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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사그락 사그락 / 박찬정

by 부흐고비 2022. 5. 8.

실금이 가 있다. 들었다 놓을 때마다 사그락 사그락 소리가 난다. 귀에 낯설지 않은 것을 보면 어디선가 자주 들어 본 소리다. 자배기를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테두리에 감겨있는 철사가 녹슨 걸 보면 금이 간지도 오래되었나 보다. 사연 있는 이 장독대에 나이 먹지 않은 것은 없다. 큰 독, 작은 독, 멸치 젓국 냄새가 배어 있는 독과 소래기, 자배기, 구석에 숨겨둔 약탕관까지 다 내가 헤아릴 수 없는 나이를 먹었을 게다. 간장 수십 독은 퍼냈음직한 아름드리 장독에서는 여전히 진한 짠내가 난다. 대가족 둘러앉은 밥상 냄새가 거기에 있다.

도시로, 외국으로 돌다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외가 가까운 동네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남편은 어릴 때 방학이면 외가에 와서 지낼 때가 많아서 외가에 대한 추억이 소복하다. 시외가는 한 때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이었으니 부엌살림의 규모도 컸다. 외조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시고 외사촌들도 결혼하여 따로 일가를 이루었다. 식구가 단출해졌어도 살림은 줄지 않았다. 같이 먹던 밥상을 따로 먹을 뿐이지 간간하고 감칠맛 나는 장이며 젓국이며 장아찌는 다 그 장독대에서 퍼내갔다.

시외숙모님이 수술을 받고 큰살림 건사가 어려워졌다. 살림살이를 단출하게 정리하기로 하셨다. 장독대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 들어있던 내용물을 다 퍼낸 빈 독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거추장스런 짐으로 남았다. 모두 아파트에 사니까 갖다 놓을 곳 없다는 말이 이해는 된다. 평생 식구들 세끼 밥의 원천이었던 장독을 헌신짝 내버리듯 할 수 없는 외숙모님은 혼자 애를 태웠다.

“너희 집 울안이 넓으니 항아리들 가져갈래?”

솔깃했다. 내 살림에 소용될 리 없지만 장독대가 탐났다. 우리 집 마당 양지바른 곳에 단란하게 놓일 항아리들이 흐뭇하게 그려졌다. 큰 독이 세 개, 중간치 네 개와 작은 항아리가 오롱이조롱이, 소래기, 자배기, 크고 작은 시루 등 대가족 장독대 일습이 트럭에 실려 왔다. 장독이 놓일만한 자리를 마련하기까지 마당 한쪽에 기우뚱, 엉거주춤 부려져 있었지만 이제는 제 자리를 찾았다.

두 식구뿐인 살림에 우람한 독을 채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작은 항아리 하나를 골라 밑바닥에 주먹만한 자갈을 깔고, 솔잎을 두툼하게 깐 위에 굵은소금을 채워 두었을 뿐이다. 장독대는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터 잡고 있던 것처럼 그럴듯했다. 장독대만 보면 대가족이 사는 집으로 보일 터이니 방범 역할로도 한몫 톡톡히 할 것 같다.

콩나물을 키워보려고 가장 작은 시루를 집어 들었다. 그것 역시 오랜 동안 쓰지 않고 볕 바른 장독대에서 잠들어 있었던 터라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충격을 주면 깨질 것 같아 조심스럽게 다뤘다. 쓰는 사람이 조심하여 다루기만 하면 시루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자배기도 실금에서 나는 소리가 났지만 밖의 수돗가에서 쓰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물기를 머금으니 신기하게 실금 소리가 나지 않는다. 자배기는 어릴 때 어머니가 쓰시던 걸 본 적은 있으나 가볍고 잘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나 합성고무 통에 밀려 요즘은 보기조차 힘들어졌다.

묵직한 소래기는 장독뚜껑으로 쓰고 자배기는 밖의 수돗가에 두고 쓰려고 한다. 쓰다가 보면 턱에 이가 빠지기도 하고 오래가지 않아 못 쓰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줄곧 장독대에 두어 햇볕에 삭는 것보다 쓰임새 맞추어 사용하는 것이 옹기 자배기에 대한 걸맞은 대접 아닐까.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역할을 잃는다는 것은 점점 존재 의미도 사라지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6년간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구십이 세에 돌아가셨다. 처음에는 요양병원에 모실 수밖에 없는 자식들의 형편이 죄송해서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어머니는 점점 역할을 잃어갔다. 어머니의 하루 일과는 한 평도 안 되는 침상위에서 다 이루어졌다. 먹는 일, 자는 일, 싸는 일까지.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보면서 역할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두려웠다.

내 나이 예순 중반이 되었다. 아직 신체나 정신이 멀쩡하다고 큰 소리 치지만 실은 삐그덕거린다. 자배기 실금에서 나는 사그락 소리가 나의 몸 여기저기에서도 나는 것 같다. 흙으로 빚은 옹기의 실금 소리가 사람 몸에서 날 리 없지만 조심해서 다루라는 신호인 것은 확실하다. 일인 다역으로 혹사하던 시기는 지났고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 역할도 줄었다. 욕심을 부려 무리를 하면 몸이 먼저 알고 앓는 소리를 낸다. 쓰기와 쉬기를 잘 나누어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자배기는 많이 쓰다가 실금이 갔고, 시루는 너무 오래 쉬다 보니 햇볕에 삭아서 사그락 사그락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내 몸을 적절히 사용하는 일은 의사가 할 일도, 가족이 할 일도 아닌 나 자신이 할 일이다.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하는 참 어려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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