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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고목 / 김태길

부흐고비 2023. 4. 10. 11:11

‘파소’라는 산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마을 어귀에 큰 고목 느티나무가 있었고. 그것이 바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하였다. 그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모습은 아들 하나 낳게 하고 학질쯤 고쳐주는 영험을 갖고도 남을 만큼 믿음직스러웠다. 여름에는 농사짓는 어른들과 놀기에 바쁜 어린이들을 위하여 고마운 정자나무의 구실도 하였다. 옛 절과 같은 고적지를 찾았을 때 그 어귀에서도 대개는 큰 고목과 만나게 되고, 그 순간부터 나그네의 마음은 속진(俗塵)을 떠나 벌써 선경으로 달려간다. 고적은 고목으로 인하여 더욱 고풍스럽다.

수백 년의 연륜을 새기고 우뚝 서 있는 거목을 마주 볼 때, 우리는 아물아물한 옛날을 바로 눈앞에 보게 된다. 고목은 인간의 영욕(榮辱)을 지켜본 역사의 증인일 뿐 아니라, 몸소 풍운과 상설(霜雪)을 겪은 백전노장이기도 하다. 나무는 말이 없지만 고목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는 끝없는 상념이 떠오른다.

사람은 젊음만을 구가하고 늙음은 죽음보다도 슬퍼한다. 사람은 초로만 되어도 곧 시들기 시작하고 마음까지 정기를 잃고 비틀거린다. 그러나 나무는 연륜이 더할수록 위풍이 당당하고 늙어서야 비로소 그 정채(精彩)를 발휘한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 그랬듯이 사람은 큰 고목과 마주 섰을 때 가끔 마음의 문이 열림을 의식한다. 초연한 모습으로 묵묵히 서 있는 고목을 바라보면, 늙음을 두려워하던 평범한 사람도 다소는 희망과 용기를 느낀다.

사람도 나무처럼 늙어가면서 도리어 진가를 더할 길이 있는 것일까? 말이 없는 나무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요즈음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 한국 늙은이들에 대한 실망이 크다고 개탄하는 소리가 높다는 말을 들었다. 추하게 늙는다는 것이다. 외모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50년 전만 하더라도 할아버지 방에는 으레 요강과 타구가 놓여 있었다. 지금은 그것들을 볼 수 없게 되었건만, 깨끗하게 늙은 사람을 보기 어렵다고 탄식을 한다는 소문이다.

사람마다 깊은 속사정이 있을 터인데 풍문만을 듣고 남의 마음이 깨끗하니, 더러우니 하고 비판하는 것은 신중한 판단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깨끗하게 늙는다는 것이 생각과 같이 쉽지 않은 세상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옛날에는 거목과 같이 큰 인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젊어서 이미 위대함을 보여 준 사람도 있었고, 늙어서 연륜이 더욱 빛난 사람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30년 전만 해도 크고 고매한 인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더러 살고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고목에 비유할 만한 멋있는 인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한다. 사람들이 왜소하게 된 것인지 또는 사람을 평가하는 안목의 박해진 것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렵다.

42년 만에 고향 마을 '파소'를 다시 찾았다. 특별한 볼일은 없었다. 그저 옛 산천을 다시 한번 보기 위하여 삼복 폭양에 20리 길을 걸었다.

마음 모습은 크게 변해 있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살던 집도 옛 모습이 아니었고, 아주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동구 밖의 느티나무는 옛날 그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두터운 그늘을 지우고 말없이 나그네를 내려다본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농부 한 사람이 꼴짐을 받쳐 놓고 땀을 식 히고 있었다.

이양하의 수필 ‘나무’ 가운데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라는 구절이 있다. 나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고독하다는 뜻일 것이며, 겸하여 인간의 고독도 염두에 두고 쓴 구절일 것이다.

나무들 가운데도 큰 고목이 겪는 고독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짐작된다. 고목은 너무나 크고 높으며 아는 것이 많다. 옛 친구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는데 홀로 남아서 다시 되풀이할 수 없는 지난날을 기억해야 한다. 고목에는 함께 이야기를 나눌 친구도 없고, 기쁨과 슬픔을 나눌 상대도 없다. 고목은 혼자 거기 서 있다.

자질구레한 나무들에도 고독은 있다. 그들의 고독은 헤르만 헤세가 노래한 ‘안개 속의 고독’이다. 안개에 묻힌 숲속의 나무들처럼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하는 까닭에 생기는 고독이다. 그러나 안개는 걷힐 수 있는 것이며 안개만 걷히면 작은 나무들의 고독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목의 고독은 해소될 수 없는 고독이다. 고목은 작은 나무들의 세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작은 나무들은 고목을 알지 못한다. 안개가 없어도 고목을 보지 못한다. 고목의 고독은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관계에서 오는 고독이다. 고목의 고독은 해소될 날이 없다.

그러나 고목은 그의 고독을 참고 견딘다. 웃음으로 참고 견딘다.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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