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가 화근이었다. 독이 오른 고추는 한물이 되자 벌겋게 달아올랐다. 눌어붙기 전에 얼른 집어 먹어야 하는 화력 센 불판 같은 고추밭이었다. 붉고 튼실한 고추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 손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풍요로운 농사여서 좋다곤 하나 사흘 도리 따야 하는 고추라 몸이 지쳤다. 무더운 날씨에 고랑에 쪼그려 앉아 포대기를 채우다 보면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는데 더디기는 흡사 명절날 귀성 차량 막히듯 했다. 불룩해진 고추 포대기를 들어내 경운기에 싣는 것도 버겁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명색이 뜀박질을 즐기며 체력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질 수 없다는 신념으로 살아 온 체면에 빌빌댈 수는 없었다. “엉거주춤하면 다친다, 배때기에 딱 붙여야 허리가 온전하니라.” 방학을 맞아 고추밭에서 이리저리 나대는 손..
단비가 오달지게 내린 날이었다. 아파트 경비실 쪽으로 달려갔다. 혹여 간밤에 내린 비에 섭슬렸을까 녀석의 안부가 궁금해서였다. 화단 귀퉁이에 오종종 피어 나의 오감(五感)을 일깨운 들꽃이었다. 비를 머금은 제비꽃은 참으로 청초했다. 물기로 꽃잎의 빛깔은 더욱 곱고 찬란했다. 제비꽃은 도통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대부분 양지바른 곳 척박한 땅에 피는 들꽃이다. 햇빛과 흙이 있으면 잘 자란다. 척박한 도로 경계석 돌 틈과 절벽 틈새에서도 자라니 생명력이 강한 꽃이다. 나의 눈을 사로잡은 들꽃은 그나마 보금자리가 좋은 편이었다. 얼마 전 경비원이 잔디밭을 가꾸다 군락(群落)을 이룬 제비꽃을 모두 뽑아버리기가 아쉬워 화단에 옮겨 심은 것이었다. 개체 수가 많은 꽃 중의 하나가 제비꽃이다. 지천으로 깔린 보랏빛 ..
“인자부터는 엄마 혼자서 다 하세욧!”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온 셋째의 말투가 심상치 않았다. ‘어머니는 늘 옳다’는 것은 우리 칠 남매 모두가 인정하는 진리였다. 어머니 뜻을 따르자면 힘이 들어도 지나고 보면 다 잘한 일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떼꾸러기가 되었다. 요즘 들어 어머니의 고집은 도를 넘을 정도였다. 완강하기가 신념처럼 굳건해서 최근에 판정받은 치매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다. 자식들과는 함께 살지 않겠다, 죽는 날까지 삼천포를 떠나지 않겠다, 지팡이는 짚지 않겠다, 등등이었다. 다른 것들이야 당장 탈 날 일이 아니지만, 지팡이가 문제였다. 계단을 오르다가 다리를 헛디디는 사고가 났다. 치료가 끝나자 의사는 지팡이를 권했다. 의사 말은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어머니가..

삼칠일(三七日) 동안은 ‘비밀로 해야’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아들의 음성이 떨렸다. 손주가 태어났단다. 남도를 여행 중인 남편으로부터 스마트폰으로 사진 한 장을 전송받은 직후였다. 눈 내린 마을을 배경으로 감나무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홍시 두 개가 하얀 눈을 이고 있는 풍경이 풍요로웠다. 아기가 태어난 시각의 세상이 그러했을까. 아기의 첫울음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오는 것 같았다. 바람은 고요하고, 까치는 울음을 멈췄겠다. 사진을 찍은 시각은 오전 7시 30분이었다. 아기가 태어난 때는 2분 뒤인 7시 32분이었다니 남편은 손주가 세상에 오는 기운을 영(靈)으로 먼저 느꼈던가 보다. 성당에 가던 길이었다.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면회 시간에나 볼 수 있단다. 혼자 길을 걷는데 자꾸만 웃..

