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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박덕은 시인

부흐고비 2022. 2. 10. 08:00

박덕은 시인
1952년 전남 화순 출생. 시인, 소설가, 문학 평론가, 동화작가, 사진작가. 문학박사, 건강컨설턴트 1급. 《중앙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과 《광주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을 시작으로, 전 문학장르(문학평론, 동화, 동시, 시, 시조, 단편소설, 장편소설, 희곡, 수필, 소년소설, 아동문학평론)에 걸쳐 등단과 수상을 기록한 문학박사(1985년 전북대학교 학위 취득)이다. 저서로 문학이론서 『현대시창작법』 등 16권, 시집 『당신』 등 23권, 소설집 『황진이의 고독』 등 7권, 아동문학서 『살아 있는 그림』 등 10권, 번역서 『철학의 향기』 등 6권, 교양서 『마음을 비우는 지혜』 등 57권, 건강서 『미네랄과 비타민』 등 5권 등 총 125권 발간.

 

 

[인터뷰] 박덕은 시인 "시를 잊고 사는 그대에게"

이성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감성을 파헤치는 시의 세계(詩)를 탐험하다전북대학교 문학박사 박덕은 시인, 한실문예창작 400명의 작가 배출·689개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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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 박덕은
언제부터/ 그 자리에 계셨나요/ 우주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주의/ 긍정이라는 이름으로/ 우주의/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언제부터/ 그 자리를 지켰나요/ 세파 속에/ 찌들고 시달리다/ 이제야/ 당신을 쳐다봅니다 오랜 세월/ 나의 무엇을 바랐나요/ 어떻게 살아가길/ 바랐기에/ 그토록 아침마다/ 눈물의 신비를 흘렸나요/ 빛깔로 의미로/ 꿈결로 다가와/ 영혼의 볼을/ 자꾸 어루만지던/ 당신/ 이제야 두 팔 들어/ 품에 안습니다/ 뜨거워 익을지라도/ 다 녹아 흘러내릴지라도/ 죽어/ 우주로 환원될 때까지/ 빛나는 목소리/ 반사하며 살겠습니다//

 

관심 / 박덕은
당신의 아침을/ 호수 위에 펼친다// 별빛이 머물다 간 자리에/ 어제의 채도 껴입은 초록을/ 물그림자로 띄운다// 따스한 꽃잎 한 장으로도/ 물의 심장은/ 둥근 지문으로 쿵쿵 뛰는데// 밤낮없이 비를 긋는/ 당신은 바깥쪽이 젖고/ 나의 마음은 늘 안쪽이 젖는다// 파문 이는 동그라미의 안과 밖/ 그 사이 어디쯤에/ 새소리 푸르게 출렁이는데// 몸을 꺾는 겨울 속으로/ 서둘러 가는 당신의 뒷모습,/ 물이랑의 간격은 좁아져 날카롭다// 이제/ 한 번 더 격랑을 가로질러/ 고요에 다다라야 한다// 오늘도 호수는/ 당신의 깊은 묵상으로/ 평온에 가 닿는다.//

수목장 / 박덕은
장지의 사람들이/ 나무 밑에 그를 묻는다/ 자연친화적인 여관에/ 숙박계를 대신 적어내자/ 나무뿌리 끝방은/ 입실한 생전의 기억으로 만들어진다/ 죽음 예언하듯 청춘을 탕진했던/ 봄 무늬 생생한 벽지를 바르고/ 뜨거운 연애로 장판 깔고 기둥 세운다/ 미래에 가닿으려는 듯/ 그의 처소에 꽃을 올려놓는다/ 죽음만이 미래를 완성하기에/ 산다는 것은 언제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일/ 언젠가는 가뭇없이 흙의 몸 입고/ 이곳으로 오지만/ 오늘/ 입실 대기 중인 사람들은/ 울음으로 한계를 넘어간다// 구석진 방에서 흙이불 덮고 누워 있을/ 그를 대신해서 숙박계에/ 유서 쓰듯 적는다/ '참 따스한 사람'// 출입문 열고나오니/ 가벼이 숨결 내려놓듯 낙엽은 지고/ 마음 다급한 바람이 곁을 맴돈다/ 이따금 비고란에 눈물체로 글을 쓰는/ 추억들이 다녀가면/ 썰렁했던 그의 방은 차츰 온기가 돈다.​//

지푸라기 41 / 박덕은
풀씨는 남이나 북이나/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단다, 애야./ 첩첩 산중 절벽 위에서도/ 보란 듯이 야무지게/ 뿌리내릴 수 있단다, 애야./ 먹구름 안개구름 아래서도/ 무서워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단다, 애야.//

