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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녹차 / 김태길

부흐고비 2023. 4. 5. 22:54

이(李) 아무개는 '차 향기 속에서' 라는 수필에서 차 맛과 비유해 가며 두 가지의 우정을 비교하고 있다. 커피처럼 뜨겁고 진한 우정도 겪어 보았고, 녹차처럼 은근하고 담담한 우정도 겪어 본 사람이 후자를 더 값지게 느끼는 심정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산뜻하게 그렸다.

커피를 연상케 하는 정열적인 친구는 쉽게 달아올라 가슴을 설레이게 하지만, 대개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녹차를 연상케 하는 은은한 친구는 생명을 약동케 하는 자극은 없지만, 오래 두면 둘수록 향취가 더해 가는 포도주처럼 꾸준하고 푸근하다.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가는 개인의 성격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나는 본래 어느 편이냐 하면 뜨겁고 진한 맛을 선호하는 성격이었다. 차면 차고 뜨거우면 뜨거워야지, 뜨뜻미지근한 것은 아예 싫다는 글을 쓴 기억도 있다. 그러나 나 이 탓일까, 근래는 은근하고 담백한 편으로 마음이 기운다.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고 음식을 대할 때도 그렇다.

대만 여행하고 돌아온 가까운 친구가 녹차 한 통을 정표로 준 일이 있었다. 동양의 것이든 서양의 것이든 차라는 것을 그리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어서, 골방 선반 위에 얹어 두었다. 개봉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모셔만 두고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같은 친구가 또 한 통의 녹차를 들고 왔다. 벌써 사오 년 전의 일이다.

친구의 우정을 대접해서라도 그것을 마셔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내에게 협조를 구했다. 녹차를 마시려면 그것에 맞는 그릇이 있어야지 커피잔으로 대신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하는 것이 첫 번째 반응이었다. 언제 백화점에 가는 길이 있을 때 우선 필요한 것만이라도 사자고 막연한 합의를 보았으나, 미지근한 뜻은 실천에 옮겨질 줄을 모르고 또 세월만 흘렀다.

세월이 흐르면 생일이 돌아오게 마련이다. 어느 해 생일을 축하하는 뜻으로 동학(同學)의 젊은 친구들이 동양차를 위한 다관과 찻잔 한 벌을 들고 왔다. 아주 요긴한 물건을 사 왔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더니, 내가 언젠가 녹차에 대한 아내의 비협조적 태도를 누설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녹차를 위한 그릇이 생긴 뒤에도 아내는 그것을 자주 이용하지 않았다. 손님 대접 으로 멀건 녹차 한 잔을 내는 것은 뭔가 소홀하다는 생각이 앞섰던 모양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한다는 아내의 청년 심리학도 작용했을 것이다.

나 한 사람만이라도 친구들의 호의와 우정에 보답하는 실천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끔 혼자서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차라는 것은 함께 즐기는 사람이 있어야 제맛이 난다. 아내를 상대로 포교(敎) 사업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양의 녹차는 그 역사가 깊으며 옛날부터 지체가 높은 가문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그것을 즐겼다는 역사적 사실과, 녹차는 피를 맑게 하고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으며 피부 미용에도 좋을지 모른다는 애매한 지식을 모두 동원하였다. 이 아무개의 수필이 발표되기 전이어서, 녹차의 향기를 변함없는 우정의 깊이에 비유하는 고차원의 설득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쨌든 녹차가 품위 있는 기호품이라는 것을 아내는 인정하고, 스스로도 그것을 즐겨 마시게 되었다. 나에게 차 또는 그 그릇을 정표로 준 친구들에게 다소는 보답을 한 셈이다. 아들 녀석까지 끌어들였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나, 그리 서두를 필요는 없을 듯하다.

녹차를 마시는 데는 일정한 격식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견해가 있는 것으로 안다. 단순한 기호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도(道)로서 차 생활을 몸에 익혀야 한다고까지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몸에 좋은 차를 마시는 가운데 인격 수양까지 겸하게 되니 일석 이조라는 풀이도 성립할 수 있을 법하다.

그러나 나는 인격을 수양하기 위해서 차를 마시지는 않는다. 차라리 편안한 자세로 쉬어가며 긴장을 풀고 한가로운 시간을 갖기 위하여 차를 마신다. 따라서 꽤 까다로운 격식을 따지는 부담을 지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음식에 관련된 모든 습속과 모든 예절을 도외시해도 좋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커피나 홍차를 마실 때에도 다른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했을 경우에는 남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을 정도의 예절은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차 마실 때를 위한 특별한 예절이라기보다는 사회생활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습관에 가까운 것이다. 유별 난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큰 실수를 할 염려는 없다.

다도(茶道)라는 것을 아니꼽게 생각하거나 차에 관한 격식을 강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못마땅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인생 전체를 도(道)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니 차에 대해서만 도를 거부할 이유는 없을 것으로 본다.

다만 '도'라는 것이 앉음앉음이나 찻잔을 드는 모양새 따위의 외형적 행동만으로 성립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없지 않다. 모르기는 하지만 '도'의 본질은 육체의 겉모양보다는 마음의 깊은 속과 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태국에 갔을 때,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부처님을 본 적이 있다. 어느 경지에 이르면 누워서도 '도'를 닦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우리나라의 부처님들처럼 결가부좌(結跏趺)의 자세를 취하는 편이 아마 마음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도'의 근본은 역시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젊어서부터 반듯한 자세로 앉아서 우아한 모습으로 차를 마시는 습관을 기른다. 그 습관이 몸에 배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몸도 마음도 가장 편하다. 그러한 뜻에서 차 생활의 격식을 존중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러나 그것에 '도'라는 이름을 붙일 때 도리어 마음을 구속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든다. 아마 내가 다도의 본뜻을 모르는 속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차 마시는 일에 하나만의 옳은 길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격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격식을 따라서 차를 마실 것이며, 번거로운 것이 싫은 사람들은 구애받지 않는 모습으로 차를 즐길 일이다.

평소에는 격식을 무시하고 편안한 자세로 차를 즐기다가 가끔 격식이 까다로운 자리에 참석하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 것이다. 보통 때는 허술한 옷차림으로 지내다가 간혹 정장하고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기도 하는 사람처럼 얽매임 없이 살 일이다.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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