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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한광구 시인

부흐고비 2022. 2. 17. 07:36

한광구 시인
1944년 경기 안성에서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한양대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1974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이 땅에 비오는 날은』, 『찾아가는 자의 노래』, 『상처를 위하여』, 『산으로 가는 문』, 『산마을』. 『꿈꾸는 물 시편』, 『깊고 푸른 중심』, 『산으로 가는 문』, 『물의 눈』, 『서울·처용』, 『산경』, 『목월 시의 시간과 공간』, 『나무 수도원에서』, 『상처를 위하여』, 『한광구 시전집』과 소설집 『물의 눈』이 있다. 한국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역임.



목매기 의식(儀式) / 한광구
우리집의 하루는 나의 목매기로 시작됩니다. 아침마다 하루의 무게를 가늠해 보며 약간은 숨이 가쁘고 뻣뻣해지는 모가지를 좌우로 돌려 스스로의 모가지를 단단히 조여맵니다./ 나의 목매기는 우리집의 성스런 아침 儀式입니다. 내가 목매기를 다 마치면 먼저 막내 아들녀석이 매달려 보고, 다음 우리 쌍동이 두 딸이 매달려 보고, 마지막으로 아내가 매달려 봅니다. 내 모가지가 끄떡 없으면 목매기 儀式은 끝납니다. 이미 나는 십여 년 이상을 이 목매기를 해왔기 때문에 목매기 체질이라 웬만한 무게쯤은 끄떡 없습니다./ 어느날 아침 우리집 목매기 儀式이 막 끝났을 때 갑자기 모가지가 불편하고 뻣뻣해지며 아파왔습니다. 무슨 病이 아닐까 내심 근심하다가 아내에게 상의했습니다. 아내는 나의 가는 모가지에 다시 매달려 모가지를 이리저리 흔들어 보더니 목매기끈이 나빠서 그렇다고 굵고 튼튼한 새 목매기끈을 하나 내어줍니다./ 아직 나는 그 새로운 목매기끈으로 스스로의 모가지를 조여매는데 별다른 괴로움을 느끼지 못한 채 매일 아침 성스러운 목매기 儀式을 거행합니다. 조금식은 숨가빠도 새롭게 굳은살이 박히는 내 모 가지의 힘줄은 그런대로 우리집의 목매기 儀式을 견뎌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모가지가 불안한 아내는 또 굵고 든든한 새 목매기 끈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산경(山經) / 한광구
산에 와 보니/ 산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와서 박히는 것임을 알았네./ 내가 와서 산속에 박히니/ 풀도 나무도 저마다 와서/ 파랗게 자리잡고/ 물도 와서 모여서 흐르네./ 하늘도 이렇게 와서/ 산속에 뿌리를 박고/ 산과 더불어 살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네./ 울창한 수풀들이 푸른 잎으로 자라/ 검붉은 몸뚱이로 잎새들을 바꾸며/ 땅속에 뿌리를 박고/ 하늘의 말씀을 읽고/ 땀처럼/ 눈물처럼/ 흘리는/ 물을 모아/ 산 아랫마을로 보내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네.//

꿈꾸는 물 / 한광구
비 오시는 소리 들린다/ 꿈이 마르는 나이라서 잠귀도 엷어진다/ 아, 푸욱 잠들고 싶다/ 한 사나흘 푸욱 젖어 살고 싶다.//

꿈꾸는 물 2 / 한광구
왜 이리 몸이 무거울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다./ 문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주루룩 주루룩 비로 내린다./ 땅위에 살아 있는 것들과 몸을 섞는다./ 몸을 내 준다./ 몸을 내 준다./ 내어 주면 줄수록 맑아지는 그리움/ 이게 사랑인가?/ 햇님 오면 햇덩일 안고/ 달님 오면 달덩일 안고/ 별님 오면 별무릴 안고/ 출렁출렁 흐르는 하계(下界)의 꿈.// 하늘나라 이야기가 뭉게뭉게 잠겨있다./ 바람불어 변하는 풍경이 들어와 젖어있다.//