긴 담장을 따라 자잘한 바람결이 흐른다. 불그레한 황톳빛으로 물든 골목, 흙이 돌을 품고 돌은 흙을 고이며 시간의 소매 끝을 붙잡고 있다. 골목 첫들머리에 대문 없는 집이 보인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집을 기웃대다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는다. 덩실한 기와집이 인기척에도 잠에서 깨지 못하고 있다. 해와 달도 지나쳐 버린 기둥과 마루는 검고 꺼칠하다. 그 옛날에는 댓돌이며 문살 어느 한구석 윤나지 않은 데가 있었으랴. 숨은 쉬지 않지만 정성 들여 지은 흔적이 보이는 집이다. 한때 열두대문 집이었다는 말이 구멍난 문짝 사이를 들락거리는데 하늘을 향해 살짝 들린 처마 끝에서 맑은 하늘이 파르르 떤다. 넓은 터에 열두 채 건물은 자취 없고 너덧 채만 듬성듬성 남아있다. 지체 높고 호방한 주인이 손님과 세상 안팎..
별빛도 없는 밤, 길 잃은 망망대해를 혼자 날갯짓하고 있었다. 위치와 방향을 상실한 채였다. 비행각은 삭풍에 가파르고 심장 소리는 두려움에 막막조였다. 칠흑 같은 어둠, 산 같은 너울, 침묵으로 염장 된 시간 속에 불빛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날갯짓에 기운이 빠져나갈수록 무력감과 절망감도 그 무게만큼 커져만 갔다. 한시바삐 등대를 찾아야 한다. 길 잃은 자에게 먼 곳의 불빛은 구원의 섬광이다. 어머니 품속 같은 안도감이고, 멀리 두고 온 연인처럼 끝없는 그리움의 대상 이다. 혼자가 아님을 위로하는 존재의 등불이고, 가야 할 방향을 길라잡이 하는 삶의 나침반이다. 믿음과 같은 거였다. 자전거를 배울 때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고 믿으면 손을 놔도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하얀 등대였다. 원통형 기둥에 방서모를 ..

2017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도심지를 벗어나 늦가을 들녘을 가로지른다. 분주함 속에 풍요가 거쳐 간 논밭에는 허허로움과 적막으로 가득하다. 그루갈이를 하려는지 곱게 가다룬 논이랑이 소멸과 생성의 끝없는 순환 고리를 엮어내고 있다. 갈잎 같은 작은 새떼가 서쪽으로 기울어진 바람을 타고 물결치듯 지나간다. 길섶에 열병처럼 늘어선 풀꽃들이 새삼 알짝지근하다. 세상 밖이어서인지 친숙한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산중 작은 요양원이다. 2층의 단아한 주택에 넓은 정원을 가졌다. 각종 꽃나무들이 앞뜰을 이루고 뒤뜰에는 여러 유실수들이 실하게 열매를 맺었다. 시득부득 말라가는 꽃잎마다 지난밤 청아하게 빛나던 달빛냄새가 스며들었다. 바닥에 수북한 낙엽들이 흙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굴리며 오체투지 ..

Con sentimento (감정을 갖고) 피아노를 팔았다. 아니 버렸다는 말이 더 맞다. 거실과 부엌 사이,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 있었음에도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가 먼저 나를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상처입고 웅크리고 있는 짐승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저 검고 흰 조각들이 맞물린 가구에 불과했다. 피아노를 돈으로 환산하고 난 후, 어쩌면 이토록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지를 생각할 때마다 돌부리에 자꾸 걸려 넘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Capriccioso (마음 내키는 대로) 피아노가 나에게 왔을 때, 나는 처녀였다. 형식이 없는 자유로운 재즈에 빠져 지내다 혼수로 폼나게 가져왔지만 결혼생활은 처녀 때 배운 재즈적인 것과 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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