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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다. 노력을 하면 노력한 만큼 성과가 생긴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일이 노력한다고 모두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얻는 바가 있다는 것은 우리들이 일상 경험하는 사실이다. 어떤 목표를 세워놓고 그리로 향하여 전심전력하면, 대개는 목표에로 조금씩 접근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심리 상태와 깊은 관계가 있는 일 가운데는 의식적 노력이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올 경우도 있다. 가려움을 면하기 위해서 가려운 곳을 긁으면 도리어 점점 더 가려워지듯이, 목표로의 접근을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도리어 멀어지는 역설적 현상도 더러 있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밝혔듯이, 쾌락의 극대화를 삶의 목표로 정하고 불철주야 쾌락의 추구만을 일삼으면, 도리어 쾌락은 멀리 달아나고 그 반대인 고통만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의식적 노력이 역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비단 쾌락주의자만의 경험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기는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 그럴듯한 모습의 기록을 남기리라는 생각으로 의식적인 노력을 하면, 표정이 굳어져서 도리어 어색한 사진을 얻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는 말을 자연스럽게 잘하던 사람도 마이크 앞에서 특별히 잘하려고 노력을 하면 도리어 말이 잘 풀리지 않아서 고전을 하기도 한다.

운동 경기의 심리도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다. 승리에 대한 집념과 투지가 없으면 상대를 꺾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승리에 대한 욕심 때문에 시합 때 평소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정신이 해이하여 긴장이 아주 풀려서는 물론 좋은 경기를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승리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이 앞서서 지나치게 긴장을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승부사(勝負師)는 우선 필승의 의지를 세워야 하고 불굴의 투지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승부사는 승리를 직접 의식해서는 안 되며, 이기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도 안 된다. 세계적인 승부사는 오직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운동 선수의 경우도 그렇고 전문 기사(棋士)의 경우도 그렇다.

기회 있을 때마다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말을 보태서까지 자기 자랑을 하기에 바쁘다. 자기가 훌륭한 인물이라고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자연스러운 심리에서 그렇게 하는 것인데, 대개는 역효과를 부른다.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자기 자랑에 열을 올리는 사람을 남들은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인격이라는 것은 자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어서, 스스로 자기의 인격을 자랑하는 순간 그의 인격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무릇 자기를 지키고자 하는 것은 생물의 본성이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의식을 가진 존재의 본능적 특성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존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덕성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기를 의식하고 자기를 지키는 일에만 열중하면, 결과는 도리어 자기를 잃기가 쉽다. 지나치게 자기 사랑에 여념이 없으면 도리어 자기를 위해서 좋지 않은 결말에 이르고 만다.

타고난 천성 또는 교육과 수양의 결과로서, 항상 남을 위하는 가운데 자기 희생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 간혹 있다. 그에게도 자기에 대한 사랑의 심정이 없을 리야 없겠지만 타인과 사회를 위한 일에 몰두하기에 바빠서 자기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고 위하는 까닭에 도리어 자기 심적인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많은 복을 받는다. 나는 한 사람뿐이요, 타인은 여럿이다. 한 사람만인 내가 나를 사랑할 경우보다는 여러 사람인 타인들이 나를 사랑할 경우에 내가 받는 사랑의 양이 커진다는 것은 초등학교 어린이라도 알 만한 산수이다.

사랑에도 귀한 것과 천한 것의 구별이 있는가?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받는 사랑은 시들하고 지루할 뿐인데, 남이 나에게 주는 사랑은 깊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러나 남의 사랑의 귀함을 의식하고 그것을 얻으려고 계산 섞인 처신을 하면, 사람들은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 여기서도 계산을 초월한 무아의 경지를 구하는 것이 최상의 태도이다.

` 도대체 나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나는 나에게 그토록 애착하는가?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귀중한 존재 같기도 하고, 또다시 생각하면 허무하기 짝이 없는 존재 같기도 하다.

도대체 ‘나’라는 존재가 정말 존재하는가? 어떤 철학자는 그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철학자는 '나'라는 의식(意識)이 있을 뿐, ‘나’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존재한다면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나'.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이기에 우리는 그토록 그것에 애착하는 것일까?

산다는 것은 싸움의 과정이라고 일찍이 말한 것은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였다. 과연 누구를 위한 싸움이고 무엇을 위한 싸움일까? 논리를 따져 생각하건대,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싸움이고 또 승리를 위한 싸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싸우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해서 싸우는 길이며, 어떻게 싸우는 것이 가장 큰 승리를 거두는 길인가? 역사의 기록을 살피고 우리들의 주변을 돌아보건대, 결과적으로 가장 큰 자아를 실현한 것은 자기를 초월한 사람들이며, 가장 큰 승리를 거둔 것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이다.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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