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보던 책 속의 한 문장이나, 영화 속의 한 장면이 가슴에 와닿을 때가 있다. 종일 그 생각에 발목이 흥건해질 때가 있다.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Rudolf Serkin이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한다. 여든네 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은이 못지않게 열정적이다. 시간의 두께가 내려앉은 늙고 앙상한 손이 피아노 건반을 누르자 맑은 소리가 공중으로 피어오른다. 입으로 뭔가를 주억거리는 표정이며 몸짓, 피아노 건반 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주름진 손은 참으로 아름답다. 보헤미안 출신인 그는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하여 열두 살에 독주를 할 만큼 천재적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여든여덟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을 음악에 헌신한 순순한 영혼이었다.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노년의 모습에서 음악과..
둥글둥글한 버섯들 군생처럼 옹기종기 처마를 맞댄 시골 마을이다. 한해의 결실을 보고 난 뒤의 들판은 허무인지 여유인지 텅 빈 충만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담장 너머 등불처럼 붉게 매달린 홍시가 방학 때마다 외갓집 오고 가는 길목처럼 정겹기만 하다. 숲속 어딘가에서 갑자기 허공으로 높이 날아오른 새가 폐곡선을 그리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선들선들한 바람이 조붓한 돌담길을 따라 마을을 안내하듯 앞장선다. 오래된 시골집이다. 귀향을 염두에 두고 잠시 머물 거처를 찾던 중이었다. 뒤란에서 불어오는 대숲 바람, 호박넝쿨 타고 오르는 낮은 돌담, 우물가 옆에 돌확이나 숫돌이 주인 잃은 빈집을 지키고 있다. 한때는 올망졸망한 자식들 앞세운 일가족이 등가죽 따뜻하게 살던 집이었으리라. 사람 냄새 들썩거리던 온기..
이른 아침 뒷산에서 우는 뻐꾸기 울음이 마을에 가득하다. 소나기가 걷힌 뒤라서 물기를 머금은 울음소리가 싱그럽다. 해마다 듣는 소리지만 그놈의 울음을 듣고 있으면 까닭도 없이 수심에 잠겨, 화창하면 화창한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처량하기 그지없다. 봄이 깊어져 여름으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성화같이 울지는 않으나, 간간이 바람을 타는 먼데 소리가 심금을 더 울린다. 그 울음소리가, 야삼경(夜三更)에 우는 접동새만 못해도, 봄날 한나절 우는소리엔 애상(哀傷)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겠으나, 이 강산 깊고 짧은 물줄기의 유역과 높고 낮은 산자락에서 우는 그놈의 울음은 청상(靑孀)의 한(恨)처럼 처량하다. 가난하고 서럽던 역사를 정선 아리랑으로 뽑아내는 것 같기도 하고, 갈라진 산하의 시름을 우..
자연은 계절마다 새로운 소리를 연주한다. 이른 봄 살얼음이 낀 논가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 봄의 창공을 나르며 노래하는 종다리, 여름향기를 뿜으며 노래하는 매미, 깊어가는 가을밤의 귀뚜라미 소리, 겨울 마당을 간질이는 싸락눈 내리는 소리… 쓸쓸… 아까부터 숲속 어딘가에서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쓰르라미 소리다. 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지금 숲을 가득 채우는 매미 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말겠지. 이런 계절의 소리로 달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봄의 새소리, 여름의 풀벌레 소리, 가을의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 한겨울 한옥의 문풍지 소리까지. 계절마다 다른 소리로 달력을 만든다면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기분 좋은 하루가 열리지 않을까. 자연의 소리가 계절마다 다르듯 자연을 닮은 사람도 제 감정 따라 내는 소..
외로운 마음을 술에 의지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술에 취하고 나면 당돌해진다고나 할까요. 없던 용기도 생기더군요. “요즘도 가끔 혼술 하니?” 선배가 묻더군요. 복용하는 약이 있어 뜸하다고 했어요. 그날도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지요. 단골인 나도 이름을 적고 자리가 나길 기다렸습니다. 우리 동네 아담한 초밥집입니다. 나는 혼자 술 마시는 것을 즐겼기에 가는 곳이 정해져 있었지요. 추억이 그리운 날은 초밥집을 찾았고, 술 따라주는 친구가 필요할 때는 동태탕 집을 찾곤 했답니다. 종업원이 번호를 부르네요. 나는 바텐더 자리를 원했기에 오래 기다리지 않았어요. 주문을 받으러 내 옆으로 다가오네요. “따뜻하게, 차게, 어떻게 드릴까요?” “차갑게요.” 짧게 말하고 초밥 몇 점과 정종을 잔술로 주문했습니다...
‘식사하셨어요?’ 흔하게 쓰는 인사말 중 하나다. 그 물음에는 약탈과 침략으로 얼룩진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서민들의 한이 스며있다. 밥 한 끼 먹으려고 누구는 소처럼 일하고, 어떤 사람은 강아지처럼 구걸했다. 몇몇은 눈밭에 갇힌 야생동물처럼 굶기를 밥 먹듯 했다. 식사에 관한 인사말에는 너는 어떻게 한 끼를 무사히 해결했는지에 대한 걱정과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밥은 생존과 안부를 묻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밥’이라는 단음절을 사용하여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기도 한다. ‘나중에 밥 한번 살게. 밥심으로 산다. 한솥밥 먹는다. 밥값은 해야지. 그 나물에 그 밥. 콩밥 먹고 싶어. 그 사람 밥맛이야.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다. 밥만 먹고 사나.’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표정만으로 서로의 ..
아내가 카페에 앉아있다. 학과 동기와 머리를 맞대고 휴대폰에 눈을 고정한 채 어학사전을 찬찬히 훑는다. 중요한 무엇을 찾는 중이다. 아무래도 문학적인 이름이 좋겠지. 백석 시詩에 나오는 갈매나무가 좋은데. 점잖은 드레.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은 어때. 알차고 잘 자란 소나무 찬솔도 있네. 아름다운 우리 사이를 예그리나라고 한다네. 고르고 골라 예비 후보로 몇 개의 단어를 저장한다. 유독 예그리나에 관심이 높았는데 알고 보니 짝퉁 우리말이다. 학습동아리에 어울리는 산뜻한 말은 없을까. 생각지도 못한 것이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때를 초월할지도 모를만한 단어가 없을까. “있다! 사부작사부작” 아내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계속 가볍게 행동하는 모양”의 부사라고 설명한다. 아내는 이름을 정하기 위해 거듭 생각하고 ..
어떤 말은 광속으로 귓속에 와 박힌다. 우리들이 교정을 막 끝내고 뭉그적거릴 때 그녀가 뱉은 말이 급소를 건드렸다. 붉은 입술이 ‘뱅쇼’라고 말하는 순간 머릿속으로 어디선가 앵무새 한 마리가 날아온 듯 낯선 이미지들이 꽃을 피운다. 나의 취약지구를 건드린 말맛이 침샘을 건드렸다. 찻잔에는 붉은 와인에 잠긴 레몬, 사과, 배, 오렌지가 시나몬과 어울려 울긋불긋하다. 베일 속에 아른거리는 이국적인 맛을 상상하며 말맛에 취해 버린 나는 새큼달큼하고 진한 와인을 연신 음미하는 동안 온몸이 달아올랐다. 그녀가 욕심을 부려 와인을 좀 더 많이 넣은 탓으로 꽁꽁 얼었던 내 마음이 제대로 풀려버렸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뱅쇼는 북유럽인들이 혹독한 겨울에 몸을 덥히기 위해 마시는 와인으로, 우리가 진한 쌍화탕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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