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히 마음이 허둥거리고 생각이 많아질 때가 있다.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렀나, 나는 그동안 무얼 하였나 싶기도 하고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그간 나에게 고마움으로 다가온 사람과 안타까움으로 기억되는 사람들이 슬그머니 떠오른다. 그런 날이면 간단히 배낭을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선다. 주로 마을 뒷산이나 내가 사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런 날 무작정 걸으며 나 자신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기회로 삼는다. 그러면 나름대로 삶의 방향과 색깔을 발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작은 깨달음 하나 막연히 기대하며 길을 나서본다. 날씨는 완연한 여름이 아니건만 쏟아지는 햇살은 뜨겁고 눈부셨다. 창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과 팔에 햇볕 차단제를 연신 발..
언덕배기에 산수유가 선웃음을 날린다. 제비꽃 살풋 고개 숙이고 쑥은 쑥쑥 올라와 푸르른 향내로 길손의 손길을 맞으리. 길가에 넌출넌출 수양버들 팔 벌리니 흰머리 휘파람새 그 품에 집을 짓고, 벌판은 꽉 짜인 풍경화. 실바람에 꽃비가 내린다. 좁은 길 굽은 길 연분홍 점묘화가 지천이다. 벚꽃이 진다고 애달플 건 없네. 봄볕은 벚나무 아래 곳간을 열어 이팝꽃 팡팡 나누네. 이팝꽃 곁 철쭉이 오동통 꽃망울 앙다물고 머지않아 여민 가슴 열어보이리. 꽃비, 걱정 없다. 벚꽃은 바람에 휘날릴 때가 절정인걸. 절정에서 스러지는 저 눈부신 산화, 달콤한 봄날이다. ..... 앞 산, 키 큰 소나무가 팔 벌려 새들을 부르고 단풍나무가 아직 마른 잎을 떨치지 못하는 사이 눈치 빠른 놈은 뾰족 아기새부리 같은 여린 잎을 내..
아버지는 양반하회탈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목젖이 보이도록 탄구대소 하는 모습을 이제껏 본 일이 없었다. 가족석에서 하객을 맞이하는 엄마와 나도 헤픈 복사꽃 웃음을 날렸다. 동생의 결혼식장이다. 모두들 반갑고 보고 싶었던 환한 얼굴들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이 모두 돌아갔다. 동생네도 신혼여행을 떠났다. 늦은 밤 엄마는 나를 불러 앉히고 조용하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 귀를 후려치는 청천벽력이었다. 가슴에서 피가 솟구치듯 통증으로 전해왔다. 겨우내 무청시래기를 한 경운기씩 드시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결혼식을 불과 20여 일 앞두고 아버지의 위암말기 진단이었다. 그동안 두 분만 알고 있어야 하는 약속으로 정하고 수술에 필요한 모든 검사와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베트남 여행을 ..
토요일 오후인데 승주가 오지 않는다. 토요일날은 학교에서 열두 시 반에 파한다고 했다. 두 시가 넘었다. 토요일은 피아노 학원도 태권도장도 안 간다. 그러면 집에 들러서 점심 먹고 올라와도 벌써 올라왔을 시간이다. 녀석은 아파트에서 200미터쯤 떨어진 저의 집에서 아빠, 엄마, 동생 주영이와 산다. 토요일만 아파트에 와서 잔다. 젖 떨어지고 한때는 저의 엄마한테 갈 생각을 하지 않고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산 적도 있다. 현관 벨 소리에 “승주냐.” 하고 달려가서 문을 여니까 신문구독 외판원이다. 신문을 바꿔 보란다. 선물도 주고 육 개월은 무료로 넣어준다면서 떼거지를 쓴다. “글쎄 싫어요. 싫어-.” 신경질적으로 문을 쾅 닫아버렸다. “안 보면 그만이지 왜 신경질이여. 나도 먹고 살려구 하는 짓이여. 참..
나는 어려서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고, 또 기독교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제사라면 무조건하고 미신을 섬기는 것 같은 어리석고 나쁜 일이라는 인상이 꼭 박혔었다. 그러므로 누구의 집에서 제사를 지낸다, 더구나 추석이나 설 때 제사를 지낸다는 말은 많이 들었으나, 그 제사 지내는 모양을 자주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대굿집으로 방을 얻어오면서부터 이 제사 지내는 구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있는 집 바깥주인은 교육계에 종사하는 분으로, 3년 전에 자전거를 타고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자동차와 충돌해 즉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부인은 아직도 젊은 몸에 여섯 아이를 기르면서 그날그날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있는 방 옆방이 바로 그 주인의 빈소이..
동네 들어오는 골목어귀에 정원이 넓은 큰집이 있다. 이웃과 별로 친교도 없고 육중한 철대문은 언제나 굳게 닫혀 있어 성체처럼 보였다. 그 집 담장에는 이른 봄 개나리꽃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다운 꽃집을 만들었다. 라일락이 풍성하게 피어 있을 때는 골목 안이 향기로 가득하다. 그 중에 넝쿨장미가 온 담을 덮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다웠다. 5월의 햇살이 무르익기 시작하면 꽃이 하나 둘씩 피기 시작한다. 후두둑 단비라도 지나가면 꽃망울이 일제히 잠에서 깨어나 담장을 온통 빨갛게 물들이며 꽃의 향연이 절정을 이룬다. 새빨갛게 갓 피어난 싱그런 꽃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저절로 눈길이 모아지고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그 곳에서는 한 번쯤 발길이 머루르곤 한다. 나도 우울하거나 짜증이 나는 일..
제4회 경북일보문학대전 동상 톡!, 건드리면 뚝뚝 푸른 물이 들을 것 같은 하늘과 그 밭에 만개한 구름, 아득한 초원 위로 길게 누운 지평선, 산허리에 걸린 길과 다르촉*(經幡)에 이는 오색의 바람, 눈 맑은 야생화가 하느작거리는, 잃어버린 샹그릴라가 이쯤인가 싶은데…. 다르촉 울타리 넘어 천장(天葬)**의식이 한창이다. 시취를 감지한 독수리들 철책처럼 천장터를 두르고, 까마귀 떼 식이 끝나기를 목 빼고 기다린다. 라마승의 독경이 끝나자 천장사가 사자(死者)의 등에 주술무늬를 넣는다. 햇볕에 벼린 칼이 검무를 출 때마다 사지가 흩어지고 뼈와 살이 분리된다. 사나흘쯤 굶주린 독수리들, 눈빛에 칼날이 번득인다. 천장사가 신호를 보내자 사위를 후려치는 소리의 포효, 죽음처럼 깊은 잠을 흔든다. 휴대전화였다. ..
제4회 경북일보문학대전 동상 나의 하루는 터널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고속도로에는 터널이 많다.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험준한 산세를 에돌지 않고 이토록 쉽고 명쾌하게 관통할 때마다 우리의 생이 이러했으면 하는 바람이 불어온다. 그러나 생의 터널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도 가도 출구가 없을 것 같은 날들이 있다. 터널을 지나면 다시 새 터널이 기다린다. 어떤 날은 터널 속조차 무너져 홀로 고립되어 우울한 기분일 때도 있다. 전국을 다니다가 무척산터널 근방을 지날 때면 불현듯 목석 같았던 아버지가 생각나곤 한다. 무척산에는 아버지가 계신다.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인 중학생 시절부터 나무를 깎고 다듬는 일만 천직으로 해오셨다. 목재소에는 어떠한 속이 뒤틀린 야생 원목이 와도 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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