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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사람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등이 들어 있는 5월을 맞이하였으니, 이 정겨운 계절에 어울리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어쩌면 글이 될 것도 같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나 막상 원고지를 대하고 보니 붓이 나가지 않는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는 몇 편의 글을 썼고, 생존한 사람에 대해서 마음속 이야기를 내보낸다는 것은 낯 간지럽고 쑥스러운 일이다.

눈을 감고 조용히 돌이켜보면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두고두고 생각나는 것은 역시 나에게 호의와 우정으로 대해 준 사람들이다. 인간이란 대개 자기중심적이 어서 저에게 고마웠던 사람일수록 기억에 남는다. 내가 그동안 신세를 진 사람들만 해도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숫자에 이른다.

신세를 지던 당시에는 감사의 느낌이 가슴을 채우며 언젠가 보답하리라고 속으로 다짐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감격은 모르는 사이에 희미해지고, 때로는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로지 나 살기에 바빴다. 염치없고 부끄러운 일이다.

원고지의 칸을 메꾸어 가는 도중에 문득 생각나는 친구가 있었다. 특별한 계기에 별다른 신세를 진 그런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 중후한 마음씨가 늘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그런 친구의 얼굴이다. 그동안 너무 적조했다고 뉘우치면서, 생각난 김에 전화나 한 통 걸어보기로 하였다. 전화부를 들추어 다이얼을 돌렸으나, 그 친구의 집이 아니 . 몇 해 사이에 이사 간 모양이다.

내가 너무 무심했던 것이다. 직장을 그만둔 뒤에 이사를 한 것이니 아마 집을 줄여서 갔을 것이다. 집을 줄여서 이사를 하는 형편에 그것을 널리 알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일반적 심리이다. 그 친구가 무심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무심했던 것이다. 내가 배운 학교 선생님들 가운데도 잊혀지지 않는 이름들이 있다. 여러 학교를 거치는 가운데 여러 선생님들의 강의를 들었으나, 그분들이 모두 은사로서 기억되지는 않는다. 어릴 때부터 나에게는 약간 당돌하고 건방진 기질이 있어서 선생님들을 무조건 존경하는 그런 순진성은 없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깊은 인상을 심어 주고 떠나가신 교단의 별들이 몇 분 있다.

내가 학생 시절에 존경을 느꼈고 지금도 훌륭한 교육자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세 가지의 특색을 갖춘 분들이었다. 첫째로 그분들은 애정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교사들이 긴 칼을 차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권위를 휘두르며 억압하는 태도로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들이 많았다. 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을 때, 교사들의 권위주의적 태도는 한층 더 심했다. 대체로 그런 분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간혹 따뜻한 애정으로 학생들을 아끼는 교사들이 있었고, 그런 분들에 대해서 나는 깊은 호감을 느꼈다.

지난날 내가 호감과 존경을 느꼈고 지금도 훌륭한 교육자였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학생들을 사랑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평소에는 온화하고 다정하다가도, 학생들에게 잘못이 있을 때는 엄중하게 나무라는 단호함이 있었다. 늘 잔소리와 훈계를 일삼는 교사들에 대해서는 짜증스러운 저항을 느꼈지만, 정말 필요할 때 엄하고 단호한 태도로 꾸짖는 교사에 대해서는 도리어 존경심이 우러났다.

내가 훌륭한 교육자로서 기억하는 분들이 갖추었던 셋째 특색은, 자기가 담당한 과 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쟁쟁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옛날에는 출중한 수재가 아니면 사범학교 또는 사범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려웠던 실정이어서 학과에 대한 실력이 없어서 쩔쩔매는 교사는 비교적 적었지만, 그래도 가끔 막히는 데가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개중에는 연구를 열심히 하여 달인의 경지에 이른 분도 더러 있어서 특히 돋보였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의 과정을 밟으며 내가 배운 선생님들 가운데 인자함과 엄중함을 아울러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담당한 학과에 조예도 깊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더러는 그런 훌륭한 분들도 있었고, 비록 소수이나마 그런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어려서부터 훈장이 될 결심이 서 있었더라면, 아마 내가 만난 교육자들을 세심하게 관찰했을 것이고, 훌륭한 스승들의 모범을 더 따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 학부를 졸업할 무렵에 이르러서야 겨우 훈장이라는 직업을 생각하게 되었으니, 모처럼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도 그 거울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말았다. 인생 설계는 빨리 방향이 잡혀야 한다고 뒤늦게 아쉬워한다.

훌륭한 스승과 만나고도 그 스승을 충분히 닮지 못하고 말았으나, 내 강의를 들은 학생들 가운데는 탁월한 인물로 성장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들이 그렇게 성장하는데 내 강의나 그 밖의 내 어떤 행적이 무슨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타고난 소질과 노력의 힘으로 그런 결과가 생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훌륭한 후진이 나타난다는 것은 훈장에게는 다시 없는 보람이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사제의 관계라기보다는 친구의 관계라고 보는 것이 어울릴 정도로 크게 성장한 젊은이를 가끔 만나게 된다.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쁨이요 즐거움인데, 개중에는 옛날의 좋은 제자와 좋은 스승의 관계를 연상케 하는 극진한 우정으로 대하는 친구들도 있다. 이럴 때는 내가 변변치 못한 훈장밖에 못 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내가 내 스승들에 대해서 정성스러운 제자 노릇을 못 했다는 사실을 뉘우치는 마음이 앞선다. 나는 '스승의 날'을 기하여 옛 스승을 찾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무심한 제자였다.

부모와 자녀의 사이도 남남끼리의 관계로 멀어지고, 선생과 학생의 사이는 서먹서먹하기까지 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예외라는 것은 언제나 있는 법이며, 이 예외에 희망을 걸고 거친 세상을 살아간다. 어쨌든 훈장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가끔 생각한다.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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