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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칠순이 할매 일기 / 이용미

부흐고비 2022. 4. 20. 08:31

장화

“아이고, 장화 한 번 신고 빗속에서 철벅거리면 묵은 체증이 내려갈 것 같은데….” “철부지 여편네….” 뒷말을 생략해 버리는 남편. 비가 올 것 같으면서 오지 않는 하늘을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쳐다보지만, 응답은 없다. 거실 한쪽에 놓인 장화가 “아직도 예요?” 하면서 쳐다보는 것 같다. 분홍색도 같고 연한 갈색도 같은 반장화다.

부슬비가 내리는 초여름 날 멋쟁이 친구가 신고 나온 진녹색에 자잘한 꽃무늬가 그려진 장화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비슷한 것을 고르려고 여러 신발가게를 돌아다녔으나 헛수고로 고민하다가 인터넷 쇼핑 달인에게 부탁해서 사놓은 것이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비가 전혀 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주로 밤에 오거나 낮에 땅만 잠깐 적시는 정도로 감질나게 했다.

주차장과 맞닿아 차도를 가운데로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있다. 맑은 날은 그냥 평범하고 평탄한 도로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흐르는 흙탕물이 강을 이룬다. 얼마 전 보이는 앞산 입구 공사를 한 뒤 그렇게 변해버렸다. 웬만한 높이 운동화로는 그 물길을 건너기 어렵다. 발에 물을 적시지 않기 위해선 위로 4~50m 걸어갔다 와야만 했다. 그때도 장화를 사야겠다든가 신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생각한다. 는 말은 여행이나 지식 창고 채움에서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님을 실감한다. 오늘 마침 비가 내렸다. 일부러 조금 짧은 바지에 장화를 신고 보무도 당당히? 사무실로 향했다. 50여 cm 강폭? 을 왔다가 갔다가 하며 소원 풀이했다. 체증과 함께 두통까지 씻어졌다. 모든 일이 이렇게만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큰오빠를 만나다.

얼마 만에 들른 친정인가. 형태까지 바뀐 집은 부모님 부재가 한두 해도 아니건만 서먹해서 아쉬운데 오빠와 올케의 변한 모습에 더 마음 아프다.

아흔한 살 오빠는 소파에 초점 잃은 모습으로 정물처럼 앉아있고 여든아홉 올케는 두 무릎으로 기면서 반긴다. 흐르는 세월의 변화는 당연해도 이건 너무하다. 또렷하지 않은 눈과 불편해서 뺐다는 보청기로 대충 살아가는 오빠의 나에 대한 기억은 내 세 살에 머물러 있다. “너 시 살에 처음 만났어. 어머니가 너를 데리고 섬에 있는 나를 찾아왔지. 그때 시 살 먹은 니가 내게 처음 했던 말이 ‘오빠가 선생님이라고 했는데 군인이네’ 참 똘망, 똘망했어” 사범학교 졸업 후 병역을 기피한 채 섬으로 들어갔던 오빠는 그곳에서 6.25를 만나 오가지를 못하고 있으니 어머니가 그 후 태어난 나를 데리고 전쟁이 끝날 즈음 섬을 찾았던가 보다. 구호물로 나온 군복을 걸쳐 입었던 것을 어린 눈이 허투루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같은 말을 대여섯 번 반복한다. “그 시 살 배기가 일흔이 되었어요. 오빠.” 했으나 들은 척도 않는다. 당신 기억 속 막냇동생 나는 처음 보았던 세 살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무슨 말을 해도 당신 기억이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는 것 같다. 한여름 겨울용 점퍼를 입고도 춥다고 벗지 않으며 자꾸 눈물을 흘린다. 왜 우느냐고 물으니 “가야 하는데 가고 싶지 않아서”란다. 삶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 애착이겠지. 나름으로 순탄한 인생, 길어진 수명에 특별히 아픈 데도 없으니 어찌 삶에 미련을 품지 않으랴. 내 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착잡해진다.

 


어쩔 수 없다.

“오늘 장날도 아닌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지?” 옆 사람이 들릴만한 소리로 말했으나 누구도 답은 없이 발 들여놓기도 힘들 만큼 빼곡한 사람들로 만원인 버스를 간신히 탔다.

또 하루를 앞선 날짜 인식으로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하거나 번거롭게 했다.

그동안 두 번 치매 검사를 했다. 제 말귀를 빨리 못 알아들어 답답하다며 권하는 막내를 따라 처음 갔을 때나 잦은 건망증에 스스로 걱정이 되어서 갔을 때나 결과는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삼십 문제 중 서너 개씩 틀리고 보니 무신경할 수는 없다. 더구나 제일 기본인 날짜나 요일이 자꾸 헷갈려 문제가 생기는 것이 빈번해서 두렵기도 하다. 젊었을 때 두부를 사다가 화장대 서랍에 넣어 엉망이 되게 하거나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빨래나 음식을 태울 때도 있었지만,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 내 일같이 다가온 수많은 건망증을 넘은 치매 증세와 실지 가까운 사람들의 요양 실태를 넘치도록 듣게 되는 날들 이어서이다.

간단한 증세로 찾는 안과나 피부과에서조차 원인도 결과도 다 나이에서 찾고 나이와 연결해 버린다. 그것을 피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는 사람, 아직은 내 일이 아니라고 무시해버리는 사람 등 각양각색인데 어쩔 수 없잖아? 이제 막 칠순이가 된 난 혼자 중얼거린다. 그리도 가기 싫다던 오빠도 결국 한 줌 재로 변했다. 나고 죽고 나이 들고 병드는 일생을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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