강물이 되어 ㅡ삶의 노래 1 / 한광구
그대, 우리가 나란히 누워 잠자리에 들면/ 검푸른 강물이 이렇게 흘러드는구려./ 젖어드는 강물에/ 설핏 설핏 스치우는 당신을/ 꿈결인가 확인하려 손을 뻗으면/ 당신은 잠결에 강물로 만져지는구려./ 그대, 어느새 모두 벗고 강물이 되었구려./ 물살의 흐느낌에 그대 숨결 느끼며/ 설핏 설핏 스치는 그대의 살을 만져보는구려/ 그대, 어느새 이리 까칠해졌소./ 무엇을 새삼 말하려 하오./ 알 수 없는 말소리 아스라히 흐르고/ 그대,/ 그대,/ 어느새 깊고 푸른 이 강물에/ 우리들이 물거품처럼 흘러가는구려.//

바늘 / 한광구
나도 바늘이 되어야겠네./ 몸은 모두 내어 주고/ 한 줄기 힘줄만을 말리어/ 가늘고 단단하게/ 꼬고 또 꼬고/ 벼루고 또 벼루어/ 휘어지지 않는 신념으로/ 꼿꼿이 일어서/ 정수리에/ 청정하게/ 구멍을 뚫어/ 하늘과 통하는/ 길을 여는/ 나도 바늘이 되어야겠네.//

바늘귀를 찾아서 / 한광구
나도 이제 몸을 벗어놓고/ 눈과 귀를 하나로 뚫어/ 하늘과 통하는 길을 내야 하리./ 얽히고설킨 이 세상의 인연들/ 채곡채곡 정리하여/ 둘둘 감아 놓고/ 인연의 한 겹 한 겹 집으며/ 깁고 또 기워야 하리.// 아름다운 생애가 되기 위해/ 내 영혼 실이 되어/ 갈라지고 찢긴 마음/ 온전하게 꿰매주고/ 이리저리 찢기고 갈린 세상/ 조각조각 맞추어/ 꼭꼭 찔러가며 하나로/ 이어주는/ 그런 바늘귀를 찾아/ 나 이제 몸 벗어놓고 떠나야 하리.//

사람의 아들 / 한광구
사람으로 말하자면 나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추운 겨울에 마구간에서 태어났으며,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보고 첫울음을 울었느니, 그때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물건으로 추위를 면했느니, 사람으로 말하자면 나야말로 사람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지. 이보시게, 내가 굶주림과 가난 속에서 떠도는 나그네 되었을 때 나를 따스하게 맞아주었던 사람아, 이보시게, 내가 굶주리고 있을 때 음식을 나눠주던 사람아, 이보시게, 내가 목말라 쓰러질 때 생수를 조금 나눠주던 사람아, 그때 나는 알았네, 알았어. 이보시게, 내가 병들어 신음할 때 한 모금의 따스한 물을 주던 그대가 내 사랑, 이보시게, 내가 진리를 위해 핍박받으며 마침내 감옥에 갔을 때 나를 찾아와 준 사람아, 그대가 내 사랑, 알겠네, 알겠네,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에게 베풀어준 그대의 사랑이 내게는 은총(恩寵)이었던 것을. 그 은총으로 사람의 아들이 예까지 살아왔네.//

벽화 / 한광구
반쯤 허물어지고/ 철골 드러났네/ 햇살 침침하고/ 먼저 두텁게 쌓였네/ 바람 불 때마다/ 몸부림치듯/ 흩날리는 먼지/ 비명悲鳴을 지르는/ 검은 그림자/ 검은 힘줄/ 고통도 이토록/ 춤이 될 수 있는가/ 몸을 벗어 걸어놓고/ 하늘로 간 사람이여.//

