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그렁 쨍그렁! 외양간의 소 요령 소리에 잠이 깨었다. 먼 데서 새벽 정적을 깨고 닭들이 홰를 치며 운다. 지창을 열고 뜨락에 나가 괜히 우물가를 서성거려 본다. 돌담 사이에서는 지칠 줄 모르는 미물들이 물레를 잣듯 찔찔 거리며 긴 밤을 지새우고 있다. 밤새 떨어져 나가 앉은 성좌는 아직도 못다 한 구원의 밀어를 아쉽게 속삭이고 있다. 여기는 추풍령에서 동남으로 40리, 백화산 들목에 자리한 한적한 산골이다. 며칠 전 일자리가 바뀌어 대구에서 이 생소한 고을로 찾아들었다. 농가에서 첫 밤을 새우고 맞는 이 새벽에, 나는 왜 부질없이 어지러운 상념으로 별을 보고 섰을까. 방으로 돌아와 책상머리에 조용히 눈을 감고 앉는다. 또 하나의 삶의 건널목을 넘어서면서, 새 삶의 여로를 가만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착..
주인 없는 빈집 뜰에도 봄은 와서 이름 모를 풀꽃들이 한창이다. 무너진 장독대 돌틈 사이에는 두어 송이 민들레며 채송화도 무심히 피어 있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본시 어느 가난한 화전민이 살던 곳이라 울도 담도 없다. 이엉은 비바람에 삭아 내려앉고, 문이 떨어져 나간 빈방은 짐승이 살고 있는 동굴같이 그늘진 아궁이를 벌리고 있다. 그 퇴락됨이 그지없는 빈집 뜰에 한 소녀가 외롭게 돌멩이를 만지며 놀고 있다. 나는 묘한 느낌이 들어 바쁜 걸음을 멈추고 그 소녀에게 다가갔다. 여기는 태백산 준령이 동남으로 치닫는 산허리 깊숙한 산골 화전민 마을이다. 집들은 서로 산비탈에 흩어져 있고 인적도 드문 곳이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힐끗 보고선 수줍은 듯이 손을 털며 일어서는 그 소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 ..
친구들 만나는 곳도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못 찾겠다 꾀꼬리’ 외치던 동네 꼬마들은 지금 종적이 묘연하다. 나도 떠났고 그들도 더 이상 날 찾지 않기 때문이다. 이따금 동심은 동네가 그립다. “얘들아 뭐하니 죽었니 살았니?”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 그들도 거기 남아 있지 않다. 운수 좋은 친구들 일부만 아직도 일을 한다. 어쩌다 만나면 피곤해 죽겠다는 표정이다(부러워 죽겠다는 시선이 미안한 거겠지). 일이 없는 친구들은 외로워 죽겠다고 엄살을 피운다. 심심할 때마다 ‘까옥 까옥’ 하며 주머니에서 초인종을 누른다.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로 시작하는 노래(여진 작사·작곡 ‘그리움만 쌓이네’)가 밴드의 주제곡으로 제격이다. 죽겠다, 죽겠다 하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친구들을 ..
찢어진 바람이 휘파람을 분다. 죽음을 알리는 소리다. 무거운 소식인데 빠르게 날아온다. 이번 부고는 뜻밖이다. 「대전고등학교 동문 김○○ 심장마비로 사망 충남대병원 장례식장」 휴대전화 메시지로 소식을 접하고 가까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름이 가물가물한 탓이다. “글쎄, 나도 잘 모르는 이름인데. 칠백 명이 넘는 동기들을 어떻게 다 기억하냐.” 물어물어 알아낸 건 죽은 동기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것 외에 공유할 기록이 없다. 딱히 모른 체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얼굴조차 기억에 없는 동기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도 난감했다. 얼마의 틈에서 고민했다. 소식을 자주 나누는 친구들과 연락 끝에 30여년 만에 동창들 얼굴이나 보자는 명목으로 문상에 나섰다. 사람은 만나는 것보다 헤어지는 걸 잘해야 한다. 헤..
