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가작) 입이 딱 벌어졌다. 사람의 뒷모습을 어쩌면 저리도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너무나 편안한 모습이다. 조선 후기 천재 화가 김홍도의 염불서승도를 바라본다. 운해 속에 피어난 연꽃 위에 결가부좌 한 선승의 참선하는 뒷모습을 그린 초상화다. 삭발한 머리는 달빛에 파르라니 빛나고, 가녀린 목선을 따라 등판으로 흘러내린 장삼이 구름과 어우러져 바람을 타고 하늘은 난다. 꾸미지 않은 담백한 스님의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 문득, 내 얼굴을 생각한다. “얼굴 좀 펴라”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어 본 말이다. 남들처럼 눈 코 입 하나 빠진 거 없는 외모이기는 하나 표정이 없어 그게 문제다. 아마도 삼신할미가 생명을 점지하고, 마지막 미소 한 줌 훅 뿌려주는 의식을 깜박하..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섶섬이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마을로 들어서자, 암벽 위에 작은 돌집이 보였다. 벼랑 위 깔깔한 소금기를 벗 삼아 삶의 모퉁이를 돌아선 그곳에는 삭정이 같은 무릎을 보듬고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바람 한 점만 불어도 거친 말 한마디만 내 던져도, 금세 기울 것 같은 수평을 아버지는 꼭 붙들고 있었다. 숭숭 구멍 뚫린 관절에 햇볕을 끌어모으고 먼바다를 내다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잊었다는 것인지 다 지나간 일이라 모른다는 것인지 그 고갯짓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단물 쓴물 다 빠진 아버지의 빈 가슴에 찾아 든 것은 무엇일까? 보는 이의 마음도 마른 웅덩이처럼 젖어들었다. 말랑하게 가라앉은 가슴이 울컥했다. 아버지가 평생 쌓아 놓은 돌들은 말이 없다.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킬 ..
2022 매일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한국의 그릇에는 도자기와 막사발이 있다. 가만히 보면 생김새도 다르고 쓰임도 달라서 재미있다. 사람도 도자기 같은 사람이 있고 막사발 같은 사람이 있다. 도자기는 관요에서 이름난 도공에 의하여 질흙으로 빚어서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다. 도자기는 관상용 또는 화병이나 찻잔, 식기 등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대부분은 만들어질 때부터 용도가 정하여진다. 격식 있는 상을 차릴 때는 밥그릇 국그릇 탕기 찜기 접시며 주병 등과 같이 용도대로 사용해야 한다. 국그릇에 밥을 담을 수는 없다. 그릇 하나에 하나의 용도만이 정하여졌다. 도자기는 활용 면에서 보면 매우 편협한 그릇이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깨끗이 닦아서 장식장 등에 전시되어 관상용으로 사용된다. 행여 다칠세라 다루기에도 여간..
지난주 중국 쿤밍을 다녀왔다. 나들이의 후유증은 끈덕졌다. 새벽 1시경 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지친 몸을 일으켜보니 해가 중천이었다. 그런데 찬 기운이 온몸에 돌고 코에서 액체가 주르르 흐르는 게 아닌가. 피로가 쌓여 코피가 나는가 싶었다.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코를 닦았다. 맑은 콧물이었다. 그런데 발코니 안쪽 문이 조금 열려 있지 않은가. 꽃을 사랑하는 아내는 발코니 출입문을 아침마다 열어 놓는다. 꽃을 배려한 환기가 남편을 감기로 내몬 결과가 되고 만 셈이었다. 다음날 아침 시청에서 일을 보고 나온 김에 아내와 신정호를 한 바퀴 돌았다. 걷는 동안에도 마스크 속에서 콧물은 계속 흘렀다. 돌아오는 길에 점심도 먹고 화원에 들려서 조그만 화분 몇 개도 샀..
창가에 환히 내리며 웃음 짓는 달빛은 보았는가. 보드라운 미소를 머금은 가을의 달빛은 솜틀에서 갓 틀어낸 하얀 목화솜처럼 부드럽다. 부드러운 달빛이 잠자고 있는 내 반쪽의 얼굴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의 입가에도 연한 미소가 달빛에 번진다. 지난날의 추억을 소환하여 누구와 담소를 나누는 것인가. 천진한 소녀의 모습인양 평화롭다. 잠든 아내를 뒤로 하고 달빛을 따라나선다. 발길은 호수를 향한다. 경포호를 흐르는 달빛! 고요하다. 창연히 내려앉는다. 달빛 따라 달도 호수에 끌려 들어간다. 호수에 내리는 달빛에 얽힌 홍장과 강원감사 박신의 애틋한 사랑의 사연이 달빛을 더 황홀하게 한다. 푸른 달빛에 반해 한참 동안이나 넋을 놓고 말았다. 호수 속을 맑게 비춘다. 이런 걸 명경지수라 하는 것이리라. 경포호를..
서현숙 시인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경기도 수원시에 살고 있다. 《대한문학세계》 시 부문에 등단했다.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정회원, (사)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운영위원장, 시몽 시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문학세계 신인문학상, 나라사랑 가족사랑 '전국 시인대회' 장려상(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주관, 국회의사당 사무처), 한국문학 발전상(대한문인협회 주관)을 수상했다. 현대시 '名人名詩'특선 시인선에 2년 연속 작가로 선정되었다. 시집으로 『들 향기 피면』, 『오월은 간다』가 있다. 書娥 서현숙 시인 (들향기) 시인 書娥 서현숙 입니다. blog.daum.net 들 향기 피면 / 서현숙 산천에 봄이 오면/ 온갖 꽃 알록달록/ 향기 발하고// 노란 민들레/ 달래, 냉이, 쑥부쟁이/ 초록 잎 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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