청소 / 한광구
그대 마음 속 깊은 방/ 창문을 열고/ 햇살처럼 오시는/ 그 분을 맞이하게./ 어둠을/ 그 분이 지워주네./ 방이 너무 누추하다고/ 방이 냄새난다고/ 문을 닫고 있으면/ 그대 방엔 곰팡이만 살리니/ 어서 문을 활짝 열고/ 맞이하시게/ 그 분 오셔서/ 그대 어둠 씻어내거든/ 어지럽던 그대의 방/ 그대 말끔히 청소해도 좋으리//

농사법 / 한광구
잘못 앉은 돌은 골라내고 굳어진 흙을 바수어 잡풀은 뽑아내고 하늘이 주신 말씀을 받아 이 땅에 엎드려 사는 목숨의 숨결과 섞었습니다. 보세요. 말씀이 파릇파릇 싹이 돋고 꽃 피고 열매를 맺는, 보십시오. 별이 지고 난 하늘에도 꽃이 피고, 길이 나고, 땅에서 하늘나라 저 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말이 복음처럼 파란 잔디밭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이게 제 필생의 농사법입니다.//

어느 수채화 / 한광구
꿈처럼 안개가 자욱하네./ 멀리 소등처럼 산이 누워있네./ 봉우리 아래 펑퍼짐한 골짜기/ 아래 폭포가 흐르고/ 소풍가는 아이들이 보이네./ 골짜기 따라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네./ 마을 입구에 하얀 성당/ 솔숲 옆으로 방앗간/ 하얀 신작로 길로/ 눈이 똘망한 아이가 걸어가네//

우리의 집 ㅡ살의 노래 2 / 한광구
우리 흐르다가/ 지금/ 어디쯤에 머물고 있나./ 흐르다가 머무는 곳이 집이 되고/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서로의 아궁이에 따스한 불을 지펴/ 이 땅의 어둠을 밝히고 살아가지만/ 아, 사랑 때문에 잠들 수 없어/ 우리 서로의 아궁이에서 타는/ 이 불꽃,/ 재를 남기고/ 끝내 몇 알의 사리 같은 낱말을 남길 수 있으랴./ 오늘도 불 밝힌 집집마다/ 밤이 가고 새벽은 오건만/ 추녀 끝엔 투명한 피를 뚝 뚝 떨구는 고드름./ 그래,/ 말해봐./ 우리 흐르면서 어디로 간다고.//

서시 / 한광구
모일(某日)// 고개 한번 끄덕이는 생애(生涯)// 하늘을 보다 지평선을 거쳐 땅 밑을 보다/ 다시 하늘을 보는/ 과정// 시구(詩句)처럼 빙그레 도는 눈물/ 눈물처럼 짜고 맑은 시.// 흘러라,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스쳐 지나가는 노래/ 영롱한 영혼의 목소리/ 날개.// 박목월 선생님의 [耳順의 아침나절]을 읽던 어느 날의 시/ 몇 주 후 선생님께서는 꿈처럼, 너무 꿈처럼 영면(永眠)하셨다.//

법원행(法源行) / 한광구
적막한 겨울/ 법원(法源)에 계시다는/ 그분을 찾아갑니다./ 눈 쌓인 길/ 입김이 얼어 하얗게 흐려지는/ 차창은 얼어/ 길은 흐리지만/ 영하(零下)의 땅/ 0미끄러운 길 돌아/ 마침내 당도한 그분의 집/ 창으로 햇살이 스며들고/ 떡과 생수가 놓였습니다./ 사람들이 몸을 녹이고/ 떡을 먹습니다./ 물을 마십니다./ 그렇습니다./ 얼음 밑에서 생수가 솟아/ 사랑으로 발효되어/ 마음으로 걸러진/ 피와 같이/ 붉은 포도주를 마십니다./ 그날은 우리는 사랑에 취했습니다.//

