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접살림은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뵈는 금호동 산등성이, 그것도 셋집 단칸방에 틀었다. 자고새면 물통을 들고 동네 초입 저지대에 있는 공동 수돗가로 내달아야만 했는데, 그때 턱밑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는 강물은 숨찬 갈증을 풀어주곤 했다. 사는 일 그렇게 고되고 몸에 부쳤어도, 내 집 마련의 꿈에 부풀었기에 늘 긍정의 몸짓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아귀차게 엮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만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셋째 막둥이가 태어나던 그 해, 오매불망 그리던 새집 대문간에 내 이름 석 자의 문패를 달 수 있었다. 비록 삼간 슬래브 서민 주택이었지만, 두 다리 쭉 펴고 평생소원이었던 내 명의의 주택에 몸을 눕히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여우도 편히 쉴 수 있는 감춰둔 굴이 있고, 허공을 나는 새도 내려와 앉을..
봄을 알리던 뻐꾸기 지나간 자리에 매미 합창이 한창이다. 여름을 노래하러 왔는가. 매미가 아침을 깨운다. 폭염과 코로나19를 지우려는 듯 씩씩하고 우렁차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바람인가 보다. 새벽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 못 이루나 생명의 외침이니 어이할거나. 요즈음 산책길에서 매미 탈각蛻殼이쉽게 발견된다. 커다란 나뭇잎 뒤에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매달렸다. 잡아당겨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매미는 허물조차 정교하다. 여섯 개의 다리, 배 주름, 눈 더듬이까지 세밀하게 조각한 듯하다. 신기한 것은 날개 부분이 아주 작다는 점이다. 마지막 순간 완성되는 작품이어서일까. 미완未完인 채 접혀있는 날개는 바깥으로 빠져나와 제 모양으로 펼쳐지나 보다. 등에 갈라진 부분이 탈출구인 것 같다. 몸통이 빠져나오기엔..
배영옥 시인 1966년 대구 출생.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졸업. 199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뭇별이 총총』,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가 있음. '천몽' 동인.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에 선정, 2011.11월~2012.7월까지 쿠바 체류. 2018. 6월 지병으로 타계. 누군가 나를 읽고 있다 / 배영옥 움직임이 정지된 복사기 속을 들여다본다/ 사각형의 투명한 내부는 저마다의/ 어둠을 껴안고 단단히 굳어 있다/ 숙면에 든 저 어둠을 깨우려면 먼저 전원 플러그를/ 연결하고 감전되어 흐르는 열기를 기다려야 한다/ 예열되는 시간의 만만찮음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불덩이처럼 내 온몸이 달아오를 때/ 가벼운 손가락의 터치에 몸을 맡기면/ 가로세로 빛살무늬,..
졸졸거릴 때 알아봤어야 했다. 주변으로부터 입방아에 오르내릴 때 눈치를 긁어야 했는데 느긋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졸졸붓이 하얀 점박이 눈꽃 모자를 덮어쓴 쌍둥이와 잘쏙하게 잘 빠진 미운오리 새끼 한 마리를 달고 왔다. 남들이 알면 남세스럽게 바람을 피웠나 오해하겠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모월 아무 날 모 월간지 지면을 통하여 철필에 관한 행적이 드러나면서 관심이 쏠린 게 화근이다. 잘난 이름 덕분에 다소 우쭐하여 거드름을 피우긴 했지만, 허랑방탕 쏘다니거나 누굴 만나러 마실 나간 적도 없다. 얌전하게 주인어른 안주머니에 매달려 칩거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언제 새끼를 쳤을까. 《수필과 비평》지를 통하여 ‘졸졸붓’로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린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아들 내외가 아버지의 늦깎..
