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시인

이충재 시인
1965년 강원도 횡성군 서원 출생. 1994년 《문학과 의식》 등단. 한국성서신학대학교와 고려대학교대학원 졸업. 시집으로 『내 자리 하나 있다면』, 『나무와 아이들』, 『별들이 처마 밑에 내려와 쌓이고』,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고』, 『붕어빵 장수와 시인』, 『슬픈 모국어』, 『그대 입술의 힘』, 『몸 이별』, 『사람 섬에서 살며』, 『비는 비켜서는 법을 가르쳐준다』 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그대 안에 내가 있음이여』, 『행복한 아이야, 지혜롭게 세상을 배우거라』, 『가정의 건축가인 아버지의 영성회복』 등이 있다.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시인협회,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한국기독교시인협회회, 한국녹색시인협회, 새흐름동인회 회원. 남양주다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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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섬에서 살며 / 이충재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가운데도 섬이 있다/ 섬과 섬 사이 숙원의 교각이 설치되고/ 새들이 날아드는데도/ 유독 사람 섬에는 새 한 마리 들지 않는다// 시인이여/ 가을비가 온통 영혼 깊이 내리는데/ 한 마디도 못하고 그림자로 다가오는 얼굴/ 별에서 내려온 이방인이다/ 그 섬에는 바람도 빈손으로 돌아서서 올 뿐// 새들이 들고/ 바람이 분방하게 드나드는 섬/ 자유가 흔적으로 남아 있는데/ 유독 사람들 섬에는 왕래가 없다/ 단단히 걸어 잠긴 녹이 슨 철문만이 즐비할 뿐// 누구없소/ 섬 벽을 향해 아우성쳐 보지만/ 섬 바위의 불을 치는 바람만 징징 거릴 뿐/ 누군가를 위해서 울어 줄/ 파도 닮은 그 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시인과 새 / 이충재
새키손가락/ 마디만도 못한/ 모이주머니를 채우고도/ 저리 즐거이 하늘 향해 미소 짓는/ 그대를 앞에서 부끄런 삶이다// 시인의 영혼은/ 몇 그램의 일용할 양식이 있어야/ 사랑을 하며/ 용서를 하며/ 비로소 사람이 될까// 불온한 시대/ 시인은 무릎 꿇고 새에게 묻는다/ 시 한 편 쓰지 못하고/ 날마다 잉용*할 양식만을 축내는/ 이 부끄러움 언제쯤 끝이 날까//
* 잉용: 이전의 것 그대로라는 의미.

붕어빵 장수와 시인 / 이충재
이정표 없이 바람 부는 날/ 심열보다 뜨거운 화로에 불 댕기고/ 붕어빵을 굽는다/ 붕어빵 사들고 걸음질 하는 이들 향해/ 행복 주지 못해도/ 화로 곁을 다녀간 이들의 꿈처럼/ 붕어가 살아서 저 해원을 물길 쳐 오르기를…… // 그리운 이들을 떠나보낸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람들/ 때론 그림자뿐인 이들을 그리워하며/ 이 밤 붕어빵 가게 호롱불 밑에서/ 시인은 꿈을 꾼다/ 화롯불에 몸과 마음을 태운 붕어들이 살아/ 누비게 될 저 해원에 펼쳐질 평안을//

바람으로 서 있는 나무 / 이충재
나 쓸쓸히/ 아픈 흔적을 지워가며/ 우두커니 서 있다/ 얼마를 더 울어야 바람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얼마를 더 흔들려야 바람의 언어를 배울 수 있을까// 들풀이 부러운 세상/ 모가지 살랑살랑 흔들며 바람의 말을 듣는/ 그 거리에 이정표처럼 우뚝 서 있는/ 나무 꼭데기에 자유로이 둥지를 트는/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나는 바람이고 싶다// 사람을 멀리하고픈 밤 바다 같은 이 아침/ 탓하지 않고 위로의 노래소리 들려주는/ 착한 가슴과 가슴의 울림/ 네거리에 꽃잎 소망을 안고/ 바람의 의미로 그대 앞에 서 있고 싶다//

