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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초안산 내시묘 / 노춘희

부흐고비 2022. 5. 10. 07:10

도봉구는 웅장하고 수려한 도봉산이 있어서 도봉구다. 도봉구에는 문화유산이 많이 산재해있다. 그중에서도 초안산과 매봉산은 내시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도봉구민이지만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초안산내시묘에 관심이 간 것은, 덕성여자 대학교에서 ‘도봉구민을 위한 박물관 문화강좌’를 들으면서부터이다.

문화강좌는 처음 접하는 강의이다. 몹시 흥미롭고 경이로웠다.

드디어 현장 답사 가는 날이다. 갑자기 가을비답지 않게 많은 비가 쏟아진다. 수강생들은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하늘은 우리를 기다리는 영혼들의 기도가 있었는지 살랑살랑 불어주는 가을바람이 비구름을 살짝 밀어내고, 말갛고 파아란 가을 하늘을 우리에게 열어 주었다. 울긋불긋 아름다운 단풍은 가을비를 함초롬히 머금고 곱게 물들어 가고 있다. 마치 외로운 영혼들의 아픔으로 다가오는 눈물 같은 이슬이 붉은 멍울처럼 가슴으로 밀려온다.

초안산은 노원구의 월계동과 도봉구의 창동을 아우르고 있다. 그동안은 학계에서도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던 내시묘에 대해서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초안산은 도봉산과 수락산, 불암산과 용마산의 절경과 중랑천과 우이천이 흐르는 도성 밖의 명당으로 알려져서 내시 묘뿐만 아니라 상궁들, 일반인들과 사대부들의 묘들도 많이 있었다.

산에 오르기 전에 관내의 곳곳에 방치되어있던 석물을 모아서 작은 석물공원을 조성해놓은 곳을 둘러보았다. 석물의 공복은, 관에 무늬가 없으며 어깨가 넓다. 얼굴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네모 형을 하고 있는 것은 연대가 훨씬 오래된 것이다. 금관조복은, 관에 아름다운 문양이 음각되어 있다. 어깨가 왜소하며 얼굴이 갸름하고 표현이 입체화 된 조각이 더욱 정교하여 아름답다. 작은 동자상도 있는데, 쌍상투 머리 모양의 동자상이 너무나 귀엽다. 이는 불교에서 동자승을 연상케 한다. 동자상(童子象)은 내시들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내시들은 문인석은 세울 수 없다고 한다.

이제 우리 일행은 야트막한 초안 산으로 올랐다. 오르는 길목마다, 발부리에 차이는 것이 석물이고 문화유산이 길가의 자갈처럼 널브러져있다. 지나가는 산책로는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묘지들을 밟고 다닌다. 그러나 디디고 다니는 길이 전부 묘지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개발의 바람은 이곳 초안산 산기슭에도 불었다. 근린공원과 아파트, 학교가 즐비하게 들어섰다. 초안 산에는 내시 묘가 언제부터 공동묘역으로 형성되었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나지막한 야산으로 조선시대 내시들의 무덤이 1000여기 정도 있고 이장되거나 도굴된 묘들도 300여기에 달한다. 현재 남아있는 봉분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 일부 묘비를 확인할 수 있다. 대다수의 내시 묘는 경기도 양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올라오는 동안 많은 석인상들을 보았다. 훼손된 것들이 많고 제 모습을 보존한 석물은 소수에 불과했다. 목이 잘려나간 석인상의 보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 그 흔적은 흉물스러웠다. 언젠가 초안산에 불이 나서 민둥산이 되어 나무를 심었는데, 무자기로 심어서 묘의 봉분위에도 커다란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서 보기에도 민망하고 송구스러웠다.

드디어 동남쪽 정상 부근에 있는 내시묘를 보기위해 초안산 반 바퀴를 돌아서 올랐다. 산 정상에는 정자가 하나 서 있고 그 밑에 내시 묘 쌍분이 있다. 초안산내의 내시묘 중 유일하게 묘비에 연대가 뚜렷하게 확인이 된 묘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석조 유물은 1634년의 承克哲 (승극철) 夫婦(부부)의 묘다. 학계에서도 이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사료의 가치가 큰 묘이다.

묘의전면에 ‘通訓大夫行內侍府尙 / 洗承公克哲兩位之墓’(통훈대부행내시부상/세승공극철양위지묘)라고 새겨져있고, 후면에 ‘崇禎紀元後甲戌三月立’ (숭정기원후갑술삼월립) 이라고 지금도 뚜렷이 알아볼 수 있도록 잘 보존되어 있었다.

300여년 동안 외로운 영혼을 고이 지키고 있는 비석은 전쟁과 풍우 한설에도 잘 견디어 냈다. 이제 후세 학자들에게 연구 사료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아무런 대가없이 모두 내어준다. 그런데, 내시 묘가 양주로 거의 이전 되었다고 하는데, 왜 내시 승극철묘만 고스란히 남아 있는지 함께한 학예연구사도 의아 하다고 한다.

나는 드라마에서 내시들을 본적이 있다. 그들의 삶은 겉으로는 국록을 받는 관직이다. 궁궐내의 음식물에 대한 감독과 왕명전달, 대궐문수직, 청소 등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다. 내시의 관직은 종2품의 尙膳(상선)에서 종9품의 尙苑(상원)까지 두었다.

궁궐에서 내시들의 생활이 화려해 보이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한 번도 호탕하고 행복한 웃음을 본 기억이 없다. 일상생활은 그리 어렵지 않았겠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 보다는 궁궐에서 왕족을 위해 헌신하다가 일생을 마친 외로운 영혼들의 특수한 삶이 아닌가. 사랑 보다는 슬픈 애환을 가슴에 묻고, 아픔을 안고 살았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하고픈 얘기가 얼마나 많을까마는 한 많은 애환을 한줌의 흙으로 무덤 속에 묻어 버리고, 한 소절의 비문이 한 사람의 자취를 대신말해주고 있다.

궁궐 구석구석 이들의 손때가 묻어있고, 역사가 있고, 궁궐의 모든 살림과 온갖 궂은일을 맡아보던 그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이들이야 말로 역사의 증인들이 아닌가. 후손들은 대개 양자로 계승 되다가 왕조가 끝나고, 내시들이 설 지리가 없어지자 자연히 후손도 끊기고, 관리가 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 이제 이렇게 역사의 후손들이 흔적이 희미해진 자취를 찾고 있으니 영혼들은 위로를 받고, 외로움과 슬픔을 사랑으로 승화하길 기도한다.

이제라도 뜻있는 많은 학자들이 학술적으로나 역사적인 사료의 가치에 관심을 갖고 귀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과 관리가 필요 하다고 생각된다.

오늘 외로운 영혼들을 위해 한 잔의 술이라도 올리고 싶었으나 준비가 되지 않아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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