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들 부부 동반 모임에 가면 남녀 부동석인 경우가 많다. 아예 다른 테이블에 나뉘어 앉는다. 우선은 스무 명이나 되니 한꺼번에 모두 앉기가 복잡하다. 대화의 주제가 다르다. 시골에서 자라 남녀 간에 내외하던 어릴 적부터의 고루한 습성이 몸에 밴 탓도 있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여자들의 몸은 예전 같지 않나 보다. 귀갓길에 아내가 여자들 대화 주제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것이 태반이라며 나눈 내용을 옮긴다. 병은 숨기지 말고 자랑하라고 했다. 누구 엄마는 어디가 아프고 어느 병원이 치료를 잘한다며 각자가 자기 질병과 치료 경험을 다투어 얘기한다고 한다. 그중 어느 엄마는 치질 수술과 요실금 수술로 아랫도리 구멍을 모두 손봤다고 해서 웃음보가 터졌다고 했다. 자지러지던 웃음소리가 그 때문이었나 보다. ..
아무리 코로나 팬데믹이라 해도 이웃을 만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감염병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다 해도 지난날의 삶과 완전히 선을 긋고 살아갈 수 있을까. 재택근무를 하며 사이버 공간에서 일을 처리한다 해도 기존의 업무 처리 방식을 모두 덜어내지는 못한다. 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며 가치를 창출하려 한다. 이웃과 함께하고 부대끼며, 기쁨과 노여움 슬픔 즐거움을 찾아 나선다. 사람과 이웃하며 사는 일이 쉬운 듯해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하루를 살아내며 우리는 수시로 끝없이 사람과 마주친다. 남자도 만나고, 여자도 만나고, 동지도 만나고, 원수도 만난다. 이때의 만남에서 얼마나 슬기롭고 지혜롭게 이웃을 마주하고 멀리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는 빛난다...
![](http://i1.daumcdn.net/thumb/C148x148.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M0nlR/btrGdMAavC9/qg7sk0kv22CN7lrGb8brCK/img.png)
함순례 시인 1966년 충청북도 보은군에서 출생했다. 한남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계간 《시와사회》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뜨거운 발』, 『혹시나』, 『나는 당신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울컥』이 있다. 제9회 한남문인상, 제18회 아름다운 작가상을 수상했다. 작은詩앗 채송화 동인 뜨거운 발 / 함순례 어스름 할머니민박 외진 방에 든다// 방파제에서 그물 깁던 오십줄의 사내/ 지금쯤 어느 속정 깊은 여인네와/ 바짓가랑이 갯내 털어내고 있을까/ 저마다 제 등껍질 챙겨가고 난 뒤/ 어항의 물비늘만 혼자 반짝인다/ 이곳까지 따라붙은 그리움의 물살들/ 밤새 창턱에 매달려 아우성친다/ 사랑이 저런 것일까 벼랑 차고 바윗살 핥아/ 제 살 불려가는 시린 슬픔일까/ 몸이 자랄 때마다/ 맨발로 차가..
녹음이 우거지던 때 우리는 이사를 했다. 그래서 오래 가꿔온 나무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 더욱 서운했다. 나는 작년 6월 중순경에 오래 몸담았던 공주를 떠나서 대전으로 이사했다. 6월 중순이면 성하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여름철에 접어든 것만은 틀림없다. 장마가 일찍 시작되는 해는 수시로 비구름이 오락가락하는 때이기도 하다. 우리가 떠나오던 날도 바로 그런 날씨여서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다. 이사는 대개 봄 아니면 가을이 제철인데 내가 이런 걸맞지 않은 시기를 택해서 이사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정년으로 강단을 물러난 뒤에 몇 군데 시간강사로 출강하고 있는데 학기 중에는 아무래도 마음이 한가롭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종강 후 이사하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았던 것이다. 마침 집을 팔..
