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해바라기꽃이 활짝 피었다. 해녀의 노란 테왁이 해바라기처럼 햇빛 아래 눈부시다. 바다는 한순간 꽃밭이 된다. 점점이 피어난 해바라기가 물결 따라 일렁인다. 해바라기가 움직일 때마다 여인의 깊은숨이 메아리친다. 바다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아내를 품었다가 내어놓는다. 바다의 몸속에는 여인들이 살고 있다. 바다를 도반으로 여기는 제주 여인들의 몸에 응축된 소금기가 노란 테왁에 씨처럼 박혀 있다.아내가 물살을 가르며 다가온다. 아내의 해바라기에 부서지는 햇빛이 찬란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내의 몸에서 바다의 속살 냄새가 난다. 비릿하면서도 생생한 바다가 망사리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검붉은 우뭇가사리가 터질 듯 수십 개의 손을 뻗친다. 깊은 바다에서 뿌리를 내리고 끝없이 번식하는 우뭇가사리는 ..
기억에는 경내 구석구석에 핀 꽃 무리뿐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청화쑥부쟁이에 매료되어 경배하듯 허리를 펼 줄을 몰랐다. 무엇보다 밀짚모자 아래 낯빛이 맑은 동그란 얼굴과 작은 체구에 스님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정작 법당에 모신 주불이 어떤 분인지, 정사의 법력은 알지 못하고 온갖 식물과 풍경에 취한 모습이다. 4년 전 선배가 꽃을 좋아하는 나와 어울리는 절집이라고 데려간 곳이 바로, 보현정사이다. 전국의 산사를 행선(行禪)하듯 돌아다녔는데 인연은 따로 있다. 보현정사의 풍경이 좋아 철마다 지인을 데리고 오갔다. 봄에는 벚꽃과 수선화, 빨간 홍도화에 매혹되어 어지러울 정도이고,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따라 으아리와 인동초, 수국 등속이 향기롭다. 가을에는 앞 뒷산의 단풍이 붉고 곳곳에 가을꽃 무더..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온몸의 신경이 죄 하늘을 향해 쭈뼛거린다. 불빛 하나 없는 산길, 인적도 없고 어둠과 적막뿐이다. '툴툴'거리는 도랑물 소리마저 없었다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 내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당시 전라도 지방에 큰 홍수가 들어 잦은 비로 밤공기도 매우 습했던 걸로 기억한다. 길가의 바위는 어둠 속에서 희번덕거리고 시커먼 가로수도 팔을 벌린 채 큰 소리로 울어댔다. 날렵하게 꿈틀거리는 길 양쪽의 산 능선이 들짐승처럼 등허리를 웅크리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기세에 눌려 겨우 발을 떼고 있는데 그나마 다행은 비가 오지 않아 달이 발등을 희미하게 비춰 주는 정도였다. 그래도 무섬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사각"거리며 따라오는 바짓가랑이 부딪히는 소리가 자꾸 뒤를 돌아보게 했다. 부모님..
마당 언저리에 장미를 가져다 심은 지 몇 해, 그새 가늘던 줄기는 제법 굵직하니 키를 키웠고, 작고 몇 안 되던 여줄가리 이파리는 짙은 녹색을 띤다. 빨간 장미를 내심 기대했건만 연분홍색이라 눈길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꽃말처럼 ‘행복한 사랑’을 받지 못한 이 연분홍 장미는 앵돌아진 성깔로 담장 한 귀퉁이에서 매양 햇살에 졸기만 한다. 내가 붉은 장미를 좋아하는 건 '열렬한 사랑, 절정, 기쁨, 아름다움'이 전해주는 절대성 때문이다. 장미는 다채로운 색깔로 사람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그중에서도 붉은 장미는 그 색깔처럼 영혼까지도 유혹한다. 세상의 꽃들 중 ‘여왕’이라는 찬사가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닌 모양이다. 검은 장미를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소유하고 싶은 갈..
