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너 아니니?" 요즘 팔자에도 없는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얼마 전 내가 일하고 있는 원격치료(Telemedicine) 광고에 출연하게 됐는데, 그 영상을 본 지인들이 확인 겸 인사차 연락을 많이 해온다. 난감한 것은 그들이 글을 보내올 때마다 어색한 나의 모습을 반복해 보게 된다는 것이다. 광고에서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빨리 낫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고 손을 흔든다. 젊고 매력이 넘치는 모델 대신에, 어설픈 모습의 내가 민망하다. 지금이 '코로나 시대의 미국'이 아니어도 이런 일이 있었을까. 중년의 나이에 간호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원격치료가 미래라는 것을 직감했고 졸업 후 그런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퍼지면서 일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응급실에 가지 않고도 경증, 중증, 그리..
갓 결혼한 신부로 미국 땅을 밟고 한참동안 나침반 없이 허우적거리고 헤매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어야 하는지 혼미해질 무렵, 내게 손을 내밀어 길잡이가 되어준 사람이 있었다. 교회에서 취미 활동으로 퀼트를 가르쳐주던 아름다운 금발의 페트리샤. 그녀는 신혼 시절부터 침실을 퀼트 방으로 개조해서 쓸 만큼 일찍 재봉틀과 바느질에 능했다. 수십 년간 퀼트작품을 판매하고 디자인 책도 발간하고, 많은 대회와 페스티벌에서 수많은 상을 받은 실력자였다. 페트리샤는 첫번째 유방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나를 그녀의 세계로 초대해 주었다. 빅토리아풍인 페트리샤의 집은 작품으로 가득 채워진 퀼트 미술관 같았다. 거실 한 벽을 차지하는 가로 4m, 세로 3m 되는 대형 작품에 압도되고 말았다. 연한 파스텔톤의 ..
“H가 JTBC 드라마 공모에 당선됐대.” 드라마작가교육원을 함께 다녔던 친구가 몇 년 만에 연락을 했다. H의 당선 소식에 자극받아 다시 스터디를 시작하자는 제안을 가지고. “나도 그 공모전에 대본 보냈었는데.”라는 말은 왠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오랫동안 흩어져있던 우리 스터디 멤버는 다시 뭉치기로 했다. “나는 작가가 될 거야.”라고 말했을 때, 엄마의 반응은 간호사가 될 거야, 선생님이 될 거야라고 할 때와 사뭇 달랐다. 대뜸 “배곯고 힘든 일을 뭣하러하려고?”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 배고픈 게 싫었던 나는 ‘돈을 벌어서 배곯지 않을 만큼 쌓아놓고 글을 써야지.’ 하는 결심을 했다. 돈 벌어 쌓아놓는 건 작가가 되는 것이나 배고픔을 참는 것보다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왜 ..
남의 돈 떼어먹고 잠이 오고 밥이 넘어갈까. 거지 똥구녕에 콩나물도 모자라 이빨에 고춧가루도 빼먹을 놈. 불면증 걸려 벌건 눈 튀어나와 뒈질 놈. 물 한 모금 못 넘기게 해 바싹 말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놈. 더한 저주와 욕을 퍼붓고 싶지만 내가 아는 욕이라곤 외할머니가 입에 달고 사셨던 ‘문디지랄’과 TV에서 얌전한 얼굴의 아이돌이 전라도 사투리로 뱉어낸 ‘씹색연필’ 정도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해도 직원들 월급, 외주 인건비, 부업 아줌마들 일당까지 다 주고 나면 우리 부부 한 달 생활비나 간신히 남을까 말까 싶은 돈인데, 그걸 떼먹고 중국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사기꾼은 중국에서 물주를 만나 사업자금 마련한다면서 우리에게 희망고문만 하면서 썩은 동아줄을 잡고 버티게 만들더니 급기야 줄을 끊고 사라..
