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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걷기 / 신원철

부흐고비 2022. 4. 14. 08:33

나의 걷기는 운동의 의미가 강조된 “걷기”라기보다는 “느긋한 기분으로 한가로이 거닒”이나,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로 뜻풀이가 된 산책에 더 가깝다. 칸트는 오후 3시 30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해진 길을 산책해 동네 사람들이 시간을 맞췄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키르케고르는 번잡한 코펜하겐의 거리를 산책할 때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떠올라 쓸거리가 쌓이자 그것을 잃어버릴까 서둘러 집에 돌아갔다는 일화도 있다. 그리고 소로는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을 숲과 들판을 걷지 않으면 건강과 원기를 지킬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걷기를 통하여 건강도 지키고 두뇌활동도 활발해져 엄청난 학문적 업적을 이룬 것을 알기에 나도 걷는 것만은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퇴직하고 나자 무엇보다 시간이 많아졌다. 소로가 하루에 네 시간 이상을 걷기에 할애한 것 이상으로 나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살던 넓은 숲과 호숫가도 아니고 좁은 시내 바닥을 몇 시간씩 배회할 생각은 없었다. 도서관에 갈 때나 시장에 갈 때, 혹은 시내에서 볼일이 있을 때 걸어서 다니는 것과 시내를 관통하는 천변이나 강변을 따라 걷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제는 휴대전화에 깔린 앱을 통해 수시로 얼마나 걸었는지를 확인하며 부족하다 싶으면 마을을 배회하기도 한다.

나와 함께 걷기를 자주 하는 아내는 나의 걷는 자세에 대해 항상 지적하곤 한다. 한마디로 내 걷는 자세가 올바른 걷기 요령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등을 펴고, 보폭을 좀 넓게 하고, 팔자걸음이 아닌 11자 걸음으로 하고, 팔은 굽혀 앞뒤로 크게 흔들고, 무엇보다 신발을 끌지 말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러면서 내가 팔을 축 늘어뜨리고 걷는 모습을 보면 측은한 생각까지 든다는 것이다. 난 이런 지적에 대하여 “난 이래 봬도 군대에서 완전군장을 하고 구보까지 했어도 낙오 한 번 안 한 사람이야.”라고 대꾸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구도심을 통과하는 제민천은 걷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집에서 나와 교육대학까지 올라갔다가 제민천 산책로를 되짚어 내려와 금강과 만나는 지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거의 만 보가 된다. 봄에 이 길을 걸으면 황금빛 수선화가 나의 발길을 잡곤 한다. 그리고 처음 수선화를 만났던 워즈워스의 시가 떠오른다. 거의 오십 년 전에 외웠을 영시 한 구절이 내 머리 어느 구석에 숨어있다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유월이 되면 산책로 주변의 붉게 핀 장미가 로버트 번즈의 “내 사랑은 붉고 붉은 장미….”라는 시도 불러온다. 물가의 양 벽에는 초여름을 지나 인동초의 흰색 꽃이 노랗게 변할 즈음에 주황색 능소화가 무채색의 벽을 가리는데 한몫한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벽틈에서 구절초의 꽃들이 가벼운 바람에도 몸을 뒤튼다. 세모에 찬바람을 견디는 남천의 빨간 열매와 한겨울에도 따사로운 햇살에 보답하는 별꽃과 광대나물 꽃들이 나의 발길을 붙잡는다.

