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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포옹 / 손훈영

부흐고비 2022. 3. 3. 08:34

제11회 동서문학상 동상

텅 빈 벽면에 흑백 사진 한 점이 걸려있다. 네 개의 팔로 세상의 위협과 폭력을 차단시키겠다는 듯 굳세게 끌어안고 있는 사진 속 두 남녀를 본다. 맞닿은 심장에서 솟구치는 힘찬 박동소리가 들린다. 그 박동소리에 몸을 실어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는 듯 여자의 입가엔 희마한 미소가 서려있다.

이 방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서재라고 그냥 밋밋하게 부르기에는 방의 느낌이 너무 특별하다. 다갈색 벽지가 차분한 벽면을 따라 연한 검정 색깔의 나지막한 책장 두개가 이어져 있다. 그 앞으로 놓여 진 폭이 좁은 긴 책상이 책장과 맞춤인 듯 어우러진다. 책꽂이의 책들은 필를 나눈 혈육들처럼 다정히 포개어져 있다. 스틸 프레임이 심플한 데스크 탑과 하얀 색 복합기. 그것들이 이 방의 전부다.

세평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다. 단지 장식을 위한 것이거나 눈에 거슬리는 물건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로만 채워진 방이다. 우리 집 전체로 봐서는 제일 작은 방이지만 작아서 그런지 가장 아늑하다.

혼자만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듯 긴 책상 앞에는 단 하나의 의자만 놓여있다. 그 의자에 깊숙이 몸을 부려 놓을 때면 태초의 자궁이 이럴까 싶게 방과 나는 완전히 밀착된다. 방 전체가 두 팔을 벌려 나를 보듬어 안는 듯한 포근함과 평안을 느낀다.

남편은 스스럼없이 포옹을 잘 하는 남자였다. 길에서건 음악 감상실에서건 나를 발견하는 순간 긴 팔을 동그렇게 벌리고 흔연히 웃어 오는 사람이었다. 반가움의 표시가 꽤나 서구적인 남자였다. 얼마간 내성적이고 소심하던 나로서는 그런 외향적이고 열정적인 인사법이 어쩐지 계면쩍고 쑥스럽기도 햇지만 환대로 열려진 그의 두 팔이 매번 감동적이기도 했다. 마악 연애가 시작된 청춘 남녀가 무얼 한들 감동적이지 않았을까마는 그의 사심 없는 포옹은 확실히 나를 사로잡은 결정적 무엇이 되어 주었다.

그의 가슴과 나의 얼굴이 맞닿은 잠시 잠깐, 그 사이로 건네져 오던 담백한 체온은 이 남자와 함께라면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 같은 것을 불러 일으켜 주었다. 날깃한 셔츠에서 풍겨오던 빨랫비누 냄새는 검박함과 소탈함이 그의 정체성임을 느끼게 해 주었고 나의 등을 토닥이던 정다운 손바닥은 삶의 그 어떤 격랑이라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겠다는 믿음을 안겨주었다. 날밤을 새며 나누었던 수많은 말들보다 격의 없이 열려지던 그의 포옹에서 그와의 미래를 더 확신 할 수 있었다.

포옹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을 끌어안는다는 것은 그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을 잘 베풀 수 있듯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받아들여져 본 사람은 다른 그 무엇인가를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결혼 후 나의 나날들이 그러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남자로부터 전적으로 받아들여진 그 기억의 힘으로 어쩐지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내 존재에 새겨진 그 따뜻한 느낌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죽도록 회피하고 싶은 혈육들을 끝끝내 져버리지 않게 해주었고 나 자신 짐승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그토록 질긴 권태와 무기력 속에서도 자기응시라는 한 가닥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생각해 보면 그 기억의 힘이었던 것 같다.

그와의 굳센 결속력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나는 굉장히 황폐한 인간이 되었을 것 같다. 그와 일군 이 아름다운 방에서 세상과 접속하고 있는 한갓진 시간을 결코 누리지 못했을 것 같다.

