아름다운 날들/ 나는 간다, 종은 울린다/ 콧등이 이렇게도 싸아해 두렵기 한이 없는/ 해질녘 안개의 냄새//

산을 내려온 배암 13 / 이연주
이연주 걸어갈 것이다/ 어둠의 저 깊고 푸른 유리 위를./ 누군가 등불을 들면 또 다른 누군가에/ 손을 꽈악 붙잡혀.// 황금의 땅에 펼쳐진 사과나무 밭을 향하여/ 발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선한 신의 오른 손이/ 악신의 왼손 뒤에 감추어 있다 해도// 어둠의 푸른 대양 한 가운데를 그들은 통과하고 말 것이다./ 황금의 땅에서 붉게 탱탱해져 가는/ 사과에 입술을 얹기 위하여/ 노래하는 듯 걸음을 그들은 걸어, 땅의 물결 속으로// 시간의 소용돌이가 둥글게 땅을 굽어 돌고/ 길고 긴 여행의 행장을 그들이 다시 준비할 때/ 그들은 이야기 하겠지,/ 어둠의 몸의 일부/ 황금의 벌판에 반사되어 대기권 안을 넘실대던/ 그 빛의 영롱한 입방울들을// 그리하여 그들은 또/ 걷기를 시작할 것이다. 어둠의 푸르고 깊은/ 그 눈의 대양, 한 가운데를…//

終身종신 / 이연주
이마에 재 뿌리고/ 쑥향과 빈 촛대 들고/ 들판으로 갔다.// 나는 밀기울 껍데기로/ 홑껍데기로/ 주여,/ 용서하소서.// 어두움 실핏줄이 터져/ 못 이길 두려움에/ 혼절할 듯/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주여, 용납하소서.// 바람이 죽은 날들을 닦았다./ 나는 혼신을 다해/ 촛대 위로 올랐다.// 불을 그어다오.//

성자의 권리 1 / 이연주
나는 수술용 가운을 입었다/ 나는 메스대에 날을 끼웠다/ 바람이 영안실 서쪽 벽을 치고 갔다// 나는 의무를 임명받았다/ 나는 톱을 들었다/ 아카시아 향내가/ 5월이었다 톱날 끝을 지나갔다/ 그는 왜 늪지로 돌아왔을까// 여기 돌아와서 곱게 매장되는 일은 없다/ 사람이 사자에 먹힐 때 기립박수를 보냈던/ 사람들이 원한다/ 나는 메스를 든 손에 힘을 모았다/ 그자의 두피를 벗기고 뇌막을 열었다/ 사람들이 흥분했다// 톱날 앞에/ 골수를 다 내어놓은 그는/ 죽은 무저항의 시민 김기석인지도 모른다/ 아카시아 향내가 벌려진 골 속으로/ 검은 피에 박혔다/ 바람이 다시 와서 서쪽 벽을 치고 간다/ 시체 안치실로 자꾸만 날아 들어오는/ 생각이 많은 무성한 흰 꽃잎들//

봄날은 간다 / 이연주
토요일 오후 봄날/ 어른 셋에 여자아이 하나가 거실에 있다/ 아이는 몇 해를 숨어 있는지 모를/ 박제가 돼버린 이상한 나무 열매를 들고 있다/ 솜털에 박힌 마른 씨앗을 하나씩 뜯어내더니/ --아주마. 땅에 심으면 나요?// 아이가 베란다 돌밭으로 간다/ 잠이나 잤으면 싶은 봄날/ -꼭꼭 눌러줄 돌을 찾아봐라/ 싹이 되려면 큰 비바람에도 끄떡 없는/ 무거운 돌의 힘이 필요하니까// 거실의 노란빛 조명등이 웃는다/ 어른 셋이서 따라 웃는다/ 토요일 오후,/ 나른하기 짝이 없는 봄날.//

최후 사랑법 / 이연주
그가 나를 실망시킨다 나는 실망한다./ 또 다른 그가 나를 모욕한다 나는 모욕당한다./ 그와 또 다른 그를 나는 눈 속에 집어넣는다.// 전조등 불빛을 올린 자동차 한 대가 내 눈동자/ 맨홀 속을 들먹거리다 간다./ 그리곤 정적이 왔다, 그리곤/ 내가 아마 돌멩이를 걷어찼다.// 돌멩이를 사랑하는 일은 쉽다./ 걷어차도 배반 없는, 그러나/ 애정 없는 섹스.// 원망에 찬 그와 또 다른 그가 내 눈 속/ 눈은 심장이니 내 핏덩이를 할퀸다.// 어둡고 깊고 슬프다./ 누군가의 잠꼬대와도 같은/ 최후 사랑법.//

끝없는 날의 사벽 / 이연주
잊어버렸다./ 아니다 잊어버릴 수가 없다./ 아버지, 아버…/ 때에 절은 스치로프 사벽/ 창문이 덜컹거린다./ 영원히… 머지않아 기계로 바꿔지고 말/ 손의 끝없는…/ 흔들리는 15촉의 전깃불/ 끝없는 날들/ 신이… 인간…을/ 사랑하…//

