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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조각보 / 김제숙

부흐고비 2022. 3. 3. 08:36

제11회 동서문학상 동상

친구가 조각보 하나를 보내왔다. 다과상이나 찻상을 덮을 만한 크기이다. 상보로 쓰기에는 좀 작은 듯하지만 외출을 할 때면 남편의 상을 보아서 이 조각보로 덮어둔다. 남편은 밥과 국에 두어 가지 반찬이면 족한 사람이라 크기가 적당하다.

젊은 시절에는 자질구레한 생활 소품들은 웬만한 것을 여러 개 두고 쓰기를 좋아했다. 바느질을 배워 손수 만들었다. 바느질하기를 좋아하는 탓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을 일일이 사서 쓰기에는 생활이 바듯했다. 아이들 턱받이나 토시, 고무줄 바지, 전화기받침, 앞치마, 베갯잇, 커튼들을 만들었다. 이제 아이들은 자라서 집을 떠나고 우리 부부만 있어서 집안을 어지럽힐 일도 별로 없고, 매일 쓸고 닦아야 할 일도 줄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즐길 나이도 지나서 요즈음은 꼭 필요한 것만 제대로 된 것 하나를 사서 오래 쓰는 편이다.

조각보는 모시로 만든 것이었다. 겹보를 만들 때는 천과 천을 감침질로 이어 붙인다. 그래서 완성된 것을 보면 이어붙인 자리가 하나의 선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시나 삼베 조각보는 홑겹이라 쌈솔로 바느질을 한다. 감침질은 아무래도 미어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쌈솔은 시접을 접어 서로 맞물려 고정시키는 바느질법이다. 이어 붙여 바느질 한 자리만 두 겹이 되니 그 부분의 색깔이 좀 더 진하고 도드라져 보인다. 여러 조각을 이어붙인 그 자리들은 마치 미로(迷路)같다.

미로는 거칠 것이 없어서 똑바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왼쪽이나 오른 쪽으로 꺾어 돌아야 하는가 하면,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하고, 다행히 완만한 길을 만나 잠시 숨을 고르고 나면 다시 벽을 앞에 두고 양 갈래의 길이 나타나 어느 길로 가야할지 망설이게 된다.

문득 내가 살아온 인생길을 돌아본다. 아픈 몸으로 대학에 다니고 있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으니 이미 고생을 각오한 출발이었다. 남편이 십 년 남짓 고등학교 교사로 봉직하면서 어려움도 겪었다. 교육은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인격 함양과 특성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남편의 신념은 일류대학 진학률이라는 벽에 부딪쳐 수없는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결국 학교를 떠났다.

그 즈음에 집안이 전소되는 화재를 당했다. 알뜰하게 쪼개 쓰고 여며두었던 얼마간의 돈으로 하나하나 장만한 살림살이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자칫 다섯 살 난 아들까지 가슴에 묻을 뻔했다. 겨우 수습하고 허리를 펴니 쉰 중반의 연세로 친정아버지와 어머니가 잇달아 돌아가셨다. 마음 한 자락 내려놓을 곳도, 잠시 등을 기댈 곳도 없었다.

조각보는 말 그대로 여러 조각의 자투리 천을 모아 만든 보자기이다. 손바닥만한 큰 조각도 있고 아주 작아서 손톱만한 조각도 있다. 작은 조각을 이어붙일 때는 여유를 가지고 더 많은 정성을 들여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작은 조각이라고 만만하게 보거나 지나치게 조바심을 내다가는 바느질이 곱게 되지 않는다. 그러면 전체의 균형은 깨어지고 만다.그러나 각박한 현실에 부딪치면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듯 느긋하게 걸어가기가 쉽지 않다. 남편이 새로운 일을 준비하느라 우리 가족은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살았다.

