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물세 살이오―삼월이오―각혈이다. 여섯 달 잘 기른 수염을 하루 면도칼로 다듬어 코밑에 다만 나비만큼 남겨가지고 약 한 제 지어 들고 B라는 신개지(新開地) 한적한 온천으로 갔다. 게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그러나 이내 아직 기를 펴지 못한 청춘이 약탕관을 붙들고 늘어져서는 날 살리라고 보채는 것은 어찌하는 수가 없다. 여관 한등(寒燈) 아래 밤이면 나는 늘 억울해 했다. 사흘을 못 참고 기어이 나는 여관 주인영감을 앞장세워 밤에 장고 소리 나는 집으로 찾아갔다. 게서 만난 것이 금홍(錦紅)이다. “몇 살인구?” 체대(體大)가 비록 풋고추만하나 깡그라진 계집이 제법 맛이 맵다. 열여섯 살? 많아야 열아홉 살이지 하고 있자니까, “스물한 살이에요.” “그럼 내 나인 몇 살이나 돼뵈지?” “글..
나의 어머니는 진사이신 신공申公의 둘째 따님이시다. 어렸을 적에 벌써 경전에 통달했고, 글을 지을 수 있었으며 글씨도 잘 쓰셨다. 바느질이나 수놓는 일에까지 재주가 뛰어나 정묘한 경지에 이르렀다. 거기다가 천성이 온순 아담하시고, 지조가 굳고 정결하셨다. 몸가짐이 안존했고, 일을 처리하는 데는 치밀했으며, 말수는 적고 행동은 매우 조심스러우셨다. 또 스스로 겸손하게 하시니 외할아버지 신공께서 끔찍이 사랑하고 아끼셨다. 어머님은 성품 또한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님께서 병환이 나면 근심하는 빛이 얼굴에 역력하다가 병환이 나으시고 나서야 얼굴이 펴지셨다. 뒷날 어머님이 시집을 가게 되자, 외할아버지께서는 아버님께 “나에게 딸이 많은데 다른 딸들은 시집을 가도 그렇게 서운하지 않았지만 자네 처의 경우는 참으로..
나는 놀기를 좋아하고 일하기를 싫어한다. 나는 일이라면 딱 질색이다. 내가 일을 싫어하는 까닭은 분명하고도 정당하다. 일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부지런을 떨수록 나는 점점 더 나로부터 멀어져서, 낯선 사물이 되어간다. 일은 내 몸을 나로부터 분리시킨다. 일이 몸에서 겉돌아서 일 따로 몸 따로가 될 때, 나는 불안하다. 나는 오랜 세월동안 소회된 노동으로 밥을 먹었다. 나는 이제 아무데도 붙여주는 곳이 없고 기웃거릴 곳도 없어서 혼자 들어앉아 있다. 또 막 무는 개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대문 밖에 나가지 못한다. 요즘 나의 일이란 하루에 그저 두어 줄씩 작문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때때로 그나마도 하고 싶지가 않다. 글이란 아무리 세상없이 잘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몇 줄..
미리 고백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현실에 눈이 어두운 사람이었다. 많은 일에서 늦되었고 욕심이 없었으며 두문불출 혼자 지내는 일도 달게 받아들이는 체질이었다. 그해 늦은 가을 숲으로 드는 입구에 덩그러니 서 있던 이 공간을 마련한 것이 내 생애 유일한 현실 감각이라할 것이다. 엄연히 카페라는 정체성을 가진 건물을 공개입찰을 통해 임대한 것이지만 내 두뇌 사전은 입찰이나 임대 같은 단어와 친숙하지가 못하다. 그 '입찰' 결과 머릿속은 당장 외딴 성의 성주로 포맷되었고 한 리어카 분의 책을 부렸을 때는 소로우(H.D.Thoreau)의 문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의 거처는 사색을 위한 곳으로뿐만 아니라 진지한 독서를 하기 위한 곳으로서도 그 어느 대학보다 나았다." *소로우의 《월든》 속 구절 ..
