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이슬이 맺힌 풀숲 사이로 나는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멀리서 들려오는 계곡물 소리가 간밤 불면으로 멍해진 머리 속을 차고 맑게 헹구며 지나간다. 밤새 열변을 토하던 벗들은 아직도 깊이 잠들어 있다. 세상과도, 자기 안의 고독과도 화친하지 못한 채, 짧은 삶을 마감해야했던 한 작가에 대하여 사람들은 제각기 할 말이 많았다. 숲으로 향해 가는 내 발걸음을 마른 풀줄기가 잡아당긴다. 아직 이르니 동 틀 때까지 기다리라는 건가. 괜찮다고, 머지않아 해가 떠오를 거라고, 달래듯 어르듯 헤치며 걷는다. 늦도록 두런대는 사람들 때문에 잠을 설친 숲의 정령들에게는 돋쳐 오르는 이른 햇살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골짜기 사이에 가로놓인 나무다리를 건너간다. 나무가 삐거덕, 아픈 소리를 낸다. 한 걸..
백지는 텅 빈 무대다. 작가는 종이 위에서 연출자이고 모노드라마의 배우이다. 백지 위의 공연은 몇 백 회를 넘어도 막이 올라가면 심장이 멎는 듯하다. 배우는 관객의 마음을 피땀 흘리는 연기 하나로 사로잡아야 한다. 객석의 불이 꺼지고 무대에 밝은 조명이 켜지면 순간, 배우는 앞이 보이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응시하는 무서우리 만치 냉정한 관객의 시선을 온몸으로 느낀다. 절대 고독의 순간이다. 백지 위의 첫 줄, 호흡을 맞출 상대역도 연출도 없는 무대에서 첫 동작을 시작한다. 비어있는 백지는 거대한 강이고 하나의 문자는 작고 작은 돛도 없는 조각배다. 상처 난 손으로 힘없는 노를 저어 거센 강의 물살을 헤쳐 가야 한다. 물살에 잡혀 강의 심연으로 가라앉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 잡힌다. 모노드라마의 배우가..
수필가, 그는 수필가의 자세는 노련한 배우의 숙련된 연기 같아야 한다. 배우가 고정된 스타일의 연기만을 오래 지속할 경우 생명이 짧다. 맡은 역할에 따라 변신하는 배우들이 있다. 로버트 드니로는 ‘분노의 주먹’에서 이십 대에서 오십 대까지의 권투 선수역을 맡아 수십 킬로의 몸무게를 늘리고, ‘퐁네프의 연인들’의 데니 라방은 다리 위의 거지 역할을 위해 몇달씩 목욕을 하지 않았다. 성격 배우들의 깊은 내면 연기는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이 갖다 준 결과이다. 영화에서 환자의 역을 맡고 촬영이 끝나면 배역에 몰입한 배우는 얼마동안 심하게 앓는다. 이런 철저한 프로 정신에서 한편의 수필이 태어나야 한다. 수필을 쓸 때 고뇌와 함께 흘리는 땀과 피는 값지다. 수필가의 눈 영화를 촬영하듯 수필을 쓴다면, 수필가의 눈..
내가 아는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내가 아는 그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내가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느끼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가지면 더 갖고싶고, 오르면 더 높이 올라가고 싶고, 한 번 갖게 되면 내놓기 싫고,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오기 싫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요 생리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생각은 지극히 대중적이면서도 바른 소신을 가진 이로 자신의 이익을 탐하지 않고,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알았다. 그는 가지지 못한 자의 안타까움을 알고, 힘없고 약한 자의 슬픔을 알고, 약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 피해를 당하는 아픔을 아는 사람이다. 그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 때문에 그런 일이 ..
1. 동짓달 열이틀 저녁밥 먹는 시 내 잠재의식 속에는 시계 하나가 살아있다. 그것은 외할머니께서 나의 태어난 날을 기억시키시던 목소리다. 예사로 생각하면 우스운 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지금에 생각해 봐도 그건 내 정체성을 지켜 주는 소리였을 뿐 아니라 이 날에 이르도록 '나'라는 실체를 가장 확실하게 깨우치는 참으로 소중한 소리였던 것 같다. '동짓달 열이틀 저녁밥 먹는 시', 내가 말을 하게 되면서부터 노래처럼 익히며 외웠고, 그래선지 나이 쉰이 넘은 지금에도 귓가에 그대로 살아있다. 6.25가 터지자 어머니는 친정으로 가셨고 그곳에서 나를 낳으셨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아버지를, 그 두 해 후엔 어머니까지 여윈 탓에 외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두고 외할머니께서는 혹여라도 내가 철..
고자바리(최원현) 소리로 듣기 할머니는 늘 왼손을 허리 뒤춤에 댄 체 오른손만 저으며 걷곤 하셨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앉았다 일어나려면 ‘아고고고’ 하시며 허리가 아픈 증상을 아주 많이 호소하셨고 길을 가다가도 한참씩 걸음을 멈추곤 허리를 펴며 받치고 있던 왼손으로 허리를 툭툭 치다가 다시 가곤 하셨다. 그런 할머니의 허리가 언제부턴가 조금씩 더 구부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걸 바라보는 어린 내 마음은 더욱 편치 않았다. 할아버지는 하얀 수염으로 늙음이 나타났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허리가 굽어지는 걸로 나타났다. 기역자처럼 거의 직각으로 굽어진 허리를 똑바로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서글퍼지고 안타깝고 민망했다. 오랜만에 뒷산엘 올랐다. 그새 나무계단이 하나 더 생..
안경을 한번 써보고 싶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 안경을 쓴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도 부러웠다. 그렇다고 눈이 나쁜 것도 아닌데 괜히 안경을 쓴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겠지만 설혹 눈이 나쁘다고 해도 안경을 맞출 형편도 못 되던 때였다. 여하튼 안경을 쓴 사람만 보면 그것이 그렇게도 멋져 보였다. 요즘이야 안경이 일반화 되었고, 아이들도 오히려 쓰는 사람이 더 많을 지경이지만 안경을 쓰지 않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이요 축복인가를 알게 될 때가 내게도 찾아왔다. 전혀 예상치도 않게 내가 안경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운전면허 적성검사일이 되어 면허시험장에 가서 시력검사를 할 때였다. 검안표를 바라보는데 도무지 숫자도 그림도 제대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형체는 알겠는데 정확히 무슨 자인지, 어디로 뚫..
기차 안에서 계절의 바뀜을 본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은 허허롭지만 벼를 베어낸 자리에선 새 움이 돋아나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동그마니 벌판에 남아있던 볏짚들의 마지막 가을 햇볕 바라기가 한가롭다.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와 배추들, 잎이 몇 개만 붙어있는 나무들, 여직 황금빛 열매를 달고 서 있는 감나무, 가끔가다 보이는 까치집, 가을은 가다 말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겨울은 아주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언덕배기에선 억새꽃이 하늘거리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선 저마다의 빛깔들이 자기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해마다 이맘쯤이면 나는 앓곤 했다. 가을과 겨울,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시점에선 내 바이오리듬도 중심을 잃는다. 그러나 정신은 맑아지..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