“요즘은 길 묻는 사람도 없어.” 옆 노인장이 불쑥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동의를 구하듯 힐끗 날 본다. 산행길의 중간쯤으로 산 아래가 멀리 트여 모두 땀 식혀 가는 곳이다. 나도 그도 배낭을 풀어 허기를 때우고 있었다. 뜬금없다 싶어 쳐다보는데 앞쪽에 앉은 청년들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비탈길 억새 사이에서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다. 산에 함께 오르고도 서로 눈길은 옆이 아니고 앞으로 더 쏠린다. 손에서 떼어내면 죽기라도 할 듯 기를 쓰고 가지고 다닌다. “제 갈 길 거기에다 묻고는 다 찾아가버리니 나 같은 사람에게 길 물을 일이 있겠느냐”며 일갈한다. 요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날로 돌연변이 튀어나오듯 얼굴 바꾸며 출현하니 사는 일이 때론 어지럽다. 사람의 일을 앗아 간다고 술렁댄다. 제가 만들고도 ..
번역문과 원문 시중(侍中) 강감찬(姜邯贊)은, 경술년(1010, 현종1) 거란이 처음 침입했을 때 여러 신하들은 항복을 논의하였는데 홀로 파천(播遷)하여 회복을 도모하자고 청하였고, 무오년(1018) 거란이 재차 침입했을 때 상원수(上元帥)로서 서도(西都)에 나가서 교전할 때마다 어김없이 이기니, 10만의 강포한 적들 중에 귀환한 자가 수천에 지나지 않았다. 거란이 전투에서 이처럼 심하게 패배한 적은 없었으며 시중보다 훌륭한 공을 세운 신하는 없었다. 그러나 개선한 뒤 곧바로 고로(告老)*하였고 임금이 친히 금화(金花) 여덟 가지를 꽂아 주자 배사(拜謝)*하며 감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니, 공을 세운 것이 훌륭한 점일 뿐만이 아니라 고로한 것이 더욱 훌륭한 점이다. 일흔 살에 치사(致仕)*한 일은 고려 초에..
고찬규 시인 1969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수료.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하였다. 시짐으로 『숲을 떠메고 간 새들의 푸른 어깨』, 『핑퐁핑퐁』가 있다. 제22회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수상. ‘천몽’ 동인 만종(晩鐘) / 고찬규 구부린 등은 종이었다// 해질녘,/ 구겨진 빛을 펼치는/ 종소리를 듣는다, 한 가닥/ 햇빛이 소중해지는// 진펄밭 썰물 때면/ 파인 상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호밋날로 캐내는, 한 생애// 쪼그린 아낙의 등 뒤로/ 끄덕이며 끄덕이며 나귀처럼/ 고개 숙이는 햇살/ 어둠이 찾아오면, 소리 없이// 밀물에 잠기는 종소리// 날 / 고찬규 꿩, 꿩/ 아직 못다 본 일을 보겠다고/ 수꿩이 한 소리 할 때// 때 이르게 핀 콩꽃은/ 콩콩 ..
훅, 가슴을 파고드는 꽃이다. 산길 옆 제법 큰 바위 아래 축 늘어진 가지 끝마다 소복하다. 가느다란 줄기 뻗음이 얼핏 보아 국수 면발 같다고 하여 붙여진 국수나무에 꽃이 피었다. 다섯 장의 꽃받침은 넉넉한 품으로 노란 꽃술과 하얀 꽃잎을 꼭 껴안고 있다. 꽃말은 모정母情이다. 조금만 눈을 들면 쉬이 만날 수 있는 꽃이다. 아기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만큼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화려하지 않아도 나비와 벌이 많이 찾아드는 꽃, 한참이나 길섶에 쪼그리고 앉아 바라본다. 꽃송이를 쓱 만져보니 화들짝 놀란 꽃잎들이 일제히 움츠리는 듯 그 떨림이 전해진다. 산행하는 건 이미 까먹고 국수나무꽃 근처에 자리를 편다.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따라 마신다. 커피 향 위로 꽃향기가 쏟아진다. 물소리며 새소리까지 더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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