편집븡과 과대망상, 충동조절 기능이 망가진 혈육과 함께한 십 수년 세월은 문자 그래도 고통의 바다였다. 어떠한 논리나 개연성도 없는 동생 머릿속 온갖 망상과 환청의 뒤죽박죽을 멀쩡한 정신으로 감내해야 했다. 지치지도 않고 돋아나는 망상의 잡초들을 애정과 연민을 다해 뽑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동생이 쏟아내는 말도 안 되는 억측들을 일일이 바로 잡아 주려다보면 몸은 바닥없는 수렁으로 가라앉고 입에서는 독한 단내가 났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독 묻은 쇠사슬이 온몸을 죄어 오던 날들이었다.

누구보다 다감했고 긍정적이던 사람이 어둑하고 염세적으로 변하기에는 십년 세월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의무와 억압이 어떻게 한 인간을 망가뜨리는지를 내가 나를 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주민등록을 말소 하고 먼 먼 이국으로 탈주한다는 계획은 내 이성을 갉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뿌리 뽑기 힘든 독버섯이었다.

완전히 움켜쥐기도 그냥 놓아버리기도 불가능한 뜨거운 감자 같은 시간들을 겪으며 운명을 한탄하는 나의 울부짖음을 지켜보는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한결같이 묵묵히 나를 포옹해 오던 그의 두 팔은 격랑을 만난 뗏목처럼 요동치던 새 삶의 튼튼한 닻이자 방파제였다. 그의 전적인 포옹이 없었더라면 이미 나는 난파했을지도 모르겠다. 삶의 어느 외진 기슭으로 떠밀려가 참담하게 부식되어 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방은 아늑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포옹을 하고 있을 때처럼 외로움이 해소되고 불안감이 잠재워진다. 벽을 따라 놓여 진 자신들의 집에 편안하고 안전하게 자리 잡은 책들이 정답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에게는 가장 밀접하고 친근한 사물인 그들이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환대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들락거려도 내치는 법이 없다. 컴퓨터를 작동시킨다. 낡은 기계들 대부분이 그렇듯 켜자마자 우웅 소음을 뱉어낸다. 오래 길들여진 사물에서 나오는 소리는 정든 식구들의 숨소리 마냥 친근하다.

세상을 등지고 문을 닫아걸었던 시간의 갈피에 쌓인 묵은 먼지들을 털어 낸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책상 앞 의자에 깊숙이 엉덩이를 들이밀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이고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말을 건다는 것이다. 세상과의 소통과 교감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책도 글도 아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방의 전적인 호의에 힘입어 한 편 두 편 글을 쓸 때마다 무겁게 닫아 두었던 육중한 문을 조금 열고 깨끗이 빤 속옷 하나를 내거는 기분이다.

'우웅~'하는 컴퓨터의 소음이 마치 먼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의 엔진 소리 같다. 그 소리는 나를 독려한다. 밀실에서 광장으로 한 발 내디디라고 주문을 건다. 끝없이 읽기만 하는 자폐적 만족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광장적 기쁨을 맛보라고 나를 부추긴다. 주저하지 말고 세상을 향한 화애의 기록물들을 던지라고 나의 등을 떠민다.

이 세상 어떤 공간이 있어 이 보다 더 나를 안정되게 감싸 준다는 말인가. 이곳은 높고 험준한 인생이라는 산을 오를 수 있게 하는 든든한 베이스캠프다. 이 방은 포옹과도 흡사한 가장 원초적이고 정서적인 어떤 것을 베풀어 줌으로써 나로 하여금 강력한 생의 에너지를 재생시킬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전적으로 나를 받아들여줌으로써 그 확고한 힘에 의지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 방과의 완벽한 밀착감은 내 남자와의 굳센 결속과 함께 내 인생을 전진하게 하는 동력기의 양 날개다.

고통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행복과 기쁨도 잠시, 생이 우리에게 줄기차게 요구하는 것은 슬픔과 아픔 그리고 그것들의 극복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생의 이 험혹한 조건들을 어떻게 변주할 것이가이다. 다만 어둔 밤을 넘어지지 않고 더듬어 가는 법을 깨우쳐야하고 포기하지 않고 삶의 격랑을 타는 법을 배워야 할 뿐이다.

아직은 풍랑이 멈추지 않았고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지만 포옹의 힘에 의지해 바람 부는 한 바다로 뛰어든다. 불안도 두려움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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