풍경소리 / 한광구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가시었네/ 두 임금 죽이고/ 다섯 번째 호랑이도 물리친/ 바람이/ 온다고/ 산새가 우네.// 사랑도 욕심도 없어지고/ 독선과 아집도 버리었네/ 아니, 아니 죽어도 있다는/ 두 중을 버리고/ 탐욕과 성냄/ 우울과 후회/ 다섯 번째 찾아온 의심도 물리치고/ 소리 없는 바람으로/ 내가 왔네/ 내 온걸 산새가 알아차렸네.// 국토와 산하를 모두 버리려 하는/ 적막한 오후/ 바람이 불어와/ 쟁쟁쟁/ 문득 돌아보니/ 부처님 찾아온/ 연꽃보살이 합장을 하네.//

종소리 / 한광구
산사(山寺)에 오니/ 비가 내린다./ 모처럼 생기를 찾은 숲에/ 복음(福音)처럼/ 종이 울린다./ 하늘이 내리는/ 빗줄기를 잡고 일어서는/ 저녁시간에/ 은은히 젖어드는 여운(餘韻)이/ 잦아들면/ 다시 종이 울리고/ 비가 내린다.// 참나무 감고 도는 칡넝쿨 같은/ 치정(癡情)이 풀리는/ 지천명(知天命)/ 젖어서 더 은근한 음성으로/ 암암하게 타이르는 종소리 울린다./ 오늘은/ 새도록 비가 내린다.//

따스한 입김 / 한광구
얼어서/ 각(角)이 지고/ 모난/ 시간을/ 따스하게 녹이시네/ 온 누리 골짝마다 깊이깊이/ 햇살처럼 스미는 입김/ 얼음이 녹아서/ 맑게 흐르는 물에/ 푸르게 흐르는 잎새/ 온 누리에 번져/ 꽃이 피고/ 열매 맺는/ 은총(恩寵)/ 과육(果肉)이 익어 가는/ 오늘 서울의 변두리에 불어오는 찬바람에도/ 향기 향긋하게 전해져 옵니다.//

이불을 말리며 / 한광구
오늘은 가을 햇살에 이불을 말린다./ 지난 여름 동안 축축했던 땀과/ 고된 흙먼지를 털어내고/ 안팎으로 후줄근해진 이불을/ 푸른 하늘 아래 내어 말린다./ 포근하고 따스해져/ 함께 누우면/ 스르르 쉽게 잠이 드는/ 때로 열이 나고 답답하다고 몸부림치며 걷어차고/ 때로는 춥다고 세차게 끌어당겨 안고 뒹굴기도 하는/ 이불, 이불 같은 사람아/ 구겨지면 다시 펴고/ 더러우면 깨끗이 빨아서/ 서로가 서로를 덮고 잠이 드는/ 이불, 이불 같은 사람아/ 포근하고 따스한 품으로/ 지친 몸을 감싸안고,/ 투정하는 몸을 달래/ 아침마다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오늘은 우리 내외가 덮고 살아온 이불을 꺼내/ 청명한 가을 햇살에 널어 말린다//

0.4 / 한광구
가물거린다. 그가 사라져 간후/ 만나는 사람마다 옷색깔만 보이고/ 조석(朝夕)으로 만나는 신문에서는/ 삼호(三號) 이상의 활자들만 보인다./ 뒤에서 누가 자꾸 울고 있는 것 같아서 눈을 부빈다./ 표정 없는 얼굴에서 언뜻 미소가 스치고,/ 흩어지는 활자들의 먼지인지 안개인지 자욱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한다./ 그도 나를 본듯하고, 나도 그를 본듯하다는 이유로/ 흘리는 미소./ 어깨를 스치고, 헤어지는 등뒤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면/ 이미 사라져 간 그의 목소리만 뿌옇다./ 자네의 눈은 0.4구먼./ 0.4라니, 자네야말로 0.4구먼./ 0.4의 시민들이 보이는 것을 이야기할 때/ 햇살은 낄낄대며 사라져 가고/ 웃음이 어른대는 창문을 열고 들어가면/ 0.4예요, 당신은/ 목소리가 뿌옇게 흐려지는/ 안개인지 먼지인지, 안경알을 닦는다./ 닦아도 닦아도 실체(實體)는 보이지 않는다.//

