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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65

부러운 날의 위로 / 이덕무 번역과 원문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을 아껴 여룡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도 여의주를 가졌다 하여 스스로 뽐내면서 저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螗蜋自愛滾丸, 不羨驪龍之如意珠. 驪龍亦不以如意珠, 自矜驕而笑彼蜋丸. 당랑자애곤환, 불선여룡지여의주. 여룡역불이여의주, 자긍교이소피낭환. -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청장관전서(靑莊舘全書)』 권63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해 설 이 글은 박지원의 「낭환집서(蜋丸集序)」에 거의 같은 구절이 실려 유명하지만 이덕무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 먼저 보인다. 「낭환집서」에는 “말똥구리는 자신의 말똥을 아끼고 여룡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으며, 여룡도 여의주를 가졌다 하여 저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蜣蜋自愛滾丸, 不羡驪龍之珠. 驪龍亦不以其珠, .. 2021. 9. 29.
어느 레슬러의 꿈 / 이기식 요즈음은 자주 초조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지나온 시간에 비하여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공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이나 다 들 인생을 후회하기는 마찬가지일 거라고 스스로 위로도 해보지만, 그래도 마음속은 그리 편치만은 않다. 틀어놓은 TV에서 '빠떼루'란 말을 언뜻 듣지 않았으면 오늘도 여느 날과 같은 날이 될 뻔했다. 스포츠 해설가들의 일화를 소개하는 중이었다. 1996년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레슬링 중계를 맡았던 ‘빠떼루 아저씨’ 김 모 해설위원의 이야기였다. 우리 모두 잘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 해설위원은 '파테르(par Terre)'라는 레슬링 용어를 ‘빠떼루’라고 말했다. 사투리처럼 들렸으나 이상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분위기에 빨리 빠져들게 했다. 레슬링 중계.. 2021. 9. 29.
이해인 시인 말의 빛 / 이해인 쓰면 쓸수록 정드는 오래된 말/ 닦을수록 빛을 내며 자라는/ 고운 우리말//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억지 부리지 않아도/ 하늘에 절로 피는 노을빛/ 나를 내어주려고/ 내가 타오르는 빛//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언제나 부담 없는/ 푸르른 소나무 빛/ 나를 키우려고/ 내가 싱그러워지는 빛// "용서하세요"라는 말은/ 부끄러워 스러지는/ 겸허한 반딧불 빛/ 나를 비우려고/ 내가 작아지는 빛// *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언어 영역 읽기 교과서 수록 살아 있는 날은 / 이해인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 2021. 9. 29.
7월의 바다 / 심훈 흰 구름이 벽공에다 만물상을 초 잡는 그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맥파만경에 굼실거리는 청청한 들판을 내려다보아도 백주의 우울을 참기 어려운 어느 날 오후였다. 나는 조그만 범선 한 척을 바다 위에 띄웠다. 붉은 돛을 달고 바다 한복판까지 와서는 노도 젓지 않고 키도 잡지 않았다. 다만 바람에 맡겨 떠내려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나는 뱃전에 턱을 괴고 앉아서 부유와 같은 인생의 운명을 생각하였다. 까닭 모르고 살아가는 내 몸에도 조만간 닥쳐올 죽음의 허무를 미리다가 탄식하였다. 서녘 하늘로부터는 비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 들어온다. 그 검은 구름장은 시름없이 떨어뜨린 내 머리 위를 덮어 누르려 한다. 배는 아산만 한가운데에 떠 있는 '가치내'라는 조그만 섬에 와 닿았다. 멀리서 보면 송아지가 누운 것만 한 .. 2021. 9. 28.
봄은 어느 곳에 / 심훈 벌써부터 신문에는 봄「春」자가 푸뜩푸뜩 눈이 뜨인다. 꽃송이기 통통히 불어오른 온실 화초의 사진까지 박아내서 아직도 겨울 속에 칩거해 있는 인간들에게 인공적으로 봄의 의식(意識)을 주사하려 한다. 노염(老炎)이 찌는 듯한 2학기 초의 작문 시간인데 새까만 칠판에 백묵으로 커다랗게 쓰인「秋」자를 바라다보니 그제야 비로소 가을이 온 듯 싶더라는 말을 내 질녀에게 들은 법한데 오늘 아침은 “어제 오늘 서울은 완연한 봄이외다”라고 쓴 편지의 서두를 보고서야 창밖을 유심히 내어다보았다. 먼 산을 바라다보고 앞 바다를 내려다보나 아직도 이 시골에는 봄이 기어든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산봉우리는 백설을 인 채로 눈이 부시고 아산만은 장근(將近) 두 달 동안이나 얼어붙어 발동선의 왕래조차 끊겼다. 그러다가 요새야 조금.. 2021. 9. 28.
