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그런대로 아담하고 반질반질한 항아리 속에서 노란빛이 어린 오이지를 꺼냈다. 펄펄 뛰는 오이들을 사뿐히 눌러 진정시켜주던 누름돌을 들어내니, 쪼글쪼글해진 오이들이 제 몸에서 빠져나간 물에 동동 뜬다. 항아리 속의 오이는 볕이 들지 않은 음지에만 있어야 하기에 조금은 서먹하지만, 누름돌 무게로 숨을 죽이며 제 몸속 물을 토해내고, 간기가 스며들면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숙성되어 짜릿하고도 오독거리는 맛을 냈다. 이렇게 숙성된 오이를 맛깔스럽게 썰어 참기름을 치고, 갖은 양념을 넣어 무치면 그야말로 침이 절로 돌며 식욕을 돋운다. 그래서 오이지는 여름철 내내 우리 집 밥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밑반찬으로 각광을 받는다. 오이지를 유독 우리 집 식구만 좋아해서는 아닐 것이다. ..

제14회 바다문학상 본상 집 나간 오빠가 돌아왔다. 거지 행색을 하고. 달포만이었다. 초상집처럼 울고불고 전국을 찾아 나서곤 하던 가족들은 일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의 몰골에 할 말을 잃었다. 가난하지만 아들만큼은 온 정성을 다해 키우셨던 부모님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독 수재(秀才)였던 아들이었다. 내게도 오빠의 초라한 귀가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하늘같이 우러러 보이던, 우리 집의 우상이었던. 모범생 오빠, 그의 가출은 연유가 있었다. 난, 한 참 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부터 그는 모든 걸 포기한 인생 같았다. 짜증을 내고, 무단결석을 하고, 친구들을 불러모아 술판을 벌이고, 온종일 기타를 두드리며 고성방가를 불렀다. 그러다..

2017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고빗사위다. 아침부터 매지구름이 덮인다 싶더니 흘레바람이 흙내를 들추며 문지방을 덮친다. 부리나케 장독으로 달려가 뚜껑을 덮고 빨래를 거둔다. 호박말랭이, 시래기타래도 정신없이 안고 뛴다. 열어젖혀둔 창문 틈이 생각나 후다닥 몸을 다시 일으킨다. 다행히 비는 틈새로 미처 발을 디밀진 않았다. 처마 밑에서 가만히 비를 긋고 바라보는데 아뿔싸! 마당 귀퉁이에 널어둔 버섯소쿠리가 눈에 띈다. 흥건히 젖어버린 버섯은 이미 축 늘어져 물먹은 종이처럼 흐물흐물해지고 말았다. 비가 오거나 오려고 할 때, 비를 맞혀서는 안 될 물건을 거둬들이거나 덮는 일이 비설거지다. 내가 사는 산골엔 자주 예기치 않은 비가 내려 당황하는 일이 많다. 비설거지처럼 농촌에서는 절기나 철마다 미리미리 ..
"환갑잔치 날 받은 사람은 넘의 환갑잔치 안 간다는디." 단골에게서 점을 치고 온 게 분명한 어머니의 말투는 강하기까지 하다. 이미 이모부 잔치에 가기로 마음을 굳힌 아버지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 대꾸도 없이 옷을 갈아입는다. 아버지는 들뜨고 흥분까지 한 얼굴빛으로 이모부 회갑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월평리로 자전거를 타고 마당을 떠난다. 휙 바람이 일었을까. 아버지가 심어 둔 백목련 꽃송이가 투둑 떨어진다. 두고 온 부모형제 보고 싶은 마음에 때마다 얼마나 섧겠냐는 해설까지 덧붙이곤 한다. 어머니와 함께 도착한 저녁나절의 월평리는 동구밖까지 잔치분위기가 넘실거리고 있다. 너른 마당에는 목련꽃 핀 나무 사이로 천막이 몇 개 쳐져 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불빛과 함께 덩실거리고 있다. 백일이 막 ..
언제부터인지 돌탑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생겼다. 산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크고 작은 돌들을 주워 길옆 편한 곳에 쌓아 올려 탑을 이룬다. 돌을 쌓는 이유는 산길을 걷기 좋게 치우려는 것이거나 정성과 소망을 담아 쌓아 올리는 것이다. 누가 보아도 좋은 뜻이 담겨 있을 거라고 여겨진다. 돌을 치워 말끔한 길을 만들었다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일 것이며, 돌탑을 쌓는 데 목적을 두었다면 나름 간절한 염원을 담았을 것이다. 석공의 정교한 손길로 다듬어진 탑보다 민초들의 공덕이 모인 듯하여 조촐하고 아담하며 보기에도 편안하다. 세 번을 다녀온 봉정암은 백담사에서부터 도보가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면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고, 웅장한 바위 아래 금방 캐낸 감자 같은 탐스런 몽돌들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다. 물과 바람이 ..
실로 먼길을 돌아 지리산에 왔다.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이자 모성의 산이다. 그만큼 크고 높고 깊고 넓다. 지리산을 잘 안다는 말은 몇 생을 걸지 않고서는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리산을 잘 모른다는 말이 언제나 정답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과 자연이 그러하겠지만 알 듯 잘 모르겠고, 가까이할수록 멀어지고, 멀어질수록 어느새 가까워지는 경이로운 산이 바로 지리산이다. 그러니 지리산을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서는 한몸이 되는 수밖에 없다. 내 고향 경북 문경에서 대구, 서울을 지나 지리산까지 오는 데 35년이 걸렸으며, 이제 지리산과 섬진강의 품에 안긴 지 겨우 6년이 지났다. 자본주의와 도시적 욕망의 삶이 환멸과 권태였다면, 아주 작은 산촌이나 강촌의 지순한 삶은 종교보다 높..