이슬의 노래 / 한광구
일생이/ 푸른 풀잎에 맺혔다가/ 떨어지는/ 한 방울의/ 투명한/ 이슬이구나.//

노래를 불러다오 / 한광구
노래를 불러다오/ 노래를 불러다오/ 가슴이 시리다/ 이미 몇백날 아픔은 뿌리를 내려/ 노래를 불러다오/ 노래를 불러다오/ 달빛에도 시리다 별빛에도 시리다/ 싸늘한 피로만 살아서/ 마른 뼈대들만 흔들리고/ 인광이 어지럽다/ 노래를 불러다오/ 노래를 불러다오/ 힘줄을 튕기는 목청으로/ 사랑함으로 비열하게 매달린다/ 멀어져라 음계여/ 신경의마디 마디/ 떨어져라 붉은 핏방울/ 다정하면서 잔인하게 노래를 불러다오/ 오 노래를 불러다오 가슴이 시리다/ 노래를 불러다오 노래를 불러다오//

매화 / 한광구
창가에 놓아둔 분재에서/ 오늘 비로소 벙그는 꽃 한 송이/ 뭐라고 하시는지/ 다만 그윽한 향기를 사방으로 여네/ 이쪽 길인가요?/ 아직 추운 하늘문을 열면/ 햇살이 찬바람에 떨며 앞서가고/ 어디쯤에 당신은 중얼거리시나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 하나가/ 매화꽃으로 피었네요./ 매화꽃으로 피었네요./ 이쪽 길이 맞나요?//

이런 날은 / 한광구
그루터기에도/ 새순이 돋는다고 하셨으니/ 이런 날은/ 소슬한 햇살이 내려와/ 얼어 붙은 피가/ 녹아 흐르며/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마다/ 간지럽다고 흔들립니다./ 눈을 뜨고/ 돋아나는 꽃잎을 봅니다./ 파릇 파릇 돋는 잎을 봅니다./ 귀를 열고/ 은은히 감도는 숨소리/ 오시는 발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일막 / 한광구
막이 내린다./ 시인으로 살아온 한 생애가 닫히고/ 한 사람의 생이 마감된다./ 벽으로 시인의 전집이 꽂히고/ 흐느끼듯 장송곡이 흐른다./ 아득히 멀리서/ 살아온 생을/ 위로하는 말씀이 은은히 들린다./ 흔들리는/ 마지막/ 여운이/ 젖어든다.//

눈을 뜨니 / 한광구
눈을 뜨니/ 모악산 허리에 붉은 단풍/ 안개구름이/ 곱게/ 청송대에서 봉은사까지/ 서려 있고/ 금빛 햇살이 스며드는/ 숲에/ 어른대는 내 생애/ 어느새 단풍 들어/ 내려오는/ 층층/ 다리/ 휘청거린다.//

 

선운사 동백꽃 / 한광구

미당 선생이 지팡이 짚고 거닐었음직한 선운사 앞마당에 오니 선생은 동백꽃 보러 왔다가 동백꽃은 못보고 주막집에 들러서 육자배기에 붉게 취하셨나보다.// 무량수전(無量壽殿) 돌아 검푸른 머릿결 빗은 동백숲에 오니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봉오리들이 저무는 봄 햇살에 꽃 그늘을 만들고 있더군. , 저기 어디쯤 미당 선생이 거닐다가 유정(有情)하여 주막집으로 드셨나 보군, 그분 따라가서 풍천장어에다 붉게 익은 산딸기 술 몇 잔 마시고 동백아, 동백아, 불러보았더니 서러움에 취한 듯한 지는 동백꽃이 내 손목을 잡는데, 이어서 막 피어나는 동백꽃이 춤을 추자고 몸을 흔드네. 그래, 그렇지, 이왕이면 색신(色身)이 고와야지, 저마다 꽃등을 켜들고 황혼(黃昏)으로 녹아드는 오늘 나의 동백(冬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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