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를 부산하게 보내고 숨을 고르고 보니 70령 고개에 앉아 있구려. 휴, 어이 할꼬! 허나 기는 죽지 말세” 학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친구가 휴대폰으로 보낸 신년 메시지다. 그는 다재다능하고 사교성도 좋아 주변에 남녀 친구들이 많이 몰렸다. 나도 어쩌다 어울려 몇 차례 즐거운 시간을 보낸 추억이 떠오른다. 퇴직 후 자주 만날 기회는 없지만 마음으론 이심전심 친근한 사이다. 신년 하례 메시지를 받고 보니 그때 그 시절 다시 못 올 추억이 떠오르고 참 반가웠다. 한편 이 친구, 늙음의 허전함과 소외감으로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는 느낌이 들어 안쓰럽기까지 했다. 유유상종의 위로를 해주고 싶어졌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은 법이 자연의 이치인지라 현직에 있을 때 지위가 높고 영향력이 컸던 친구들일수록 퇴직 후..
내가 사는 아파트 정문 건너에는 작은 사찰이 있다. 일주문과 불탑은 물론, 대문도 담도 없다. 조악하게 올린 기와 아래에 대웅전(大雄殿)이라고 쓴 나무 현판만 없다면 일반 가옥과 다름없는 밋밋한 콘크리트 건물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부처님을 아파트 앞까지 내려오시게 했을까. 하긴 교회도 성당도 사람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데 절만 깊은 산 속에 있으란 법 있을까. 애초에 사람 곁에 있던 절을 깊은 산중으로 내쫓은 것이 간사한 인간들 아니던가.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었다가도 이웃을 배려하지 않은 행동거지에는 불쑥불쑥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떨어진 거리라고는 차 두 대가 겨우 지날 정도여서 절집의 일상은 아파트에 고스란히 담겼다. 새벽 네 시면 목탁 소리가 들려오고, 아침 열 시면 스님의 설법 소리가 마이크를 ..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을 보면 이름이 참 독특하고 시적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대다수 인디언은 삶의 경험이나 품성, 자연이나 상황을 묘사한 이름을 지으며 성도 없이 자연에 결속되었다. 주먹 쥐고 일어서서, 머릿속의 바람, 발로 차는 새, 그리고 영화 제목이기도 했던 ‘늑대와 함께 춤을’도 사람 이름이었다. 길지만 멋진 의미가 있었다. 한때 네티즌 사이에서 인디언식 이름짓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나의 생년월일을 앱에 넣으니 다음과 같은 이름이 만들어졌다. ‘조용한 황소와 함께 춤을’.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나라도 한 문장으로 된 이름을 가진 이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전국노래자랑에 나왔던 ‘손 고장난벽시(계)’ 씨는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는 이름이었다. 이십여 년 전 가을, 강남에 있는 ..
논둑에 세워진 허수아비가 어깨춤을 추었다. 광대 분장의 얼굴은 새들도 겁내지 않을 표정이었다. 바람이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동안 구경하던 참새 가족이 날아와 허수아비 어깨 위에 앉았다. 핫바지 광대 따위는 겁나지 않는 모양이다. 고향 가는 길, 들녘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농부와 새들 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새들은 저들끼리 무어라 지껄이는 걸까. 어린 날, “훠~이, 훠~이” 새를 쫓던 아버지의 쉰 목소리가 동구 밖까지 들리는 듯하다. 학교 다닐 때 우둔하거나 산수가 더딘 학생을 가리켜 ‘새대가리’라고 꾸짖던 담임이 있었다. ‘오늘 아침 너희 어머니가 까마귀 고기를 주셨냐’며 머리를 콩콩 쥐어박던 선생님이었다. 고향의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보니 새의 ..
으슬으슬 몸살 기운이 돈다. 재채기가 나는 걸 보니 고뿔까지 들려나보다. 때가 때인지라 서둘러 피로 회복제 한 알과 쌍화탕을 데워 마셨다. 온몸에 약발이 도는지 낮부터 졸음이 쏟아진다. 이재무 시인은 십일월을 가리켜 의붓자식 같은 달이라 했던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허드레 행사나 치르게 되는 달이라고. 하지만 긴 겨울나기를 준비하느라 아버지는 가장 분주했다. 부엌을 고치고 굴뚝을 소제하고 측간을 비워야 했다. 모든 채비가 허드렛일이 아니었다. 상달은 일꾼의 새경을 치르고 도지를 정산하는 달이기도 했다. 농부의 빈손에 열매가 쥐어지는 달이므로 곳간이 채워질수록 집안에도 자잘한 행복이 차고 넘쳤다. 아무리 무딘 조선낫일지라도 추수가 끝나면 숫돌에 가는 일이 없었다. 고된 농사일로 자루가 부러진 연장조..
어릴 적 우리 집은 솟을대문이 있는 기와집이었다. 중류층의 보통 집 구조였으나 새마을운동 이전에는 부러움을 사는 고택이었다.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집안일을 거드는 일꾼의 살림방이 있는 행랑채가 있었다. 대문은 두 개였다. 바깥마당에서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중앙에 자리 잡은 솟을대문은 아버지의 벼슬 같은 자랑이었다. 행랑채는 살림방 외에 대문을 중심으로 외양간과 광(곳간)이 있었고, 집터를 아우르는 흙담 아래로 봉숭아가 피는 화단이 있었다. 목수인 조부에게 집 짓는 일을 배운 아버지는 전쟁통에 절반은 허물어진 어느 집 고택을 사, 기둥과 대들보를 분리해 지금의 집터로 옮겨왔다. 어찌 보면 한옥은 암수를 서로 끼워 맞추는 형식이었기에 분리가 쉽고 조립도 쉬웠다.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얹어 끼운 ..
제15회 바다문학상 본상 수상작 경남 삼천포항 근처에 사는 친구로부터 아이스박스에 담긴 택배가 도착했다. 태양력의 절기로 농사를 짓는 집안에서 흙냄새로 자란 친구였다. 조선소 근처에서 청춘을 보내더니 바닷가 사람이 다 되었나 보다. 태음력을 꿰고 물 때를 헤아리는 걸 보니 제법 갯내가 난다. 상자에는 꾸덕꾸덕 말린 가자미와 새끼 딱돔이 해조류 위에 끼리끼리 포개져 누워있다. 입덧 때 즐겨 먹던 다시마 부각처럼 기름에 노릇노릇 튀겨내면 바다가 한 상 차려지겠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바다를 본 게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첩첩산중 내륙지방 감자바위 출신이라 대관령의 명태덕장조차 가본 적이 없었다. 바다는 봄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밭을 닮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싸릿가지로 엮은 지게 소쿠리가 보리밭 한가운데 둥..
책(冊)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책이다. 책은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책에게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의복이나 주택은 보온만은 위한 세기(世紀)는 벌써 아니다. 육체를 위해서도 이미 그렇거든 하물며 감정의, 정신의, 사상의 의복이요 주택인 책에 있어서랴!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물질 이상인 것이 책이다. 한 표정 고운 소녀와 같이, 한 그윽한 눈매를 보이는 젊은 미망인처럼 매력은 가지가지다. 신간란에서 새로 뽑을 수 있는 잉크 냄새 새로운 것은, 소녀라고 해서 어찌 다 그다지 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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