정류장도 많이 변했다. 지붕이 달린 바람막이로 대기실을 잘 갖추었다. 단순히 버스가 정차하여 승객을 태우는 것뿐만 아니라 팻말과 노선의 알림이나 노선이 표시된 지도가 부착되어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쁜 아가씨의 안내 방송은 상큼한 분위기까지 되살아났다. 몇 년 전만 하여도 가고자 하는 노선을 알 수가 없어 옆 사람에게 길을 묻기도 했다. 잘 알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있는 반면 너무 엉뚱한 곳을 잘못 알려줘서 곤혹을 치른다. 그럴 때 마다 버스를 갈아 타고 몇 정거장을 더 가서 내리곤 했다. 시골에서 모처럼 올라 오신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락동 시누네 집을 찾아 갈 때였다. 길을 몰라서 걱정은 되었지만 대충 짐작은 갔다. 분명히 여기가 맞는데 하고 내렸다. 버스가 떠나고 난 후에 잘 못 내렸다는 것을 알았다..
모처럼 오더가 없어서 하루 쉬는 날이었다. 남편이 선심이라도 쓰듯 등산을 가자고했다. 단번에 오케이. 예전에는 남편이 산에 가자고 하면 번번이 내가 싫다고 거절했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은 바뀌는 모양이다. 최근에는 내가 먼저 등산가자 졸라대지만, 남편은 지인들과 어울려 다니느라 함께 등산할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이번에 퇴짜를 놓는다면 다음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아 열일을 제쳐두고 나선 걸음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남편보다 일찍 일어났다. 신발장 위 칸에서 등산화를 꺼내 신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읍내 가게로 쪼르르 달려가 김밥 세 줄을 사왔다. 생수도 한 병씩 챙기고, 믹스커피와 끓인 물도 보온병에 챙겨 넣었다. 오랜만에 함께 나서는 걸음이라, 날씨도 화창하고 기분도 좋았다. 산행계획은 남편이 세..
남편은 에어컨 설치기사다. 우리지역에는 2인1조로 꾸려진 설치 팀이 50여개 정도 있다. 연중 상시근무 팀도 있고 한시적으로 하절기에만 계약하는 팀도 있다. 에어컨 설치작업을 하려면 규정상 보조기사가 필요한데, 군복무를 앞두거나 갓 전역한 청년들이 파트타임으로 잠깐씩 일했다. 올해는 코비드가 터지고 걱정이 많아졌다. 소비가 위축되어 에어컨 판매량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판매가 줄면 설치작업 건수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최저임금도 오른 데다 일거리가 줄어들면 보조기사 일당도 제대로 챙겨주기 힘들다. 보수가 적으면 성실한 보조기사 구하기도 어려워진다. 마침 직장을 그만두고 쉬고 있던 터라 내가 보조를 하겠노라 자처하고 나섰다. 일자리 구하기도 힘든데 어차피 지출되는 인건비라면 내가 대신하는 ..
흐르는 세월에 몸에도 적신호가 온다. 늘그막에는 신호의 징후를 빨리 깨달아야 한다. 코로나19와 함께 지내는 삶 속에서도…. 어린 시절 불렀던 ‘앞니 빠진 중강새 우물가에 가지 마라. 붕어 새끼 놀란다. 잉어 새끼 놀란다.’라는 노래가 꿈에서 나를 깨웠다. 이 동요는 이 빠진 아이 놀리기의 노래다. 놀림으로 인한 수치심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이런 놀이를 통해서 자신의 신체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심리 치료의 효과가 있던 노래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입안을 혀로 굴려보았다. 앞니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잇몸만 매끈거렸다. ‘어어, 충치가 생겨 모두 썩어 빠진 건가?’ 꿈에까지 나타나는 인공치아 공사에 온 신경이 쏠렸다. 이(齒)가 오복 중에 하나라던데. 예부터 행복의 조건으로 전하는 말 가운데 오복(五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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