요즘은 거리와 골목길을 걷는다. 이때는 한껏 느긋한 기분으로 한가로이 거닐 수밖에 없다. 익숙했던 골목이 간직했던 추억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요즘 시내 골목에는 시인의 시가 걸려있어 한 번씩 읽기도 하고, 도시의 변천과 풍속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진 앞에 멈춰서서 과거의 향수도 느낀다. 그리고 담장 위에는 검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 인형이나 바리캉을 들고 동생의 머리를 깎는 형제의 인형도 있다. 이런 것들도 내가 걷기에 온전히 몰두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나는 그것 앞에 멈춰서 두 손으로 잡고 있는 여학생의 가방에 “성문종합영어”와 “수학의 정석”이 들어있으리라 상상한다. 그리고 바리캉은 내가 파견대에서 근무하던 졸병 시절을 불러온다. 그때 선임병이 바리캉을 들고 내 머리를 깎아주었다. 제민천의 한 다리 위에서 낚시질하는 할아버지 인형은 누군가가 입힌 빨간 산타 복장을 하고 양말을 낚고 있다. 나는 가만히 서서 어린 시절 다녔던 교회를 생각했다. 함박눈이 내리던 시골교회와 어린 눈에도 어렵게 사시던 그러나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주셨던 목사님과 사모님이 떠올랐다.

내가 살던 마을의 골목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단지 담장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가 물끄러미 날 바라보거나 운동화 끄는 소리에 집안에 매여있는 개가 짖을 뿐이다. 젊은 시절 소주 한 병을 샀던 조그만 가게는 사라졌고, 천변을 따라 상점들과 기관이 들어왔다. 똑같은 형태의 후생주택들은 원룸 건물로 바뀌고 옛 모습을 간직한 몇 채의 집들만이 어렵게 과거의 추억을 붙들고 있다.

내 친구가 살던 집은 아직도 옛날 모습으로 마치 그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시절로 이끈다. 그가 부르던 애니멀스의 “해 뜨는 집(The House of the Rising Sun)”이나 앨버트 아몬드의 “남 캘리포니아는 결코 비가 내리지 않는다(It Never Rains in Southern California)”라는 노래가 골목을 채우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는 대학 시절 방학 때 집에 내려오면 기타를 치며 팝송을 부르곤 했는데 내가 보기에 수준이 상당했다.

“해 뜨는 집”이 감옥이었던가? 족쇄를 차고 뉴올리언스 교도소로 떠나는 한 남자가 머릿속에 어른거린다. 또한 “일자리도 잃고, 정신도 나가고, 자존심도 바닥나고, 먹을 것도 떨어지고, 사랑도 못 받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최악의 상태에서 결국 가수로서 성공한 앨버트 아몬드도 떠오른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직장을 못 잡고 뛰는 집값에 힘들어하는 대한민국에 사는 젊은이들도 떠올랐다. 그리고 그 친구는 갓 오십을 넘기자 아들 하나와 아내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낮은 담장 위로 보이는 목련 나무에 이미 꽃봉오리가 큼직하게 맺혔다. 아직 12월 초순인데 큼지막한 붓모양이다. 앞으로 닥쳐올 한파를 생각하면 너무 서두른 듯한데 그렇지도 않은 듯도 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보니 갈색 털이 촘촘히 둘러싸고 있어 어지간한 한파에 의식도 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한파를 이겨내야 다른 꽃들보다 먼저 꽃을 피울 수 있다는 듯 용감하게 나선 듯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서 있는 모과나무는 잎새 하나 없이 떨어졌는데도 노란 모과가 여전히 달려있다. 서리가 내린 다음에 딴 모과가 향이 더 진해지기 때문일까? 주인의 나이가 많아서 손을 못 쓰고 있어서일까? 그리고 장날에 내 방과 차 안에 놓을 모과나 몇 개 사 와야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이렇듯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들끓어 걷기 위해 나온 것인지 잡다한 생각을 즐기기 위해서 나온 것인지 헷갈린다.

천변을 함께 걷고 있던 아내가 나보다 한참 앞서가더니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자주 있는 일이다. 추위에 붉게 변한 잎과 올망졸망 붙어있는 남촌 열매와 서리에 상처를 입은 늦게 핀 장미와 더욱 푸른 빛을 띠는 소루쟁이와 그리고 다시 찾아온 청둥오리와 원앙을 보면서 걷다가 뒤떨어졌다. 요즘 다시 읽어보는 『월든』에 나온 한 구절이 생각났다. 소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발을 맞추지 못한다면 그는 어쩌면 다른 고수의 북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지금 내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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