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아파트를 팔았다. 꼭 30년 동안이나 소유한 집이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과 동시에 그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두 아이도 낳고 키웠다. 그곳에서 가정의 미래를 설계하고 이런저런 꿈들을 가꾸기도 했다. 작은 다툼도 있었다. 지난 연말,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그 집을 삼심 년 만에 결국 팔고 말았다. 오래전부터 처분하려고 했으나 마음속 계산과 조건이 여의치 못해 지금까지 끌고 왔다. 팔고 나니 앓는 이를 빼버린 것과 같아 시원했다. 이 년마다의 전세 계약이나 예고 없이 닥치는 잔잔한 집수리는 불편함을 주었던지라 묵은 숙제를 한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하고 후련했다. 정말 잘했다 싶었다. 부동산 사무실을 나오면서 아내를 쳐다보니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그 연유를 알만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잠든 꽃의 모습은 순금이다. 손전등 아래 나나니처럼 부드러운 숨결로 쉬고 있는 각시붓꽃은 온전한 금으로 보인다. 성철 스님의 '*순금'을 몰랐다 하더라도 내 눈에는 그리 보였을 것이다. 꽃이란 명사 앞에 사람들은 '아름다운' 또는 '예쁜'이란 형용사를 즐겨 붙인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꽃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식물이 한 송이 꽃을 피워내는 일은 고행을 동반하는 구도의 길이거나 새로운 우주의 탄생에 견줄 만한 사건이다. 사람들은 진정 식물의 지난한 성장과정을 헤아려 그런 찬사를 올리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꽃은 당연히 아름답고 예뻐야 하는 당위성 같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사월과 오월의 꽃 정보란을 장식하는 금낭화는 최고의 색깔과 모양으로 보는 이마다 자연에..
마을 사람들과 밤 산책을 나섰다. 달이 손에 잡힐 듯한 산기슭에 멈춰 서자 밤하늘이 통째로 가슴에 스며든다. "좋다."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꽃처럼 터진다. 말수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 심지어 글을 쓰는 사람도 함께 터뜨린다. 말복을 지난 산마을의 달밤, 선선한 바람이 좋고, 운수납자도 홀린 구름이 좋고, 그 사이의 무애한 달이 좋아 환장할 것 같은 그 마음을 담은 한마디. "좋다." 늙수그레한 경상도 아지매들의 담백한 감탄사에 나는 반하고 말았다. 인간이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 내면에서 유로하는 순도 높은 감정의 확실한 표현이 아닌가. 무의식의 저변에 가라앉아 있는 그 무엇까지 긁어 올리려는 나의 서글픈 몸부림에 비하면 가슴이 뻥, 뚫리는 말이다. 마을 사람들은..
동산의 등성이에 차오르는 아침 기운이 서재 안으로 들어와 나에게 스민다. 이런 순간을 느껴본 지가 오래전 일 같다. 힘이 넘치는 듯한 능선의 모습은 산이 맞고 보낸 서사의 형상이다. 오늘 아침에서야 그 곡절에 마음을 기울인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부지리로 얻은 사흘간의 완벽한 여유 덕분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산행으로 숨이 찬 시간을 사람들은 험한 길 탓이라며 편한 길을 찾아 걷기도 하지만 난삽하고 거친 능선의 매력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등산을 즐기지 않지만 고된 산타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산과 사람의 행로가 서로 다르지 않으니 산의 고된 역사와 서사에 밀착하여 들숨 날숨으로 교감하는 순간 일체감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 순간 산의 속마음도 들을 수 있을 듯하다. '나..
영화 을 보았다. 은 7년여에 걸쳐 우도 해녀들의 일상을 담은 다큐다. 나는 그것을 촬영한다고 했을 때부터 개봉을 기다려왔다. 내 어머니가 평생 바다에서 산 해녀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르는 것들을 제작자는 놓치지 않았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내레이터의 음성과 음악이 극한의 노동을 하는 해녀를 감싸 안듯 잔잔히 흐른다. 화면 속 해녀들은 담담하고 담대하다. 그녀들은 내 어머니처럼 어쩌다가 물질을 시작했고, 먹고 살려니 물질을 계속했고, 바다가 가까이 있어서 지금도 물질을 한다. 어느 해녀는 열여덟 살 해녀인 딸을 바다에서 잃었다. 그 딸이 파도에 쓸려 섬 건너 어느 마을에 떠올랐다. 그녀는 딸을 묻고 다시 딸을 앗아간 바다에서 물질을 한다. 촬영을 하던 기간엔 노령의 해녀가 '물숨'을 먹어 숨을 ..
일주일에 한 번 엄마가 오시는 날이다. 처음엔 한 달에 두 번만 오겠다 하셨지만 요즘은 수요 장날에 맞춰 꼬박꼬박 다녀가신다. 시장 구경도 하시고, 반찬거리도 장만하시고, 딸내미한테 글 쓰는 것도 배우고, 엄마 말씀대로 안 올 이유가 없는 날이 되어버렸다. 지난 4월 처음 오셨을 때를 돌아보면, 우선 문 열고 들어오시며 '숙아' 하고 부르는 일은 없어졌다. 그렇다고 선생님이라 불러주시지도 않는다. 또 의자 안쪽까지 등허리를 깊게 묻을 만치 자리도 편하게 잡으셨다. 하지만 쪽파며, 연근이 당신 공부할 동안 골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만은 여전하시다. 잠시라도 냉장고에 넣어두자하면 꼭 이러신다. '이게 뭐라고 전기 써가며 공을 들이냐'고. 당신 발아래다 모셔놓고 한 번씩 들여다보는 것이 최고임을 안 뒤로, 더는..
201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돌아섰을 때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몸을 돌리든, 마음을 돌이키든 한 번쯤은 앞을 향하고 있는 내 구둣발을 뒤쪽으로 돌려볼 필요가 있다. 일부러라도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길을 가다 몸을 돌리면 내가 지나온 길에 저런 것들이 있었나 싶게 풍경이 생경해진다. 다르게 보인다. 스치고 지나온 가로수가, 옆구리만 보였던 지하도 입구가, 팔을 벌리고 입을 벌린 채 정면으로 펼쳐진다. 뒤따라오는 사람을 대면해야 하는 일이 서로 어색하기는 하지만, 어기적어기적 뒷걸음치는 내 모습을 보며 웃어주는 상대가 있어 그리 무안하지만은 않다.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우리는 뒷걸음을 두려워한다. 몸을 뒤로 돌리면, 순간 균형 감각이 깨지고 리듬마저 흐트러져 겁부터 먹는 ..
2016년 천강문학상 대상 ‘햇살이 비듬처럼 내리는’ 휴일 오후. 나는 버스 맨 뒤 칸 창가에 앉아 그 햇살을 삼키며, 털 고르는 고양이마냥 권태를 즐겼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국도변의 추루한 풍경은 재채기를 부를 만큼 건조했고, 그곳 사람들의 기름기 없는 일상은 부서질 듯 파삭했다. 버스가 신호에 잡혔고 [건너 다방유리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내 얼굴 속에서 손톱을 다듬는, 앳된 여자 머리 위엔 기원이 있고 그 위엔(…) 나도 그녀의 얼굴 속에 앉아 마른 표정을 다듬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 주인의 말처럼 건너 순댓국집 유리창에 내가 비쳤다. 내 가슴팍에 안겨 이 사이에 낀 점심 찌꺼기를 후비적대고 있는 중년의 남자, 그 위엔 인력소개소의 낡은 창문이 있고 그 틈으로 참말 비듬 같은 햇살이 쏟아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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