즐거운 일기 / 이연주
내가 죽어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주부의 손끝에서/ 비늘 벗겨져/ 내가 도마에 오른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서// 등빛을 등에 달고 펄펄 끓는 솥에 들어가/ 살에 매운 고춧가루 박고// 아이들과 그 아버지의 한때/ 즐거움이 되어서/ 그들의 잠자리에 내가 함께/ 내가 죽어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서//

몰락에의 사랑 / 이연주
네 몰락이 내 가슴을 흔든다/ 지옥의 변방에서 하나의 경계선을 그으며/ 두려움에 떨면서/ 내던져진 정체불명의 존재인 나// 「나는 아니야」혼자말로 외치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삶의 빠르기, 높낮이에 관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뒤헝클어져 일그러진 잠의 꿈인 내 심장// 몰락이여, 내 가슴을 흔들어라/ 천왕성에서 내가 기억할 너/ 명왕성에서 내가 낳을 너, 사랑하는/ 너를 상실해 버린 너// 어떻게 해야 하나/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흰 백합꽃 / 이연주
푸줏간 주인의 손아귀에 넘어가/ 살 다루는 숙련가에게/ 주검이 처분되고 있다: 흰 백합꽃// 뼈는 토막쳐져 내장은 발발이 끄집혀 끌려나와/ 담즙을 분비하던 흔적 역력한/ 입맛 당기는 간,/ 꽃술은 모태로 돌아간다/ 긁어낸 태내 아이처럼 속수무책의/ 무자비한 주검: 순결이 절단난 백합 한 송이// 입술이 덜덜 떨리는 밤이 아니냐?/ 어김없이 왕왕 짖어대는 흰 개들의 유령,/ 백합밭이다/ 피 묻은 쇠 꼬챙이 손가락들은 에잇, 에잇!// 살아남은 자들이 수천 번씩 다짐하는/ 생존법칙은/ 순결을 지키는 모든 눈의 정수리를 찍어/ 시간을 훔쳐내라/ 푸줏간 귀퉁이에 음산하게 버티고 선/ 도끼자루에 끼어진 굶주린 식욕의 낮과 밤// 흰 백합꽃 - 낙태 전문의의 오른손에서/ 심란하게 가위질당한다/ 늙은 독재자의 동첩으로/ 덤핑 약초로 팔려나가게// 세상 잘 모르는 꽃, 두 번씩이나 죽어서도/ 주검엔 프리미엄이 없어/ 여리디여린 꽃 이파리.//

적과의 이별 15 / 이연주
당신 몸이 내 속으로 들어올 때/ 아마/ 당신은 내 먹먹한 심장을, 나는/ 쇠처럼 차가워진 당신 간을/ 후벼파내고 있는 것이네.// 두개골은 깨어지고/ 가슴은 온통 갈라져/ 당신 몸이 내 속으로 나를 느낄 때/ 포로가 되어 끌려나오는, 내,/ 당신 속의 적들,// 기어코 사랑은/ 무덤 파는 인부가 되는 것이네./ 식초즙 같은 체액으로/ 간이며 심장이며/ 깨진 두개골들 이마를 적셔// 잘가라,/ 내 옛사랑//

독재자 / 이연주
내 일기책은 두 권 반항과 복종/ 열린 마음인 양 한 권은 사무실 책상 위에/ 숨통에 꾸려 감춘 다른 한 권에서는/ 도둑질 같은 땀이 괸다// 반항과 복종이라는 두 명의/ 나는 어른이 되었네/ 이스트를 넣어 부풀린 삶 속에서/ 밀 덩어리를 반죽하듯- 일기책// 반항적 남성이 복종이 기쁨인 여성을 지배한다/ 흐르는 강물과 사계절은/ 지하실 납골당의 뚜껑 깨진 푸른 단지// 두 갈래 습관의 혓바닥이 쓰네/ 노동의 참신한 내 하루,/ 도둑질 같은 땀을 훔치며/ 도망치는 보상 없는 내 하루// 두 명의 나를 길러 끌고가는 나는/ 집단심리를 제대로 쓰는 재벌 아닌가?/ 어느새 나는 민중이라는, 내,/ 독재자가 되어 있다.//

겨울나무가 내속에서 -위험한 시절의 진료실 2 / 이연주
겨울날이었을 게야/ 털 빠진 살가죽 외투를 추켜올리며/ 좁은 골목길 걸어 너를 만나러 가던 해질녘./ 나는 보았지/ 햇살 방울을 공중에 흩뿌리는 겨울 나무에서/ 그 종소리 -/ 폐허의 사원을 기웃거리는 것을.// 나는 생각했네./ 먹이감과 살 터를 찾아 눈먼. 인간 에어리언들의 공중전과/ 그 버팀목이 되는 가슴 없는 세계.// 햇살 방울들이 갈등이 심한 공중으로부터/ 지성으로 추락하며 흔적 없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리번거리면서 나는. 아마./ 다시 한 번 살가죽을 끌어올려 몸을 움츠렸을 게야./ 너를 만나러 가던 좁은 골목길.// 내 숨소리의 저장소. 그 밑바닥에서/ 암종의 살점들 터지고 있는지 툭. 툭. 소리 들렸네./ 나무가 내 속으로 들어온 것이었을까?/ 겨울날이었을 게야. 종소리였지./ 초록빛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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