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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동창회가 있어 오래간만에 나들이가고 아들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은 오후, 서재에 홀로 앉아 집을 지킨다. 조용한 집에 혼자 있게 되면 공부의 능률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도리어 잡념만 찾아들어 책을 읽어도 정신 집중이 잘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도 가끔 혼자서 집을 본 기억이 있다. 누나는 시집을 가고 큰형은 외가에서 충주 읍내 학교에 다녔을 때, 아버지는 늘 객지로 돌아다니시는 버릇이 있어, 우리 집에는 어머니와 작은형과 나 세 사람만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 형제를 산마을 집에 남겨 두고 친정에 가시는 일이 종종 있었고, 나보다 아홉 살 위인 작은형은 집 보는 일을 나에게 떠맡기고 건넛마을로 놀러 가곤 하였다.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집 잘 보라는 형의 말을 충실하게 지키며 나는 사립문이 바라보이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참을성 있게 시간을 보냈다. 그 해가 큰형이 장가를 들기 조금 전이었으니까 내 나이 겨우 다섯 살 적 일이다.
하루는 아침에 나간 형이 점심때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나의 참을성이 한계선에 이르렀던지, 나는 형을 찾아서 온 마을을 헤매고 다녔다. 그래서 두어 시간 집을 비운 결과가 되었거니와, 그 사이에 독 속에 넣어 둔 쌀이 몇 말 없어진 사건이 생겼다. 친정에서 돌아오신 어머니는 작은형을 호되게 꾸짖었고, 작은형은 나를 ‘바보 멍청이’라고 부르며 화풀이를 하였다. 그리고 나는 마구 울었다.
어린이들이 흔히 그렇듯이, 나도 어린이 시절에는 엉뚱한 공상에 깊이 젖어 들곤 하였다. 그 공상 가운데는 내가 혹 백년 묵은 여우가 아닐까 하는 따위의 것도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들은 백년 묵은 여우가 둔갑하는 이야기와 내가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는 어머니의 농담이 이상하게 엉켜서 그런 공상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공상하는 버릇은 자연히 없어지고, 내가 백년 묵은 여우가 아닐까 하는 따위의 터무니없는 의문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공상은 없어졌으나, 쓸데없는 잡념에 사로잡히는 경우는 지금도 많다. 책을 들여다보거나 원고지를 앞에 놓았을 때, 또는 심지어 학술 회의에서 남의 발표를 들을 때까지도, 공연한 잡념이 끼어들면서 정신의 집중이 허물어지곤 한다.
잡념이라는 것은 종잡을 수 없는 것이어서 쓸데없는 생각이 이것저것 떠오르게 마련이지만, 가끔 떠오르는 생각 가운데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있다. 생각해 보아도 풀릴 것 같지 않은 의문이기에 곧 지워버리곤 하나, 그래도 가끔 다시 떠오른다.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 정체 모를 ‘나’에게 꾸준히 애착하며 60여 년을 살아왔다. 생각할수록 괴이한 노릇이다. 내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나는 나에게 그토록 애착을 갖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에 대한 애착은 나를 위하고 나를 지키고자 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나’라는 존재는 위하면 도리어 허물어지고, 지키려고 애를 쓰면 도리어 잃기가 쉽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나’밖의 대상들은 정성을 들일수록 상태가 좋아지고 애정을 기울이면 기울인 만큼의 효과가 생긴다. 가구는 손질을 할수록 윤이 나고, 화초는 정성을 들일수록 아름다운 잎과 꽃으로 보답한다. 그러나 ‘나’라는 대상은 애착과 의도적 노력이 도리어 역효과를 부른다.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도 ‘나’에 대한 애착의 한 현상이다. 남의 높은 평가를 받고 싶은 초조한 마음에서 나는 가끔 은근히 내 자랑을 한다. 그러나 자기선전은 아무리 교묘해도 먹혀들어가기 어려우며, 오히려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인상만 심어 주고 만다. 나에 대한 사랑과 집착은 나의 권익과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여러 가지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이 지나쳐 내가 자기중심적 인간이라는 인상을 자초할 때, 주위로부터의 외면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쥐꼬리만한 자존심은 실의 속에 날개가 꺾인다.
타고난 천성이나 교육과 수양으로 인하여, 항상 남을 위하고 자기희생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고 위하는 까닭에 도리어 자기중심적인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많은 복을 받는다.
사랑에도 귀한 것과 천한 것의 구별이 있는가?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받는 사랑은 시들하고 지루할 뿐인데, 남으로부터 받는 사랑은 깊이 가슴에 사무친다. 그러나 남의 사랑이 귀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그것을 탐내어 계산 섞인 노력을 할 때, 사람들은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
나를 초월한 무아(無我)의 경지가 나를 살리고 나를 실현하는 참된 길이라는 생각이 가끔 머리에 떠오른다. 그러나 그런 상념이 때때로 떠오를 뿐 잠시도 나 자신을 초월하여 무아의 경지에 서 본 적이 없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항상 패하고 마는 것이다.
딩동댕 딩동댕,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십니까?" 이층 서재의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른다. "등기 우편입니다. 도장을 가지고 나오시지요." 무슨 반가운 소식이라도 있는 것일까, 현관 밖에 나서니 따사로운 햇볕을 받고 정원수 가지가지에 뿌유스름한 생기가 돈다. 남아 있는 눈[雪)으로 얼룩무늬가 진 관악산 중허리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틀어박혀서 집만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이른 봄의 하오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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