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일이다. 어느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 현관에 진열된 여자용 신발이 열 켤레도 넘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란 적이 있다. 친구 내외가 모두 외국에서 여러 해 살다 온 사람들이었고, 부인도 직장에 나가는 유복한 가정이었다. 신장 대용으로 쓰이는 외국산 신걸이가 현관 벽에 걸려 있었고, 그 신걸이에 물고기 비늘처럼 줄지어 꽂혀 있는 여자용 신발이 열 켤레도 넘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랐던 것이다. 20여 년 전에 미국 어느 잡지에 실린 넥타이 광고를 보고 놀란 적도 있다. 일곱 개의 넥타이를 한 세트로 묶어서 파는 것이었는데, 요일마다 하나씩 갈아 매도록하기 위하여 일곱 개를 한 묶음으로 한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춘하추동 계절에 따라서 갈아 맬 수 있도록 서너 개의 넥타이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던..
박영준의 장편소설 '가족'에 나오는 여주인공 강여사의 남편은 아내가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연 그대로도 아름다운 것을 왜 굳이 화장을 하느냐고 반대하는 것이었는 데, 노골적으로 간섭을 하지는 않았지만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는 눈치를 보였다. 반면에 벌써 여러 해 전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 딸아이와 맞선을 본 어떤 청년은 여자가 화장도 하지 않고 나왔다고 불평을 하였다고 했다. 어쨌든 남자란 제멋대로다. 남이야 화장을 하든 말든 자유일 터인데, 마치 무슨 간섭 특허권이라도 딴 것처럼 말이 많다. 주제넘은 사람들. ` 여자의 심리 또한 미묘하다. 미장원에 가서 머리 모양을 바꾸고 왔는데 남편이 아무 소리 안 하면 시비를 건다. 신경이 무디고 아내에게 무관심해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바꾼 머리 모양..
코트에서 땀을 흘린 다음에 더운물로 목욕을 하고, 이어서 맥주 한 잔만 들게 되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테니스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만족스러워한다. 그러나 그 정도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교수 사회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일정이고, 때로는 주머니 사정이 추워서 귀가 길을 서두르곤 한다. 그날은 일진이 좋았던 모양이다. 네 사람은 ‘태양탕’을 거쳐서 ‘춘천 막국수’ 집으로 기세 좋게 달려갔다. 막국수 집은 평소처럼 붐비지 않았다. 우리가 들어간 방에는 삼십 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 세 사람이 상 하나를 점령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여유 있는 기분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나 조용하고 한가로운 분위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옆자리를 차지한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고함을 치..
최근에 어떤 친구로부터 내 성질이 다정다감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향수(鄕愁)에 가까운 느낌에 젖었다. 실로 오래간만에 듣는 ‘다정다감하다’는 성격 묘사였다. 내가 ‘다정다감’이라는 말과 처음 만난 것은 국민학교 담임 선생님이 적은 통지표 기록에서였을 것이다. 그 말의 뜻을 잘 몰랐으나, 그 무렵 집에서 자주 듣는 ‘계집애 같다’는 말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어렴풋하게 들었다. ‘계집애 같다’는 말이 좋지 않은 말이듯이 ‘다정 다감’도 별로 탐탁스러운 말은 아닐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어린이 시절에는 누구나 그런 것이겠지만, 나의 경우는 동무들에 대한 애착이 좀 심한 편이었다. 대여섯 살 어린 다리로도 나는 꽤 먼 곳까지 동무를 찾아서 '마실가기'를 좋아했다. 때로는 부엉이 울음소리 들어가..
서울대학교가 관악산 기슭으로 자리를 옮기던 해의 4월이었을 것이다. 새로 꾸민 교정 한 곳에 서 있는 낯선 꽃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벚꽃 같기도 하고 사과꽃 같기도 한데, 그것들보다 한층 더 아름다워 보였다. '서부해당화'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나도 집을 지으면 마당에 그 나무를 심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류달영 교수의 농장에 들른 적이 있다. 농장 어귀에 선 후박나무가 인상적이었다. 마침 꽃이 만발하여 그 향기가 진동하였고, 크고 싱싱한 잎들이 생명력을 구가하였다. 내 뜰에도 후박나무를 심기로 작심하였다. 고향 옛집 뒤뜰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가을이면 잎이 곱게 물들었고, 잎이 떨어진 뒤에는 주황색 열매들이 주렁주렁 빈 하늘을 수놓았다. 그 광경을 잊을 수 없어 감나무도 한 그루 심기로 ..
‘파소’라는 산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마을 어귀에 큰 고목 느티나무가 있었고. 그것이 바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하였다. 그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모습은 아들 하나 낳게 하고 학질쯤 고쳐주는 영험을 갖고도 남을 만큼 믿음직스러웠다. 여름에는 농사짓는 어른들과 놀기에 바쁜 어린이들을 위하여 고마운 정자나무의 구실도 하였다. 옛 절과 같은 고적지를 찾았을 때 그 어귀에서도 대개는 큰 고목과 만나게 되고, 그 순간부터 나그네의 마음은 속진(俗塵)을 떠나 벌써 선경으로 달려간다. 고적은 고목으로 인하여 더욱 고풍스럽다. 수백 년의 연륜을 새기고 우뚝 서 있는 거목을 마주 볼 때, 우리는 아물아물한 옛날을 바로 눈앞에 보게 된다. 고목은 인간의 영욕(榮辱)을 지켜본 역사의 증인일 뿐 아니라, 몸소 풍..
어느 대학교의 교사(校舍) 증축 기공식이 기독교식으로 거행되고 있었다. ‘기도’ 차례가 왔을 때 학교 목사님이 앞으로 나와 가라앉은 목소리로 “우리 다 같이 기도합시다” 하며 오른손을 가볍게 들자, 참석자 일동은 곧 고개를 숙여 눈을 감고 경건한 분위기 속으로 몰입하였다.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학교가 꾸준한 발전을 거듭할 수 있도록 항상 돌보아 주셨고, 특히 오늘 또다시 큰 건축을 계획하고 이렇게 기공식을 올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높은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는 내용의 기도였다. 억양이 알맞게 배합된 목사님의 굵은 목소리만이 이어질 뿐 그밖에는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엄숙한 순간, 나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호기심을 이..
아내는 동창회가 있어 오래간만에 나들이가고 아들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은 오후, 서재에 홀로 앉아 집을 지킨다. 조용한 집에 혼자 있게 되면 공부의 능률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도리어 잡념만 찾아들어 책을 읽어도 정신 집중이 잘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도 가끔 혼자서 집을 본 기억이 있다. 누나는 시집을 가고 큰형은 외가에서 충주 읍내 학교에 다녔을 때, 아버지는 늘 객지로 돌아다니시는 버릇이 있어, 우리 집에는 어머니와 작은형과 나 세 사람만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 형제를 산마을 집에 남겨 두고 친정에 가시는 일이 종종 있었고, 나보다 아홉 살 위인 작은형은 집 보는 일을 나에게 떠맡기고 건넛마을로 놀러 가곤 하였다.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집 잘 보라는 형의 말을 충실하게 지키며 나는 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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