가벼운 통행 / 이충재 이 또한 지나갈 뿐이야/ 슬퍼하지도 아파하지도/ 행복해하지도 불행하다고도/ 외로워하지도/ 예쁘다는 것과 건강하다는 것도/ 자랑하지 마// 이 또한 지나갈 뿐이야/ 한그루 나무 한포기 들풀과 꽃/ 한 개의 돌 한 점 구름/ 저 강변의 흐르는 잔물결들// 수 없이 스쳐 / 지나가는 상점의 진열된 상품들/ 길지 않는 생애/ 이 또한 삶의 길목에서/ 만난 소소한 일상일 뿐이야/ 일상일 뿐이야/ 일상일 뿐이야//

가을 고양이 / 이충재
망가진 영혼이 갈긴 쪽지를 구겨넣고/ 밤 공원을 어슬렁거린다/ 주머니마다 가득한 구겨진 쪽지들을/ 하나 둘 낙엽 더미에 묻어두고/ 입김 호호 불며 불을 놓고 돌아서는 길에/ 나뭇잎 사이에 누워 자는 고양이를 만났다// 사람은 형편없이 무너지는데/ 오히려 야생짐승들은 길들여져/ 사람과 이웃하며 살아가는 세상/ 동서양의 계절이 뒤바뀌고/ 식생과 문화마저 뒤바뀌어 가는 역류현상/ 세상을 향한 창조주의 제 2의 섭리가 작용한 셈인가// 사철나무 울타리/ 낙엽 수북한 곳에 자리를 펴고/ 바람 피해서 깊이 잠든 고양이를 보며/ 덩달아 곁에 눕고 싶다/ 신의 보드라운 손의 온기를 느끼고 싶은 시절/ 저들에게는 있고 사람에게선 헐벗은 영혼이 차가웁다// 시류가 역류하는 시대/ 이웃이 된 고양이들과 손 잡고/ 나뭇잎 수북한 들녘에서 춤사위나 즐겨야 할까보다/ 군중들 만나고 돌아왔는데/ 왜 이리도 영혼이 쓰리고 아프기만 할까/ 저리로 명백하게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먼지를 쓸며 ㅡ김종삼을 생각하며 / 이충재
에르네스트 쇼송의 시곡을 들으며/ 빗질을 한다/ 어여 쓸려 몸을 씻겨라 시인이여/ 영혼의 노래 할 수 없어/ 어두운 세계만을 사모한 이들이여/ 입에서 시를 말갛게 씻어내라// 영혼은 자유의 등불/ 희미한 불빛으론 시대를 밝힐 수 없어/ 소등을 하고/ 눈의 등을 밝히며 길을 가라/ 가난한 식속들 신음을 위로치 못해서/ 슬픔의 눈물로 앉힌 쌀 뜬물 같은 시를 쓴다// 몇 날 그리고 며칠/ 시곡을 들으며 담배연기 자욱한/ 밀폐된 공간을 향해/ 시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서 애쓴 흔적/ 시장의 먼지를 쓸던 펜으론 정화할 수 없노니/ 시인이여 펜을 내려놓고 멀리 가서 산양이나 되어라//

