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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삶의 순간들 / 함응식

부흐고비 2022. 4. 18. 09:14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한 방울 한 방울 쏟아지는 비는 만물을 키우는데 필요하다. 하지만 빗방울이 모여서 홍수로 변하면 도움은커녕 모든 것을 파괴한다. 살아가는 인생길에 작은 아픔들은 나를 성장시키는 기회가 된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아픔은 나를 무너뜨리는 무기가 된다.

커다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작은 아픔들을 참아내는 연단이 필요하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 위하여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살아오는 길목마다 아프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던가. 뒤돌아보면 굽이굽이 마다 어려웠던 일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힘들어 보여도,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고난이 아니다. 사람들이 고향이 어디냐고 내게 묻는다. 나는 정선읍에서 자동차로 삼십분 거리에 있는 농촌마을이 고향이다. 이렇게 대답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생 많이 했겠다고 말한다. 나는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고생이란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고 물으면 다른 세상은 보지 못했고 농촌의 삶이란 이런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본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타인과 비교의식으로 살아간다면 행복과 만족스러움을 느끼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삶의 기준점을 나에게 둔다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 보면 된다. 물질적인 것이든, 지식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건강적인 것이든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만족스러움을 많이 느낄 수 있다.

만족을 느끼는 기준점은 개인마다 다르다. 내가 저 친구의 위치라면 충분히 만족스럽고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는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사는 게 허무하단다. 내가 바라보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왜 만족하지 못할까. 행복이란 조건 충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마음으로 느끼는 만족감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마음으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불평이 튀어나올 것이다. 또한 마음이 평안하지 않다면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신은 각 사람의 마음속에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기준점을 환경에 따라 다르게 한 것은 배려가 아닐까. 소유나 권력의 크고 작음과 비례하여 행복의 크기도 비례 한다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행복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누릴 수 있지만 또한 누구도 누릴 수 없는 것이기에 신비롭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정의 시작점을 단칸방에서 시작했지만 만족했다. 그때에는 가정의 출발점을 방 한 칸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았다. 조금 고생하면 더 좋은 환경으로 이사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비록 단칸방이라 할지라도 아늑하고 편안했다. 바람이 불어와도 폭우가 쏟아져도 등만 붙이면 안온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오래된 사진첩을 뒤적여 본다. 살아오는 인생길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어떤 분은 이름이 가물가물 기억나지 않는 분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구간에서 그분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사진 속에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가족들이 있다. 군 생활 동기들이 있고, 함께 직장 생활을 하던 동료들의 모습이 보인다. 산과 계곡에서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노래를 함께 불렀다. 환한 미소를 함께 나누었던 많은 사람들을 헤어지고 난 후 다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잠시 일상을 멈추고 삶을 뒤돌아본다. 어떤 특별한 것이 없다. 다만 사소한 것들의 반복적인 행동들이 모여 있을 뿐이다. 사소 것들이 모여 인생의 강줄기가 되어 흘러왔다. 매순간이 인생이었고 삶이었고 행복이었는데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내가 자유롭게 목을 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고마움보다는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하지만 금년 팔월 중순경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자유로운 목놀림을 할 수 없었다. 조금도 좌우로 돌릴 수 없었고, 앞으로 숙일 수도, 뒤로 젖히기도 힘들었다.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왔다. 목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불편함이 나를 찾아왔을 때. 비로소 목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삶을 뒤돌아보니 어느 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때 왜 기쁨과 감사함으로 대면하지 못했을까. 화를 내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참았더라면 훨씬 즐거운 인생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앞선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는 어떤 것도 다시 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다. 매일 씻고 빗고 하던 얼굴과 머리에 변화가 생겼다. 반복되는 일상이 멈추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변하고 있었다. 그 미세한 변화를 감지 못한 우둔함이 나를 슬프게 한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후회와 번민에 시달릴 것이다. 사랑만 하고 살아도 아쉬운 인생길에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하고 불평하고 투덜거리며 살아온 삶에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남은 생의 날들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순간들을 기뻐하며 살아가고 싶다. 인생길 걷다가 보면 가끔은 걸림돌들이 있을지라도 불평하지 않으련다. 그것 또한 나의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하늘의 뜻으로 여기며 감사히 받아들이겠다.

내 앞으로 깜빡이도 겨진 않은 채 불쑥 끼어드는 어떤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말자. 혹여 알겠는가. 그 순간이 있었기에 내 가는 길의 속도를 늦추게 하고 앞에서 일어날 사고를 피하게 한 피난처였는지도 모른다. 인생길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이나 고통스러운 일들을 지금 당장의 느낌으로 선악으로 판단하지 않겠다. 선악의 판단은 인생 끝에서나 알 수 있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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