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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의 어린이들은 종아리를 맞아 가며 컸다. 글공부를 잘못했다고 글방 선생님의 매를 맞을 경우도 있었지만, 도덕적인 이유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맞을 경우가 더 많았다. 종아리 채로는 주로 싸리나무를 사용했으며, 매 맞을 어린이에게 그것을 구해 오도록 명령하는 것이 상례였다.

나는 꽤 여러 번 종아리를 맞았고 맞을 때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인지 납득하지도 못하면서 매를 덜 맞기 위하여 우선 그렇게 말한 경우도 있었다. 그 당시에도 그것이 왜 잘못인지 몰랐지만, 좀 자란 뒤에야 비로소 그때 잘못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경우도 있었다.

몇 살 때의 일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한번은 밥상머리에서 실언을 한 허물로 인하여 되게 종아리를 맞았다. 외가댁에 가서 외조 할머니와 겸상을 한 밥상머리에서 철딱서니 없는 말을 했다.

외가댁은 큰 부잣집인데도 음식 맛은 가난한 우리 집만 못하다고 실토했던 것이다. 이 말을 직접 들은 사람은 외할머니 한 분뿐이었으나, 평소에 진지상에 대하여 불평이 많으셨던 외할머니께서는 내 말에 전폭적인 공감을 느끼셨고, 따라서 그 말을 기꺼이 인용하신 것이 본의 아니게도 그분 사위의 귀에까지 전달이 되었다.

처가의 신세를 많이 지신 아버지께서는 나의 실언을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하셨고, 결국 종아리 채를 드시게 된 것이다. 나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그 당시는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경망스러운 실언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물론 언제나 종아리 채로만 도덕 교육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단정하고 예의 바른 행동을 하도록 훈계하는 말씀이 조석으로 잇따랐다. 말씀을 듣고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곧 그대로 실천에 옮겨야 하였다. 손님이 오시면 사랑에 나가서 절을 올려야 했고, 길에서 동네 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드려야 했다. "진지 잡수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하면, "오냐, 밥 먹었니?" 하고 어른들은 대답을 하였다.

일을 시키는 것도 인간 교육의 중요한 실습이었다. 특히 딸들은 시집간 뒤에 흉을 잡히지 않도록 바느질이며 부엌일 따위를 실습으로 익혀야 했다. 그것은 또 가사를 도움으로써 사회 참여와 협동 정신을 습득하는 훈련이기도 하였다. 나는 아들로 태어났던 까닭에 바느질과 부엌일은 안 해도 되었으나, 밭에 씨를 뿌리고 풀을 뽑는 일, 집안을 청소하는 일 또는 도배할 때 풀을 바르는 일 따위는 면할 수가 없었다. 일거리가 생긴 것을 눈치채면 나는 곧 책상에 붙어 앉아 열심히 글공부를 했지만, 어머니는 봐주지 않으시고 꼭 불러내어 근육노동을 시키곤 하였다.

종아리를 맞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예의범절에 대한 교훈을 받는 것도 그리 유쾌한 순간은 아니었으며, 또 잔소리를 하시는구나 하는 불평을 느끼는 때가 많았다. 가사를 돕는 일도 잠깐일 때는 좋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때는 적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훈련의 과정을 밟는 것이 후일을 위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오늘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생활 태도에 대하여 간섭을 하지 않는다. 자녀들이 자유 롭게 크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매우 타당한 방침 같기도 한데, 그 결과 별로 좋지 않다. 제멋대로 내버려 두어도 배울 것이 많도록 질서 정연하고 밝은 사회라면 아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한 까닭에, 실제에 있어서는 가정교육의 부재(不在)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간섭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키운 결과 좋은 면도 없지는 않다. 성격이 활달한 젊은이로 자라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자기중심적인 인간으로 성장한 경향이 현저하다는 사실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모든 생물이 그렇듯이, 인간도 본능에 있어서는 자기중심적인 동물이다. 본래는 자기중심적인 갓난어린이가 적절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사회화되고 자아의 폭을 넓히는 것인데, 제멋대로 내버려 두면 자기중심적인 소아(小我)의 껍질을 벗기가 어려운 것이다. 특히 우리 성인 사회 자체가 이기주의의 경향이 강한 까닭에, 이 폐단은 더욱 심각하다.

오늘의 아버지들은 자녀들에 대하여 옛날의 아버지에 못지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짧은 까닭에 가정교사의 구실을 하기가 어렵다. 더러 함께 있는 시간을 얻더라도,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생각이 앞서는 까닭에 듣기 싫은 소리는 되도록 보류한다.

어머니의 경우는 자녀와 함께 있는 시간은 많은 편이나, 그들에 대한 사랑이 과잉보호의 방향으로 치우치면서 훈육다운 훈육은 없을 경우가 많다. 피아노도 잘 배우고 공부도 잘하라는 따위의 잔소리는 하겠지만, 타인과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회인이 되라는 타이름은 별로 하지 않는다.

요즈음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경향이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좀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가정부나 파출부 또는 운전 기사에게 모든 일을 시키고 자녀에게는 거의 일을 시키지 않는다. 어머니들은 자기가 과로하면 했지 가사 일에 딸들의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이 신성하다는 것은 교과서에서만 배우고, 실제로 땀 흘려 일하는 경험을 전혀 쌓지 않고 성장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생긴다. 함께 일하는 가운데서 길러지는 공동체 의식을 체득할 기회도 없어진다.

옛날의 부모들이 취했던 방식이 모두 옳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옛날의 아버지들은 너무 엄했던 까닭에 자녀들이 친근감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옛날의 부모에 게는 독선(獨善)의 경향이 있었고, 젊은이의 입장에서 자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인생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자신만만하게 자녀를 가르칠 수 있었던 그들의 태도에는 분명히 본받을 만한 장점이 있었다.

오늘의 부모들의 태도에도 좋은 점이 없지는 않다. 자녀들에게 친구가 되어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자녀들이 부모를 감정적으로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훌륭한 사회인으로서 성장하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육자로서의 부모의 지혜가 요구되는 것인데, 오늘의 부모들은 그 임무를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옛것과 새것 중 하나만을 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옛것의 좋은 점과 새것의 좋은 점을 아울러 살리는 길도 찾아낼 수 있음직하다.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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