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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바지랑대 / 허이영

부흐고비 2022. 3. 2. 09:03

제10회 동서문학상 금상

가을장마인가 보다. 잠깐 해가 비추더니 금세 퉁퉁 부은 하늘에서 횃대비가 쏟아지고는 하다가 유리알처럼 투명한 하늘이 열렸다. 그 동안 궂은 날씨로 볕을 보지 못한 이불은 습기가 차고 쾨쾨한 냄새가 났다. 문득 이불에서 나는 햇살 냄새가 그리웠다. 여름의 흔적을 털어내기 위해 가을바람이라도 쐬어야겠다. 어스름 땅거미가 내릴 쯤, 이불 걷는 시간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하루 종일 낮볕이 다듬이질한 이불에서 폴폴 날리는 햇볕 냄새와 손바닥을 간질이는 그 따스함이 온몸으로 전해질 때, 하루의 피로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만다.

오랜만에 여기저기 땀이 밴 속옷과 여름살이 흰옷을 모아 찜통에 넣고 푹푹 삶았다. 밥을 짓는 소시랑게처럼 북적거리던 거품이 이내 찜통 밖으로 울컥 끓어 넘쳤다. 속옷에 묻어있던 세상의 때가 비눗물에 녹아 풀어지면서 뿌옇던 물이 자꾸만 시커멓게 변하고 있다. 내 속 깊은 곳의 묵은 때도 푹 삶아 한번 쯤 저렇게 세상구경을 시키고 싶다. 나도 살아가는 동안 갓 삶아 말려 놓은 빨래처럼 때 묻지 않는 빳빳한 마음으로 살아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날은 베란다가 소란스럽다. 하얗게 제 모습을 찾은 빨래를 건조대에 널었더니 문 밖을 지나던 햇살도 거기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몰래 스치던 바람도 놀러 왔는지 젖은 빨래가 풀럭거린다. 흰 옷가지들이 해만큼이나 눈이 부시다. 그런 날은 내 마음도 부뚜막의 정화수에 헹구어 내 듯 맑은 사람이 된다.

시골집 앞마당을 가로질러 기다란 빨랫줄이 있었다. 처마 및 서까래의 굵직한 못과 앞마당 감나무를 이어놓은 빨랫줄에는 늘 여러 색깔의 빨래가 널려 있었고, 옷가지들이 바람에 휘날리면서 사라락사라락 소리를 냈다. 이불 홑창이라도 널어놓은 날이면 까상까상한 홑창 사이를 헤엄치듯 다니며 장난을 쳤다. 그 틈새로 언뜻언뜻 내다보이는 빈 하늘은 물결 없는 바다였다. 빨래줄 귀퉁이, 널부러진 엄마의 옷 아래 서곤 했다. 축 늘어진 빨래는 해질 무렵 녹초가 된 엄마의 모습처럼 가년스러웠다. 엄마는 삶에 물꼬를 트느라 늘 들녘의 차지였다. 뒤꼍을 돌아온 바람이 불자 코끝에 수채화처럼 엄마의 냄새가 번지고 설움 섞인 그리움이 가슴팍을 누볐다.

철철 넘치는 갈매빛 샘물은 차고 맑았다. 하늘의 구름도, 아래마당 감나무도, 때 이른 가을소국도 그 안에 다 있었다. 샘 속에 비친 그림자에 반해서 행여나 잡을 수 있을까 손을 담그고 휘적거려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물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잡힐 것 같던 그림자는 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듯 흩어지고 말았다. 한 입 베여 물면 폭신할까? 손에 닿으면 무서리처럼 사라져 버릴까? 구름을 손끝에 느껴보고 싶었던 조무래기의 소망이 마침표의 여운으로 소복소복 쌓이기 시작했다.

방금 가져온 빨래를 널자 물이 투두둑 떨어졌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빨랫줄이 축 늘어져 옷들이 땅에 닿을 만큼 내려오자 어느 날, 아버지는 날씬하고 긴 나뭇가지를 잘라 와서 껍질을 벗기고 잘 다듬었다. 속살을 드러낸 나무는 손이 착착 감기도록 매끄러웠다. 브이자로 갈라진 가지 끝부분에 빨랫줄을 걸어 하늘 높이 올려놓았다. 아버지는 그것을 “바지랑대”라고 불렀다. 그날부터 빨래는 하늘에서 춤을 추었고, 바지랑대도 그것들이 움직이는 대로 이리저리 너울대며 제 무게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 날에도 어김없이 하늘 한 가운데서 나풀거리던 빨래는 잠자리와 한 무리가 되어 자꾸만 푸른 지구 밖으로 빨려 나가고 있었다.