누구나의 가슴에도 빙하는 흐른다고 하였다. 가슴속 빙하는 지하수로 흐르다가 덮개가 단단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 용출한다. 차게 흐르던 내면의 온도가 외부의 온기를 느끼고 누그러지면 비로소 안도의 숨길을 찾는 것, 마음속 상처는 그런 것일까. 기묘한 뿌리혹들이다. 천리포 수목원에서 만난 분화구들을 어찌 설명할까. 연못가를 걷는 오릿길을 돌아 나오다가 낙우송 무리를 만났다. 수사처럼 엄숙하게 도열해 있는 나무둥치 아래에 생경한 것들이 눈길을 끌었다. 판타지 영화에서 보던 가상제국의 축소판인가. 땅에서 솟아나온 수많은 돌기들이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앉아서 세운 무릎처럼 여기저기 불쑥 솟은 기이한 것들, 뿌리도 아닌 것 같은데 땅에서 자라 올라온 종유석 형상이다. 푯말을 보니 식물의 뿌리 호흡을 돕기 위해 ..
망치질 소리가 들려온다. 바깥에서 형이 두드리는 소리다. 걱정이 된 모양이다. 일을 하다 말고 서둘러 답신을 보낸다. 탕 탕 탕.정화조 차량 탱크 용접 일은 긴장의 연속이다. 안과 밖, 형이 두드리는 망치질은 동생이 무사한지 안부를 묻는 것이고. 내가 두드리는 망치질은 망을 보다 말고 어디 가지나 않았을까, 형을 붙들어 두려는 마음에서다.형과 처음 손발을 맞춘 것은 우리 집 뒤주를 터는 일이었다. 라면을 사 먹기 위해서였다. 긴긴 겨울밤, 꽁보리밥으로 배를 채워서 그런지 몇 번 방귀를 뀌고 나면 이내 배가 고파 왔다.아무리 우리 것이라고 해도 도둑질은 도둑질이었다. 겁이 났다. 뒤주에 들어가려다 말고 형과 신호를 정했다. 누가 나타나면 두 번, 지나가고 나면 한 번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그래도 마음이 놓..
잠실(蠶室)안은 적막하기만 했다. 누에가 잠에 빠져 있었다. 마지막 탈피(脫皮)였다. 무상에 빠진 듯 상체를 치켜세운 채 잠든 누에의 모습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의 서러움 같았다. 지금은 일부러 구경을 하려 해도 누에치는 것을 보기 힘들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누에를 치는 집이 많았다. 누에는 봄과 가을, 춘잠(春蠶)과 추잠(秋蠶) 두 번을 칠 수가 있다. 밭농사보다 고생은 될지 몰라도 잘만하면 제법 많은 돈을 만질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농사 대신 누에치기를 전업으로 하는 농가도 있었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야산에 뽕나무를 심고, 잠실을 지어 누에를 쳤다. 하지만 대개의 가정에서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밭둑에 심어놓은 뽕나무로는 반장 정도의 누에를 치는 게 고작이었다. (누에알 한 장을 ..
연 이틀을 잠만 잤다. 때를 잊은 채 잠에 빠졌다. 동면하던 생물들이 기지개를 켠다는 경칩도 지났건만 잠 속을 파고들었다. 평소 늘어지는 성질이 못되니 수면시간도 짧다. 하루 네댓 시간을 자며 살아왔던 내가 이불 속에서 옴짝달싹 못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책상 앞에 앉아보았지만 가라앉는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소태 같은 밥을 겨우 한 술 뜨고는 엉금엉금 기어 침대로 갔다. 창백한 낯빛이며 푹 꺼진 눈의 몰골,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은 정신이 흉하기 그지없었다. 잔뜩 긴장되어 있던 전신까지 놓자 모든 것이 솜처럼 풀렸다.화장실을 다녀오는 일을 빼고는 검불처럼 너부러져 잠만 잤다. 휴대폰도 멀리 했더니 무슨 일이 있냐고들 아우성이었다.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평소와는 다른 나를 별견하며 가만히 생각에도 잠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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