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과 원문 나는 그대가 언젠가 펼쳐질 것을 안다. 굽어 있던 것이 펼쳐지는 것은 이치의 형세이다. 吾知子之伸有日. 旣屈則伸, 理之勢也. 오지자지시유일 기굴즉신 이지세야 - 서경덕(徐敬德, 1489~1546), 『화담선생문집(花潭先生文集)』권2 「김사신자사(金士伸字詞)」 해 설 ‘화담 서경덕은 별다른 스승 없이 자연과 홀로 마주하여 씨름하며 학문을 깨우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늘의 이치를 궁구하기 위해 天 글자를 벽에 붙이고서 면벽 수행을 하듯 깊이 파고들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한 그가 사망한 뒤 30년가량이 지나 조정에서 추증 문제가 거론되었다. 선조는 서경덕의 저서를 살펴보니 기수(氣數)에 관해 논한 바는 많으나 수신에 대해서는 미치지 못했고 공부에 의심..
번 역 문 성상 18년 임술년(1742년) 늦봄에 서울 경기 지역에 역병이 돌아 한여름까지 이어졌다. 아, 우리 연천의 백성은 북쪽으로는 횡산(橫山), 서쪽으로는 계명(鷄鳴), 남쪽으로는 징파강(澄波江), 동쪽으로는 보개산(寶盖山)에까지 걸쳐 살고 있다. 그런데 읍내 몇 리에 불과하여 땅이 관사(官舍) 하나도 세우기도 부족하고, 민호는 천여 호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부자 형제 부부가 서로 빙 둘러앉아 통곡하는 것이 마치 바람에 휩쓸리는 낙엽과 같고 또 불행히도 자식은 고아가 되고 처는 과부가 되며 늙은 부모는 자식이 없게 되어 집집마다 울부짖는 소리가 골짝을 뒤흔들고 거리를 들끓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략···) 아, 애통하도다. 내 그대들의 성씨, 가문도 모르고 그대들의 집이 어디에 있었..
번역문과 원문 창근(昌瑾)의 거울 갑(甲)보다 사흘 앞서 팔(八)과 근(斤)을 폈네 실 하나로 그물을 엮어서 마침내 옹(雍)에서 현(玄)을 부수었네 불길은 거친 언덕에 번져 풀을 태우고 시내를 마르게 하였네 숭(嵩)에서 산(山)이 달아나고 쇄(灑)에서 수(水)가 빠졌네 동(同)이 수레[車]에 앉아 있고 수레[車]를 세니 수레[車]가 없네 밝은 해가 위에 있고 유(由)에서 싹을 전부 뽑았네 근(謹)에서 언(言)을 줄이고 옥을 바탕으로 삼네 사람이 태양 아래에 서서 강한 사내를 얻은 것을 기뻐하네 인(仁)에서 인(人)이 돌아가고 사(詐)에서 언(言)이 빠졌네 관(管)이 관(官)을 맡지 않고 부(府) 깊숙한 곳에 거처하네 주(周)에서 용(用)을 버리고 오직 영(令)을 따를 뿐이지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일어섰으..
번역문과 원문 군자는 되도록 어눌하려고 노력한다. 어눌함만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가? 아니다. 이치에 맞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蓋君子之欲訥於言者 非徒貴其訥也 貴其言而得中也 개군자지욕눌어언자 비도귀기눌야 귀기언이득중야 - 조긍섭(曺兢燮, 1873〜1933), 『암서집(巖棲集)』 20권, 「눌재기(訥齋記)」 해 설 조긍섭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근(仲謹), 호는 심재(深齋)다. 경남 창녕군 고암면 출신이다. 생몰년에서 나타나듯 그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라는 격변기를 살아간 인물이다. 당대 영남의 대표 선비였던 곽종석(郭鍾錫)에게 수학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성리학과 문학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용한 글은 조긍섭이 눌재(訥齋) 김병린(金柄璘, 1861〜1940)에게 지어준 기..
번 역 문 이조가 아뢰기를, “충청도 진천(鎭川)의 유학(幼學) 박준상(朴準祥)의 상언(上言)에 대해 본조가 복계(覆啓)하였는데, 그 8대조 박승종(朴承宗) 및 그 아들 박자흥(朴自興)의 관작을 회복시키는 일을 대신(大臣)에게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윤허하셨습니다. 우의정 조두순(趙斗淳)은 말하기를, ‘박승종은 혼조(昏朝)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이자 폐부(肺腑)와 같은 인척으로서 16년을 지냈습니다. 만약 그가 임금의 과실을 바로잡고 이의를 제기하여 잘못이 없는 곳으로 임금을 인도하였다면, 실로 생사를 함께하여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리와 기강이 무너지고 사라진 때를 당하여 한마디 말이라도 내어 천지의 경상(經常)을 지킨 일이 있었습니까. 다만 생각하건대, 혼조를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은..
번역문과 원문 열네 번째 오늘날 보건대 염치는 삽사리 배속에나 있네. 늘 제 밥그릇이나 긁을 뿐 부엌을 향해서는 앉지도 않네. 其十四 今日看廉恥금일간염치 靑狵肚裏存청방두리존 尋常櫟釜際심상력부제 不欲向廚蹲불욕향주준 - 김창흡(金昌翕, 1653~1722), 『삼연집(三淵集)』 권15 「갈역에서 이것저것 읊다(葛驛雜詠)」 해 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은 자가 자익(子益), 호가 삼연(三淵), 시호는 문강(文康)입니다. 서릿발 같은 기상으로 청에의 굴복을 반대했던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이고,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의 셋째 아들이며,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이었던 김창집(金昌集)과 조선후기 낙론(洛論)을 이끌었던 김창협(金昌協)의 동생입니다. 부친과 큰형이 사화로 죽은 뒤로 일체의 출사를 포기..
번역문과 원문 대장부의 이름은 마치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 사관이 책에 기록해두고 넓은 땅 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구차하게도 원숭이나 너구리가 사는 수풀 속 돌에 이름을 새겨 썩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아득히 날아가 버린 새의 그림자만도 못한 것이니, 후세 사람이 과연 무슨 새였는지 어찌 알겠는가? 大丈夫名字 當如靑天白日 太史書諸冊 廣土銘諸口 區區入石於林莽之間 㹳狸之居 求欲不朽 邈不如飛鳥之影 後世果烏知何如鳥耶 대장부명자 당여청천백일 태사저저책 광토명저구 구구입석어림망지간 오리지거 구욕불후 막불여비조지영 후세과오지하여조야 - 조식(曺植, 1501-1572), 『남명집(南冥集)』 권2, 「유두류록(遊頭流錄)」 해설 남명 조식은 1558년 4월 10일부터 26일까지 지리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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