‘폐허는 사람이 없어야 폐허가 된다. 역사의 한 부분을 떠들썩하게 채워 넣던 도읍지였을망정 인걸이 간데없어지면 폐허가 된다’(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 서현 지음 / 효형출판, 2014)는 문장에서 폐허를 생각한다. 사람은 공간에 에너지를 채워 넣는 중요한 유기체다. 유기체는 공간에 모여 구분 불가능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공간 속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사람의 힘은 달콤하면서 힘이 있다. 사람 구경 할 수 있는 시장이나 백화점, 극장이나 공연장, 그 어떤 장소에서도 사람들의 움직임은 살아있는 우주 그 자체다. 그중에서 움직임이 조용하면서도 역동적으로 다가오는 곳이 계단이다. 나에게 세종문화회관은 정신세계의 중심이었다. 화재로 소실된 시민회관의 명맥을 이어 예술의 통로가 되었던 세종문화회관의 계단..
하물며, 골목 바람도 리듬을 탄다. 느긋한 바람이 강아지풀을 쓰다듬으며 살랑거리다가도 남쪽 동백꽃 내음을 골목으로 부려 놓을 만큼 세차게 불기도 한다. 빨랫줄에 널려있는 시래기가 왜바람 따라 바스락거린다. 거칠어진 바람에 돌쩌귀 빠진 철대문이 덜커덩덜커덩 녹을 닦는다. 바람의 장단에 골목은 부풀었다가도 이내 고요한 풍경이 된다. 사람이 만드는 바깥바람에도 골목은 술렁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잠잠해진다. 후미진 골목의 리듬이다. ‘슬로우슬로우 퀵퀵’ 휘파람 불 듯 발음해야 하는 이 말을 내가 맨 처음 들었던 때는 골목이란 골목을 죄다 이어 나만의 세상을 만들던 어린 날이었다. 바다에서 불어와 골목을 휩쓸다가 숲을 타고 산등선 너머로 사라지던 바람을 뒤쫓는 일이 당시 아이들의 놀이였다. 순간순간 속..
늙은 강아지가 좋다. 눈물이 그린 세월의 흔적, 윤기 없는 털이 서로를 꼭 붙든 모습,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회색 눈동자, 이 모든 것이 좋다. 인생의 고난을 반려견 똘똘이의 황혼기와 함께했기 때문일까. 길을 걷다 보면 피부가 마모된 개들에게 유독 시선을 빼앗긴다. 첫 직장이라는 절벽에서 호기롭게 뛰어내린 젊은 독수리는 날개가 부러져 추락하고 말았다. 날개 꺾인 독수리를 가장 오랜 시간 지켜본 건 황토색 새치 가득한 요크셔테리어였다. 일원도 못 버는 백수가 똘똘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자전거 앞에 바구니 하나 매다는 것뿐이었다. 다리가 닳고 닳아 걷지 못했던 작은 강아지는 바깥바람을 좋아했다. 앉는 것조차 힘든 늙은 아이를 위해 바구니에 푹신한 천도 깔았다. 유일한 단골 승객을 조수석에 태우고 올..
지금도 떠올릴 때마다 가슴 더워 오는 추억의 노래가 있다. 유년의 동구길을 짓까불며 오가면서 부르던 동요들. 그중에서도 ‘나 어른이 되면’이라는 노래이다. 홍진의 더께가 묻지 않아 하얀 광목 빛처럼 눈부셨던 그 순진무구했던 날들. 어른들의 오염된 가치와 일탈된 행동들에 실망한 나머지 도리질을 하며, 어른이 되면 주변의 어른들을 반면교사 삼아 어른다운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며 목청을 높여 그 노래를 불렀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 좁은 시야 탓인지 내 주위에 어른다운 어른은 없었다. 비록 머리에 하얀 서리 내리고 얼굴의 검버섯들이 그동안 어른들을 스쳐 지나갔던 세월의 무게를 증거하고 있었지만, 내 이상형의 어른들은 찾을 길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빨리 내 몸의 나이테가 더해지기를 갈망했고, 그만큼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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