섬진강 물안개가 촉촉이 귓불에 내리는 초여름 아침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낮은 목소리, 사랑의 귓속말이 세상을 바꿉니다. 크고 빠르고 높은 목소리는 일시적인 긴장과 공포를 유발할 뿐 마음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낮고 느린 목소리로 속삭이면, 뜨거운 입술이 닿기도 전에 귓불의 솜털들이 바르르 한쪽으로 쏠리다가 일어서고, 그러는 사이 사랑의 최면술은 시작되는 것이지요. 배추벌레처럼 자근자근 사랑하는 이의 귓바퀴를 깨물면 밤마다 달팽이관 깊숙이 이명처럼 휘파람새가 웁니다. 어느새 목덜미엔 마취제가 퍼지듯 마구 물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닌지요. 낮은 목소리가 세상을 바꾸고, 그 모든 사랑의 이력서는 귓속말의 추억이었습니다 그러나 추억이라는 것이 늘 아름다운 것..
# 고프다 며칠을 몸살감기로 꼬박 앓았다. 손발 꼼짝 못하고 죽을 듯이 누워있어 보기는 처음이다. 남편 혼자 밥을 챙겨 먹었다. 내게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묻고, 이런저런 음식을 해주거나 사다주었지만, 음식생각만 해도 입덧을 하듯 속이 울렁거렸다. 보리차로만 연명하기를 며칠, 어느 아침에 내 몸이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어렴풋이 보내왔다. 고프다. 아, 살아나는 거구나. 식욕은 숭고한 거구나. 그렇다면 형이하학적 욕구나 욕망이란 단어에 보냈던 경멸은 거둬들여야 한다. 정신은 고고한 것이고 육신은 비천한 것이라 여겼던 형이상학적 욕망이야말로 얼마나 어쭙잖고 편협한 오만이었던가. 먹을 것이 없어 ‘고프다’를 채우지 못하면 인간만이 지킬 수 있는 존엄성도 허물어진다. ‘고프다’엔 생명의 무게가 실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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