또 하나의 이별을 ㅡ이성교 시인님을 그리워하며 / 이충재
이제는 줄을 걸어 놓아야겠다/ 문설주에서 일상으로의 연결/ 인연의 티켓 줄줄이 걸어놓고 기웃거리듯/ 일상의 시간을 쪼개어 가슴에 묻고/ 돌아봐야겠다/ 늘 긍정적이고 덕담을 아끼지 않으시던/ 그래서 시를 쓰는 천사로 부르고 싶었던/ 그 한 분 곁을 떠나셨다// 시의 풍선 바구니를 타시고/ 눈 내리지 않은/ 어느 곳은 아직도 단풍이 물들어 있기도 할/ 들풀이 융단처럼 깔려 새들을 맞이하는 들녘을/ 시인은 금빛 노을에 길을 물으며 돌아서서 가신다/ 한줄의 시를 쓸 수 없다는 고백에도/ 시를 청 했던 지난날을 기억한다/ 시의 달구지를 타시고 덜컹덜컹 신락로길을 따라 떠나셨다// 인간의 죄로 인해서/ 몹쓸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작은별이 더 더럽혀지기 전/ 입었던 옷 가지런하게 벗어 놓고/ 시의 날개를 양 겨드랑이에 달고/ 작은 체구 실어 천국으로 귀환하는 날/ 시인을 배웅하며/ 한 편의 노랫말을 지어 인삿말로 허공에 흩뿌린다/ 시인님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예배당 가는 길 / 이충재
한 주간의 살림/ 세속적 근성이 빚어낸 다툼 뒤로하고/ 깊은 시름 차곡차곡 게 얹고 나서는/ 예배당 가는 길에서 만나는 것들은 모두가 아름답다/ 툭 하고 삐져나온 돌 하나의 모난 모습도/ 바람의 힘에 가지 잘린 앙상한 겨울나무도/ 여기저기 방향 없이 떠돌던 과자 봉지도/ 소문을 퍼 나르던 사내도/ 주일 만나면 모두 반갑다// 돌아올 때의 일을 염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영혼을 저당 잡힌 투명인간들의 허와 실을/ 아직도 원수가 된 원죄의 후손들/ 그들과 악수를 나누고 돌아올 때/ 낭떠러지기를 만난 듯 가슴이 횡 하다/ 슬픈 낯빛으로 예배당 돌아서서 올 때/ 저만치서 울음 울던 새들에게 은혜가 임하리니/ 사람은 이기를 낳고 영혼의 상처를 덫낸다/ 비로소 영혼의 말씀을 복용하고 깊은 잠에 든다//

다시 일상으로 / 이충재
주 예수 그리스도 장기 외출 중이시다/ 난민 되신 성령 하나님/ 슬픈 낯빛으로 먼발치 돌아서서 가신다/ 영적인 상함의 치유를 경험하기 전/ 사탄이 뿌려놓은 바이러스에 온통 감염 된 예배당/ 이제는 돌아와 깊은 자리에 눕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청지기가 된다/ 홀로서기/ 그 혹독한 훈련을 받지 못한 나를 탓하면서 울먹인다/ 누구에게나 있는 또는 없는 폭력과 이기란 무기/ 그들 앞에서 사랑으로 어린아이가 된다/ 일상의 현장으로 돌아가 십자가를 진다// 영혼이 몹시 지칠 때면/ 영혼의 수면 요법 말씀 안에 풍덩 빠졌다가는/ 주님께로 가 엉엉 울어버리고 말/ 다시 돌아와 일상의 끈에 이끌린 관계와 관계/ 그들의 손을 잡고/ 천상으로 소풍갈 날을 기다리면서 영혼의 짐을 내려놓는다//

영혼의 눈물 / 이충재
예수를 사랑한다던/ 종이라고 고백하던/ 주라며 한 목소리로 찬양하던 이들이/ 주님을 배반하고/ 사랑과 용서와 위로와 순결을 외면하고/ 스스로 영혼을 조롱하던 그들을/ 문상하고 슬픈 낯으로 돌아왔다// 촉촉하게 젖은 눈매/ 삶의 격이 흔들리고 있는/ 그들 영혼을 생각하면서 기도를 한다/ 영혼의 안위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이들은/ 바로 예배당 문지기들이어야 하느니/ 언제까지 예배대신/ 영적인 문상을 다녀와야만 하는가 슬픈 생이여// 이 밤 바울의 흔적을 향해 통곡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한/ 영혼의 눈물 흘려 기도하던 바울의 혼/ 그 손으로 따귀를 때린들/ 아무 말 할 수 없다 21세기 교회여/ 순결한 어린양으로 돌아가 함께 보듬어 안고 울자/ 마르지 않은 눈물 밤을 새워 흘러도 개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