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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하거라. 그 운(韻)은 출렁이는 파도에서 배울 것이며 그 율조(律調)의 변화는 저 썰물과 밀물의 움직임에서 본뜰 것이다. 작은 물방울의 진동(振動)이 파도가 되고 그 파도의 진동이 바다 전체의 해류(海流)가 되는 신비하고 신비한 무한의 연속성으로 한 편의 시(詩)를 완성하거라. 당신의 시(詩)는 늪처럼 썩어가는 물이 아니라, 소금기가 많은 바닷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시(詩)의 의미는 바닷물고기처럼 지느러미와 긴 꼬리를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뭍에서 사는 짐승과 나무들은 표층(表層) 위로 모든 걸 드러내 보이지만 바다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작은 조개일망정 모래에 숨고, 해조(海藻)처럼 물고기 떼들은 심층(深層)의 바다 밑으로 유영(遊泳)한다. 이 심층 속에서만 시(詩)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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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희 시인 1990년 대전에서 출생하였다. 조선대 문예창작과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하였다. 201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시 창작 스터디』가 있다. 백색소음 / 이다희 조용히 눈을 떠요. 눈을 뜰 때에는 조용히 뜹니다. 눈꺼풀이 하는 일은 소란스럽지 않아요. 물건들이 어렴풋한 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길로 오래 더듬으면 덩어리에 날이 생기죠. 나는 물건들과의 이러한 친교에 순응하는 편입니다.// 벽에 붙은 선반에 대하여/ 나에게 선반은 평평하지만 선반 입장에서는/ 필사의 직립(直立)이 아니겠습니까?// 옆집에서는 담을 높이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점점 높아지는 담에 대하여, 시멘트가 채 마르기 전에 누군가 적어놓는 이름에 대하여. 며칠째, 습한 날씨가 계속되고 투명한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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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시인 1965년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직선 위에서 떨다』, 『그늘과 사귀다』, 『아픈 천국』, 『나무는 간다』, 『끝없는 사람』이 있다. 제8회 노작문학상, 제11회 지훈상, 제11회 미당문학상, 2011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검은 봄 / 이영광 나는 칼이요 분열이요 전쟁이다/ 사랑과 통합과 연대의/ 적이다/ 나는 찌르고 파괴하고 흩날린다/ 나는 가장 작고 가장 크며/ 가장 보이지 않는다/ 변함 없이 따사롭다// 피 흘리는 가슴이요 찢어지는 아픔이며/ 나를 모르는 격투다/ 나는 가르고 나누고 뜯는다/ 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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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미 시인 1970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서울시립대 국문과 및 同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집 『달의 코르크 마개가 열릴 때까지』, 『밤의 분명한 사실들』 등이 있다. ‘천몽’ 동인. 서울시립대 객원교수. 그해 오월의 짧은 그림자 / 진수미 사랑을 했던가 마음의 때, 그 자국 지우지 못해 거리를 헤맸던가 구두 뒤축이 헐거워질 때까지 낡은 바람을 쏘다녔던가, 그래 하기는 했던가 온 내장을 다해 엎어졌던가, 날 선 계단 발 헛디뎠던가 하이힐 뒷굽이 비끗했던가 국화분 위 와르르 무너졌던가 그래, 국화 잎잎은 망그러지던가 짓이겨져 착착 무르팍에 엉기던가 물씬 흙냄새 당기던가 혹 조화()는 아니었는가 비칠 몸 일으킬 만하던가 누군가 갸웃 고개 돌려주던가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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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 시인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남 마산에서 자랐다.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문학수첩》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있다』가 있다. 2015년 신동엽문학상, 2016 내일의 한국작가상, 2020년 노작문학상을 수상했다. 모르는 사이 / 박소란 당신은 말이 없는 사람입니까/ 이어폰을 꽂은 채 줄곧 어슴푸레한 창밖을 내다보고 있군요/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태운 7019번 버스는 이제 막 시립은평병원을 지났습니다 광화문에서부터 우리는 나란히 앉아 왔지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눈을 준 이 저녁이 조금씩 조금씩 빛으로 물들어 간다고/ 건물마다 스민 그 빛을 덩달아 환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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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시인, 웹툰 작가 1978년 충청남도 청양군에서 태어났다. 강릉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를 쓸 때는 ‘신미나’ 그림 그릴 때는 ‘싱고’이다.시집으로 『싱고,라고 불렸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와 시툰 『詩누이』, 『안녕, 해태』(전3권) 등이 있다. 2008 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진흥기금, 2016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집발간지원금 수혜 싱고 / 신미나 십년 넘게 기르던 개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저무는 태양 속에 있었고/ 목이 마른 채로 한없는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그 기분을 싱고, 라 불렀다/ 싱고는 맛도 냄새도 없지만/ 물이나 그림자는 아니다/ 싱고가 뿔 달린 고양이나/ 수염 난 뱀일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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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인 1958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데뷔했다. 시집으로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자명한 산책』, 『꽃사과 꽃이 피었다』, 『리스본行 야간열차』,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가 있으며 『해방촌 고양이』 등 산문집과 소설 『도둑괭이 공주』가 있다. 동서문학상(1999), 현대문학상(2018), 김수영문학상(2004)을 수상했다. 강 /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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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진 시인 1980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순천대학교를 졸업하고 명지대 대학원 문창과를 나왔다. 200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동경』과 『버스에 아는 사람이 탄 것 같다』가 있다. ‘는’ 동인. 기울어진 아이* / 최정진 세탁소가 딸린 방에 살았다 방에 들여 놓은 다리미 틀에서 엄마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 내 몸의 주름은 구김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다림질 밖에 몰랐다 엄마의 품에 안겨 다려지다 어느 날 삐끗 뒤틀렸는데, 세탁소 안에서 나는 구부정하게 다니는 아이라고 불렸다// 다린다는 말은 주름을 지우는 게 아니라 더 굵은 주름을 새로 긋는 문제였다 수선된 옷들이 마지막 누운 곳은 다리미틀 위였다 뜨거운 것과 닿으면 닳은 곳부터 반짝거렸다 오래 입은 옷일수록 심했다 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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