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실언 / 김태길

부흐고비 2023. 4. 17. 08:26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첫날의 끝 순서인 만찬 중간에 이 모임에서 총무 격으로 수고를 하던 분이 마이크를 잡고 앞으로 나섰다. 여흥을 위한 사회를 맡아 보고자 자신의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일어선 모양이었다.

그날 만찬을 제공한 지방 유지에 대한 감사의 말이 우선 있었고, 다음에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기회를 주겠다고 선언하였다. 재치 있는 말로 좌중을 웃겨 가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돋우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나 옥에도 흠이 있었다. 자동 소총처럼 많은 말들이 튀어나오는 가운데 가끔 실언도 있었다. 그 실언의 예를 구체적으로 여기 옮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옮기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그런 실언이었으니까.

여흥 석상에서의 실언이란 대체로 심각한 따위의 것은 아니다. 다만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악의 없이 한 말이 다른 사람의 약점을 건드리는 결과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가벼움을 드러내기도 하는 그러한 실언이다.

그러나 아주 심각한 실언도 있다. 말 한마디 잘못으로 큰 물의를 빚은 경우가 신문지상에 가끔 보도되기도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경우도 있다.

6.25 전쟁으로 청주에서 피난 생활을 했을 때, 무심천변에서 시민대회가 열린 적이 있었다. 당시 그 지방 여자 고등학교 교사였던 나도 학생들과 함께 그 자리에 참석했었고, 그 기회에 매우 극적인 광경을 보게 되었다. 공산주의를 규탄하기 위하여 차례로 등단한 지방 저명 인사들 가운데 색다른 경력을 가진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큰 실언을 했던 것이다. 30년 전 일이라 자세한 기억은 없으나, 좌익 계열에서 거물급으로 활동하다가 전향한 인물이었음은 확실하다. 그가 열변을 토하는 가운데 '우리들의 위대한 영도자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위대한 영도자 김일성 장군'으로 잘못 발언을 했다. 즉시에 당사자는 단하로 끌려내려와 연행되었고, 대회장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그 사건의 주인공을 또 한 번 보아야 했다.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된 그에 대한 첫 공판이 청주지방법원에서 있었을 때, 누구의 지시였던지 우리 학교에서는 3학년 학생들이 방청을 하게 되었고 내가 그 인솔의 책임을 맡았던 것이다. 전쟁의 흥분된 인심을 반영하여 법정은 분노와 증오의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고, 장본인만이 홀로 자기의 본심은 아니라고 열심히 변명하던 광경이 지금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교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짧은 심리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그가 결코 고의적으로 그런 발언을 했을 리는 없을 뿐 아니라 그 실언이 그의 좌익 사상을 입증하는 근거로는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어린이들은 대체로 말조심이라는 것을 모르고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나는 유난히 입빠른 소리를 잘하는 소년 시절을 가졌었다.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끼여든다고 걱정을 들은 적도 많고, 교실에서 똑똑한 척한다는 이유로 선생님과 급우들의 미움을 사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갑자기 말을 더듬기 시작하여 한 오륙 년 동안은 그 증세가 매우 심했거니와, 돌이켜 보건대 입이 가벼운 천성과 말이 많은 것에 대한 죄의식의 갈등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나는 말하는 것에 대하여 큰 부담을 느끼는 버릇이 생겼고, 오히려 말이 적은 편으로 기울었다. 나의 소년 시절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못 하는 주제에 어떻게 훈장 노릇을 하느냐고 의아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내 자신 27세까지는 훈장이라는 직업을 염두에 둔 적이 없었는데 결국은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내가 일관된 계획 없이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풀이하는 것이 옳을 듯하나, 불가사의한 운명의 힘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연유에서든 말 많이 하는 직업을 갖게 된 것에 대하여 아무런 불만도 없다. 오랜 경험 때문인지 이젠 청중 앞에서 강의나 강연을 하는 일이 큰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사석에서는 할 말이 없어서 곤란을 느낄 때가 많다. 모처럼 찾아온 사람에 대한 대접으로라도 무슨 말을 해야 하겠는데 별로 할 말이 없다. 마치 내가 가지고 있는 말을 몽땅 교단에서 쏟아 놓아서 새 말이 고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할 말이 없다.

공석에서나 사석에서나 의식적으로 말조심을 하는 편은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을 알기도 전에 단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생각을 가졌다는 사실이 그대로의 실천을 보장하지는 않는 까닭에, 때때로 안 해야 할 말을 하고는 아차 후회를 한다.

실언 또는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며, 더러는 실수도 하는 것이 도리어 친근감을 일으킨다는 의견도 있다. 털끝만한 실수도 안 하려고 조심조심 긴장하며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생긴 대로 사는 편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귀여운 실수’ 또는 ‘밉지 않은 실수’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들리나, ‘귀여운 실언’ 또는 ‘밉지 않은 실언’은 어감이 이상하다. 다른 실수보다도 말실수가 더 큰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말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1983.7.13)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