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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정원수 / 김태길

부흐고비 2023. 4. 10. 11:12

서울대학교가 관악산 기슭으로 자리를 옮기던 해의 4월이었을 것이다. 새로 꾸민 교정 한 곳에 서 있는 낯선 꽃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벚꽃 같기도 하고 사과꽃 같기도 한데, 그것들보다 한층 더 아름다워 보였다. '서부해당화'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나도 집을 지으면 마당에 그 나무를 심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류달영 교수의 농장에 들른 적이 있다. 농장 어귀에 선 후박나무가 인상적이었다. 마침 꽃이 만발하여 그 향기가 진동하였고, 크고 싱싱한 잎들이 생명력을 구가하였다. 내 뜰에도 후박나무를 심기로 작심하였다.

고향 옛집 뒤뜰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가을이면 잎이 곱게 물들었고, 잎이 떨어진 뒤에는 주황색 열매들이 주렁주렁 빈 하늘을 수놓았다. 그 광경을 잊을 수 없어 감나무도 한 그루 심기로 하였다.

현충사에 처음 갔을 때 여러 가지 감회가 깊었거니와 넓은 정원의 풍치도 인상 깊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목백일홍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 줄기 모양이 특이하고, 꽃이 잇달아 핀다는 남녘의 식물도 꼭 심어야 할 것이었다.

어느 고속버스 휴게소에 잠시 내렸을 때 잘 꾸며놓은 등나무 그늘을 본 적이 있다. 봄에는 꽃이 좋을 것이고, 여름이면 그늘이 좋을 것 같았다. 우리 정원에도 등나무 그늘을 장만하고 싶었다.

1975년에 집을 지을 때보다도 다음 해 정원을 꾸밀 때 더 부지런을 떨었다. 인근 화원을 돌아다니며 서부해당화를 위시하여 마음속에 간직했던 나무들을 모두 구해 들였다. 그리고 활엽수와의 균형을 생각하며 향나무와 오엽송 따위의 상록수도 사이 사이에 꽂았다. 적은 예산으로 구색을 갖추자니 거의 모두 어린나무로 만족하면서 키우는 재미에 기대를 걸었다.

두어 그루 죽은 것도 있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잘 자랐다. 무럭무럭 자라는 것은 그지없이 반가운 일이었으나, 관리하기가 해마다 어려워졌다. 특히 병충해를 막기 위한 소독이 점점 어려워졌다.

나무가 어리고 작을 때는 수동식 분무기를 지고 다니며 식구끼리 소독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삼사 년 지난 뒤부터는 화원 사람들의 힘을 빌어야 했다. 화원 사람들이 한 집 바라보고 거동하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까닭에 때를 놓치는 일이 많았다.

소독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서부해당화였다. 우리 집에 심은 것은 특히 잘 크는 종류인 듯, 부쩍부쩍 자라더니 키가 어느덧 이층집 지붕 높이에 이르렀다. 화원 사람들도 동력 분무기가 아니고서는 높은 가지에까지 약을 뿌릴 수가 없었다. 제때에 소독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고 벌레 떼에게 엽록소를 빨아 먹히고 허옇게 형해(形骸) 만 남은 잎의 수가 나날이 늘어나는 꼴은 보기에 부담스러웠다.

한 그루 있는 감나무도 말썽을 부렸다. 화원 사람들도 이름을 제대로 대지 못하는 나쁜 병에 걸린 것이다. 보통 약으로는 듣지 않고 줄기와 가지의 겉껍질을 모두 긁어내고 유황합제를 바르면 될 것이라고 누가 말했지만, 너무나 거역스러운 작업이어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목백일홍은 여름까지는 괜찮다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심한 흰가루병에 걸리는 결함이 있었다. 소독을 해도 잘 듣지 않고 흰 가루가 꽃망울을 덮어씌우면 피지도 못한 채 보기 싫은 몰골이 되고 말았다.

목백일홍의 가장 큰 문제는 추위에 약하다는 점이다. 초겨울이 되면 가지 끝까지 온통 싸 주어야 하는데, 나무가 클수록 그 비용이 수월치 않았다. 싼 짚은 다음 해 봄에 풀어주어야 하거니와 그 짚을 태우는 일도 서울 장안에서는 이웃에 미안스러웠다.

등나무는 옮겨 심은 지 3년 뒤부터 매우 소담스러운 꽃을 피웠고, 기대한 대로의 그늘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도 있었다. 뜰 복판에 모난 철봉으로 네 평 정도의 '시렁'을 만들고 그 위로 등나무 덩굴을 올린 것인데, 이 덩굴식물의 생명력이 너무 왕성해서 '시렁' 밖으로 넘치기 시작했다. 넘쳐서는 다른 나무들을 휘감아 버린다. 전지를 해줌으로써 횡포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으나, 꽃은 어린 가지에서 피게 마련이므로 새순을 잘라 버리면 시렁 위에는 쓸모없는 묵은 가지만 남게 될 것이다.

많은 품을 들여서 기술적으로 손질을 하면, 해마다 시렁 밑으로 무리 진 꽃송이가 늘어지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상당한 기술과 인력을 요구한다. 시렁에 사용된 철봉도 녹이 슬고 삭아서 바꾸어 주어야 할 것 같다. 결국 등나무시렁을 참하게 유지하자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는 이야기가 된다.

후박은 아직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라는 품이 가정의 뜰을 위해서는 지나치게 커서 결국은 이웃 나무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가할 전망이다. 뜰을 꾸민 지 6년이 지났다. 나무들은 많이 자라서 우거지기 시작했다. 어떤 부위는 지나치게 무성해서 집안에 우중충한 느낌을 줄 정도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무가 서로 가지를 맞대게 될 것이고, 약한 것은 그늘에 묻혀서 희생자가 될 공산이 크다. 아내는 나무의 일부를 뽑아내자고 작년부터 주장하였다.

가까운 화원에 부탁해서 정원의 재정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자연히 문제가 많고 관리하기 어려운 수종(樹種)부터 솎아낼 수밖에 없었다. 우선 서부해당화가 처분의 대상이 되고, 다음에는 감나무도 뽑기로 하고 하는 식으로 차례차례 범위를 넓혀가다 보니, 결국 목백일홍과 등나무 그리고 후박까지 축출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선택한 수종들이었는데, 그것들이 모두 어려움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짧고 얕은 관찰이 사물의 한쪽밖에 보지 못했음이니, 즉흥적인 결정이 앞을 내다보지 못한 꼴이 된 셈이다. 나무를 많이 길러 본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들었어야 했다고 이제서야 뉘우친다.

화원에서 나무값을 좀 쳐주기는 했으나, 나무를 캐서 집 밖으로 내갈 때까지의 품삯은 내가 부담해야 한다고 해서 결국 나무를 거져 준 셈이 되었다.

다시 정리한 뜰을 보고,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아내는 만족해 한다. 이웃 아주머니들도 이구동성이었다 하며, 내가 보기에도 좀 나아진 것 같다.

그러나 7년 동안이나 한집에 살다가 나간 생명들의 모습이 자주 눈앞에 어른거린다. 새로 좋은 땅과 좋은 주인을 만나서 그것들이 모두 힘차게 오래오래 잘살기를 바랄 뿐이다. (1983. 5. 4.)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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