그러느라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네 곳, 중학교를 세 곳이나 거쳐서 졸업을 하였다. 또래 집단에 속하여서 작은 사회를 배워가야 할 시기에 그렇게 전학이 잦았으니 마음을 터놓을 친구 한 명 사귈 여유도 없었을 터이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더운 울음을 삼키곤 한다.

가파른 길은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를 미로를 걷고 또 걸었다. 잠시만 방심하면 마음속에 고이는 어둠을 퍼낼 기력도, 자꾸만 꺾이는 허리를 다시 펼 희망도 희미할 때면 어서어서 세월이 흘러 인생의 황혼에 서고 싶었다. 그 무렵은 아마 내 인생에 있어서 손톱만한 조각 천을 잇대어야 하는 세월이었나 보다.

사실 조각보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고이 모셔 두었다가 한 번씩 감상을 하는 작품이 아니다. 조각보는 이름 없는 아낙네들이 맨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터이다. 그냥 버려질 천 조각들이 아까워서 그것을 모아서 재미삼아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서툴면 서툰 대로, 솜씨가 있으면 솜씨 있는 대로 만들어 생활에 사용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생길을 가는 것은 조각보를 만드는 것과 같다. 솜씨가 서툴러서 바늘로 손가락을 수없이 찌르던 세월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제법 큰 조각들이 나에게 주어졌다. 바느질도 이력이 붙어서 한결 쉬워졌다. 이렇듯 인생 여정의 굽이굽이에 놓여있는 크고 작은 작은 문제들을 이기고 나면 그만한 힘이 생긴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미로를 걷는 것이 딱히 어려운 일만은 아니었다. 가파른 오르막을 만나 한발 한발 오르다 보면 숨은 턱까지 차오르지만 어느새 시원한 바람은 이마의 땀을 식히고 발은 두둥실 구름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 모든 것이 발아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거칠 것 없는 대로를 순식간에 지나기를 바랄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같은 천 조각을 가지고도 그것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바느질 하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다른 조각보가 된다. 조각보는 서로 다른 색깔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같은 계열의 색깔들로 구성하기도 한다. 같은 계열의 색상이라도 각각의 조각은 색의 밝고 어두움과 조직의 곱고 거침에 따라 서로 다른 명도를 나타낸다. 자신만의 감각으로 색상과 크기 그리고 재질의 미묘한 차이를 잘 살려내면 남다른 조각보를 완성할 수 있다. 누구나 같은 인생을 살 수는 없다. 그러니 남의 조각보를 기웃거릴 일도, 내 조각보를 마다할 일도 없는 것이다.

잠이 오지 않는 늦은 밤, 은빛 비단을 펼쳐놓은 듯 달빛이 흐르는 창가에 서면 지나간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시간은 물 흐르듯이 흘러가지만 어느 한 날의 기억들은 강의 작은 징검다리로 남는다. 남아서 오늘과 내일을 연결한다. 바로 조각보의 작은 조각들이 그러하다. 어느 한 조각도 허투루 버려질 것은 아니다.

조각보는 작은 조각을 여러 개 붙인 것이 훨씬 아름답다. 크기와 색상과 조직이 다른 수십 개의 조각을 이어 붙였음에도 불구하고 산만하거나 무질서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통일된 리듬과 질서를 느낄 수 있다. 거기에는 큰 조각 몇 개로는 당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내 인생은 수많은 조각으로 만들어진 조각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마음에 날이 서 있던 시절에는 서투른 솜씨로 작은 조각들을 이어 붙이느라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 작은 조각들이 내 인생의 조각보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바로 역설의 삶이다.

자질구레한 일상사와 몇 개의 상념, 몇 조각 감정의 무늬들이 모여서 하루를 이룬다. 그 하루하루가 날줄과 씨줄로 엮이면서 일 년이 되고, 십 년이 되고, 우리의 생애가 되는 것이 아닌가.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모여서 조각보가 되는 것처럼.

친구가 보내온 조각보에서 나는 살아온 인생을 본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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