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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청개구리 날다 / 박향숙

부흐고비 2021. 12. 17. 16:02

“어머! 귀여워라.”

아기청개구리 한 마리가 베란다 싱크대 문에 붙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물갈퀴처럼 생긴 작은 손끝에 심벌즈를 붙여놓은 듯 앙증맞다.

동생이 주고 간 야채 봉지 속에 이 녀석이 숨어 있을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몇 시간을 쫄쫄 굶었을 텐데 당장 허기를 채워줄 먹이가 없다. 우선 마른 몸이라도 적시도록 세숫대야에 물을 붓고 녀석을 넣었다. 청개구리는 세숫대야에서 유유히 헤엄을 친다. 집 옆에 있는 욱수천에라도 보내야 하는데 산더미 같은 고구마 순이 내 발목을 잡는다. 휴일이라 오늘 고구마 순 까는 일을 다 끝내야 할 텐데 마음은 온통 청개구리에게 가 있다.

어린 딸을 옆에 두고 일할 때처럼 마음이 바쁘다. 고구마 순 까는 데는 나만의 비법이 있으니 이 정도쯤이야 문제없다.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살짝 데쳐서 까면 손에 갈색 즙이 묻지 않아 좋다. 고구마 순을 잡은 손에 속도를 낸다. 한참 까다 보니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이웃을 불러 고구마 순을 나눠주고 나니 일거리가 줄었다. 까놓은 고구마 순의 오동통한 속살을 보니 벌써 입안에 침이 고인다.

청개구리는 그새를 못 참고 세숫대야 위로 올라온다. 어릴 적 딸아이는 잘 놀다가도 내가 일을 하려고 하면 심심하다며 목을 끌어안고 투정을 부렸다. 청개구리도 내가 일하는 꼴을 못 보는 모양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처럼 신이 난 청개구리가 스파이더맨처럼 날아 냉장고와 벽을 번갈아 가며 뛰어다닌다. 낯선 집에서 얼굴도 가리지 않고 주인처럼 행세하는 태도가 누가 봐도 뻔뻔해 보일 법도 한데 귀여운 몸짓에 자꾸 웃음이 난다.

일할 동안만이라도 가만히 있으면 좋은데 고민이다. 녀석은 내 손을 용케 피해 잡히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폴짝폴짝 튀어 오른다. 겨우 잡아 세숫대야에 내려놓자 다시 뛰쳐나간다. 하는 수 없이 플라스틱 젓갈 통에 넣고 입구에 양파망을 씌워 끈으로 묶었다. 영문도 모르고 갇혀 버린 청개구리가 양파망 사이로 애처롭게 나를 쳐다본다. 나오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미안해진다.

결국, 청개구리를 담은 통을 들고 집을 나섰다.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욱수천은 계곡물이 세차게 내려가면서 말끔하게 청소를 해놓았다. 공룡 발자국 유적지 주변에서는 풀벌레들이 물소리에 맞춰 이미 오케스트라 공연이 한창이다. 가끔 망월지에서 내려온 두꺼비도 있으니 그런대로 이곳도 살기는 괜찮을 거야. 나 자신을 위로하며 산책로 옆 잔디 위에 청개구리를 내려놓았다.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놀란 녀석은 내 손등을 타고 올라오더니 어깨까지 단숨에 올라와서는 옷 속을 파고든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내 딸도 이렇게 어릴 때가 있었지.

딸아이가 대학교 원서를 쓸 때였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던 아이라 대구에 있는 K 대학교 국어교육학과로 갔으면 했다. 집에서 통학하기 쉽고 등록금이 싸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부부 공무원으로서 아이도 공무원이나 교사로 크게 돈 들이지 않고 취직을 하리라 믿었다. 딸은 엄마의 희망대로 K 대학교에 원서를 냈다. 서울에 있는 K 대학교에도 원서를 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장학생으로 합격한 지방대를 마다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겠다며 고지서를 내밀었다.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일인데 오죽 신중했을까마는 부모의 입장에선 난감한 일이었다. 남편과 함께 설득해도 딸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준비해야 할 기숙사비며 등록금을 생각하며 잠을 설쳤다.

서울로 간 딸은 물 만난 고기처럼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2학년이 되더니 방송부 동아리 친구들과 자취를 하겠다며 기숙사에서 나왔다. 세 명이 원룸을 얻어 일 년간 함께 자취하더니 딸은 힘들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하는 수 없이 학교 부근에 원룸을 얻어주었다. 혼자 있으니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방값과 생활비가 늘어 은근히 걱정되었다. 더군다나 딸은 아침잠이 유난히 많아 시험 때만 되면 비상이었다. 딸이 일어날 시간에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일어났다는 메시지가 없으면 속을 태우기가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대구에서 공부시킬 걸 하는 후회가 되었다.

딸은 꼭 청개구리 같았다. 졸업 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구에 있는 법학전문대학원에 가겠다며 집으로 내려왔다.

“대구에서 공부하라고 할 때는 안 하고 서울로 가더니…”

“그럴 거면 서울에서 하지.”

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따졌다. 딸은 서울보다 등록금이 싸다며 삼 년만 더 밀어달라고 애원했다. 호언장담하던 딸은 졸업 후 변호사 자격시험에 고배를 마시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딸의 얼굴에는 눈에 띄게 스트레스가 쌓였고 내 통장의 잔액은 소리 없이 빠져나갔다. 한 번 만에 합격하면 톡톡 튀는 딸의 성격이 교만해질까 봐 실패를 경험하게 했을 거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겸손을 선물로 주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딸은 시험에 합격하고 다시 서울에서 원하던 변호사의 길을 갔다.

동화 ‘청개구리’가 생각난다. 동화 속에서는 누구든지 말썽 피우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을 원했다. 나도 그랬다. 이제는 시키는 대로만 잘하는 사람은 이 시대가 원하는 상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모든 사람이 ‘YES’라고 할 때 ‘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브랜드의 가치를 올릴 수 있다. 미래는 개척정신과 창의력을 요구하는 시대다. 청개구리가 되어 딴지를 걸고 문제를 제기해야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시키는 대로 딸이 국어교육학과에 갔으면 지금쯤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행복해하는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청개구리’ 동화가 주는 새로운 의미를 생각한다.

옷 속을 파고들던 청개구리가 내 몸놀림에 바닥으로 떨어진다. 잠시 정신을 잃은 듯 하얀 배를 드러내고 누웠더니 바로 일어난다. 화들짝 놀란 청개구리가 욱수천을 향해 폴짝폴짝 달아난다. 냇가 풀잎으로 뛰어오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뛴다. 뛰는 게 아니라 난다. 청개구리의 뒷모습 위로 딸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박향숙 수필가 《문학공간》 등단. (사)한국문화예술연대, 한국수필가연대, 대구수필문학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수필문예회 회원. 수필샘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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