조선의 영웅 / 심훈 우리 집과 등성이 하나를 격한 야학당에서 종 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집 편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에는 아이들이 떼를 지어 모여 가는 소리와, 아홉시 반이면 파해서 흩어져가며 재깔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틀에 한 번쯤은 보던 책이나 들었던 붓을 던지고 야학당으로 가서 둘러보고 오는데 금년에는 토담으로 쌓은 것이나마 새로 지은 야학당에 남녀 아동들이 80명이나 들어와서 세 반에 나누어 가르친다. 물론 오리 밖에 있는 보통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하는 극빈자의 자녀들인데 선생들도 또한 보교(普校)를 졸업한 정도의 청년들로, 밤에 가마때기라도 치지 않으면 잔돈푼 구경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네들은 시간과 집안 살림을 희생하고 하루 저녁도 빠지지 않고 와서는 교편을 잡고 아이들과 저녁내 .. 2021. 9. 28.
심훈 시인 심훈의 시가집 〈그날이오면〉은 1932년, 간행하려고 했으나 조선총독부의 검열로 좌절되었다. 저자가 사망한 뒤, 1949년 한성도서(주)에서 초판이 발행되었다. 왼쪽 사진은 삼판본으로 세로 18cm×가로 12cm다.(출처: 코베이 경매) 〈그날이오면〉시가집을 검색해 목차순으로 발췌하였다. 찾지 못한 시가와 수필은 제목만 적었다. 머리말씀 나는 쓰기를 위해서 시를 써 본 적이 없읍니다. 더구나 시인이 되려는 생각도 해 보지 아니하였읍니다. 다만 닫다가 미칠 듯이 파도치는 정열에 마음이 부대끼면 죄수가 손톱 끝으로 감방의 벽을 긁어 낙서하듯 한 것이 그럭저럭 근 백 수나 되기에 한 곳에 묶어 보다가 이 보잘것없는 시가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가에 관한 이론이나 예투의 겸사는 늘어놓지 않습니다마는 막상 책상.. 2021. 9. 28.
하필이면 / 장영희 몇 년 전인가 십대들이 즐겨 부르던 유행가 중에 ‘머피의 법칙’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가사가 대충 이랬다. “화장실이 있으면 휴지가 없고, 휴지가 있으면 화장실이 없고, 미팅에 가도 하필이면 제일 맘에 안 드는 애랑 파트너가 되고, 한 달에 한 번 목욕탕에 가도 하필이면 그날이 정기 휴일이고……” 등등 “무슨 일이든 어차피 잘못되게 마련이다”라는 ‘머피의 법칙’을 코믹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노래에 나오는 ‘하필이면’이란 말은 분명히 ‘왜 나만?’이라는 의문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남의 인생은 별로 큰 노력 없어도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갈 뿐더러 가끔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 오는 것 같은데, 왜 ‘하필이면’ 내 인생만은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걸핏하면 일이 꼬이고, 그래서 공.. 2021. 9. 27.
유치환 시인 그리움 1 / 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그리움 2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그리우면 / 유치환 뉘 오는 이 없는 곬에는/ 하늘이 항시 호수처럼 푸르러/ 적은 새 가지 옮으는 곁에/ 송화가루 지고/ 외떨기 찔레/ 바위돌 하나/ 기나긴 하로해 직하기 제우노니/ 참으로 마음속 호올로 숨겼기에 즐거워/ 고은 송화가루 송화가루/ 손에만 묻다// 행복 / 유치환 오늘도 나는/.. 2021. 9. 27.
곁의 여자 / 김지수 송강 정철 선생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그러나 그가 사랑했던 여인, 강아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K선배를 따라 강아의 묘를 찾은 것은 지난 봄, 춘삼월 호시절이라 하나 아직 매서운 바람이 품속을 파고드는 어느 날이었다. 경기도 고양군 삼천리 골에 송강의 묘가 있었고, 그 오른쪽에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아의 묘가 있었다. 그들은 사신(使臣)과 기생의 신분으로 마주했다. 송강이 명나라를 다녀오던 길에 강아를 만나게 되었지만, 평양에서 그를 따라 내려왔을 때는 ‘남과 여’의 의미였으리라. 이후 강아는 한 번도 송강의 옆을 떠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송강이 노후에 아버지 묘를 지키며 외롭게 지내던 시절에도 강아는 곁에서 벗이 되고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눈에 보이는 강아의 묘는 슬프다 못해.. 2021.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