바지랑대는 먼 하늘과 나를 연결하는 단 하나의 길이었다. 그 끝에 위태롭게 내려앉은 빨간 고추잠자리는 내 어린 애를 태웠다. 어쩌다 무리지어 지나가던 소담한 구름도 바지랑대 꼭대기에 걸렸다. 내가 애타게 잡고 싶은 구름과 잠자리는 그 주변에서 뱅뱅 맴돌았다. 언젠가 내 키보다 몇 배 긴 바지랑대를 끌고 뒷동산에 올랐다. 동산 꼭대기에 올라서서 그것을 세우면 하늘에 맞닿을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며, 마른 먼지 날리는 가파른 흙길을 걸어 바위에 올라섰다. 바지랑대를 세워 보았다. 긴 바지랑대를 하늘 끝에 걸치면 가득찬 물주머니에 구멍이 생겨 물이 쪼르륵 새어 나오듯, 터진 하늘에서 푸른 물감이라도 또로록 떨어질 것 같았는데 티끌만한 상처도 없었다. 구름 한 스푼이 그 끝에 묻어 내 손바닥 안에 놓일 줄 알았지만 조각구름 또한 아무 일 없이 제 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날, 하늘로 향하던 단 하나의 길이었던 바지랑대는 땅위로 길게 드러누웠다. 그 옆에 나도 하늘을 마주보고 누웠다. 하늘과 나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었다. 어린 꿈이, 질질 끌려오던 바지랑대 끝의 흙먼지 속으로 천천히 흩어져버리자 아득히 멀리 보이는 마을의 집만큼이나 내 마음이 작아졌다.

지난 주말, 안개가 흩뿌릴 때 차창 밖으로 달리는 풍경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인적 드문 시골집 마당에 시선이 머물렀다. 잊고 살았던 것들이 거기 있었다. 빈 빨랫줄을 가볍게 받쳐 든 바지랑대는 허공으로 솟아 있었고 그 위로 안개가 바삐 쫓겨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안개구름이다.” 어렸을 적, 바지랑대에 잡히지 않던 구름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산허리가 점점 드러나며 그곳을 감싸고 있던 희뿌연 무리는 서둘러 산등성이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그것은 안개였다. 그러나 산마루로 올라가 잿빛 하늘가에 들어서면 그것은 구름이 되었다. 구름이 내 곁에 있었던 것이다. 안개의 이름을 빌어서. 그렇다. 꿈은 구름처럼 잡지 못할 곳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안개처럼 형체 없이 내 삶 속에 있었다.

풋내 나는 시절, 구름을 만져보고 싶은 희망으로 혼자서 뒷동산을 올랐던 옹골찬 일 이후, 나는 해야 할 일을 제외하고 소망 하는 것을 위해 얼마나 몸부림쳤던가? 기억이 끊어졌다. 아니 그런 기억이 없었다. 회초리를 처음 맞던 날처럼 마음 안이 아프고 쓰라려왔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이란 시처럼 두 갈래의 갈림길이 내 선택을 강요했다. 매번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현실을 살아내기 위한 길을 택하는 것은 마뜩찮은 가늠질이었다. 그때부터 꿈은 푸른 나무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삭정이 신세였고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계륵(鷄肋)처럼 내 삭신에 빌붙어 삶의 무게를 더했다. 가슴을 짓누르는 다듬잇돌 하나를 안고 살았다. 그것은 간이 센 인생의 맛이자 형벌이었다. 그 꿈이 내 가슴팍에 수직으로 꽂혔다. 잃어버린 가족을 다시 찾은 것처럼 뜨거운 그 무엇인가가 울컥하며 느꺼워졌다. 잠시 안개보다 더 짙은 혼돈이 나를 흔들었다. 그 혼돈의 맨 끄트머리에서 희미한 형체들이 드러났다. 삭정이에 새순이 돋는 것처럼 몸 안에 새로운 기운이 샘솟았다. 몸이 가벼워졌다.

마흔이 넘어 여린 꿈을 꾼다. 아직 실하지 않은 꿈이라 고갱이가 없어 흔들릴 때마다 바람에 능청거리나 쓰러지지 않는 바지랑대를 닮아 가련다. 어릴 때, 바지랑대는 내 소망을 꺾어 내리는 훼방꾼이었지만 지금은 나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었다. 처진 빨래를 추스르듯 내 바람들을 하나하나 곧추 세워주기도 한다. 세포하나 움직일 마음이 없이 축 늘어져 있는 날, 두레박을 타고 오르던 나무꾼처럼 나를 하늘가로 끌어올려 다독거려 주기도 하고, 땅바닥으로부터 몸이 붕 뜨는 날에는 나를 꼭 붙잡아 주기도 한다.

오늘도 나는 마당 가운데 우두커니 서있는 빛바랜 바지랑대에게 삶의 단편을 전해 듣는다. 드센 바람이 부는 날은 똑바로 서있기보다 옆으로 비스듬히 비껴서는 법을 배웠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서서 모진 바람을 맞기보다는 바람과 함께 이리저리 흔들리며 고꾸라지지 않는 지혜를 배운다. 빨래를 널듯 잃어버린 꿈을 찾아 빨랫줄을 채워간다. 아직 쭉정이 같은 꿈이지만 소망으로 여무는 보름달처럼, 가을바람에 깊어지는 풀벌레 소리처럼 내 꿈도 더 여물어 지고 깊어지기를 소원해본다. 그리고는 늘어진 마음을 다잡듯 바지랑대를 하늘 향해 크게 한 번 추켜세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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