1 소싯적에 나는 외갓집 툇마루 끝에 앉아 혼자서 시간 보내는 걸 아주 좋아했다. 그 마루 끝에 오래도록 앉아 있으면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들이 다 떠오르곤 하였다. 굼벵이는 왜 썩은 초가지붕 속에 웅크리고 사는지, 매미는 왜 떼를 쓰는 아이처럼 울어대는지, 장마철 산에 나는 버섯은 왜 무서운 독이 들어 있는 것일수록 화려한 빛깔을 띠는지, 단풍은 왜 산꼭대기부터 붉은 물을 들이면서 산 아래로 내려오는지, 속이 벌어진 석류를 볼 때마다 왜 옆집 누나가 화들짝 웃을 때의 잇몸이 겹쳐지는지,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재미난 생각들이 꼬리에 고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동무들하고 어울려 노는 대신에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듣는 것도 싫지 않았다. 빗물이 마당에 크고 작은 왕관 모..
박군이 뜻밖에 내 연구실을 찾아왔다. 그는 두 자쯤 길이의 포장된 액자를 들곤 꺼벙하게 서서 멀뚱멀뚱 껌벅이는 모양이 비 맞은 장닭이었다. 내 앞으로 다가와선 “선생님!” 하고 부를 뿐 좀처럼 말문을 열지 못한 채 쩔쩔매고 있었다. 내일이 스승의 날인지라 대강 짐작이 갔지만, 엄청 숫기가 없어 보이기에 내가 먼저 웃으면서 “그게 무어니?” 말을 걸었다. 박군은 과연 힘을 얻은 듯 “아버님께서 선생님께 갖다드리라 해서요.” 수줍어하긴 마찬가지였다. “무엇인데?” 이번엔 내가 다그쳤다. 그는 무언지 중얼거리며 액자의 포장을 풀었다. 웬걸! 영롱한 자개로 정교하게 장식한 그림, 벼슬을 꼿꼿하게 세운 장닭이 거드름을 피우며 섰고, 그 뒤로 장닭에 기대여 다소곳이 암탉, 그리고 그 옆으로 옹기종기 놀고 있는 병아..
점심을 먹고 오수(午睡)를 즐기다 맑은 새소리에 정신이 들어 창밖을 보니 겨울 햇살이 반짝이고 있다. 나는 숄을 두르고 뜰로 나선다. 싸늘한 공기가 코끝을 스치며 지나간다. 깃털이 하얀 새가 옆집 나무숲을 들락거리며 바쁜 날갯짓을 하다가 쏜살같이 앞집 정원으로 숨어버린다. 어찌나 잽싼 동작인지 잠에서 깬 내 눈으로는 쫓아가기조차 힘들다. 조금 전 무슨 꿈을 꾸었는지 생각이 아득해진다. 어딘지 먼 곳을 다녀 온 것 같기도 하고 꽃이 핀 들판을 헤매다 온 것 같기도 하고……. 뜰은 비참하리만큼 얼어붙어 있다. 모든 생명이 언 땅 속으로 숨어 버렸다. 할미꽃 순의 흰솜털만 흙 속에 묻혀 조금 보인다. 그 옆에 자리 잡고 있던 도라지, 매발톱은 흔적조차 없이 땅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그리며 지난 여름..
두 달 보름 동안 봄 가뭄이 심하다. 그런데도 잡초는 끄떡하지 않는다. 가뭄을 타기는커녕 더 억세어졌다. 오늘 쪽파 밭에 무수히 돋아난 잡초가 한눈을 판 사이에 무성하여 뽑았다. 톱칼로 뿌리를 베고 쪽파는 다치지 않게 손으로 사이사이에 파고 든 잡초를 뽑았다. 잡초의 뿌리가 파의 뿌리를 휘감고 거름을 빼앗아 먹고 있다. 쪽파는 힘도 못 펴고 핼쑥하다. 머지않아 쪽파가 잡초한테 파묻힐 지경인데 오만하고 기세등등하던 잡초를 뽑아버리니 마치 복통을 일으키던 뱃속의 회충이 없어진 것처럼 내 마음조차 개운하다. 좀 일찍 뽑아주지 않은 것을 쪽파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였다. 잡풀에 가려 겨우 숨을 쉬는 쪽파가 주인을 향해 나무라는 것 같다. 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가물고 덥고 미세먼지도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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