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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진드기 / 신원철

부흐고비 2022. 4. 20. 08:32

마늘을 수확한 밭을 그대로 놔뒀더니 잡초가 나의 허리춤까지 자랐다. 들깨라도 심을 요량이 없었던 것도 아니어서 잡초를 뽑아내고 관리기로 한번 갈았지만, 그 뒤 며칠 비가 온 뒤로 다시 잡초가 자라 들깨심기를 포기하고 김장배추와 무를 심기로 마음을 바꿨다. 조그만 밭뙈기라도 여름철에 며칠만 내버려 두면 잡초의 공세를 막아낼 재간이 없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8월에 들어서자 배추와 무를 심기 위한 밭을 조성하는 일을 미룰 수가 없게 되었다. 성능이 좋은 관리기를 가지고 있다면 잡초가 크건 작건 갈아엎으면 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관리기는 오종종한 텃밭용이어서 우선은 예초기로 잡초를 제거해야만 밭을 갈아엎고 비료도 뿌리고 골도 탈 수 있다. 오전에 나는 예초기로 무성한 잡초를 눕혔다. 그리고 잘린 잡초를 대충 거두어 내고 갈아엎었다.

그날 나의 몸에 진드기가 붙어있다는 것을 저녁때가 다 되어서 발견하였다. 점심때 밭에서 돌아와 샤워했을 때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모기나 다른 벌레를 물렸을 때와는 달리 가려움이나 따가운 징후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깨알만 한 작은 몸집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무릎관절 뒤편에 머리를 박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진드기가 내 몸에 붙어있었던 것이 족히 일고여덟 시간쯤 되지 않았을까? 단지 뭔가 조금 스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오금 부분에 있을 뿐이었다. 그놈은 내 장화 속으로 뛰어들어 바지 끝을 찾아내 맨다리를 타고 무릎관절이 접히는 곳까지 올라와 연한 살을 찾아 그곳에 주둥이를 처박고 피를 빨고 있었다. 대단한 집념이다. 그리고 피를 빠는 동안 어떤 티를 내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 능청스러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전 퇴직하고 농사를 시작하던 해에 살인 진드기로 인해 사망한 농부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살인 진드기에 대한 것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아서 얼마간 그것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 내 몸에 진드기가 붙어있는 것을 알았을 때 혹시나 톱니처럼 생긴 주둥이가 떨어져 살 속에 박히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서 잡아당겼다. 진드기를 잡아떼려고 피로 채워진 몸통을 잡아당겼으나 주둥이를 얼마나 살 속 깊숙이 박았는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귀찮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사람을 일컬어 진드기 같다는 비유가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 진드기가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나가는 들짐승이나 밭 주변을 돌아다니는 들고양이를 상대로 덤벼들었다면 며칠간 배가 터지게 피를 빨아먹고도 쉽게 발각되지 않고 살아 나왔을 것이다. 또한, 쟁기질하던 옛 시절이었다면 소나 주인을 뒤따라온 멍멍이가 있어 배 채우기가 요즘보다 더 수월했을 것이다. 피로 빨아먹어 통통하게 커진 진드기의 흉측한 사진이 떠오른 것도 잠시였고, 내 의식 속에서 이것이 혹시 살인 진드기는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나는 내 몸에서 떼어낸 아주 작은 진드기를 돋보기로 보니 이것이 인터넷 사진에 나온 “작은소피참진드기”와 크기와 몸 색깔이 거의 흡사했다. 평소 2~3밀리밖에 안 되는 크기지만 다행히도 배가 통통할 정도의 피를 내 몸에서 빨아먹지 않아 그보다 많이 커 보이지는 않았다.

내 몸 상태를 살펴보면서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의 잠복기인 2주를 지냈다. 그동안 어깻죽지에 통증이 있었고, 두통이 있었고, 소화가 안 되어 속이 편하지 않은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의 전조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이 분야 관련 기관이 조사한 바로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는 살인 진드기는 개체 중 0.5%가 안 되는 것으로 나왔지만 재수 없으면 걸릴 수도 있다. 물린 사람이 2백 명이면 그중 한 명은 걸린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의 치사율은 10%나 되지만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제나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고 한다.

진드기에 물리기 며칠 전 2차 코로나 백신을 맞을 때 의사 선생님 말씀에 백신을 맞고 치명적인 이상 증상이 일어날 확률은 벼락 맞아 죽을 확률 정도라고 했는데, 그러고 보면 살인 진드기의 치명률은 이보다는 훨씬 높을 것이다. 진드기에 물렸다고 해서 모두가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에 걸리는 것은 아니며 건강한 사람들은 가볍게 앓거나 자연 치유된다는 부언이 그래도 좀 위안을 주었다. 하지만 이 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거의 농사에 종사하는 노인분들이어서 칠십에 농사짓는 나도 이에 포함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내가 진드기에 물려 보름을 지내는 동안 그동안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죽음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어릴 적 독감으로 죽은 초등학교 친구네 집을 담임선생님과 함께 찾아갔던 기억으로부터 최근 부모님이 사시던 집으로 주말마다 내려와 농사를 짓다가 저혈당 쇼크로 세상을 떠난 친구까지 모두가 소환되었다. 장출혈로 사십 대에 세상을 떠난 친구의 얼굴도, 오십 대에 들어서자마자 간경화로 숨진 친구도, 60대 중반에 혈액암으로 세상을 하직한 친구도 떠올랐다. 이 친구들은 어릴 때 한동네에 살던 친구들이다.

이들을 생각하면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즉,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이 친숙하게 다가온 것이다. 이 말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이 로마 시내를 행진할 때 전차에 함께 탄 노예로 하여금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는 것에서 기원한 말이라고 한다. 개선장군에게 들려주는 말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으나, 영광스러운 순간도 인생에 있어서 잠시이고, 결국 너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니 잘난 체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라는 의미심장한 충고이다. 이 말을 하찮은 노예를 통해서 전달하는 것이 뭔가 더 큰 의미를 지니는 듯하다. 그리고 마치 진드기는 나에게 있어 “메멘토 모리”를 외쳤던 노예처럼 생각되었다.

진드기가 문 자리는 보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자국이 남아 있고 이따금씩 가렵다. 그래도 그 긴 병명으로 진행되지 않아 다행이다. 자축하는 의미로 포도주도 한 잔 마셔야겠다. 그리고 그 유명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나오는 호라티우스의 시도 한 구절 읽어야겠다. 피를 빨아 터질 듯 통통해진 진드기를 생각하니 그 미물도 자신의 삶을 즐기는 듯싶다.

잘 생각해요, 포도주도 마시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버려요, 우리의 삶은 짧아요.

우리가 말하는 순간에도 아까운 시간은 흘러가고 있어요.

오늘을 즐겨요(Carpe diem), 미래에 대한 믿음은 가능한 한 적게 가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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