![](http://i1.daumcdn.net/thumb/C148x148.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ck1vB9/btrGxhznSZL/wptVwvkwkDymVcybBlWoz0/img.jpg)
해가 이지러질 때마다 비상등마저 없는 순도 백 퍼센트의 어둠이다. 어둠 속에 별들이 등불이 되어 지상으로 총총 걸어와 등대가 된다. 어렸을 적 산골집에서 모깃불 연기가 눈을 찌르는 바람에 하늘을 올려다본 밤하늘이다. 희망과 꿈을 안고 어머니가 누에고치 세 벌 밥 주고 올려다본 그때의 그 별빛, 세월이 지나동경이었던 별이 이젠 아련한 그리움으로 변했다.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별이 되어 있다니 그만큼 오래 살았단 뜻인가? 이 호젓한 망망한 사막에 혼자 던져져 있는 것처럼 외로움이 엄습한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하늘의 별이 된다고 했던가? 홀연히 내 곁을 떠난 사람들이 보고 싶어진다. 영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떠난다. 지구 밖 하늘에서 뛰놀며 이승을 바라보고 있을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여, ..
![](http://i1.daumcdn.net/thumb/C148x148.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Q7ncv/btrF9jrv3L3/CQNtwkk7526pYqPl3cKGZ1/img.png)
유종인 시인 1968년 경기도 인천시에서 태어나 시립인천전문대학(현 인천대학교 제물포캠퍼스)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문예중앙》에 시 〈화문석〉 외 9편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200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아껴 먹는 슬픔』, 『교우록』, 『수수밭 전별기』, 『사랑이라는 재촉들』, 『양철지붕을 사야겠다』가 있다. 지훈문학상, 송순문학상, 지리산문학상, 백교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궁합 / 유종인 세상에 나와 맞는 게 정말 있을까/ 때 아닌 걱정을 하게 됐을 때/ 전통 정원 뒤편의 대숲이 눈에 들어찬다/ 바람에 비스듬히 누웠다/ 다시 일어서는 푸르른 마디들/ ..
제16회 바다문학상 수상작 해류와 조류, 고래는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삶의 바다에도 엄연히, 면면하게 존재한다. 그날의 마음자리와 결에 따라 사그라지거나 분진처럼 풀썩이는 희. 노. 애. 락이 고래의 초음파 신호음을 보내며 조수처럼 들락거리고, 삶의 방향과 무게 질량은 암초 마냥 암묵한다. 삶을 맘대로 요리하고 지휘하는 마음의 심지心志가 판단하고 선택하고 조율하는 대로 삶이 펼쳐진다며, 천형 같은 화두를 삶의 심해에 풍덩, 던진다. 섬찟하다.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고, 먹이를 탐색하고, 장애물과 해저의 지형을 파악해서 무리에게 소리를 전달하는 혹등고래 노랫소리가 뱃고동처럼 구슬프다. 구가한 사랑이 홀연 떠나버린 것일까. 내 맘속에도 뱃고동이 울린다. 울컥해진다. 700만 년 전 태어난 인간이 700..
풍광들이 정겹다. 긴 세월을 그리 해 왔듯 몇 가구의 집들이 이마를 맞대고 있고, 끝집 옆으로 잘 자란 밭작물이 옹기종기 햇빛 바라기에 여념 없어 보인다. 갯내를 가득 품은 바닷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더니 어느 사이 작은 어선 몇 척을 춤추게 한다. 길 위로 야트막한 야산의 늙은 소나무 한그루가 무심히 나를 바라본다. 가 봐야지 하면서도 연고가 끊긴 탓에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소녀에서 이제는 희끗희끗한 흰머리 여인이 되었어도 이곳은 여전히 그리움이다. 유년의 나를 설레게 한 섬. 섬 안의 섬, 황덕도. 여름 어느 날 옆집 숙이가 날 찾았다. 숙이 옆에 교복을 단정히 입은 한 소녀가 서 있었다. 곱슬머리가 인상적인데다 맑은 얼굴이 밉상은 아니었다. 한창 유행하던 Sㅡ언니를 맺어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초등..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