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동상 뇌가 찡 울린다. 정신이 혼미 할 정도로 아픔이 눈물을 글썽이게 만든다. 베란다 벽면에 짤막한 못 하나를 박다가 그만 서툰 망치질에 못 머리를 친다는 것이 못을 잡은 내 왼손을 후리치고 말았다. 시퍼런 피멍과 통증이 단번에 엄습한다. 손가락을 움켜쥐고 푹 주저앉아 통증이 머져지기를 기다렸다. 너무 아픈 나머지 죄 없는 입술마저 깨물어 이중으로 신체 일부에 치명타를 날린 것이다. 문득, 수십 년 전 아픈 기억이 떠올라 가슴속이 불거진다. 삶의 무늬에는 기쁨과 슬픔으로 나누어진다. 엄마 가슴에는 진한 슬픔의 무늬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단단한 대못으로 박혀 돌덩이 같은 피멍은 가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넉넉한 집의 딸에서 또 그만한 집안의 며느리로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동상 가을 태풍이 휩쓸고 간 지난 주말에 고향집을 찾아갔다. 마당은 온갖 나뭇잎과 쓰레기로 엉망이 되었으며, 흙탕물로 얼룩덜룩한 바람벽은 여기저기 떨어져 나가고 틈이 많았다. 집안을 예전처럼 복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였다. 고르지 못한 벽을 손으로 훑는데, 겨울이 지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뼛속까지 시린 칼바람이 불어올 것만 같아 뒤통수가 서늘했다. 서둘러 매흙질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매흙질은 벽이나 부뚜막, 안마당에 매흙을 바르는 일을 말한다. 산비탈에서 퍼온 백토를 커다란 대야에 담고 물을 부어 흙탕물을 만든다. 그 물을 다른 그릇에 담고 하루를 재우면 앙금이 되어 가라앉는데, 마치 흐트러진 상념이 가슴 밑바닥에 침잠하듯이 내려앉는다..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동상 연이 날아오른다. 실패의 실을 감았다 풀었다 반복하며 바람을 조율하던 찰나 연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인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제 몸에 중심을 잡는 것도, 처음 만나는 세상도 연에게는 모든 순간이 낯설다. 하늘을 콕콕 찔러도 보고, 바람에게 제 몸을 맡겨보기도 한다. 곧이어 불어오는 바람이 좋은지 연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실을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더 높이 올라가보겠다는 말이다. 실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점점 더 높이 올라가는 연, 가을 하늘과 맞닿아 한 폭에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실패를 넘겨주고 사진을 찍으며 이 순간을 마음에 담았다. 나와 아이들이 처음 만든 연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날개가 비뚤비뚤 잘린 ..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은상 적막한 빈 집에 석류꽃이 피었다. 주인이 없으니 햇볕을 받아 안을 힘조차 없어졌는지 지붕 한 귀퉁이가 내려앉았다. 도시로 떠나버린 자식들을 기다리며 혼자 살던 할머니를 기억이나 하듯 마루에 방치된 자그마한 냉장고를 본다. 잡초만 무성한 마당을 지나 한 열댓 걸음 걸어가면 별채에 달린 작은 방이 나온다. 그 방안에는 주인이 보다만 책들이 널브러졌다.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 한번은 꼭 온다던 노모의 마음이 담긴 방이다. 낮게 쌓아놓은 담장 곁에 오래된 석류나무가 유난히 붉은 꽃등을 내걸었다. 고요하던 몸이 뜨겁게 들끓는다. 아무리 뜨거운 음식을 먹어도 땀을 흘리지 않던 몸인데 갑자기 더워지면서 목덜미가 흥건해진다. 남들은 추운데 나는 덥고, 남들이 더울 땐 또..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은상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이 있다 거친 흙길을 돌아 돌아서 물길을 놓치지 않고 샘이라는 이름을 얻어낸 도래샘,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도 온전히 길을 찾아낸 작은 샘은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모진 과정을 겪고 새로 태어난 샘의 안정된 모습은 얼굴을 들이대지 않아도 물 내음이 피어오르는 것 같다.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며 샘의 모습만 감상했던 나였다. 언제부터 샘이 이루어진 과정을 이해하게 되었는지 해탈의 과정을 겪은 듯하다. 안온한 얼굴에 깊숙이 자애로운 웃음 짓고 있던 그녀가 떠오른다. 돌고 돌아서 맑은 물줄기 샘솟는 도래샘 같은 모습으로 평온한 웃음을 전하던 그녀의 정연한 움직임을 기억하게 된다. 낮은 계곡 물 소리가 안내해주는 산길에 들어섰다. 처음 그 길을 ..

경복궁에 볼일이 생겨 들어설 때마다, 한가운데 높이 솟아 있는 국립 중앙 박물관의 돌층계부터 바라보게 된다. 반듯하게 누워있는 가지런한 돌층계, 보이지 않는 손짓으로 올라와 보라고 하는 것 같아, 자꾸 눈길이 끌린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 모를 일이지만, 돌층계가 날 시험해 보려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돌층계가 시험해 볼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이런 공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마 평소의 내 생활의식 때문이리라. 성실하지 못했던 생활 의식의 탓이 아니랴. 많은 층계를 우리는 밟고 오르며 산다. 층계를 밟고 오를 때마다 그것은 내게 삶의 계단으로 떠올라, 헛디딜세라 조심이 된다. 어차피 인생은 끝이 있는 층계를 딛고 올라서며 사는 것이다. 한 층에 한걸음이 맞도록 계단..
막내가 바캉스 비용을 벌기 위해서 삼복염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공사장 잡부 일이다. 첫날 저녁때, 일을 마치고 돌아온 녀석은 괴멸된 전선에서 생환된 병사 만치 지쳐 있었다. 아내는 녀석에게 선풍기를 틀어 주고 냉 꿀물을 타서 먹이고,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아무리 모성본능이라 해도 너무 호들갑을 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고마웠다. 요즈음 녀석이 제 친구들과 전화 연락이 잦은 것을 엿들었다. ‘동해안이 좋을까? 남해안이 좋을까?’하는 걸로 보아서 바캉스 계획을 음모 중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저 녀석이 바캉스를 간다고 손을 벌렸을 경우, 선뜻 바캉스 비용을 줘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문제였다. 자식이 태양이 작열하고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여름 해변에 가서 젊은 날의 호연지기를 펴 보려는데,..
축제보다 축제를 구경하는 행렬을 보는 것이 더 재미있을 때가 있다. 석 달에 걸쳐 보기 드물게 국민들의 관심이 뜨거웠던 모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 나의 느낌도 그와 같았다. 최고의 트로트 가수를 뽑는 음악경연 대회였는데 어디를 가든지 일주일에 한 번 벌어지고 있는 이 대회가 화제였다. 방송을 놓친 날은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 끼지 못할 정도인 기이한 현상이 더 흥미로웠다. 그 속에 나도 있었다. TV가 시간 도둑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주부들에게는 집안일을 미루게 했고, 학생들에게는 숙제를 미루게 했고, 어린이들은 밥숟가락을 든 채 영상에 시선을 고정시키기가 일쑤였다. 지식과 교양, 드라마와 스포츠, 다양한 분야의 다큐멘터리는 물론 지방과 국제사회의 정보를 망라한 뉴스 등을 알려주는 역할을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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