서리 / 박덕은
늦가을 이파리에 빙 둘러 성 쌓는다/ 드나드는 이 없어 수문장도 필요 없다/ 멀어진 오직 한 이름 새기면서 서 있다// 숨 열린 그때부터 한곳만 바라보며/ 몸안의 뜨거움을 꼿꼿이 지켰는데/ 일순간 무너져 버려 애가 닳은 한 생애// 떠도는 전설들이 차운 별 잇는 밤에/ 그 성의 성주였던 흰빛새 찾아들어/ 눈망울 헤싱헤싱한 그리움을 짓는다.//

사각 기와 무늬* / 박덕은
정읍 용장사 절터에서/ 기와 조각이 출토되어/ 세상과 만난다// 땅속에 묻힌 비바람 조금씩 털어내자/ 바라춤처럼 피기 시작한/ 사각무늬// 기왓장 속으로 스민/ 울음소리 조심스레 떼어내니/ 벽 향해 앉아 있는/ 어깨가 울먹인다/ 일주문 밖에선/ 상엿소리 뎅뎅 낭자하고/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다// 발끝 내디디는 하늘 향한 구리거울에/ 얼비치는 미소/ 오래 따르던 사랑이 연못에 출렁이고/ 소리 없이 지는 하얀 꽃의 얼굴// 무너지는 숨 감싸 안고/ 허공 건너는 걸음/ 바라 소리에 속하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수천 번 아픔 퍼 올린/ 저 은유의 춤 문양/ 선문답인 듯 새겨져 있다.//
* 정읍 산내면 용장사 절터에서 출토된 기와 조각에 새겨진 무늬

금오도 / 박덕은
수천 년 철썩철썩/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묵언 수행한 섬은/ 종교다// 최초의 말씀이/ 뻘밭의 간기 머금은 등고선 사이로/ 촘촘히 박혀 있어/ 믿는 자들은 누구나/ 엄숙히 허리 굽혀/ 우비적우비적 캐야 한다// 점자책 같은 자갈밭길 더듬거리며/ 교리를 이해하려는 추종자들이/ 뭍의 소란함 뒤로하고 이곳으로 모여든다/ 포교는/ 늘 일탈을 꿈꾸는 표정들로 퍼져 나간다// 꼬박꼬박 하루에 두 번/ 살그랑살그랑 붉어지는 물마루도/ 여기서는 특별한 경전이 된다// 제멋대로 자라난 울음도/ 가벼이 잦아들 수 있다는 듯/ 너럭바위는/ 뜨겁고 차가운 발바닥을 위로 향하고/ 가부좌로 앉아 있다// 갈바람통 전망대 앞바다에서/ 상괭이*들은 짐짓 설파하듯/ 살아서도 죽어서도 똑같다는 미소를 지으며/ 치솟는다// 아슬아슬한 나날로 애달팠던 웅웅거림들이/ 뭉텅뭉텅 사라지고/ 섬처럼 맑아져 가는 사람들/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비렁길 그 어디쯤에서/ 바람이 거룩한 문서 같은 갯내음을 넘기자/ 갈매기들은 오래 읽어 환한 성스러움 한 구절씩 물고/ 해안선 따라 날아오른다.//
* 상괭이: 우리나라의 토종 돌고래

얼마나 좋겠어요 / 박덕은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저 그리움 끝까지/ 당신과 함게 걸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게 부푼 날/ 저 들판 끝까지/ 당신과 함께 달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렇게 온몸이 은혜롭게 들뜬 날/ 저 계절 끝까지/ 당신과 함께 뒹굴게 내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렇게 영혼이 청아하게 펄럭이는 날/ 저 하늘 끝까지/ 당신과 함께 두둥실 올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구름아, 구름아 / 박덕은
한 곳에 만족 못 하고/ 울 아빠처럼 떠돌아다니는 구름아,/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잘 산다고는 하지만,/ 이것저것 맛봐야 참맛을 안다고는 하지만,/ 여기 패랭이꽃을 보아라/ 한 곳에 오래 머물고 있어도/ 화려한 모습과 옷차림을 탐내지 않아도/ 건강하고 예쁘고 얌전하게 자라잖니?/ 전학이 잦아/ 학교 이름과 친구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구름아,/ 맑은 마음 벽을 갉아먹는/ 걱정 근심 다 버리고,/ 패랭이꽃처럼 어린 뿌리 깊이 내리고,/ 우리 서로 가까이/ 언니 동생처럼 한 식구 되어/ 한 곳에서 오래오래 살아가자, 구름아./ 고향 냄새 마시며 재미나게 살아가자, 구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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