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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궁둥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 주둥이가 되라.'는 중국의 옛말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 중학생 시절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말이라면 대개 틀림없는 진리라고 믿었을 때였고, 더구나 그 말은 『사기(史記)』인가 뭔가 하는 유명한 책에 실린 말이라고 하니, 그 말은 매우 좋은 처세훈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요즈음 나는 오히려 반대로 '닭 주둥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소 궁둥이가 되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저 중국의 유명한 말의 뜻이 힘센 사람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비굴한 사람이 되지 말고 항상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라는 데 중점이 있다면, 그것은 백번 옳은 교훈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학교 선생님은 반드시 그런 뜻으로만 가르치지는 않았다. 어느 편이냐 하면 큰 바닥에서 꼴찌를 하느니보다는 작은 바닥에서 첫째를 하는 편이 낫다는 뜻이 강한 듯이 해석하였다.

인간은 옛날부터 생존 경쟁에 휘말려 앞을 다투는 습성을 기르며 살아왔다. 소 궁둥이가 되느니보다는 차라리 닭 주둥이가 되라는 중국의 옛말도 아마 삶의 경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산업사회에서의 사회 경쟁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며, 경쟁이 지나치게 치열한 까닭에 우리는 서로가 모두 상처를 입는 불행을 자초한다.

생존 경쟁이란 본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회피하기 어려운 절박한 상황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경쟁은 반드시 생존을 위해서 어느 한쪽이 물러서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쌍방이 다 같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경쟁은 여전히 계속된다. 단순한 생존을 위해서 힘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더 잘살기 위해서 힘을 겨룬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냐 하는 물음은 간단하게 대답하기 쉬운 물음이 아니다. 그러나 잘살고 못사는 것을 타인과의 비교를 통하여 판단하고자 하는 발상은 올바른 생각이라고 보기 어렵다. 내가 잘살고 있느냐 못살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따라서 대답되어야 할 문제이며, 내 이웃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따라서 대답될 문제는 아니다. 나와 내 이웃이 모두 못사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나와 내 이웃이 잘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좀 허풍스럽게 말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잘사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고, 전 인류가 모두 못사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잘살고 못사는 것을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문제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쉽게 말하면,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은 잘사는 사람이고, 경쟁에서 지는 사람은 못사는 사람이다. 나보다 우세한 이웃 사람들은 내가 잘사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이고, 나보다 열세한 이웃 사람들은 내가 잘사는 것에 보탬이 되는 사람들이다.

타인과의 비교가 문제되는 마당에서 중요한 것은 서열(序列)이다. 나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느냐보다도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여기서 나와 비교되는 남'은 먼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나와 이웃해서 사는 한국인이다. 그러므로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나보다 잘사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으나, 동족인 한국인이 나보다 잘사는 것은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생각이다. 잘못의 시초는 나와 남을 비교하는 데 있었다. 그 비교의 대상을 가까운 이웃에서 구했던 까닭에, 우리의 판단은 더욱 용렬한 길로 빠져들게 되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땅을 샀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사촌이 땅을 샀다면 배가 아픈 어리석은 심사. 우월감과 열등감은 크게 다른 두 가지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다 같이 나와 남을 비교하는 버릇에서 생기는 감정이니, 같은 뿌리를 가진 두 갈래의 심정이다. 남에 대해서 우월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열등감도 역시 강하다. 우월감도 열등감도 모두 어리석은 느낌이다. 우월감은 남에게 상처를 주고 열등감은 나에게 상처를 준다. 나와 남을 비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회는 어차피 마음이 불편하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한국인은 나와 남을 비교하는 성향이 강하다. 남의 밥그릇의 콩이야 크든 작든 개의치 말고 각자 자기의 삶에만 충실하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으나,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자꾸만 시선이 옆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다른 나라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한국은 마음이 불편한 때가 많은 나라이다.

마음이 불편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같은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이야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내 방식대로 살아가면 좋을 것 같으나,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나도 남을 의식할 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와 남을 비교한다. 물질적으로 누가 더 풍요롭게 사는가를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겨우 벗어나게 되면, 다른 무엇을 또 비교하게 된다. 같은 나이 또래와 비교해서 누가 더 젊어 보이는가, 또는 다른 문필가들과 비교해서 내 글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가 하는 따위의 어리석은 물음으로 심사가 흐려진다.

같은 운명의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들이다. 마땅히 이웃을 생각하고 항상 이웃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교나 시새움의 눈으로 남을 바라볼 필요는 없을 터인데, 우리는 자기의 위치가 주둥이에 가까우냐 궁둥이에 가까우냐에 신경을 쓴다. 주둥이도 주둥이 나름이고 궁둥이도 궁둥이 나름일 터인데,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닭 주둥이에 가깝기를 열망한다.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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